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5 <-- 삼거리 언덕길 -->
〈삼거리 언덕길〉 〈왕국 야영지〉
“정지! 어디서 오는 자들인가!”
얼굴만 봐도 솜털이 빠지지 않은 드낙 그리고 하나같이 엉성한 놈들이었지만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다 늙은 당나귀 뒤에서 사람이 짐수레를 밀고 있기도 했다. 독특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가 크게 소리친 이유는 이런 〈엉성한 놈들〉이 큰 사고 혹은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병사 수백이 지키는 곳에서 성문 고리를 훔치려고 한 멍청이들을 본 적이 있는 〈사년병(四年兵) 울라스〉였다.
드낙은 고개를 까딱거려 인사하며 용병패를 제시했다. 울라스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용병패를 받았다. 용병패를 노려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것이었다.
짐을 확인하기도 했다. 짐수레 안에 먹을 것과 생필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건가? 횃불 성채 부근에서 온 것을 보니 〈남부 황금평야〉를 보러 가는 것이로군.”
“아니요. 저희는 〈추적 용병단〉입니다. 의뢰 때문에 왔습니다.”
용병단 이름은 그새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한 요리 프로그램의 진리를 기억했기 때문인데, 〈짜장면〉을 파는 집의 간판은 〈짜장면〉을 크게 부각 시키고 유명해지면 다른 자신만의 브랜드 상표를 내걸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붉은털의 곰을 추적하기 위해서 〈추적〉을 위한 용병단임을 기사에게 가장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최소한의 유명세를 가져야 했다.
“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실 웃었다.
“의뢰비가 적은데 와주다니, 어지간히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나 보군. 마을 친구들인가?”
밑도 끝도 없이 드낙을 가볍게 보자 드낙이 울라스를 노려보았다.
‘무슨 눈빛이···’
백골이 되어 남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시대에서 명문가의 가주였던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의 찌꺼기를 받은 드낙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낼 수 없는 기세를 뿜었다.
그것은 마치 십 년을 전쟁터에서 보낸 베테랑 전쟁 병사의 것과 흡사했으며, 진흙탕보다도 더 진탕인 용병 사회에서 구른 베테랑 용병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크흠. 내 사과하지.”
문제가 일어난다면 안 그래도 적은 봉급이 더 줄어들 것이다. 〈내정관 샤이언〉의 악명이 자자했다. 돈 때문에 병사들은 요즘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횃불 성채〉의 〈기괴한 사건〉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
사과를 하면서도 병사는 끝끝내 반말을 놓지는 않았다. 드낙과 주변 이들이 모두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지휘관님! 치안 확보를 위한 외부 의뢰를 위해서 용병단이 왔습니다!”
“용병대장을 들여보내라.”
“용병대장만 들어가라.”
드낙이 거침없이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만진 군막의 천은 매우 굵었다. 여름에는 더워서 죽을지도 몰랐다. 오직 〈겨울용〉만 있는듯했다.
“반갑네. 내 이름은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이라고 하네.”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제법 깊이 숙였다.
“〈추적 용병단〉의 용병대장 드낙입니다.”
“반갑군.”
두런두런 서로 배경 이야기를 했다. 특히나 드낙은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해야 했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추적에 능한 용병단이라. 이 주변에는 소규모 산적들과 도적, 강도들이 많지. 그들을 포획한다면 동화 10닢의 포상금이 주어질걸세.”
“그 때문에 온 것이기도 합니다.”
드낙이 제법 어려보임에도 똑 부러지자 게실리안은 현재 〈왕국 야영지〉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마음에 든 것이다. 사실 심심하기도 했다. 이곳은 따분한 곳이었다.
대단한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병사를 공격하는 미친놈은 없었다. 오직 보부상, 상단만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순찰대를 꾸려도 재미를 볼 수 없었다.
〈정규군〉은 제법 돈이 나가는 병사였기에 대부분이 〈흉갑(胸甲)〉을 입고 있어서 상대를 해주지 않으며 이동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지도를 볼 줄 아는가?”
강한친구 대한육군의 전역자인 박호훈이었다. 독도법을 심심해서 만들기도 했었다. 심심한 내무반에서 후임을 놀리기보다는 지도를 만들어서 서로 군대를 나눠서 입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예.”
“그럼 더욱 좋군.”
게실리안 지휘관의 군막 테이블에 있는 지도로 자리가 옮겨졌다. 그곳에는 나무로 뭉툭하게 깎인 도끼와 검이 여럿 있었다.
“도끼는 산적이고, 검은 강도지. 여기가 야영지네.”
“이런 걸 보여줘도 됩니까?”
드낙이 제법 겁을 먹은 티를 내자 게실리안 지휘관이 크게 웃어젖혔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가진 정보, 자신이 가진 힘이 그 물음 하나만으로 크게 느껴졌기에 기분이 좋았다.
“추적을 한다면 놈들의 출몰한 지점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거침없이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더욱 흥이 난 게실리안 지휘관은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제국도로〉에는 제법 규모가 큰 산채가 여럿 있지. 규모가 있는 상단과 부딪쳐서 세를 받아먹는 것들이 많아.”
“아하! 제 용병단은 결코 그곳으로는 가면 안 되겠군요.”
“동화 50닢에 가기는 좀 그런 곳이지. 나도 거기까지는 안 바라네. 개죽음이야.”
제국도로에는 큰 규모의 산채가 여럿 있었다. 물론 소규모도 있겠지만 소란이 일어나면 곳곳에서 산적이 튀어나올 것이다.
“〈남부 황금평야〉는 소규모 여행자들과 보부상이 자주 다녀서 그런지 겁을 상실한 강도들이 곳곳에 있지. 멋 모르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나는데 안 죽이는 것만이라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더군. 미친놈들이지.”
“소규모로 움직이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군요.”
“그래. 병사만 나타나면 꽁지 빠지게 튀는 놈들이라, 잡기가 힘들어. 산을 타는 모습은 여우나 다름없지.”
소규모의 강도단이 있는 곳이 〈남부 황금평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횃불성채〉 쪽은 가장 안전한 길이지. 이곳 〈왕국 야영지〉와 〈횃불 성채〉 양쪽에서 순찰대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네.”
드낙의 추임새, 리액션에 게실리안은 말해서는 안 될 것도 말해버렸다.
“〈횃불 성채〉가 〈아기 납치 사건〉으로 난리가 난 지금 우리 왕국 야영지는 전략적 요충지인 삼거리 언덕길을 반드시···아!”
그가 말하다 말고 탄성을 질렀다. 그의 말실수를 깨달은 것이다. 이내 매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잠시 손을 들어 드낙을 막고, 등을 돌려 술병과 술잔 두 개를 가져왔다.
“내가 말실수를 했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동전이 오고 가면 잠긴 입도 열리는 법이야. 날 바보로 만들지 말게.”
“······”
술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게실리안은 드낙이 입을 다물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입을 열면 그 입을 연 놈의 이름이 거론되고는 하지. 〈종신노역〉을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아주 무서운 말도 했다. 죽을 때까지 노역에 처해지는 벌이었다. 대부분이 반역, 반란, 내란죄 등등 기득권의 이득을 침해했을 때 당한다. 혹은 끔찍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했을 때 행해지는 벌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귀족이나 법관의 마음대로였다.
드낙은 그 말을 듣고 반박했다.
“오히려 저는 게실리안 지휘관님이 의심스럽습니다. 일부러 저에게 말을 흘리고, 다른 이에게 돈 받고 정보를 건네주려는 것 아닙니까? 아주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무, 뭣!”
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 말은 즉슨, 반대로 드낙 또한 그런 짓이 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네···”
“이미 흘러 담은 물을 어떻게 줍겠습니까? 서로 간의 신뢰는 이처럼 말 한 마디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드낙이 술을 마셨다. 결코 게실리안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것이 이미 〈예견된 일〉이라면 적어도 게실리안을 한 번은 말로라도 물어뜯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상대를 찾을 것이다.
“제법이군. 제법이야. 물론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실리안은 품에서 은화를 한 닢 꺼냈다. 귀족이라면 응당 아랫것들과는 차이되는 부(富)를 가지고 있는 법이었다. 물론 귀족의 재산은 8할 이상이 현물 자산이었고, 나머지 2할이 현금 자산이었다.
흥청망청 쓰지 않는다면 물론 현금 또한 계속 쌓이기에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 달 혹은 격달로 따졌을 때의 수입만으로는 해당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조용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네. 결국 법 아래에서는 귀족이 위에 있는 것 아니겠나.”
세상의 진리도 말해주었다. 스스로 겁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마치 수전노처럼 냉큼 은화를 집으면서 웃음을 가득 지었다.
“무덤에 가서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쓸데없이 말을 퍼부었다. 은화에 홀딱 넘어갔다고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저희 추적 용병단은 생긴지 이제 1주일도 안 되었습니다. 괜히 동화 50닢 먹으러 온 것이 아니죠. 거기에 비하면 은화 1닢은 아주 큰 것 아닙니까. 오늘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참 다행이로군.”
그가 손을 휘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은화 한 닢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귀족은 아랫것에게 돈을 쥐여주는 것에 있어서 항상 〈의미가 있음〉을 중요시해왔다. 이번 일은 그에게는 잊고 싶은 일이 될 것이다.
‘괜한 말실수를··· 쯧.’
야영지의 외진 곳에 군막 하나를 배정받았다. 드낙은 군막에 짐을 풀고 생각에 잠겼다.
‘〈아기 납치〉? 횃불 성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듣기만 해도 불온한 사건이었다. 괜히 찜찜했다.
그 사이에 다른 일행들은 병사에게 식량을 배급받아서 식량을 가져왔다. 의뢰비가 낮다는 것을 그들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뢰서에 숙식 제공이 있었다.
“오. 괜찮은데요?”
받은 식량은 걱정과는 다르게 양질이었다. 곡물 가루는 금방이라도 빻은 것처럼 빛깔이 좋았다. 말린 야채긴 해도 당근이나 감자 따위를 1인당 1개씩 주었다. 육포도 아니고, 훈제되어서 나뭇잎에 싸여진 것을 받았다.
말도 안 될 정도로 풍족한 한 끼다. 밖에서는 이 정도는 금이었다. 금.
‘좋은 지휘관인건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병사들이 먹는 것은 제대로 된 것이었다. 고기, 야채 그리고 수프를 만들기 위한 곡물가루까지. 완벽했다. 빵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병사한테 물어보니, 빵은 병사들도 따로 값을 낸답니다.”
“그래요? 흠···”
드낙은 그제서야 양질의 식량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빵을 통해서 해당 농장이나 사냥꾼에게 따로 값을 추가적으로 내는 듯했다.
“가격도 적당합니다.”
동화 3닢이면 4명이 충분히 먹을 딱딱한 밀빵이 쥐어졌다. 드낙은 딱딱한 겉의 빵을 뜯었다. 생으로 뜯는 것을 즐겨 했다.
“입 안 아프십니까?”
“이런 식감을 즐깁니다.”
이른 저녁을 먹자마자 드낙은 애송이 용병들을 이끌고 밤에 숲으로 들어갔다.
“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수염 도렌〉은 말을 떨기까지 했다. 옆에서 베드리가 킬킬 웃었다.
“어둠에 적응하는 시간인데 말까지 떨면 어떡합니까!”
드낙이 호되게 소리쳤다. 그는 이것을 제법 즐겼다. 재밌다고 해야 할까.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이 시간은 어둠 속의 숲에서 다양한 지형을 체험하는 수련 시간이었다.
“중요한 건 어떤 지형에서든지 힘 있게 발을 디뎌야 합니다. 미끄러지거나 발목이 조금 꺾이거나 기울여졌을 때, 무리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럼 넘어지는 것 아닙니까?”
“생각보다 인간의 균형 감각은 뛰어납니다. 미끄러질 뿐이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났다. 도노가 툭하고 건드리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드낙은 무리하지 않았다. 지겨움을 느끼기 전에 애송이 용병들을 빼냈다.
“언제 익숙해질지.”
땀을 쏙 빼고 대충 젖은 수건으로 전신을 닦으며 〈큰방패 이스핀〉이 툴툴거렸다.
“내일 새벽에 나가서 적을 찾을 겁니다. 일찍 자세요.”
“예.”
“알겠습니다.”
드낙은 바닥에 누웠다. 바람을 막아주는 군막과 안에 있는 열을 뿜어내는 화덕 덕분에 잠자리는 편했다.
‘이들이 얼마나 성장할지 기다릴 수는 없다.’
최대한 캐리를 해서 자신감을 높여준 다음에 기사가 오면 〈일백야수(一百野獸)〉가 된 〈붉은털의 곰〉을 잡으러 갈 생각이었다.
‘실패 따위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면 아무리 애송이라도 자신의 실력을 더 대단하게 여기게 되겠지.’
물론 최대한 역량을 끌어줄 생각이었다. 보통 야수가 아니라 백명을 잡아먹은 〈일백야수(一百野獸)〉를 추적해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