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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7화 (77/1,239)

0077 <-- 강도들의 VIP -->

〈전쟁상인 판파넬〉에게 있어서 금화 1닢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돈의 가치를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받을 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가진 돈을 가장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곱게 베푸는 상황 따위 올 리가 없었다.

‘드낙에게 있어서 금화 1닢이 가지는 가치는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치 돌을 던지듯이 말하다니···’

기가 찼다.

〈3인 용병단〉이 금화 1닢을 달라고 말하는 순간은 평생 없다. 그렇기에 거절을 해야 했지만···

‘영악한 놈이다. 귀족을 끌고 오다니.’

그것도 〈왕국 야영지〉에서 지휘관을 맡고 있는 제법 잘 나가는 가문의 귀족을 운운했다. 자신과 한 번 저울질해보라고 던져주었다.

‘〈귀족과의 거래〉에 비하면 금화 1닢은 가벼운 것이다.’

전리품을 사들이는 판파넬에게 있어서 그전에 강도들에게 불법적인 거래를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 상인을 잡는 것은 의뢰나 다름없었다.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은 반드시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갈 것이다.

금화 1닢은 고사하고, 상당한 이권을 요구할지도 몰랐다. 드낙은 자신이 던진 말에 대해서 그 말이 가지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알고 있지 못하는 듯했다.

‘잘 알지도 모르는데, 들어올 때를 잘 알아. 이런 자가 고작 열다섯이라니. 미칠 노릇이군.’

드낙은 조용히 판파넬의 답변을 기다렸다.

‘왜 저렇게 깊게 고민하는 거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내심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판파넬은 장고(長考) 끝에 금화 1닢을 내어주었다. 드낙이 그제서야 웃었다.

“잘 선택하신 겁니다.”

“누구도 이 일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드낙의 말에도 판파넬이 재차 강조했다.

“병사들에게 들은 것이 있습니다. 듣자 하니 용병단의 수익 대부분을 용병단원과 정확하게 배분을 하신다고. 대단히 옳은 일이고, 존경스러운 배려심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에 1억이 한순간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밖으로 나온 드낙은 자신의 용병단원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 발걸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느려졌다.

확인해야 할 것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전부터 〈용병단원〉과 1/n할 것을 확실하게 결정지어왔다. 어그로를 끄는 것도 하나의 큰 역할이었고, 드낙이 상처 하나 없이 적을 처리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전술이나 다름없었다.

인원은 그 자체로 힘이었기에 드낙은 〈전리품〉 〈강도 포획값〉 〈일당〉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균등하게 배분했다. 그것은 단순히 드낙이 착해서가 아니었다. 합당한 값을 주면서 동시에 베풀어주는 용병단장으로 인식하게 해서 더욱 이 용병단에 애착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방식이었다.

좋은 회사에는 남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상사가 아무리 개 같은 놈이라도 월급이 센 곳이면 이직을 생각해도 한 번은 더 생각하게 한다. 〈돈〉은 도망갈 사람도 한 번은 붙잡는 것이고, 좋은 곳에서는 더욱 애착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이런 촌 동네 같은 세상이 아니라 엄청난 경제적 데이터가 넘쳐나는 현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돈과 관련된 경험으로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영양가는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판단을 세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적당한 부분에 있어서는 공평하다 못해 너그러운 인물로 보였다. 그것은 하나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은화와 금화는 다르다.’

은화는 1닢에 80~120만 원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금화는 1억이다. 〈규모〉라는 단어를 써야 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가치였다. 그것은 신분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신분을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점이었다.

이것을 용병단원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들이 〈전쟁상인 판파넬〉과의 협상에서 도움을 준 것이 없었기 때문이고, 애초에 〈알고 있지도 않았다〉.

탐욕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성인(聖人)이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킨다면 범인(凡人)은 당장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사장을 욕하다가도 직접 사장을 보면 절로 함박웃음 지으면서 고개 숙여 〈사장님〉이라고 말한다. 그게 성인과 범인의 차이였다.

드낙은 성인으로 떠받들어지는 인격체는 아니었다. 그는 평범하디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무개였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1학기를 망쳐서 군대에 가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때때로 알바를 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1억을 베푼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도렌이나 이스핀이 확연히 알 수 있는 의뢰비는 1/n했지만 이번 금화는 아니었다.

〈공통된 의뢰에서의 배분〉과 〈드낙 혼자서의 배분〉에 대한 확실한 척도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번 일에서만큼은 드낙은 금화 1닢을 꿀꺽했다.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다.

‘먹어도 상관없지.’

자기합리화 다음에는 당연히 다른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수염 도렌〉과 〈큰방패 이스핀〉이 가지는 드낙의 이미지가 부서지지 않는가를 생각해봐야 했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다르다.’

1.이번 일이 그들에게 들킬 수 있는가? 없다. 그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이 일을 아는 자와 만나서 담소를 나눌 수도 없다.

2.누군가가 이번 일에 대해서 떠들어 대는가? 전혀. 판파넬은 게실리안 지휘관을 염두해서 입을 다물 것이고, 드낙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금화에 대한 정보는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3.드낙을 의심할 수 있는가? 아니. 〈강도들을 소탕해서 나온 전리품〉 〈강도를 포획해서 받는 돈〉 〈용병단이 받을 일당〉까지 드낙은 너그럽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렌과 이스핀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최소한의 세 가지를 모두 확인한 드낙은 얼굴을 폈다.

‘이래서 거짓말하기가 싫단 말이야. 생각할게 너무 많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금화 1닢을 소중히 숨겼다. 이건 자신이 혼자서 얻은 이득이라고 여겼다. 또한 판파넬의 말처럼 숨겨야 하는 돈이기도 했다.

‘뭐지?’

드낙은 군막 안에 있지 않고 밖에서 병사 두 명과 함께 서성거리며 이리저리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도렌과 이스핀을 볼 수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드낙을 보자마자 달려왔다.

“드낙 용병단장님!”

“무슨 일입니까?”

그 말에는 병사들이 대답해주었다.

“게실리안 파이룬 지휘관께서 찾으십니다. 저녁 만찬으로의 초대입니다.”

“예?”

“지금 당장 가셔도 늦었으니 최대한 달려가야 합니다.”

병사는 앞뒤를 설명하지 않고, 달려갔고, 드낙도 허둥지둥 뛰었다. 물론 도렌과 이스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밤인데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물로 씻어서 젖어있었다. 두 사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듯했다.

하지만 남자의 무심함이란 급할 때일수록 극명하게 나타나는 법이었다. 강도들의 피가 말라붙은 가죽 갑옷과 옷을 입은 채였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지만 병사들은 늦었다는 것에 더욱 중요성을 둔듯했다. 피냄새가 풍기고 더러운 곳에서 밥도 먹는 병사들이었다. 애초에 위생에 대한 중요성도 몰랐고, 〈꾸밈〉에 대한 지식도 적었고 관심조차도 없었다.

“헉. 헉.”

악을 쓰듯이 달렸기에 절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만찬은 〈추적 용병단〉을 축하하기 위해서만 개최된 것이 아니었다.

〈전쟁상인 판파넬〉과 〈선임병사 불세벤〉이 드낙을 제외하고 진행시킨 〈불법 전쟁상인〉을 잡기 위한 토벌에 앞서서 게실리안 지휘관이 개최를 준비한 것이었는데, 운 좋게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물론 하루를 앞당기긴 했다. 이왕 하는 거 한 번에 하자는 마음이 컸다.

〈베테랑 병사〉와 불세벤이 참석했고, 가장 상석에는 게실리안 지휘관이 의자에 작은 단상을 놓아서 높이를 높인 곳에 앉아있었다. 이곳에는 판파넬이 없었는데, 토벌이라는 목적성을 높이기 위해서 초대하지 않았다.

물론 사전에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연회비의 일부를 판파넬이 기부하며 흥을 높이는데 사용했다. 당연히 그 내용은 스스로 소문을 내어 병사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드낙 용병단장! 왜 이렇게 늦으셨소?”

병사 두 명이 게실리안 지휘관의 앞에 서자 술을 마시며 제법 얼굴이 달아오른 그가 크게 소리쳤다. 술을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는 주사를 가진 듯했고, 제법 흥분해 보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소식을 늦게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강도 31명을 포획해서 왔으니, 그 정도는 내 용서해드리지. 하하!”

그렇게 말하면서 게실리안 지휘관이 드낙을 한 번 껴안아주고, 다시 앉아서 술잔 하나를 쭉 밀었다.

“한잔하시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축제이니 먹고 마시고 즐기시오.”

선 채로 술을 받는 드낙은 술병이 달달 떨리자 게실리안 지휘관을 쳐다보았다. 그는 웃는 기색이 싹 사라져 있었다. 주변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는데, 병사들이 알 정도로 표정 변화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겁이 덜컥 났다.

제법 큰 마을의 지역 유지의 아들 하나 건드렸는데도 그 영향력이 자신을 덮쳐올까 마음을 졸였던 드낙이었다.

“아, 하하, 하하하!”

갑자기 게실리안 지휘관이 크게 웃으며 술잔에 술을 조금 넘치게 따라주면서 눈을 비볐다.

“이거 취했나? 갑자기 멍해지는군!”

하하하!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낙은 마치 놀림을 당하는 기분에 휩싸였지만 능숙하게 웃음을 지었다.

도렌과 이스핀은 게실리안 지휘관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가장 후미진 자리로 함께 와서 앉았다. 제법 아쉬웠던 표정도 먹을 것 앞에서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술도 농밀한 맛이 났기에 꿀떡 꿀떡 넘어갔다.

“크흐흐! 저 병사 봐라. 술을 그냥 들이붓네. 다 흘린다. 다 흘려.”

“크히히! 저건 또 어떻고. 저러다가 다리 가랑이 찢어지겠는데.”

이스핀과 도렌은 신이 났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기에 연신 다른 곳을 구경하면서 저 병사라 저러네, 이 병사가 이러네라고 대화를 나누었다. 드낙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스핀은 다른 테이블과 놀고 있었고, 도렌 또한 이스핀을 따라다녔다. 그는 전투에서나 이곳에서나 믿음직한 선봉이었다.

‘잘들 논다.’

드낙은 두 사람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 사라지며 흥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거침없이 마셨던 술잔도 내려놓았다.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했다. 드문드문 있는 횃불은 별을 보지 못하게 할 정도의 밝기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좋다.’

귀에서는 끊임없이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남들은 귀를 막을 소음이었지만 시내 한중간에 있는 기분을 드낙에게 주었다.

귀가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어수선한 현대가 갑자기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가족? 그렇게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었다. 그냥 현대의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강력한 화력을 돋우는 장작이었다.

‘반드시 성공한다.’

남들이 놀 때 드낙은 더욱 자신의 목표지점을 재확인했다.

“드낙 용병단장님. 지휘관님이 따로 군막에서 찾으신다고 합니다.”

드낙은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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