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 <-- 강도들의 VIP -->
‘탐욕에 눈이 먼 상인놈.’
〈선임병사 불세벤〉은 전쟁상인의 군막으로 들어서면서 이글거리는 눈을 감았다. 눈동자의 열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전쟁상인 판파넬〉의 군막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
‘흥. 병사들의 피로 얻은 것들에게서 피냄새가 지독하게 풍기는구나.’
그는 전쟁상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악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병사를 운용하는 것은 돈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영주에게도, 영지에 사는 시민들에게도 힘든 비용이었다.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전쟁상인이라는 놈들이었다.
영주의 승인을 받고 다양한 곳에서 일어나는 전략물자를 사들이며 판매하는 〈전쟁상인〉은 막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영주에게 마진의 일부를 주는 대신에 거침없이 움직일 수도 있었고, 성채나 도시 혹은 마을에 주둔한 병사나 기사를 유사시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동원할 수도 있었다.
물론 기사의 경우에는 상황마다 대가를 따로 줘야 했는데 준귀족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태도에서도 굽혀 들어가야 했다. 가지고 있는 권리는 현실을 만났을 때 칼처럼 베이기도 하는 법이다.
금화로 살 수 있는 마법이 부여된 화덕은 연료가 없었음에도 불을 내고 있었다. 검은 연기 하나 뿜어내지 않았다.
군막의 한쪽에는 차갑고 새하얀 김을 내뿜는 나무 상자가 있었다. 그것 또한 마법 물품이었다. 드낙은 이곳에 오지 못했다.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호화스러운 마법 물품을 보면 화가 난단 말이지.’
“음.”
자리에 앉은 그에게 판파넬이 차가운 술을 가져오고, 육포와 과일을 꺼내왔다. 마치 상전을 대하는 듯이 굴었다. 전쟁상인이라도 평민이다.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과 연줄을 넣기 위해서는 불세벤의 역할이 필요했다.
“강도단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답변을 드렸소. 그런데 왜 다시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술을 한 잔 마시고, 육포를 조금 찢어서 씹으며 불세벤이 그를 노려보았다.
“증거가 계속 나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은화 몇 닢이 몹쓸 놈들의 주머니에 들어갈지 밤잠을 설칩니다.”
판파넬의 말에 불세벤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저 말이다. 저 말. 저 빌어먹을 돈만 생각하는 주둥아리 때문에 거절했었던 일이었다.
‘너구리 같은 새끼···’
충분히 그때 설명했을 터였다.
〈전쟁상인〉의 이득을 위해서 병사를 동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국 야영지〉가 관할하는 지역내의 강도, 산적을 토벌하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지만, 판파넬이 손을 들이민 것부터 그 본질이 흐려지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선임병사 불세벤〉이 의문을 느끼고 독단적으로 조사한 끝에, 〈전쟁상인 판파넬〉로부터 의심스러운 정확을 얻어내어 강도단을 토벌했다고 지어낼 수 있지만 입이 두 개인 이상 진실은 알려지기 마련이었다.
고로, 결코 그의 손을 잡으면 안 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전공(戰功)을 세우고 싶어 하는 게실리안 지휘관의 방패가 불세벤이었다. 파이룬 가문의 방계인 그는 성씨 하나 가지지 못했지만 훌륭한 〈선임병사〉였다.
“이번에도 기다리라고 말씀하러 오신 겁니까? 그럼 실망입니다.”
판파넬은 스스로 술잔을 기울였다. 불세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잔을 마시며 거칠게 고개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눈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실을 모르는 충직한 잡종 놈이 아직도 날 방해하려고. 같잖은 놈.’
눈웃음을 짓는 판파넬을 보며 불세벤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오면서도 확실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몸짓언어였다. 자연스레 판파넬의 눈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손으로 향했다.
괜히 침을 삼켰다.
“드낙 용병대장은 싹수가 있는 사람이오.”
불세벤은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빙 둘러서 걷기 시작한 것이다. 판파넬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지금은 그의 생각을 들어야 했다. 하나라도 놓칠 수 없었다. 무뚝뚝하고 할 말도 안 하고 우직하게 혹은 무식하게 지나가는 불세벤이었다.
천생 병사이고 군인인 자였다. 그런 자가 돌아서 간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성과를 낸 것부터 어중이떠중이 용병단이 아니지 않습니까.”
강도들은 보통 영악한 것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특화된 녀석들이었다. 밤에 제법 수색을 크게 해도 잡히는 놈이 없었다. 그렇다고 소규모의 인원으로 유인작전을 펼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규병〉에게 그러한 작전은 성향상 맞지 않았고, 나중에 책이 잡힐 여지가 충분했다. 〈왕국 야영지〉에 소속된 병사 중에는 징집병 하나 없었다.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징집병이 없기도 했다.
일이 잘못되면 공이 벌로 바뀔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용병단을 모집한 것이기도 했다. 게실리안 지휘관 그 나름대로의 선택이었다.
“지휘관께서는 어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이야기할 것이 안 되오.”
불세벤이 딱하고 잘랐다. 당연히 게실리안 지휘관은 강도에 대한 공적을 일찌감치 자신의 공적으로 옮겨놓았다. 용병단을 고용한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드낙 용병단장이 몇 번이고 강도단을 습격해서 제법 성공하며 그 약탈물을 전리품으로 가져온다면 언젠가 게실리안 지휘관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겠지요.”
판파넬의 말에 불세벤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통하지 않고, 판파넬이 드낙을 이용해서 직행하여 일을 진행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 지나칠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게 당신의 선택입니까?”
불세벤이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이곳에 온 것은 그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펼쳐보니 이미 배가 떠난 상태나 다름없었다. 〈제법 성과를 내는 용병단〉만으로도 판파넬은 일을 추진시킬 추진력을 얻었다.
아주 작은 문턱만 넘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적 용병단〉이 없을 때에는 높았지만 지금은 그저 문턱에 지나지 않았다.
판파넬의 눈이 쭉 찢어졌다. 눈웃음을 지었지만 결코 좋게 받아들어질 수 없는 웃음이었다.
“저는 충분한 시간을 드렸습니다. 기다리라고 해서 한 번을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보다가 술을 손에 대었다. 서로 숨기고 있는 뭔가가 있다고 여겨져서 이야기는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겉에서부터 깎아들어갔다.
드낙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불세벤은 드낙의 보고를 개무시했지만 속으로는 달랐다. 4명이서 강도단 6명을 그것도 밤에 잡아냈다. 포획만 4명이었다. 평범한 용병단으로 보기에는 무력이 제법이었다.
두 사람 모두 〈추적 용병단〉에 대한 판단은 서로 옳았다. 이번 일에 확실한 카드로 여겨졌고, 먼저 움직인 판파넬의 승리였다. 물론 그 승리는 스스로 버려야 하는 승리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드낙 단장은 제법 출세욕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려도 할 겁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강도단을 후려치는 것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그렇게 말하다니···”
불세벤은 당장 판파넬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
“···그러니 이제 서로 협력할 때입니다. 지금이나 드낙 용병단장이 오면 지휘관님을 찾아가시지요.”
“다른 확증이 있습니까?”
“전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병력을 동원할 정도는 됩니다. 거래량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합니다. 강도들은 부업으로 이것저것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선임병사가 절대로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말을 잘랐지만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판파넬은 전에 보여준 장부를 꺼내와서 보여주었다.
전에 보는 것과 지금에 보는 것은 느낌이 또 다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선임병사 불세벤〉의 발등에는 드낙이라는 이름의 불똥이 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소. 하지만 굳이 〈추적 용병단〉이 필요한지는 의문이군.”
그 말에 판파넬이 손을 비볐다.
‘공을 독차지할 셈이군. 나야 상관없지.’
공적보다는 돈이 중요한 판파넬이었다. 공적(功績)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귀족처럼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한여름에도 얼음을 필요할 때마다 먹을 수 있고, 발에 담굴 수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2명의 용병을 부하로 데리고 있는 드낙이었다. 감히 〈선임병사〉 그리고 기득권에 빌붙어있는 〈전쟁상인〉에게 불만 하나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제 이야기도 해주십시오. 요즘 전쟁상인이 되려고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는 상인이 제법 있습니다. 놈들은 상회를 만들어서 재화를 하나로 모으고 있다고······”
불세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정보를 제공해주셨는데, 게실리안 지휘관님이 그냥 넘어갈 것으로 보십니까? 이번에 그분께서 일으킨 토벌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그런 걱정을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좋습니다.”
드낙은 순식간에 내쳐졌다. 〈전쟁상인 판파넬〉은 드낙을 통해서 게실리안 지휘관의 관심을 끌어오는 것과 동시에 선임병사 불세벤을 압박하는 용도로 그를 이용했다. 그리고 불세벤의 생각은 단번에 꺾였다.
이미 치러야 할 토벌이라면 자신의 공으로 삼는 것이 좋았다. 꼿꼿함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불세벤은 게실리안 지휘관의 유일한 〈선임병사〉이자 〈부관〉이었다. 그 역량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결코 〈군인으로서의 역량〉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판파넬의 계획을 들은 불세벤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려 주었다. 어느새 무뚝뚝해져 버렸다. 일을 끝낸 불세벤은 판파넬이 말을 끝내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내일 곧바로 지휘관님을 찾아뵐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 계십시오. 그분은 항상 새벽 훈련을 하면서 몸 단련을 하시는 분이셔서 시간 감각이 남들과 제법 다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간 불세벤은 끊임없이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말해야 할 것을 정리했다. 하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훌륭한 부관〉이어야했다.
“후욱! 후욱!”
해가 뜨지도 않았지만 어둠이 걷혀진 새벽.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은 병사들이 미리 준비해둔 물을 떠서 세안을 하며 정신을 차린 다음에 곧바로 새벽 훈련에 매진하였다.
지휘관이기도 하지만 무관이기도 하며, 기사이기도 한 것이 그였다.
다양한 비전을 연습하는 것으로도 땀을 뻘뻘 흘렀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사용하는 무기는 2종류였는데, 검의 폭이 넓고, 무게가 큰 클레이모어와 롱소드였다. 방패는 사용하지 않았다. 갑옷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롱소드로 몸을 풀고, 클레이모어로 땀을 쫙 뽑아냈다. 개운함을 느끼며 냉수를 그대로 몸에 엎었다.
“흐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수련이 끝났다. 6살 때부터 시작한 기사의 단련은 27세가 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음? 불세벤. 새벽부터 무슨 일인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온 불세벤을 보며 게실리안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입을 뗀 불세벤의 이야기에 게실리안 지휘관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에는 제법 묘한 흥분감에 휩싸여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