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9화 (69/1,239)

0069 <-- 삼거리 언덕길 -->

이름도 없는 강도단은 두목을 잃은 채 드낙 일행을 자신들의 은신처로 안내했다. 물론 드낙은 그들을 믿지 않았다. 〈갈색 늑대 도노〉를 보내서 선행하여 진행했으며 무엇보다도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맞이하는 쪽으로 방향을 픽픽 틀었다.

강도들만큼 이곳의 지형을 잘 아는 놈들이 없었기에 그럼에도 길은 잘 찾았다.

다행이라면 추가적인 전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기가 은신처라고?’

〈강도의 은신처〉는 토굴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야생짐승이 안에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드낙은 나뭇가지로 혹여나 있을 함정을 체크했다. 다른 사람을 내세우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비싼 보석이라도 운 좋게 본다면 품에 챙길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은화나 은반지 그런 것 또한 훔치기 좋았다. 은근슬쩍 훔치기 좋은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야했다.

함정은 없었고, 대신 입구 자체가 좁았다. 들어오는 쪽이나 나가는 쪽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또한 출구도 따로 하나가 더 있었다.

토굴의 중앙에는 화덕이 놓여 있었는데 장작을 넣을 곳을 제외하면 모든 곳이 막혀져 있었고, 굴뚝이 있었다.

‘굴뚝을 밖에서는 못 봤는데.’

어떻게 연기를 숨기는지 궁금해졌다. 드낙은 토굴을 수색했다. 제법 값이 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약탈품이었고, 쓸모 있는 것이라면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가죽으로 된 옷이었다.

‘가죽부츠. 제법 좋은 털인데. 직접 만든 건가?’

남이 신던 것도 세척하고, 햇볕에 말린 뒤에 보정을 한 뒤에 다시 판매대에 오르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서민들을 위한 혹은 작은 마을에서 판매를 하는 보부상의 물품에 섞여있기도 했다.

드낙은 약탈품의 양이 꽤 되는 것을 확인했다.

〈추적 용병단〉은 힘을 합쳐서 토굴에 있는 약탈품과 보존 식량을 꺼냈다. 암염을 가루 내어 민물고기를 잡아 말린 것이 밧줄에 엮어서 있었는데 제법 맛있어 보였다.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바닥을 파보면 암염도 모아놨습니다.”

“크닉! 너!”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한 강도 하나가 비밀스러운 자원을 말해주었다. 드낙은 흡족하게 웃으면서 흐르는 물가에서 볼 수 있는 점토를 떼어 구운 독에 든 암염도 챙길 수 있었다.

‘이것도 돈이지.’

강도 주제에 운 좋게 암염을 발견한 듯했다. 누가 보기도 전에 캐서 이곳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흙으로 묻은 이유는 동료가 암염만 훔쳐서 달아날 것을 염려한 듯하다. 파는 동안 낌새를 알아차릴 것이고, 파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까.

‘통수의 세계도 아니고···’

드낙은 질린 표정을 속으로 지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현대에도 섬노예가 있기 때문이다.

‘큰 수확인데.’

은화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값이 꽤 나가는 것이 암염이었다. 절로 흥이 났다.

모든 짐을 꺼내자 강도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여기서 또 하나의 분기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과연 저 어려 보이는 용병대장은 자신들을 풀어줄까라는 생각이었다.

“동화 10닢은 물론이고 600닢도 받을 수 있겠는데. 짐이 많아.”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떠돌이 부랑자가 운 좋게 덫으로 잡은 오소리의 털로 만든 부츠일 수도 있었다. 6명의 강도단이 모은 약탈물은 거의 20명 정도를 약탈한 약탈물을 가지고 있었다.

“토굴 안에 불을 피우던데 굴뚝이 어딨는 거지?"

“저 나무속에 있습니다. 처음만 조금 파놓고, 불을 지펴놓고 나무 위로 연기가 올라가게 만듭니다. 불을 끄고, 탄 부분을 깎고, 나무 안쪽에 진흙을 바르고 다시 토굴에서 불을 지르고 반복합니다.”

드낙은 제법 공들인 위장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올라가는 연기는 2미터가 넘는 나무 굴뚝을 통하는데 작은 구멍으로 연기가 조금만 뿜어져 나왔고, 수많은 구멍을 통해서 연기를 배출하는 식이었다.

한 곳에서 뭉쳐 나오는 연기는 멀리까지 피어오르지만, 〈빈나무 굴뚝〉은 나무에 많이 뚫어놓은 작은 구멍을 통해서 작은 연기가 빠져나와서 금방 사라졌다. 냄새는 풍기겠지만 위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제법이군.’

놀라운 은신술이었다.

“우릴 이제 풀어주십시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숏소드를 뽑아서 목에 겨누었다.

“허으업.”

강도가 뒤로 넘어졌다.

“푸, 풀어준다면서!”

“풀어주면 내 뒤통수를 칠 수 있겠지. 자유를 주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다.”

이스핀이 쓰러진 강도를 세우려고 하자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발을 크게 버둥거렸는데, 튄 흙이 이스핀의 얼굴에 튀기도 했다.

“그만, 그만. 죽기 싫으면 어쩔 수 없이 〈왕국 야영지〉로 가야겠군.”

“개, 개새끼.”

드낙의 표정이 굳어지기도 전에 이스핀이 놈의 뺨을 손바닥으로 냅다 후려갈겼다. 제법 덩치가 있는 이스핀이었다. 금방 강도의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붓기 시작했다.

“말을 가려서 해라. 정말 죽고 싶지 않다면.”

“······”

뒷골목 출신답게 협박 하나는 잘했다. 강도들의 등에는 자신들이 약탈한 약탈품이 얹어졌다.

“으윽.”

팔이 묶여있었기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별 수 없었다. 워낙 양이 많았다. 다른 이들도 짊어졌다. 그들은 다시 〈왕국 야영지〉로 향했다. 이들이 훔치고 모아놓은 약탈품이 그들이 강도짓을 했다는 것을 알려줄 가장 큰 증거품이 될 것이다.

휴식을 자주 취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베드리는 드낙의 눈치를 보았다. 드낙 또한 그 시선을 느꼈다.

‘녀석, 약탈품이 많은 것을 보니 거기에 대한 지분까지 노리는군.’

어차피 〈추적 용병단〉에서 방출된다. 하지만 방출을 말하면서 드낙은 〈일당〉과 〈두당값〉에 대한 것만 언급했고, 약탈품에 대한 몫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속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

강도를 잡는데 어그로 하나 못 끈 〈석궁사수 베드리〉였다.

이성적인 드낙임에도 괘씸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핀의 주먹이 아니라 돈으로 그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헉. 헉.”

숨을 거칠게 내쉬는 강도들에게 숲언덕을 지나면서 얻은 산과일을 쥐어짠 즙이 넣어진 물을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비박할 준비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드낙은 그 사이에 강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하나씩 강도로 추락한 일화를 가지고 있었다.

마을 유지의 말을 안 들었다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난 경우도 있었고, 홧김에 저지른 죄를 감당하지 못해 도망친 도망자도 있었다.

“〈범죄 농노〉로 살면서 사회성을 길러서 새삶을 찾아. 일하기 싫으면 오늘 경험으로 칼밥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모든 죄를 탕감했을 때,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추적 용병단〉이 첫 전투를 치르면서 〈화살받이〉의 존재감이 아주 컸기 때문이었다.

“정말입니까?”

순식간에 자신들을 제압한 용병단이었다. 드낙의 앳되어 보이는 얼굴은 전혀 감소 요소가 아니었다.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방출이니까. 성격 좀 많이 죽여야 할지도 모르지.”

드낙은 그들에게 술 한 잔을 주기도 했다. 강도들은 따로 모닥불을 받아서 잠을 청했다. 그들은 거칠게 밥을 먹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화기를 돋우기 위한 독한 술을 마셨기에 쉽게 잠들 수 있었다.

3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추적 용병단〉 중에서 〈수염 도렌〉이 드낙에게 물었다.

“왜 저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십니까? 범죄자들이지 않습니까.”

“겉으로 잘 지내는 것이 무엇 어렵습니까? 이것으로 놈들 중에 한 놈이라도 도망칠 생각을 접을 겁니다. 하나로 연결되어있으니 도주는 불가능하죠.”

“찾아오면 도와주겠다는 것은···?”

“정말로 개과천선했다면 도와줘야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상황에 따라서 드낙은 또 다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인간은 항상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판단을 바꾸기 때문이다. 애초에 의미 없이 강도에게 말한 것일 수도 있었다. 즉흥성이 다분한 강도와의 대화였다.

다시 만나지 않을 인간에게 말하는 주절거림은 몇 년 뒤에 찾아올 강도들에게 비웃음밖에 주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잘 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처세술이었다.

지금 당장을 위한 것. 빈말이라 말해지는 흉악한 것. 때때로 윤활제라고 말해지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 무엇도 안 되는 말이었다.

도렌이 의문을 해소했을 때, 〈석궁사수 베드리〉가 입을 열었다.

“대장. 약탈물에 대해서도 제가 돈을 받을 수 있겠지요?”

드낙은 그 말에 딱 잘라서 거절했다.

“아니요. 일당을 주는 것은 그저 함께 해도 받는 돈이라서 주는 것입니다. 강도들의 몫을 주는 것은 저의 배려고요. 강도를 잡는데 그저 숨어만 있던 당신에게는 그 이상으로 줄 돈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의외로 베드리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애초에 드낙을 말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일찍 포기한 듯했다.

〈추적 용병단〉이 〈왕국 야영지〉로 돌아오자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이 눈에 띄게 〈추적 용병단〉을 축하해주었다. 이게 다 어리숙한 〈수염 도렌〉이 너무 자신에 대해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만큼 〈왕국 야영지〉에 대한 것도 알았지만 드낙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아아! 애송이 용병단이 큰 건을 했군! 강도를 4놈이나 생포해 오다니!”

짝짝짝!

창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박수를 촐랑거리듯이 경박하게 쳐주었다.

〈수염 도렌〉은 입꼬리가 광대승천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놀리는 칭찬인데 그걸 몰랐다. 그저 〈첫 성과〉에 눈이 팔려있었다.

이스핀은 가오를 잡으며 무표정하게 방패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베드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병사들은 이내 이 용병단이 복합적인 문제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큼. 〈선임병사〉에게 안내해주지.”

처음 봤던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와는 만날 수 없었다. 그 대신 〈선임병사〉라 불리는 베테랑 병사와 만나야 했다. 글을 쓸 줄 알아서 지휘관의 부관쯤 되는 위치가 바로 선임병사라는 직책이었다.

지휘관마다 선임병사의 숫자가 달랐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한 명의 선임병사를 두고 있었기에 그 힘이 다른 선임병사보다 컸다. 일인권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추적 용병단의 드낙이라고 합니다.”

선임병사가 손을 내밀었다. 〈병사〉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문관으로 보였다. 그의 군막에는 양피지로 가득했기 때문이고, 피부도 하얀색이었다.

“나는 〈불세벤 선임병사〉라고 하네. 이야기가 제법 들리더군. 햇병아리 용병단이라 안줏거리로 어젯밤에도 걸레처럼 써버렸는데 공적을 가지고 오다니··· 대단하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상투적인 말을 했는데 불세벤은 웃음을 터트렸다.

“겸손하군. 하하.”

양피지를 뒤적거리더니 하나를 집어 들어 테이블에 펼쳤다.

“오늘로 12일째로군. 〈일당 500닢〉에 포획한 강도가 4명, 40닢···”

펜으로 윗부분에 줄을 하나 긋고 써 내려간 〈선임병사 불세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피지를 나무못으로 고정했다. 잉크를 말리기 위함이었다.

“약탈물은 야영지에 〈전쟁상인〉이 있으니, 그에게 팔면 될 것이네. 밖에 있는 병사에게 안내를 하도록 하지. 로벤!”

“예!”

“드낙 용병대장을 전쟁상인에게 안내해주도록.”

“예!”

내부의 호위는 대부분 〈신병〉이 맡고 있어서 〈신병 로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어지간히도 불세벤에게 지적을 당해서 그런지 그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저는 여기서 빠지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베드리는 그 말을 끝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신의 짐을 챙겨서 떠날 것이다. 만약 추적 용병단의 공용 물품을 훔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을 알 테니, 자신만의 것만 챙길 것이다.

“괜찮습니까?”

〈신병 로벤〉의 말에 드낙이 말했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불편한 사람과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었다.

“예. 전쟁상인한테 갑시다. 짐이 많습니다.”

도렌과 이스핀이 짐수레를 끌며 드낙과 로벤을 따라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