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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7화 (67/1,239)

0067 <-- 삼거리 언덕길 -->

어둠에서 적응하는 것을 짧게 가르쳐서 걱정을 할 새도 없이 드낙은 빠르게 움직이며 주위를 살피며 눈으로 보지도 않으면서 챙긴 멧돼지 가죽을 열어펼쳐 나무 등치에 몸을 숨기며 활을 꺼냈다.

‘장궁은 필요 없지.’

시야가 극한으로 제한되는 숲언덕이었다. 거기에다가 달빛이 밝았지만 그늘이 많았기에 단궁의 양 끝에 부착물을 묶어서 장력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

단궁과 화살 세 대를 양손에 각각 쥐고 주위를 훑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신발에 짓이기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소리를 보니 자신이 절대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무 위의 놈을 생포하는 것은 어렵다.’

활을 들고 있을 것이 뻔했다. 자신의 근처에서 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고개가 내려갈 것이다. 그래서야 드낙만 위험해질 뿐이었다. 그는 활시위를 당기면서 나무를 주의 깊게 살폈다.

움직임이 멈추자 그대로 손에 쥔 3발의 화살을 퍼부었다. 나무 위에서 화살을 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거친 밤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위였다. 나뭇잎이 아주 가까이서 흔들렸기에 소음도 제법 클 수밖에 없었다.

“억!”

소리가 들리자마자 드낙은 떨어진 놈에게 향했다. 원형 방패를 휘둘러서 한 번을 후려치고 다른 한 번은 방패의 끝부분으로 내려찍었다.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대로 놈이 쓰러졌다.

화살 세 대를 맞았으니 죽고 살고는 하늘에 달렸다. 적을 〈후방치기〉 하려고 했기에 이놈을 죽이는 것이 옳았지만 드낙의 욕심이 그것을 막았다. 정신을 차려도 기절을 한 번 했으니 몸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몸이 차갑게 식었을 때 부상을 가진 채로 움직이는 것은 끔찍한 고통을 동반한다. 발등이 부어도 열이 차오르면 어떻게든 갈 수 있지만 한 번 휴식하면 그걸로 끝이다. 드낙은 그에게 〈고통의 휴식〉을 강제로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몸을 돌리다가 드낙은 다시 쓰러져서 기절한 놈의 발목에 방패를 한 번 더 내려찍었다.

들썩.

그의 몸이 덜렁거렸다. 잔혹했지만,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감성을 지닌 것이 드낙이었다. 〈애송이 용병〉들을 가르쳐 줄 때에는 제법 헌신적으로 보였지만 인간의 바닥은 어둠 속에서 가장 잔혹했다.

프랑스의 웃고 떠들던 산장이 55일 동안 고립되었을 때, 오후의 찻잔을 기울이던 문화인은 인육을 먹으며 삶을 꿈꾸었다.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드낙이 몸을 낮추고,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모습을 반쯤 숨기며 우회했다.

숲언덕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강도들이라고 여겨지는 습격자들은 고지(高地)를 잡고 있었고, 실력 좋은 놈을 나무 위로 보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불을 피운 놈들을 찾는 것이었다.

용병들은 우회를 선택했기 때문에 매우 조심했다. 어둠 속에서도 드낙이 가르쳐준 것들을 이용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실수는 강도단과 애송이 용병들 모두가 했다. 오직 드낙만이 철두철미했다. 그 이유는 드낙이 특출나게 어둠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인간이 가진 감성, 감각이 아니라 〈검은 늑대(Mavros lyko)〉의 사건 이후로 그 야수를 벤치마킹했기 때문이었다.

암살자가 기술로써 은신을 한다면 드낙은 본능적으로 은신을 했다. 그 수준은 결코 어중이떠중이가 간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도들은 대범하게 수색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상체를 세운 채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늘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드낙은 결코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무력화할 순간이 왔음에도 용병들보다 먼저 강도들의 왼편에서 대기했다.

〈후방치기〉를 하려면 우측에 있는 애송이 용병들에게로 강도들이 몸과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래서야 완벽한 뒤를 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먼저 나서서 위험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다수와의 싸움은 확률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이 모든 화살과 투척 무기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용병단을 창설한 드낙이었다. 그런데 전투에서 자신이 미끼가 되는 짓을 한다? 그런 선택이 가능했다면 혼자서 독고다이로 나갔을 것이다.

용병들의 실수는 〈큰방패 이스핀〉이었다. 횃불 성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나무뿌리가 튀어나오고, 수풀이 앞을 가리는 숲언덕에서 운신이 불편했다. 거기에 방패까지 가지고 있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쿵!

모두가 들을 정도로 사각 방패의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이 거칠게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거세게 후려쳤다.

“놈들이다!”

철방패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큰 소리가 날 리가 없었고,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강도들이 쥔 방패는 조악한 나무 방패가 전부였고, 나무에 부딪칠 정도로 큰 면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상대의 무기나 막을 정도였다.

소란이 일어났지만 드낙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대했던 혼란은 일어나지 않고,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한 강도들이나 거기에 되려 놀래서 용병단은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기 시작했다. 소리가 난 방향은 맞았기에 강도들도 여기저기 엄폐물을 찾고 나서는 투척 무기를 던져대었다.

망치의 형태를 지닌 나무 혹은 나무 도끼 그리고 돌을 던졌다. 몇몇 강도는 제법 공을 들여서 만든 자체 화살을 쏘았다.

“으아아악! 개새끼들!”

〈수염 도렌〉이 머리에 돌을 얻어맞자 비명을 지르다가도 욕을 내뱉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다른 나무를 찾았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왼쪽 눈에 스며들어가자 그가 왼쪽 눈을 감았다. 기어가는 그의 왼쪽 몸이 그늘에서 벗어나서 확연하게 보였지만 시야가 망가진 도렌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잡았다.’

얍삽하게 나무에서 숨어만 있던 강도는 눈치만 보다가 도렌이 눈에 들어오자 활시위를 당겼다. 쏘아진 화살은 도렌의 엉덩이에 틀어박혔다.

“흐앙!”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들썩인 도렌이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엄청난 속도로 어둠과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운이 좋았다.

“그릅.”

그리고 활시위를 당기면서 조준을 정확하게 행하여서 도렌을 명중시킨 강도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드낙의 화살이 그 목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화살을 쥔 채 몸을 웅크리며 벽에 붙은 강도는 화살이 목을 완전히 관통한 것을 확인했고, 이내 눈물과 콧물을 왈칵 쏟아내며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오열하면서 그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피거품이 입에서 흘러내렸다. 끔찍한 죽음이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팔다리가 저려오고, 온몸이 쪼그라드는 압박감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고통? 숨을 참아서 오는 비명은 흉악했다. 무력하게 강도 하나가 죽었다.

〈석궁사수 베드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무에서 몸을 숨긴 채 석궁만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몸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저 몸을 숨긴 채 이리저리 고개만 돌렸다. 머리를 내밀지 않고 고개만 이리저리 돌려봤자 적을 색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드낙은 투척물을 던지는 강도를 활로 1명을 잡자마자 생포를 위해서 나섰다. 어처구니없게도 옆구리를 쏘려고 쐈는데 목에 맞았다. 드낙이 좀 더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제법 긴장을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후방치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고, 애초에 다수를 향해서 공격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이 드낙이다.

드낙이 먼저 접근하면서 강도들은 투척물을 모두 사용하자 근접 무기를 들었다. 롱소드로도 단칼에 베기 힘든 굵은 곤봉을 쥐고, 나무 방패 혹은 맨손이 대부분이었다. 나무가 많은 이 주변에서 놀았던 강도단답게 창 하나 들고 있지 않았다.

강도들의 목표는 〈큰방패 이스핀〉이었다. 위치가 가장 확실하게 알려진 놈이기 때문이었다.

“넌 뒤졌다! 씹새끼야!”

나무를 엄폐 삼으며 호다닥 달리는 강도들 중에서 이스핀과 가장 가까운 강도가 소리쳤다. 이스핀은 뒤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화살을 맞는 것이 두려웠다. 큰 방패를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화살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 발이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수염 도렌〉은 엉덩이에 박힌 화살을 뽑으려고 했지만 팔에 힘이 강하게 쥐어지지 않아서 무리였다. 만질 때마다 화끈화끈했다. 결국 엎드린 채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쉽게 포기해버렸다.

드낙은 뒤에서부터 한 놈씩 방패로 강도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체중을 실어서 방패에 얻어맞은 강도는 정신을 못 차리고, 헛바람 혹은 숨 한 번 내쉬지 못한 채 넘어졌다.

무기를 빼앗아서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숏소드로 두툼한 허벅지를 힘줄이 안 다치는 선으로 베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인지 허벅지를 베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 놈, 두 놈, 세 놈까지 처리했을 때, 이스핀과 마지막 남은 강도가 거칠게 근접전을 하고 있었다.

“우아악!”

강도는 소리를 지르며 양손으로 쥔 곤봉을 신들린 것처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렇게 용감한 이유는 자신의 뒤에 강도 동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드낙이 하나씩 처리하고 있는 줄 몰랐다.

이스핀은 우직하게 방패로 막으면서 버티고 있었다.

드낙이 그걸 보며 소리쳤다.

“방패로 그냥 달려들어!”

“크아아!!”

이스핀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온몸을 내던졌고, 강도를 덮쳤다. 사각방패의 끝부분이 턱에 부딪쳤고 방패에 얻어맞은 강도는 뒤로 튕겨지면서 그대로 한 바퀴 굴렀다. 체급에서 큰 차이가 났는데 이스핀은 멍청하게 맞고만 있었던 것이다.

드낙은 숏소드로 목을 쿡하고 살짝 찔렀다.

“허어읍···”

“무기 버리고.”

“예. 예···”

상황이 끝났다.

“이스핀! 넝쿨을 찾아서 이놈들을 묶어.”

무기를 발로 차버리며 드낙이 말했다. 그제서야 도렌이 소리를 꽥꽥 질렀다.

“저 화살 맞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베드리는 냉큼 몸을 일으켜서 넝쿨을 찾았다. 이스핀과 베드리는 서로 쓰러진 놈들을 찾아서 한 놈씩 묶어서 한 곳에 모았는데 서로 마주치자마자 이스핀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개새끼가, 혼자서 그렇게 숨어만 있어? 진짜 미쳤냐? 나보다 앞에 있었던 새끼가··· 다 봤어. 개새끼야. 이 잡놈 새끼. 넌···후우!”

이스핀이 말을 스스로 끊었다. 자신은 이곳의 보스(Boss)가 아니었다. 판단은 드낙이 할 것이다. 베드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스핀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의 변명을 듣는다면 주먹을 휘두를 지도 몰랐다. 넝쿨을 찾아서 양손으로 쓱쓱 거칠게 비벼서 얇게 만든 다음에 가닥을 여럿 뒤섞어서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팔과 팔뚝 그리고 상체를 둘둘 말았다. 심하다고 할 정도로 꽁꽁 묶었다.

그의 가슴은 아직까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두려움이 컸고, 그다음에는 〈석궁사수 베드리〉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깡패처럼 남의 돈을 빼앗으며 살아왔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형제애〉가 뚜렷한 것이 이스핀이었다.

동료가 적과 맞서고 있는데 숨어만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이스핀과 베드리가 강도들을 찾고, 넝쿨 밧줄로 묶는 사이에 드낙은 도렌의 화살을 살피고 있었다.

‘제법 깊게 들어갔네.’

적이 자신을 못 찾겠지 싶어서 엉덩이에 힘을 주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간 화살이다. 깊게 들어갈 이유는 충분했다.

“지금 치료하면 피를 너무 쏟을 테니, 이대로 있으세요.”

드낙은 바로 밖에서 장작을 모아서 불을 지폈다. 도렌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고통만이 남았다.

“조, 조금만 움직여도 너무 아픕니다.”

“예. 가만히 있으세요.”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투척 단검을 한 번 달구고 끓인 물을 가죽 주머니에서 조금 흘러 식혔다.

치이익!

수증기가 올라오자 도렌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므, 뭘 하시려고요?"

“치료요.”

도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모닥불을 등지고 있었기에 드낙이 뭘 하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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