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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6화 (76/1,239)

0076 <-- 강도들의 VIP -->

〈선임병사 불세벤〉을 곧바로 만나야 했다. 강도 31명을 포획해서 왔으며 짐수레는 위로도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단 한 명의 죽음도 없이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대단했다. 계속된 〈상황 대응〉에 대한 연습은 치밀했다.

〈수염 도렌〉과 〈큰방패 이스핀〉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것은 육군 현역 시절에 경험한 박호훈으로서의 경험이 컸다. 남다른 출세를 생각하던 대대장 때문에 〈현대 훈련 입감 대회〉라는 기괴한 온갖 훈련에 동원되어서 굴렀기 때문이다.

물론 반년 만에 흐지부지되어버렸지만. 하지만 그 덕에 도렌과 이스핀은 적어도 강도를 때려잡는 것과 산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적을 색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력이 아주 좋아졌다.

레벨업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실력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났다.

경비를 서던 병사가 곧바로 그들을 〈선임병사〉에게 직접 안내한 것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었다. 마땅히 그래야 했다. 전에는 스스로 찾아가야 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흐흐.’

괜히 우쭐해진 도렌은 어깨를 과장되게 폈다. 이스핀은 덤덤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쿵쾅 뛰었다. 벌써부터 〈횃불 성채〉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미리 뛰어간 병사에게서 정보를 먼저 들은 불세벤이 그들을 군막 밖에서 마중을 나왔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진형이 조금만 무너져도 도망가는 것이 병사다. 그게 사람이고. 그렇기에 인원수에 비해서 큰 전공을 세운 〈추적 용병단〉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무력이 준기사 혹은 기사와 견줄 수 있는 드낙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상대의 방패, 무기 따위를 무시한 채 벼락처럼 휘어져서 파고드는 비전으로 강도 두목조차도 일격에 양 손목을 날려버린 드낙이었다. 이미 밑바닥에서 놀 물이 아니었다.

‘더 올라가야 한다.’

“실로 대단하군. 어떻게··· 아니지. 안으로 들어갑시다. 드낙 용병단장.”

“예.”

불세벤은 고개까지 조금 숙인 채 군막의 입구를 막고 있는 천을 팔로 들어 올렸다. 드낙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눈치 없는 도렌이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이스핀이 어깨를 잡았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기에 도렌이 뒷걸음질 쳤다.

“이곳에서 대기하시오.”

불세벤은 전과 다르게 그 두 용병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였다. 그가 들어가자 이스핀은 대충 바닥에 앉았다. 도렌도 그 옆에 앉았고, 짐수레의 바퀴에 기대었다. 강도들은 모두 병사의 손에 이끌려서 사라졌다.

그때 짐수레가 움직였다.

“어.”

병사들이었다. 용병들이 몸을 일으키자 병사들이 소리를 내더니 웃었다.

“무거운 짐수레는 미리 〈전쟁상인〉에게 보내놓겠습니다. 값과 흥정은 나중에 하십시오.”

“예.”

목록을 미리 적어두었기에 걱정 없었다.

〈선임병사 불세벤〉의 군막 안에서는 이번 전공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작성되고 있었다. 물론 양피지에는 요약되어서 적혀질 것이고, 입으로만 자세하게 전해질뿐이었다. 드낙은 흩어진 강도들만 습격해서 모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실력이 있어야 부름도 받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말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섞어야 했다. 자신의 강함이 아니라 〈추적 용병단〉의 강함으로 변모시켜서 이야기를 했다. 산언덕, 숲언덕 온갖 언덕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했다.

“강도는 저희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공격 한 번 못하고 추적당해서 뒤에서 재갈이 물리고, 팔과 발이 묶여야 했죠.”

그 말에 불세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출난 추적과 소수만 노리는 전법. 모두 완벽했다. 〈추적 용병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았다.

“대단합니다. 게실리안 지휘관께서 추가적인 포상금을 줄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십시오.”

그것은 참 반가운 소리였다. 보고가 끝난 뒤로는 당연히 병사로써 스카웃을 받았다. 올해로 27세인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의 밑에서 활동한다면 출세길이 열려있다고 들었지만 거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병사로 성공하는 것은 힘들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병사의 공이 곧 게실리안 지휘관의 공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다면 5년이고 10년이고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 빠져나가는 것 또한 힘들 것이다. 그는 파이룬 가문의 귀족이니까. 그가 놓아주지 않는다면 빠져나갈 수 없으니 애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았다.

“나중에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불세벤의 말에 드낙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불세벤은 가죽 장갑을 벗으며 악수를 건넸다.

“전쟁상인을 만나시오. 전에 말했던 보고에 대한 일이오.”

‘역시, 불세벤과 판파넬이 서로 붙어먹었구나.’

척하면 척이었다. 방금 그 권유를 하면 안 되었다.

“알겠습니다.”

드낙 또한 가죽 장갑을 벗어서 그와 악수를 했는데 그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음?’

그것을 알아챘지만 모든 것이 끝난 상황에서 그 표정의 변화는 왜 일어났는지 드낙은 알 수 없었다. 드낙이 목례를 살짝 하며 군막을 나갔다. 불세벤이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특징적인 굳은살〉에 대해서 드낙은 아직까지도 알고 있지 않았다. 용병단장 융은 당연히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입을 다물었고,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롱소드를 한 손으로 다루려면 손의 그립감이 더 강해야 했기 때문에 가죽 장갑을 산 드낙의 〈특징적인 굳은살〉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전쟁상인 판파넬〉은 그 굳은살을 봤음에도 무엇인지 몰랐다. 〈특징적인 굳은살〉을 알고는 있지만 무인이 아닌 판파넬에게 있어서 굳은살은 굳은살이었다. 기사를 초청해서 손만 들여다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용병들이야 자신들의 굳은살이 아니라 다른 곳에 생긴 굳은살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고, 경험 없는 이스핀과 도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신병 로벤〉이 이번에도 전쟁상인에게 그를 안내하려고 했지만 거절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서 향하고 싶기도 했다.

“요즘 무슨 일이 있습니까?”

“게실리안 지휘관께서 토벌전을 준비하라고 해서 난리도 아니지.”

드낙은 여기저기에 근황을 묻고 다녔다. 강도 31명을 한 방에 잡아온 드낙이었다. 병사들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너도나도 입을 열어서 그와 친해지려고 했다.

제법 늦게 전쟁상인에게로 다시 향하며 드낙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

‘판파넬은 그리 허술한 자가 아니다. 일이 틀어져도 이미 나는 은화를 먹은 상태다. 흐지부지되어도 나쁠 게 없다.’

아쉽다면 게실리안 지휘관과의 인연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또한 큰돈을 받은 일이 공중분해된 것이기도 했다.

‘판파넬이 위로금으로 주는 돈을 받아내고 입을 싹 닫으면 그만이지.’

물론 판파넬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두 배는 더 줘야 할 것이다. 드낙이 이처럼 말끔하게 포기한 것은 당연히 불세벤과 판파넬, 두 사람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판파넬과 불세벤 또한 마찬가지로 드낙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언제고 한 번은 더 만나게 될 인연이었다. 드낙이 칼을 쥐고 다니는 이상, 그들이 현재의 직책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상···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

X 같은 놈이라도 좋게좋게 대해야 함을 모르는 드낙이 아니었다. 혼자 땅 파서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계속 이야기가 들려올 것이다. 특히나 드낙은 자신의 용병단이 특출나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예.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돌려보내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모여있으니 병사들이 어찌나 말을 걸려고 하는지.”

“그때는 딱 잘라서 말하셔야 합니다. 하하.”

서로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고, 판파넬은 전의 저녁식사와는 다르게 그를 군막 안으로 안내했다. 드낙은 전의 저녁식사에서는 야외에서 먹었고, 이야기는 다른 군막에서 나누었지만 이번에는 판파넬이 직접 사는 군막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마법 화덕입니까?”

“예. 재를 안 치워도 되고, 보통보다 두 배는 열기를 내뿜습니다. 물론 열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게 선선한 이곳의 여름이었다. 불은 항상 있는 게 좋았다. 드낙은 이것저것을 물었다. 온갖 마법물품이 다양하게 있었다. 〈전쟁상인 판파넬〉이 얼마나 많은 돈을 쥐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영주〉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파도를 타고, 바람이 밀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3억으로 시작하라는 말이 있듯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귀족과 한통속이 되면 되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 빼고 일을 진행시켰더군요.”

“크흠.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드낙의 직구에 판파넬이 순간적으로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는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로 이번에 드낙이 가져온 전공이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루 동화 50닢에 굴린 놈들이 치안에 실질적인 공을 세운 것이다.

그저 길목을 지키면서 〈제국의 위협을 막는〉 공적이 자연스레 세워지는 〈왕국 야영지〉에서 병사의 소모 없이 만들어낸 전공은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덕에 판파넬은 드낙에게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그게 옳았고, 전과는 확연하게 상황이 달랐다. 상황마다 고개를 숙이거나 빳빳하게 들어야 하는 것이 상인이었다. 그게 인간의 삶이기도 했다.

가족에게는 폭행을 휘두르던 중소기업의 사장도 일감을 주는 대기업 과장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추적 용병단〉의 역량이 뛰어나군. 애송이 용병단이··· 이런 일도 있구나.’

하찮은 용병단이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껑충껑충 날뛰고 있었다. 적은 의뢰비로 건더기가 없다고 여겨지는 강도단의 몇 년 묵은 약탈품을 가져오며 상상도 못할 정도의 큰 수익을 올리고 있기도 했다.

‘운을 탄 놈이다. 조심해야겠어.’

“이미 끝난 상황이지만, 그래도 함께 배를 탄 적이 있는데 그냥 배에서 내려보내겠습니까?”

눈웃음을 지으며 판파넬이 가죽 주머니를 테이블에 올렸다. 제법 묵직했다. 안을 확인해보니 모두 은화였다.

“은화 30닢입니다. 단원들과 나눠도 두당(頭撞) 10닢이고, 의뢰를 5개~10개는 해결해야 받는 돈입니다.”

“하하. 강도들 털어도 은화가 9닢이 들어오는데 고작 10닢을 저에게 주십니까?”

드낙이 은화가 든 주머니를 다시 테이블에 던졌다. 쩔렁하는 소리가 울렸다. 판파넬이 그 말을 정정해주었다.

“은화 30닢입니다.”

드낙이 고개를 저었다.

“단원과 나누면 저에게 10닢이 떨어지는데 30닢이라니, 계산이 이상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포상금을 받으러 게실리안 지휘관님을 만나러 갑니다. 과연 그분이 돈으로 시작된 이번 토벌을 좋은 의도로 생각하실까요? 귀족과 또 다른 거래를 하고 싶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드낙이 다시 가죽 주머니를 챙기려고 손을 테이블에 내밀자 판파넬이 잽싸게 주머니를 낚아챘다.

‘빌어먹을 상황이로구나.’

귀족과의 거래? 말이 거래지. 게실리안 지휘관이 이 내막을 안다면 금화라도 줘야 할 판이었다. 왜냐하면 판파넬의 사업을 훼방 놓는 불법적인 상인을 처리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병사를 동원할 돈을 달라고 하겠지.’

판파넬의 표정이 굳어지자 드낙이 잽싸게 말했다.

“하지만, 좋게좋게 가는 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금화 1닢만 주십시오.”

“······”

판파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말도 안 했다.

귀족과 함께 돈 버는 기득권이 판파넬이었다. 작은 마을에서는 화폐를 가지는 기회조차 없어서 몇 년을 모아도 은화 8닢이다. 락손 같은 퇴역군인이 화폐를 들고 온 〈검은 산골 마을〉이 보유한 화폐는 그래도 많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득권이 가진 금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화폐의 유동은 오직 그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해질 정도로 돈을 쥐고 있는 것이 기득권층이었다. 현대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곳은 〈화폐의 독점〉. 그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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