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4 <-- 첫 의뢰 -->
“그럼 안 가신다는 겁니까? 혼자서 사람 백 명을 잡아먹은 〈붉은털의 곰〉을 잡겠다고요? 온 가죽털이 붉답니다. 그냥 야수도 위협적인데, 혼자서 잡으시려고요?”
〈큰방패 이스핀〉이 마치 드낙의 최측근마냥 열을 올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중에서 가장 바닥이 얕은 것이 그였다. 그에게 가르쳐준 실전적인 〈손없는 센다빌〉의 무기술 몇 가지는 말 그대로 〈이스핀의 밑천〉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드낙은 가볍게 준 것이었지만 이스핀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작 6개월만 배운 외날도와 제법 큰 방패는 아직까지도 익숙하지가 못했지만 〈뭔가를 죽일 한수〉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불과 하루 전이었다.
스승의 존재 이유를 깨달을 정도였고, 돈을 모은다면 〈횃불 성채〉에 있는 사설 훈련장에도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그의 생각을 송두리째 뽑아서 다르게 바꾼 것이 드낙이었다.
‘이거 참.’
드낙은 먼저 자신이 간다고 한다면 욕심 때문이라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큰방패 이스핀〉의 격렬한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들어간다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백 명입니다. 백 명. 백 명을 먹은 곰이란 말입니다. 〈붉은털의 곰〉 중에서도 유례없는 일입니다. 소문이 퍼진다면 너도나도 가죽에 눈이 멀어 달려오겠지만···”
은화 1닢 벌지 못한 〈드낙 용병단〉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의뢰도 한 번 해보지 못한 것이 이들이었다. 술집에서 어슬렁거리며 귀동냥하며 〈고만고만해 보이는 용병〉이 되려는 것을 드낙 덕에 의뢰를 하러 온 것이다.
보통이라면 좀 더 힘들게 용병단에 들어가는 게 정석이었고, 이들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미루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그 사이를 드낙이 잘 찌른 것이다.
3명 모두 드낙을 말렸다. 이것은 이스핀이 물꼬를 잘못 열어서 생긴 일이었다. 결국 드낙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 잡아보는 게 어떻습니까. 직접 발동하는 함정을 판다면···”
드낙은 세세하게 잡을 방법을 설명했다. 나무를 날카롭게 잘라서 십여 개로 만든 것을 묶어서 들어 올린다면 달려드는 〈붉은털의 곰〉을 손쉽게 죽일 수 있다고 했다.
분위기는 여전했다.
‘겁이 어찌도 이렇게 많은 건지.’
드낙 스스로도 있지도 않은 일 때문에 겁먹은 채 밤을 지새워본 적이 있음에도 〈애송이 용병〉들이 겁을 먹어있자 혀를 찼다.
“헛소문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살아남은 생존자가 잘못 본 걸수도 있습니다. 인육에 눈을 뜬 곰이 마을을 습격하지 않은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그래도··· 너무 큰일인데··· 저희가 할 수 있을지.”
“놈을 잡는다면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은화 20닢? 상인끼리 경쟁이 붙는다면 두 배도 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적은 상처로 죽인다면··· 전체적으로 온전한 통가죽이라면?
‘금화 한 닢 보다 더 더 받을 수 있다.’
1억짜리 동전이 아니라 2억도 받을 수 있었다. 갑자기 값이 크게 뜨는 이유는 역시 돈을 가진 귀족이 탐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있을 수 없었다.
〈사람 백 명을 잡아먹은 곰〉을 적은 상처로 죽이다니. 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은화 20닢이라도 대단한 돈이었다. 한화로는 2천만 원이었다. 그리 질이 좋은 건 아니라도 중갑옷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일반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중갑옷이 은화 20닢이었다. 물론 더 들어갈 수 있었다. 참고로 〈검은 산골 마을〉의 대장장이 말룩산이 제시하는 중갑옷의 비용은 은화 30닢이었다. 날강도라고 하기에는 드낙의 요구 조건이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중갑옷은 풀 플레이트 아머가 아니었다. 강철 방어구를 뜻했다.
“······”
서로 눈치만 보자 결국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는 놈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만든 용병단을 단번에 해체하는 것도 힘들었다. 벌려놓은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매듭을 짓는 게 좋았다.
‘포기? 어림없지.’
기사가 오기 전까지라도 최대한 어떻게든 발악을 해볼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내일 새벽에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하겠습니다.”
“어디로 갈 겁니까? 〈횃불 성채〉로 돌아가서 다시 의뢰를 살피나요?”
세 사람의 표정이 좋아졌다. 곰을 상대하는 것은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곰은 나무도 잘 타고, 험지에서도 시속이 60km가 넘게 나온다. 인간은 45km도 좋게 봐줘야 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현대인이 알고 있는 불곰의 속력이다.
판타지 세계의 〈야수〉는 또 달랐다. 애송에 용병들이라도 곰과 맞서는 것을 크게 주저하는 이유였다. 드낙조차도 〈검은 산골 마을〉에서 잡은 곰을 출혈로 죽였다. 며칠을 추적하며 죽기를 기다렸었다.
〈검은 꿈의 탐욕〉에서 진정한 드낙은 마음을 추슬렀다. 애송이 용병들에 대해서 함부로 생각한 것을 깔끔하게 접었다.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일단 용병들의 경험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팀워크가 맞아야 한다. 그것은 드낙이 어떻게 해줄 것이 아니었다. 빡세게 굴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 용병단을 나가겠지. 굳이 이들에게 연연할 것은 아니었지만 용병단만큼 〈세력〉을 만드는데 쉬운 것이 없었다.
‘3명 중에 하나라도 데려간다는 마인드로 가자.’
“대장님?”
드낙은 어느새 땅을 향하고 있는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삼거리 언덕길〉로 가서 〈치안 확보〉를 할 겁니다.”
“거긴 보수가 너무 적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석궁사수 베드리〉의 물음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확실히 삼거리 언덕길의 의뢰는 보수가 적습니다. 용병단에 하루 동화 50닢만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방법을 바꿀 겁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누구 하나 눈치 좋게 답을 말하는 이가 없었다.
“산적이나 강도, 도적 따위를 포획해서 넘길 겁니다. 1명당 동화 10닢입니다.”
“산채를 토벌하는 것은 위험한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석궁사수 베드리〉였다. 그의 몬스터 의뢰를 〈위험 부담이 크다〉고 말하며 넘어갔기에 베드리는 위험 요소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는 듯했다. 일종의 복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기에 드낙은 화를 내지는 못했다.
“돌아다니는 놈들을 노려야죠.”
그렇게 말하며 드낙이 눈웃음 지었다. 벌써부터 험한 산을 타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지옥은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다.
‘사회에서 완전히 도태된 놈들을 내 돈으로 삼는다.’
동시에 이 3명을 단련시킬 것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드낙의 목표는 기사가 붉은털의 곰을 잡으러 파견되기 전까지 〈드낙 용병단〉을 빠르게 실력 있는 용병단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추적 용병단〉이 좋겠어. 파견 나온 기사가 단번에 지목할 정도로 〈추적〉에 능하다는 인식을 〈횃불 성채〉에 보여준다.’
KTX도 없는 세상이었고, 마을에 피해가 커도 마을이 사라지고 나서야 등장하는 것이 기사였다. 그들은 수많은 임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와 야수 그리고 온갖 적이 많은 이 세상에서의 기사는 항상 부족한 인적자원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손없는 센다빌〉이라고 불리기 전의 〈거체의 도끼 센다빌〉의 토벌전에도 참가하지 않은 것이 기사였다. 제법 굵직한 토벌전이었음에도 기사가 없을 지경이다. 락손의 친필 비전서 진본에 있었던 수필을 통해서 센다빌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드낙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드낙은 자신이 헛걸음 한 것을 되려 좋게 생각했다.
“강도와 도적을 포획해서 병사에게 넘긴다···”
이들은 모두 드낙이 특출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못 느낄 수가 없었다. 융과 메르인이 드낙에게 편의를 봐준 것만 해도 드낙의 특출남은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제법 경험이 쌓인 용병들이 아는 〈특징적인 굳은살〉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었다.
‘가능해.’
자신들도 할 수 있는 일로 보였다. 찬성표가 많았다.
“실제 받는 돈이 주(主)가 되는 게 아니라 포획해서 버는 돈이 주(主)가 될 겁니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숲과 산을 많이 타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남는게 체력입니다.”
이스핀이 듬직하게 말했지만 드낙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드낙 용병단〉의 첫 걸음은 시작부터 삐끗했다. 평범한 야수에서 피를 조금 본 놈이 순식간에 〈일백야수(一百野獸)〉가 된 것이다.
큰소리치면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 용병 단원은 곰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노골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좋은 판단력을 가졌네.’
〈드낙 용병단〉은 그렇게 바로 다음날, 당나귀의 머리를 돌려 〈삼거리 언덕길〉로 향했다. 〈횃불성채〉, 〈남부 황금평야〉, 〈제국도로〉로 향하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었고, 반대로 만나는 길이기도 했다.
토성도 아니고, 목성도 아닌 그저 〈왕국 야영지〉가 하나 있는 게 전부였다. 낮아졌다 높아졌다하는 언덕에서 성을 짓는 것은 막대한 노동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성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중앙 제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전략적 요충지인 〈삼거리 언덕〉에 성채를 짓는다는 것은 곧 제국에 반(反)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기에 이곳은 〈전략적 가치〉에 비해서 형편없는 야영지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병사를 크게 동원하는 것도 안 되었다. 〈제국도로〉를 통하면 보름 만에 국경선으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말을 타고 가야지 보름이었다.
〈붉은털의 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여행길이었다. 드낙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면서 그들이 말하는 정보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가려주었다.
타닥. 탁!
불꽃을 토해내는 모닥불이 소리를 냈다. 끓인 물을 식혀 마시는 드낙을 흥미롭게 보는 이스핀이 냉큼 똑같이 물을 끓여서 후후 불며 먹었다. 뭐든지 드낙을 따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끓여서 마시면 뭐가 좋습니까?”
“몸이 데워지죠. 벽 없는 이런 곳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차이가 심해집니다.”
그럴듯했다. 실제로 용병들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야영할 때면 항상 뜨겁게 달군 돌을 밑에 깔고 흙으로 덮은 뒤에 잠을 청했다. 귀동냥을 제법 한 〈석궁사수 베드리〉까지 따라 하자 〈수염 도렌〉도 마찬가지로 끓인 물을 마셨다.
끓인 물을 가죽 주머니에 넣기도 하는 드낙을 보며 모두가 따라 하자 드낙이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 같았기 때문이다.
“왜 웃습니까?”
굳이 새끼 오리 같아서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드낙이 마음을 고쳐먹자 용병단의 일과도 조금 변했다.
“억.”
발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도 드낙의 발이 쑥하고 하체에 들어가서 단번에 무릎을 꺾어 균형을 무너뜨렸다. 넘어질려는 〈수염 도렌〉의 팔뚝을 잡은 드낙이 말했다.
“그렇게 들어오면 바로 보이잖아요.”
“뭐가 보인다는 거죠?”
“발이요. 발. 상대 시선을 교란시키고, 발을 움직이세요. 그렇지 않으면 끝입니다.”
대련을 해주기 시작했다. 고작 한 번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애송이 용병들의 경험치는 쑥쑥 쌓였다.
‘내가 강한 건가? 얘들이 약한 건가?’
드낙은 가르치면서도 혼란을 느꼈다. 생각보다 〈애송이 용병〉들의 무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런 놈들 한 트럭이와도 드낙은 이길 자신감마저 들었다.
손 잃기 전에는 산적의 대두목이었던 센다빌이나 오크 전사를 무력 기준으로 잡고 있었기에 그 괴리감은 굉장히 혼란을 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