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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9화 (7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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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용병단〉이 〈토벌전〉에 동원되었다는 소식은 〈선임대장 불세벤〉을 통해서 곳곳에 퍼져나갔다. 당연히 〈전쟁상인 판파넬〉도 들을 수 있었다.

“휴.”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금화 1닢 때문에 장고(長考)를 두었을 정도로 고민했던 판파넬이었다. 수입이 대체로 은화인 용병단에게 금화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는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너도나도 금화를 들고 있을 것이다.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욕심만이 다른 이의 가치를 낮게 만들 수 있었다. 한우 세트를 보너스로 주는 한이 있더라도 부하 직원에게 돈을 푸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었다. 만족하게 된다면 딴마음을 품기 때문이다.

지독한 생각이었지만 목마름이야말로 인간을 다루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안 줬다면 큰일 날 뻔했군.’

그저 동원되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불세벤의 말에 따르면 제법 중요한 역에 맡긴다고 언질을 받았다는 것이 판파넬을 불안하게 했다. 다행이라면 드낙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것이다.

‘금화 1닢 안 주려고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를 뻔했군.’

군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피해는 못 주겠지만, 그래도 불편한 하루를 보내야 할 것이다. 이미 기득권이 된 판파넬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기 힘든 것이었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고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의 손목에 칼집을 낼 정도로 두려워하기도 한다.

적어도 토벌전에 있어서 드낙은 〈중한 역〉을 맡게 된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제대로 앙금이 쌓였다면 무리한 짓을 통해서 판파넬과 각을 세웠을 것이다.

당연히 전투를 앞두고 전쟁상인의 손을 들어줄 게실리안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는 젊고, 유능하며 야망이 있는 자였다. 용병이 제법 중요하다며 불세벤에게 언질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판단이 끝났을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판파넬은 스스로 드낙을 찾아갔다.

“아니, 어쩐 일이십니까?”

뜻밖의 방문자에 드낙이 놀랐다. 군막 안은 4명이 쓰기에는 비좁았기에 드낙의 눈총을 맞은 이스핀이 도렌을 잡아당기며 군막에서 나갔다.

“잠시 병사들과 토벌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보를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예. 그러십시오.”

제법 형님들을 모셔본 이스핀은 척하면 척이었다. 판파넬과 함께 온 그의 직원 2명이 큰 가죽 포대를 군막 안에 놓았다. 고개를 드낙에게 깊이 숙이면서 빠져나갔다.

드낙의 시선이 자연히 그곳으로 향했다. 기대감이 샘솟았다. 그 덕에 시작부터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이번 〈토벌전〉에서 제법 중요한 임무를 맡으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웃음이 만개한 판파넬의 얼굴에 드낙은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참았다. 당장의 원초적인 짜릿함보다는 실질적인 일보(一步)가 더 중요했다.

“여기는 참 말 한 번 쉽게 못하겠습니다.”

판파넬과 불세벤의 연결고리는 〈왕국 야영지〉에서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드낙의 불평에 판파넬이 헛웃음을 지었다. 드낙 또한 자신을 통해서 제법 정보를 만져놓고는 그런 소리를 하다니.

‘너랑 나랑 다른게 뭐냐?’

속으로 이죽거린 판파넬이 이내 자신의 부하가 가져온 가죽 포대를 개봉했다. 그곳에는 양질의 방어구가 들어있었다.

“우리들의 관계가 어제오늘이 아니지 않습니까?”

드낙은 양질의 가죽 방어구를 보자마자 방긋 웃으면서 곧바로 그 말을 받았다.

“내일도 계속될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군막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확히 3벌을 준비했습니다. 아주 공을 들인 것이라 시중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겁니다.”

“어디, 얼마나 좋은 것인지 좀 들여봐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판파넬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지.’

“크흠! 술이 있습니까?”

“남자 셋이서 지내는 군막인데 없을 리가요.”

술을 한 잔 걸치고 나서야 판파넬이 방어구를 설명했다. 부위는 상체, 하체, 어깨와 팔, 무릎 위까지 오는 부츠에 가죽 장갑으로 이루어진 풀세트였다.

“일단은 전부 꺼내놓고···”

직원 두 명이 옮긴 것이라 상당한 크기의 가죽 포대였다. 반질반질한 가죽 갑옷은 표면부터가 남달랐다. 〈상품성〉 하나는 죽여줬다.

‘비주얼이···’

세제로 닦아서 광채가 나는 사과 같았다. 판파넬이 조심스럽게 가죽 방어구를 꺼내서 차곡차곡 준비하는 사이에 드낙이 웃음 지었다.

‘꽁지가 빠지게 쫓아와서 뇌물이라니. 어지간히도 게실리안 지휘관을 두려워하는군.’

드낙같은 기반이 적은 〈3인 용병단〉은 어디서든 기반을 버리고 다른 지방에서 새출발을 할 수 있지만 판파넬은 아니었다. 그가 쌓은 기반은 〈메디오 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로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은 판파넬이었다.

전세역전이나 다름없었다.

“가죽 갑옷의 안쪽에 아주 얇은 철판이 있습니다. 여기 보이면 꿰맨 흔적이 지워졌지만 흔적은 보이실 겁니다.”

어깨 방어구의 안쪽 중에서도 측면에 과연 꿰맨 흔적이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접착제가 굳어 있었다.

‘사포로 긁어서 부드럽게도 만들었군.’

노력이 들어간 것을 절로 확인할 수 있었고, 타격하기 어려운 어깨 방어구의 목 쪽에 있는 곳의 안쪽 측면에 꿰매었기에 터질 염려도 없었다. 검이 쑥하고 들어갈 곳이었지만 목을 꿰뚫지 않는 이상 찌르는 게 불가능했다.

‘가죽 방어구를 많이 만든 노하우를 가진 자가 만든 것이다.’

당연히 비쌀 것이다. 그리고 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가질려는 자가 많기 때문에 값이 올랐음은 물론이고 세력 싸움으로 독점 경쟁이 붙었을 것이다.

“대단하군요. 모든 곳에 철판이 있습니까?”

“예. 당연하지요. 하지만 보통 가죽 갑옷보다 조금 무겁습니다. 가죽 때문입니다.”

"몇 킬로입니까?"

판파넬은 킬로를 말하기 전에 가죽에 대해서 설명하겠다고 말하였다. 마치 드낙에게 장점부터 말하며 판매욕을 부추기는 보부상 같았다.

“가죽은 〈굴렁쇠 코뿔소〉라 불리는 동물의 것입니다. 〈일백야수(一百野獸)〉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는 초식동물입니다. 배가 고프면 육식도 한다고 하지만 믿기 힘든 말이라···하하.”

드낙이 관심을 가졌다. 처음 들어보는 동물 이름이었다.

“몸이 큰 바위만 한 놈입니다. 앞다리와 뒷다리에 둥근 철 같은 것이 있는데, 아랫배나 목을 노리기 힘들게 만드는 놈이라 잡기도 아주 어려운 놈이고, 성한 가죽을 얻는 것도 힘든 법이지요.”

절로 상상이 갔다. 아주 무식한 방어였다.

“어떻게 잡습니까?”

“보통은 못 잡습니다. 천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드낙이 탄식했다. 아주 분위기는 분위기대로 잡아놓고는 자기도 모른다니.

“만져보십시오. 기름을 먹여서 반질반질하지만 굵기가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가볍습니다.”

“흠, 정말이군요. 굳이 철판까지 넣어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그 말에 판파넬이 뜨끔했다. 실제로도 그러해서 그에게까지 흘러들어간 〈제국 공방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자는 드낙의 정확한 생각처럼 〈중량〉에 있었다.

“가죽 자체가 무거운 것이라, 중량이 10kg은 됩니다.”

드낙의 표정이 변했다.

“아니 가죽 갑옷이 7kg 이면···”

총무게라고해도 무거웠다.

“예. 거의 흉갑 수준이죠.”

기가 차는 방어구였다.

“그래도 방어는 탁월합니다.”

드낙은 떨떠름했지만 선물이니 너무 싫은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방어력은 특출나니 상등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예···”

체인 메일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안 좋게 보였다. 전신을 옷처럼 보호하는 체인메일과 다르게 가죽 방어구는 빈틈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스핀이나 도렌에게는 당장 못 쓰겠네.’

〈망령기사〉의 찌꺼기를 먹은 드낙이야 워낙 체력이 좋아서 무리 없이 착용하고 산언덕을 탈 수 있지만 두 명은 달랐다. 아직도 한참 체력을 단련해야 했다.

뇌물을 받은 드낙은 가죽 포대까지 챙겼다.

“단원들에게 주기야 주겠지만 아직은 쓸 수가 없어서···”

익숙한 중량을 버리고 새로 방어구를 바꾸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토벌전을 코앞에 두고 바꾸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명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었기에 드낙 또한 당장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이용할만하다.’

재밌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방어구의 단점은 비전의 어레인지를 구상한 드낙에게는 〈재미있는 요소〉였다.

두 사람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일〉을 잊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판파넬은 드낙의 호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드낙은 판파넬의 호의를 통해서 보다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성과가 보였다.

그 사이에 그동안 수립한 〈토벌 작전〉은 전면적으로 수정을 하고 있었다. 베테랑 병사들과 〈선임병사 불세벤〉 그리고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이 참석한 원탁회의였다.

평등한 원탁회의는 결코 아니었다. 떡하니 높낮이가 달랐고, 상석과 하석이 눈으로도 구분됐다.

“강도 31명을 3명의 용병들이 끌고 왔으니, 그들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용해야 하오.”

〈병사의 난〉 이후로 남부 왕국의 군체계에 있어서 하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병과 간부 간의 존중은 겉으로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최소한으로 퍼져 있었다. 물론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지휘관도 많았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원탁회의에서만큼은 존중해주었고, 그 외에는 하대를 섞어서 했다.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근본 뼈대가 귀족인 그였다. 때때로 반말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추적 용병단〉은 인원수가 적습니다. 사용한다면 척후가 제격입니다.”

“중보병이 대다수인 우리 병사들인데, 척후를 해서 뭐 합니까? 이미 강도 31명이 박살이 났다면 강도들의 경계도 올라가 있을 겁니다.”

“생각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자들이요. 그렇게까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소?”

강도의 수준에 대한 의견부터 다 달랐다.

“용병단의 수준을 너무 높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들 중에 나이 스물이 된 이가 하나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게실리안이 딱 잘라서 끊었다.

“〈추적 용병단〉의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시오."

"예···"

〈왜〉라는 질문을 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드낙의 〈특징적인 굳은살〉은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물론 겉으로 숨겨야 하는 내용이었기에 함부로 입을 나불대는 베테랑 병사는 없었다. 그가 기사라는 것을 말하고 다녔다가 이름이 거론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서로서로 이야기는 하겠지만 공식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또 달랐고, 대책 없이 떠벌리고 다니는 것도 좋지 않았다. 입은 무거울수록 미덕이고,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만 정보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지는 것이 기본이었다.

“척후를 돌린다면 효과를 크게 봐야 합니다. 토벌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매복과 기습이 주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강도를 〈토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30명은 되는 강도 소굴을 찾아내야 합니다.”

원탁회의는 뜨거웠다.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어떻게든 어필하려는 병사들이 많았다. 그는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가문〉이 있는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이 그의 입에 쑥하고 넘어가도 좋다고 춤을 춰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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