0081 <-- 강도소굴 -->
‘좀처럼 틈이 없구나.’
보다 원활한 척후 활동을 위해서 지원의 형식으로 〈추적 용병단〉에 잠시나마 몸을 담그게 된 〈베테랑 병사〉 〈사년병(四年兵) 울라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정찰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송이 용병〉에게 드낙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레 드낙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보다 깊은 것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드낙이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볼에 솜털도 빠지지 않은 드낙이었기에 울라스는 그런 의심을 접고 싶었지만 상황이 계속해서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내 확신하게 되었다. 드낙이 일부러 자신을 견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름이 끼쳤다. 그야 그럴 것이 이런 종류의 의심은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 풍파에 제법 맞아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솜털 하나 없는 드낙이 통수를 몇 번 맞아본 것도 아닌데도 의심하고 있었다.
‘젠장할···’
무엇보다도 그를 끔찍한 기분으로 만든 것은 드낙의 처신이었다. 그를 크게 압박하지 않고,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위협도 없었고, 경고도 없었다. 이스핀과 도렌에게 언질을 따로 한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저 울라스가 이스핀과 도렌의 곁에 있을 때 항상 있을 뿐이었다. 짧은 이야기로는 절대로 끄집어낼 수 없는 종류의 질문만 막았다. 평범한 드낙의 정보는 얻을 수 있었고, 그들 사이에 있었던 추억거리도 제법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원하고 울라스를 칭찬하게 만들 정보는 하나도 얻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정보는 드낙이 없을 때, 애송이 용병을 요리해서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드낙은 울라스가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어중간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부터 드낙은 특출난 인물로 여겨졌다. 소름이 돋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힘을 가졌다. 하지만 협박을 하지 않았지.’
드낙이 기사의 힘을 가졌다는 것은 〈베테랑 병사(적어도 삼년병(三年兵) 이상)〉 중 몇몇 이상한 놈들 빼고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보통 그런 무력을 가지고 있는 자는 열 중 여덟이 힘으로 해결한다. 그중에 그렇게 하지 않는 두 명은 무력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외였다.
고로 드낙의 행동은 비정상적이었다. 인간 같지 않았다.
‘그는 용병단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하지만 용병들에게 언질해서 날 견제하지도 않았다.’
작지만 자신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또한 드낙의 말이면 척하고 행했다. 그가 〈추적 용병단〉에게 이스핀과 도렌이 애착을 강하게 갖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울라스만해도 이런 용병단이라면 들어갈 생각을 한 번은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드낙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음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울라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런 시간을 계속 보내며 임무를 진행하는 일이 전부였다. 염탐 따위 불가능했다.
드낙은 울라스가 자신에 대한 것을 캐내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때로는 가진 것의 일부를 아무것도 안 한 채로 건네줘야 할 때가 더 좋은 법이지.’
지나치게 자신을 숨기려 한다면 많은 소문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거침없이 제공하면서 정작 숨겨야 할 것은 숨기는 삶은 그런 의심 하나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드낙은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울라스를 막아냈다. 울라프와 각이 선다면 척후 활동이 끝나고 후환이 두려웠다. 그래서 빠른 해결보다는 제법 긴 시간이 걸리는 판단을 내렸다.
도렌은 눈치가 없지만 나쁜 성정을 지니지 않았기에 회유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고, 이스핀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 명은 찰떡처럼 붙어 다녔기에 울라스는 도렌에게서 말실수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마치 5살 난 동생을 둔 것처럼 도렌에게 물어도 이스핀이 대답했기 때문이다.
〈강도단 여우몰이〉 때 한 번 서로 전투 호흡을 맞추고 이스핀은 어리숙한 도렌을 인정했다. 실력은 없어도 동료를 버리고 가는 놈이 아니었고, 이기적으로 자신만 챙기지도 않았다. 어리숙하고 실수투성이에 때로는 생각 없이 행동하지만 누구보다도 남자다운 것이 도렌이었다.
겉은 유해 보여도 속은 강단이 있었다. 그것을 함께 한 지 3주차에 접어들어 몇 번이나 일을 함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눈치가 좋은 이스핀이 이 정도였다.
울라스가 노리는 도렌은 생각보다 쉽게 회유되는 자가 아니었다. 또한 말실수는 이스핀이 막아주고 있었으니 철옹성을 창 하나 꼬나쥐고 쑤시는 꼴이 된 것이 울라스의 현재 형편이었다.
물론 이스핀과 도렌 모두 울라스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기에 관계가 틀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강도단의 은신처〉에 두 번째로 방문한 드낙은 토굴에 짐을 풀며 말했다. 이스핀은 불을 피우고 있었고, 도렌은 오면서 모은 장작을 차곡차곡 토굴 중앙에 마련된 화덕에 차곡차곡 넣었다.
〈뒷구멍 강도단〉의 추적이 그들의 첫 번째 목표였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서로 누운 채 작전에 대해서 말했다. 드낙이 주(主)가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것은 〈작전 통보〉나 다름없었다. 병사로서 제법 경험을 쌓은 울라스에게는 제법 굴욕이었다.
‘하자가 있다면 바로 찔러버릴 것이다.’
그렇게 독한 마음을 품었지만 드낙은 매우 상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산언덕에서 역량을 크게 올린 이스핀과 도렌이었다. 게임처럼 경험치가 쌓이면 1업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으로 치면 못해도 50업은 넘게 했다고 할 수 있었다.
“2인 1조, 2개조로 움직일 겁니다. 애초에 전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찢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전투는 하지 않는다〉라는 목표점 또한 좋았다. 흩어진다는 것은 곧 걸리기 힘들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방패는 두고 다녀야 합니까?”
“당연히.”
이스핀이 아쉬워했다. 몸집이 큰 그는 방패가 없으면 괜히 불안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제대로 된 무기와 방어구를 사용한 기간이 짧은 것이 이스핀이었다. 도렌의 경우 숏소드만 4년을 휘둘러대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큰 재산이었다.
울라스는 말을 아껴야 했다. 작전 자체는 좋았기 때문이다.
“급하면 급할수록 강도단이 더 좋은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수색을 진행하십시오. 기간은 충분합니다.”
‘충분하긴 개뿔.’
울라스가 이죽거렸다.
말을 마친 드낙이 몸을 일으켜서 가죽 배낭에서 제법 두툼한 양피지를 꺼내서 울라스에게 건네주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만든 지도입니다. 여기서만 10일을 넘게 보냈는데 아무것도 안 했겠습니까?”
“아!”
울라스가 탄성을 질렀다. 지도가 있다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다. 대부분이 간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제법 되는 강도단은 제법 큰 산언덕 사이의 골짜기나 우거진 숲언덕에 있을 공산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잘 숨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봐야 할 포인트는 총 12곳입니다.”
“1조가 6개의 포인트를 돌아봐야 한다면···”
“새벽에 출발한다면 적당히 걸어도 두 곳은 봅니다. 정확한 수색을 한다면 하루에 한 포인트. 2개조이니 하루에 2포인트. 총 6일이 소요됩니다.”
울라스가 그 말에 걱정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길지 않습니까?”
“그럼 짧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야···게실리안 지휘관이 준비를 마치고 계시니···”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전혀 상관없습니다. 빠르게 돌아다녔다가 강도들이 눈치채고 잠적하면? 그 책임은 울라스 병사가 책임질 겁니까, 아니면 게실리안 지휘관께서 지실 겁니까?”
“그것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불리해지는 것이 없으니 아무 상관없는 걱정으로 괜히 분위기를 망치지 마십시오.”
“예. 죄송합니다.”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점수를 따고 싶다는 이유로 수색을 가속화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은연중에 그것이 입 밖으로 드러나자 울라스가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했다. 한 방을 호되게 먹은 것이다.
이것은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속해있지 않은 현상황이었기에 드낙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기도 했다.
그 외에는 기본적인 언덕이 많은 〈삼거리 언덕길〉의 지형에 따른 전술을 다시금 이야기하는 것이 주류였다. 이스핀과 도렌은 물론이고, 울라스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기에 지루할 정도였다.
다음 날, 새벽부터 4명은 둘로 찢어져서 척후에 나섰다.
드낙에게서 다이렉트로 교육을 때려 박혀진 이스핀과 도렌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어딜 가든지 그림자 밑으로 이동했고, 수풀을 이용해서 몸을 엄폐하며 움직였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어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시간도 가졌다.
점심 전에 〈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때?”
“사람 하나 안 보이는데. 가까이 가봐야 알겠어.”
드낙이 결정한 포인트는 결코 멀리서 판단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30인 이상의 인원이 숨기 좋은 곳이었기에 하나하나 발로 밟아봐야 했다.
2시간가량을 수색에 투자한 두 사람은 허탕을 쳤다. 있는 것이라곤 모닥불의 흔적과 버려진 은신처 따위였다. 추적에 능하지만 흔적을 보는 것은 영 맹탕인 것이 이스핀과 도렌이었다.
“대장이라면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빈나무 굴뚝〉이 있는 버려진 강도들의 은신처 내부에서 도렌이 말했다. 이스핀도 동의하는 바였다. 두 사람 보두 〈횃불 성채〉에서 나고 자랐기에 흔적을 찾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통 몰랐다.
드낙의 교육은 추적에 능한 용병을 단기간에 만들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험이 부족한 용병이었다.
내친김에 점심을 하기로 했다. 미리 가져온 물과 육포 그리고 몇 종류의 추가적인 식료품이 전부였다.
“뭐야? 왜 자꾸 쳐다봐?”
“엉? 안 봤는데.”
이스핀이 거세게 쏘아붙이자 도렌이 헤실 웃으면서 육포에게로 눈을 옮겼다. 그것은 이스핀의 심기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거침없이 밖에 있는 강도를 끌어내기 위해서 이스핀보다 먼저 앞서 나갔던 용감한 모습과는 대조되는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빨리 말해봐. 지금 아니면 못 말한다.”
도렌 스스로도 지금이 기회인 것을 알고 눈총을 쐈으면서 정작 이스핀이 눈치 좋게 알아차리자 금세 움츠러들었기에 이스핀이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대장이 정말로 그 많은 은화를 균등하게 배분할지··· 여러 생각이 많아져서.”
“크하하!”
이스핀이 순간 빵 터졌다. 도렌다운 걱정이었다.
“넌 그렇게 생각 안 하냐? 의뢰금이 너무··· 많잖아.”
신입으로 들어간 작은 회사에서 월급을 1600만원 받을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회초년생의 고민처럼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그래도 꼴에 정확하게 계산은 한 번 했나 보네.”
두당 은화 16닢에 동화 550닢.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용병 의뢰 8번~16번은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그것도 용병단으로 움직이면 인원과 용병단 내부에서의 영향력에 따라서 받는 돈이 다다르다.
“흐음···”
이스핀이 고민했다. 도렌과 제법 어울리면서 도렌의 생각을 제법 잘 판단하게 된 이스핀이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하나.’
자신의 형제로 인정한 도렌이었다. 그것은 제법 성급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강한척하던 〈석궁사수 베드리〉보다는 10배 나은 놈이 도렌이었다.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을 더 신뢰하는 감정적인 이스핀이었기에 빠르게 도렌을 자신의 울타리에 넣은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