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0 <-- 강도소굴 -->
게실리안 지휘관이 〈추적 용병단〉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원탁회의에 용병은 참가할 수 없었다. 제법 〈날 것〉이 드러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들어도 다른 이에게 들으라는 소리였고, 아주 훌륭한 책임 회피 법이기도 했다.
소대장 -〉 중대장 -〉 대대장 -〉 연대장으로 결정이 유보되는 사이에 좀비가 병사를 물어버려 박살 내는 상황이 군필자에게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처럼 외부 용병들이 알면 안 되는 정보가 들어갔을 때 생기는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많은 야수, 몬스터가 작거나 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전쟁(War)은 없는 것이 〈남부 왕국〉이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평화가 길어질수록 권리는 좋아해도 책임은 싫어하는 법이었다.
그 행위가 가지는 끔찍한 결과를 분명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임병사 불세벤〉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게실리안 지휘관의 1차 방어벽이나 다름없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해야 했고, 불세벤은 그런 안전을 도모하면서 드낙에게 구색을 갖추기에 마땅한 위치에 있었다.
“어딜 갔다 오시는 길이십니까?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불세벤은 군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게실리안 지휘관과 함께 했던 세월 때문에 그가 드낙을 제법 높게 쳐주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함부로 안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드낙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게실리안 지휘관을 존중하기에 겉으로라도 드낙을 존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진실성이 거세된 존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기 위한 현실의 지표는 쥐꼬리만했기에 드낙은 알 수 없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의 울타리에 들어서게 되면서 불세벤의 말투도 바뀌었다. 그가 직접 불세벤을 보냈기에 이번 명령으로 드낙에 대한 존중의 계단이 한 단계 더 상승했다. 드낙은 그 모습에 흡족함을 느꼈다.
‘이래서 다들 출세하는 거지.’
〈애송이 용병〉에게 존대 받는 것과 귀족의 부관에게 존대 받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남들에게 존중받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님을 드낙은 알고 있었다. 비록 불세벤의 존중이 거짓부렁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게실리안 지휘관이 드낙의 손을 잡아주었기에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통보〉라니. 원탁회의에 참가는 못해도 관전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컸다. 그 아쉬움을 이스핀과 도렌과 함께 산을 타면서 땀으로 풀었다. 돌아오니 불세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통보〉를 시작했다. 아주 모순된 상황이었다.
외부 용병이기에 원탁회의에 관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게실리안 지휘관의 언질이 있었으니 내용을 안 알려줄 수도 없었다. 〈선임병사 불세벤〉은 그 위험한 모순의 다리를 한 발짝씩 건너야 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드낙이 믿을 만하다고? 천만의 말씀이었다. 불세벤은 그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가 가진 가벼운 기반 때문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봤자 용병이고, 가문 없는 기사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라라고 말하는 기득권이나 다름없었다. 자유기사들에게 출세를 꿈꾸고, 그 힘을 신념에 따라서 사용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똑똑하지만 젊은 것들을 사용하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서나 비슷했다. 젊을 때일수록 아파봐야 하며 〈열정페이〉를 받아봐야지 진짜 젊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세상에 가득했다. 어떻게든 돈 하나 아껴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말씀하실 겁니까?”
“예.”
그 말에 이스핀과 도렌이 귀를 기울였다. 자신들이 들어도 되는 말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추적 용병단〉은 지금까지 보여준 공적을 통해서 척후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목표는 〈30인〉 이상의 중규모 강도단을 찾는 일입니다.”
소규모 강도단이 무성한 남부 황금 평야 길목에서는 찾기 어려운 놈들이었다.
“이미 강도들의 심문(협박, 회유, 고문)을 통해서 알아낸 바로는 〈뒷구멍 강도단〉이라고 불리는 중규모 강도단이 유일하게 하나 있다고 합니다. 강도들을 협박해서 약탈품을 매달 받아내는 놈들이기에 〈남부 황금 평야〉로의 길목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합니다.”
물론 100% 믿어서는 안 되는 정보였다.
“추적하고, 다른 강도단에게 들키지 않고 병사가 움직일 루트를 설정하는 것이 그대들의 임무입니다.”
드낙이 눈을 빛냈다. 말 그대로 이번 토벌전의 주역이나 다름없었다.
‘야망이 대단하구나.’
〈추적 용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은 슬쩍 지워지고 게실리안 지휘관의 이름이 오를 것이다. 드낙이 기사만큼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작정하고 이용할 생각이었다.
‘와. 정말 지독하구나.’
분노조차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무력 수준이 들킨 스스로에게 후회만 생길 뿐이었다.
“보통 일이 아니기에 의뢰비는 더 쳐준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올리셨습니까?”
“게실리안 지휘관 개인 사비까지 합쳐서 총 은화 15닢을 드릴 겁니다.”
이스핀과 도렌이 펄쩍 뛰었다.
“열다섯 닢!”
그들은 드낙이 금화를 꽁쳤다는 것을 몰랐기에 저 은화가 균등하게 배분될 것임을 잘 알았다.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표정이리라. 이스핀은 매일같이 잠들 때면 배분 받을 돈을 매일 같이 계산할 정도였다.
그만큼 〈추적 용병단〉은 아주 돈줄에 올라타있는 상태였는데, 거기에 돈으로 된 파도가 한 번 더 후려친 것이다.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불세벤이 드낙에게 목례를 했다. 그는 곧바로 갈 길을 갔다.
첫 번째 소규모 강도단에게서 얻은 〈숨겨진 목함〉에서의 돈이 은화 5닢에 동화 900닢. 강도 4명의 생포로 동화 40닢. 전리품으로 은화 9닢에 동화 400닢.
두 번째 대규모 포획으로 얻은 강도 31명의 생포로 동화 310닢. 전리품으로 은화 20닢.
게실리안 지휘관의 특별 의뢰금으로 은화 15닢.
총 은화 49닢에 동화 1650닢. 두당 은화 16닢에 동화 55닢을 배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애송이 용병의 한 달도 안 된 수입이 1600만 원이다. 말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드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보통 용병단이었다면 이렇게 벌어도 은화 1닢을 배분 받을 정도로 인원이 많았다.(용병 대장이 먹는 지분도 높다.)
‘흐흐흐!’
입이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돈은 곧 드낙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뀌었다.
‘끝까지 따라간다!’
이스핀이 이글거리는 눈을 했다. 도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었다. 보스(Boss)가 대부분인 곳에서 리더(Leader)를 만난 격이다.
드낙은 사실 후회하고 있었다. 그냥 총 수입만 생각했을 때, 은화 5닢만 줘도 되는데 균등 분배를 외쳤다. 현대의 고상한 헛물을 정확하게 들이부은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기업 오너들도 안 하는 짓을 내가!’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었다. 이스핀과 도렌의 역량은 물이 올랐고, 그들과 정까지 든 드낙이었다. 다시 바꾼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다. 용병단을 나가지는 않겠지만, 전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선임병사 불세벤〉이 간 뒤로 추적 용병단은 분주해졌다. 당장 내일 출발 계획을 세웠다. 즉흥적이었지만, 이스핀과 도렌은 반대 따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이었다. 이스핀은 그것을 입고 싶어 했지만 드낙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아니 제가 입은 가죽 갑옷 보십시오. 그냥 한 번 이렇게 긁으면 바로 찢어집니다.”
“지금 의뢰와는 맞지 않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드낙이 웃음 지으면서 주먹을 추켜올렸다. 평범한 덩치와는 다르게 〈망령 기사의 찌꺼기〉를 받아먹은 드낙이었다. 손이 무척이나 매웠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경향이 강한 이스핀은 몇 번 드낙에게 매를 벌었었다.
어린애처럼 소리를 한 번 지를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손맛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스핀이 경기를 일으키며 깨갱하듯이 움츠러들었다.
“아니,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아, 예.”
드낙에게 급소인 겨드랑이가 찔렸었던 고통은 이스핀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아무튼 지금과는 맞지 않습니다. 저거 입고 산을 한 번 타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멋스러움이 장난 아니었다. 중고품인 자신의 가죽 갑옷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스핀이 뒷골목의 가오를 생각하며 미련을 못 버리고 드낙과 티격태격할 때 도렌은 마음을 잡고 있었다.
‘절대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어.’
뭘 해도 엉성하고, 처음 하는 일은 실수를 무조건 하게 되는 도렌이었다. 추적 용병단에서 가장 무던한 성향인 도렌은 드낙의 특출남과 이스핀의 거친 모습에 영향을 매번 매 순간 받고 있었다.
그로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드낙은 이스핀이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을 입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입는데 단원은 못 입게 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우직하게 밀어 세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소식을 미리 듣고 보고까지 받은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이 출발 준비를 마친 드낙을 새벽녘에 마주했다.
“이런 새벽인데 대단하십니다.”
“기사 가문이라 새벽 단련이 습관이 되어서 말이네. 저 두 사람이 자네의 단원들인가?”
“예. 모두 어립니다.”
그 말에 게실리안이 턱짓을 하자 이스핀이 눈치 있게 대답했다.
“이스핀이라고 합니다. 17살입니다.”
“수, 도렌이라고 합니다. 17살입니다.”
도렌은 〈수염 도렌〉이라고 말할 뻔하다가 고쳐서 말했다. 무례하다고 여겨질 것 같았고, 이스핀이 자신을 〈큰방패 이스핀〉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실리안 지휘관은 두 사람의 이름을 잊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찾았으면 해서 〈베테랑 병사〉 하나를 붙여주겠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도움이 될 거네.”
“예. 감사합니다.”
게실리안 지휘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드낙이 거침없이 대답했고, 지휘관이 데려온 무리에서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사년병(四年兵) 울라스〉였다. 베테랑 중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면서 경력도 4년이나 되었다.
“울라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드낙이 그의 복장을 순식간에 훑었다. 흉갑을 입고 있긴 하였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편의성을 높였다. 제법 방어력을 생각한 드낙과는 달랐다. 그렇게 그들은 출발했다. 이스핀과 도렌은 울라스와 잡담을 떠들었다.
그는 곧잘 두 사람과 어울렸다. 특히나 군복무를 하면서 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눈을 붙여두다니. 나도 그렇게 했겠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
드낙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볼 생각일 것이다. 또한 용병단의 일을 도와주면서 족쇄 역할도 할 터였다.
‘나에 대해서도 조사할테지.’
이스핀과 도렌을 통해서 드낙에 대해서도 들을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임을 잘 알았다.
드낙은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