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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2화 (72/1,239)

0072 <-- 강도들의 VIP -->

〈선임병사 불세벤〉과의 면담은 그리 좋지 않게 끝났다.

‘개무시를 하다니.’

전공을 세웠다고 칭찬해주고 인정했다는 듯이 말했던 불세벤은 사실 〈추적 용병단〉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혼자서 선임병사 노릇을 하며 게실리안 지휘관의 부관이면서 역량이 어떻게 그렇게 떨어지지?’

그들이 말하는 〈활과 화살〉에 대한 것도 시큰둥했다. 생각보다 불세벤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드낙은 나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단념해버렸는데,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병사들에게 퍼뜨리는 것은 하책이다.’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윗물에서 아랫물로 흘러야 하거늘, 감히 함부로 입을 놀려서 자신을 조종하려 들었다고 생각하게 만들 터였다. 비단 〈선임병사 불세벤〉만 아니라 게실리안 지휘관의 분노가 드낙에게 향할 수 있었다.

괜히 〈전쟁상인 판파넬〉이 불세벤을 통해서 게실리안 지휘관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방법 뿐이기도 했다. 상대해야할 적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려 강도단의 물건을 사들이는 놈들이었다. 언제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곧 큰 힘을 의미했다.

‘기습전을 통해서 한 번 더 강도를 잡아오면서 한 번에 밀어닥치는 수밖에 없겠군.’

드낙은 첫 단추가 불안하게 끼워졌음에도 계획을 변경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다른 좋은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문? 우습지.’

강도들이 말하는 것을 믿는 것은 실로 어리석었다. 고문으로 죽어가면서 말한 진실조차도 의심하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이번에도 성공한다면 불세벤이 다른 마음을 가지겠지.’

두 번째 출발이었다. 짐은 전보다 무거웠다. 〈석궁사수 베드리〉가 퇴출당하면서 인원이 적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드낙은 이번에 제법 큰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욱 오래 머물 생각이었다.

불세벤의 머리에 충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첫인상인 〈애송이 용병단〉을 지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강도를 포승해서 시각적인 효과를 팍 줘야 했다.

‘못해도 일주일.’

전에는 기습당했지만 이번에는 자신들이 기습전을 펼칠 시간이었다.

“조심하시오.”

소규모의 강도단을 토벌하고 나서 드낙에게 반말을 하는 이들은 적어졌다. 제법 경력이 있는 병사는 하오체를 썼고,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들은 존대를 했다. 어중간한 놈들은 반반이었다. 오히려 어중간한 놈들이 문제였다.

도렌은 가장 준비가 늦었는데, 공용으로 준비할 물건들을 먼저 준비하고 자신의 물품은 마지막에 했기 때문이었다.

“빨리빨리 좀 하자.”

이스핀과 도렌은 17살로 동갑이었다. 그 덕에 빠르게 말을 놓았지만, 이스핀이 형 같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도렌을 도와서 물건을 정리해주었다. 가죽 가방을 들어보고 한쪽에 쏠린 무게를 적당하게 배분했다.

“고맙다.”

“대장이 기다려서 하는 거다.”

말벌처럼 톡 쏘며 이스핀이 대답했다. 도렌은 활에 기름을 살짝 먹이고, 집어 들었다. 그가 베드리의 포지션을 맡았다. 엉덩이의 상처는 달려도 피가 안 나게 되었지만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스핀에게는 후방 보조를 해주는 도렌이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드낙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늦은 저녁까지 드낙에게 〈전술 훈련〉을 받았다. 드낙이나 이스핀이나 도렌에게 큰 기대가 없었다. 최소한의 역량만을 요구했다. 그것은 도렌에게도 좋은 것이었다. 마음의 부담이 적었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평타는 치네.’

드낙은 도렌에게 큰 기대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실망도 하지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고, 하나를 알면 하나라도 아는 자였다. 심성도 약한 것 같으면서도 끈기가 있었다. 괜히 숏소드를 혼자서 4년간 붙잡아 수련한 것이 아니었다.

“으읏!”

도렌이 팔을 바르르 떨면서 식료품이 제법 든 무거운 것을 짊어지자 드낙이 놀라며 뒤를 받쳐주었다.

“그건 이스핀꺼다.”

“아, 이거요? 어쩐지···하하.”

이스핀이 대차게 웃고 있었다. 척 봐도 무거운 것이었는데 생각 없이 들었다가 무거움을 버티려고 발악하며 팔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기 때문이다. 웃길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제법 빨개진 〈수염 도렌〉은 자신에게 배당받은 짐을 짊어졌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이스핀은 드낙과 짐을 교체하면서 갈 예정이었다. 힘은 이스핀이 좋았지만 체력과 지구력은 드낙이 월등히 우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삼거리 언덕길〉의 〈남부 황금평야〉로 향했다. 소규모 강도를 여럿 잡아서 한 방에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전에 잡은 강도단의 은신처 때문이었다.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니지.’

강도단이 숨긴 화폐들! 그것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확신한 이유는 당연히 그들이 약탈한 것을 누군가에게 팔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드낙은 그것을 혼자서 챙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에 숨겨있는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의심을 받는다. 깔끔하게 오픈하고 빨리 찾아서 1/n 하는 게 낫다.’

돈 찾는 기분이라서 그럴까, 아니라면 이미 강도단을 한 번 잡아서 그럴까. 그들은 2일 만에 강도단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그곳은 여전히 잘 숨겨져 있었다.

안에 짐을 풀고, 도렌이 토굴을 수색하고 드낙과 이스핀은 밖을 수색하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겨놨을 것이다.

드낙은 바위를 들거나 꼼꼼하게 하나씩 클리어 해나갔다. 보물찾기는 그저 뒷짐지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자리에서 눈을 팽팽 돌려야 했고, 상체도 숙이거나 꼿꼿하게 올려다보기도 해야 했다.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필수적이다.

“찾았습니다! 대박입니다, 대박!”

〈강도단의 보물〉은 도렌이 찾아냈다. 배신 때문에 암염도 토굴 밑에 파 놓았던 놈들이었다. 돈 또한 땅 밑에 숨겨놓았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작은 사각형의 목합에 들어있는 돈은 동화도 많았지만 은화도 제법 되었다.

‘현상금 사냥꾼보다 강도 터는 게 더 쏠쏠한데?’

드낙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강도 따위를 죽여도 검은 꿈 한 번을 안 꾸기 때문이었다. 향상심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제자리걸음을 뜻했다.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계속 달려야 해. 목표는 어디까지나 〈붉은털의 곰〉이다.’

강도단이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결국에는 오랫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점과 그들의 장물을 사들이는 사악한 상단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앙제국의 눈치를 보는 〈왕국 야영지〉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돌면 끝이라는 소리였고, 강도단이 줄어든다면 뭉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다.

목함에 있는 돈을 세었다. 동화가 900닢, 은화가 5닢이었다. 큰돈이었고, 강도단이 오랫동안 모은 돈일 것이다. 물론 장물을 팔 정확한 루트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돈이었다. 본래라면 약탈품이 전부일 것이다.

강도들이 구운 토기를 토굴에 있는 화덕을 통해 끓인 물로 세척하고,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했다. 태평하게 반나절을 휴식하며 피로를 회복시켰다.

도렌과 이스핀은 나무 사이에 넝쿨을 엮어 드러누울 곳도 만들었다.

이곳에서 제법 시간을 보낼 거라는 드낙의 말 때문이었다. 식기를 세척하고 말리며 드낙은 그것을 구경했다. 해먹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도렌은 맹탕이나 다름없었다. 횃불 성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이스핀 또한 경험이 없었지만 큰소리를 뻥뻥 치며 억지로 해먹을 만들었다.

“어이쿠!”

그대로 180도 스핀을 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이스핀이 아픈 소리를 냈다. 밑에 돌부리에 엉덩이뼈가 그대로 찍힌 것이다.

화덕 안에서 가져온 암염으로 절인 생선을 굽고, 산언덕 주변에 나는 향을 가진 야채로 비린내를 잡았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빈나무 꿀뚝〉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불을 피워도 굴뚝을 타고 토굴에는 연기 하나 나지 않았고, 위로 향하는 연기도 나무를 타고 오르며 곳곳에 나있는 수많은 구멍으로 소량이 빠져나가 멀리서는 볼 수 없게 빠르게 연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강도에게서 배운 생존 기술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새벽부터 움직였다. 다른 강도단을 찾기 위함이었고, 병사들이 아닌 용병들에게 쫓겨본 적이 없는 놈들은 태평할 것이라 앞으로의 기습전은 희망적이었다.

‘용병들이 그들을 안 노린 이유.’

1.의뢰비가 적다.

〈왕국 야영지〉에서 제시하는 것은 수급도 아니었고, 생포해도 동화 10닢이었다. 그것은 횃불 성채로 가져가도 똑같은 돈이었다. 거기에 일당도 용병단 당 동화 50닢으로 형편없었다. 이런 의뢰를 수행하는 용병단은 대부분 애송이 용병단이었고, 강도나 그들이나 고만고만해서 죽기 일쑤였다.

2.나타나지 않는다.

소규모 강도단이 상단을 후려칠 리가 없었다. 밤에 몰래 마차에 접근해서 훔치고 도망칠 뿐이다. 상인은 쓴맛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불침번을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하다간 자신의 목에 강도가 인질극을 벌일 수도 있었다.

고로 상단과 다니는 용병들과 강도들 사이의 접점이 없었다.

‘이런 노다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용병이 없다니.’

결국 세월이 흐르고 가진 힘에 비해서 강도단이 지닌 돈이 많아지게 되었다. 소문이 퍼진다면 용병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겠지만 강도들 또한 멍청한 것이 아닐 것이다. 큰 움직임을 간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좌르륵.

강도 하나가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침없이 볼일을 보고 있었다. 일행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드낙은 주위를 살피고 거침없이 다가갔다.

사박.

“응?”

가까이 다가가서야 발소리를 느낀 강도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원형 방패가 머리를 후려쳤다. 나무 인형처럼 픽하고 쓰러진 놈이 입을 뻐끔거렸는데, 복부를 발로 찼다.

“어읍.”

헛바람이 입에서 토해지며 작은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대충 만든 재갈과 헝겊을 입에 물리는 사이에 이스핀이 손을 묶었다. 반항하자 드낙이 주먹으로 머리를 두 번 때렸다. 곧바로 잠잠해졌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폭행에 겁을 먹은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빼앗는 놈이 겁을 먹다니.’

그 이중성에 드낙은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 또한 그러함을 깊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도 한 명이 그렇게 순식간에 생포당했다. 도렌은 주위를 살피다가 두 사람이 자신의 곁을 지나가자 천천히 빠져나갔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서 눈을 빠르게 주변을 오고 가며 한 지점 한 지점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털썩!

“읍. 흐읍!”

입에서 소리를 내고 콧물이 코에서 줄줄 흘러내리면서 거칠게 코로 숨을 쉬는 강도의 코에 거품이 큼지막하게 생겨났다가 팍하고 터졌다.

‘더럽네.’

〈수염 도렌〉이 그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꼴사나웠다. 재갈은 물렸지만 헝겊만 빼주었다.

“허읍. 헉. 흐!”

입으로 거칠게 숨을 쉬면서 숨통이 트였다.

“시끄럽게 굴면 다시 물린다.”

“······”

발과 무릎 그리고 허벅지까지 묶어서 애벌레처럼 만든 뒤에 토굴에 말뚝을 크게 박아서 팔과 팔뚝, 목까지 이어진 밧줄이 말뚝에 연결되었다. 도주를 막기 위해서였다. 어찌나 철두철미 한지 말뚝을 아주 깊게 박았다.

말뚝과 목이 연결된 밧줄은 매우 짧아서 몸을 돌리는 것조차 어려워 한쪽만 보고 있어야 했다.

〈추적 용병단〉은 길목 근처, 숲언덕의 등진 곳을 돌아다니며 강도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했다. 7명을 납치했을 때, 보이는 강도는 없었다. 나머지 강도들이 그대로 도망쳐버리거나 숨은 것이었다.

‘아직 부족해.’

드낙은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

“저깁니다.”

달빛이 밝은 시간 작고 좁은 토굴을 이스핀이 가리켰다.

“이스핀과 도렌은 다른 한 곳의 출구를 막으십시오. 아마 그쪽으로 제법 갈 것입니다. 저는 불을 지르고, 나오는 놈을 잡고 난 뒤에 합류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스핀과 도렌이 수풀을 헤치며 상체를 낮춘 채 조용히 움직였다. 강도들이 숨어있는 토굴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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