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1 <-- 세파리아스 불파겐 -->
〈피가득 술집〉의 아침은 선택받지 못한 용병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적당히 술을 마시면서 의뢰를 보거나, 테이블에 앉아서 다른 이들을 지켜보았다. 대부분이 혼자 아니면 두 명이었다. 때때로 합류가 이루어지고, 다시 흩어지기도 했다.
드낙은 〈갈색 늑대 도노〉를 옆에 두고 다녔기에 단연코 시선을 끌었다. 가죽 갑옷은 제법 손때가 묻어서 노련미가 나왔고, 원형 방패는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실전을 경험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가죽 배낭에 조금 튀어나온 활은 물론이고, 혁대에 걸친 롱소드와 숏소드 그리고 대거. 허벅지에는 투척 단검이 꽂혀있었다. 다양한 가죽 주머니 또한 제법 아는 놈임을 말해주었다.
“이봐. 우리 쪽이랑 함께하겠어? 너만 오면 네 명이야. 다섯 명으로 의뢰를 하려고 하는데. 관심 있나?”
앳되어 보여도 복장 때문에 다가오는 용병이 제법 되었다. 드낙은 정중하게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 용병답지 않은 정중함에 용병의 시선이 드낙의 손으로 향했다. 당연히 평범하지 않은 부위에 단단히 굳어있는 굳은살이 보였다.
“정말로 관심 없습니까?”
반말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권유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에 대해서 알아서 PR을 하기까지 했다. 드낙은 저녁의 술집에서 봤던 용병들과는 판이 다른 반응에 조금 놀랐다.
‘아침과 저녁으로 용병들의 태도가 바뀌네.’
목마른 용병과 배부른 용병의 차이였다.
드낙은 그들을 하나하나 대응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병들은 다혈질이 많았다. 쓸데없는 분쟁은 시간 낭비였다.
“혼자입니까?”
젊어 보이는 〈애송이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드낙에게 호의적이었다. 늑대를 끌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시선몰이를 했다. 그 주인공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에는 보기 힘들었던 〈애송이 용병〉들이 아주 많았다.
“저녁에는 술집에 안 오나 보죠?”
“가면 몇 대 맞기까지 합니다. 애송이라면서 말이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애송이 용병의 이름은 도렌이었다. 그는 자신을 애송이 용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물론 아직 한 번도 용병단에 들어가거나 의뢰를 한 적이 없지만) 〈수염 도렌〉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수염 도렌. 나는 용병단원을 모으고 있어. 함께 할래? 난 현상금 사냥꾼에 섞여서 제법 돌아다녔거든. 그 경험으로 일찍 용병단을 운영해보려고 해."
드낙은 바로 반말을 까면서 자신이 도렌보다 위에 있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도노에게 육포를 먹였다. 수염 도렌의 시선이 도노에게까지 향하자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보통 용병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데.’
“무슨 의뢰를 할 건데요?”
“못해도 3명을 더 모으면 하려고. 나 너랑 비슷한 애들로 할 거야.”
“뭐, 난 괜찮은데··· 요.”
별생각이 없어 보이는 〈수염 도렌〉이 합류했다. 그의 나이는 드낙보다 2살이나 위에 있었다. 17살이었다. 드낙은 자신의 나이를 15살이라고 말했다. 애송이 용병들을 둘러보는 그에게 도렌은 드낙의 과거를 알고 싶어 했다.
“〈검은 산골 마을〉에서 사냥꾼을 했지. 곰도 잡고, 마브로스 리꼬도 잡았지.”
“헉. 〈검은 늑대(Mavros lyko)〉를?”
드낙은 자신의 가죽 배낭에 손을 넣어서 검은 꼬리 장식을 보여주었다.
“그 꼬리를 잘라서 이걸 만들었지.”
만지자마자 색다른 아주 날카롭고 두꺼운 털 감촉에 도렌이 침을 삼켰다. 이런 검은 털은 본 적이 없었다. 멧돼지 털과 감촉이 비슷했지만 더 거칠고 두꺼웠으며 애초에 멧돼지는 〈검은 털〉이 없다.
그 뒤로 순식간에 인원을 채울 수 있었는데, 드낙의 복장. 분위기. 늑대 도노. 그리고 서로 비슷함이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수준이 비슷하니 되려 무리 없이 합류하는 마음을 가졌다. 물론 드낙이 있었기에 가능한 합류였다. 어중이떠중이만 있으면 죽음밖에 없었다. 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름은 〈드낙 용병단〉으로 정했어.”
모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공개하고 나서는 19살인 〈투석(投石) 오삼〉이 깜짝 놀랐다.
“15살? 맙소사!”
크게 놀라는 그는 드낙을 노려보았다. 나이 하나에 그가 풍기는 모든 지표들이 송두리째 뒤엎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드낙이 말하자 그는 당연히 소리쳤다.
“15살짜리가 용병 대장이 된다는 게 말이 돼? 안 그래?”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합류하기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
드낙의 말에 오삼이 짐을 챙겼다. 그리고 말했다. 드낙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15살짜리를 대장으로 모시겠다는 거야? 정말로? 나랑 같이 갈 사람.”
그 말에 〈큰방패 이스핀〉이 코웃음쳤다. 물론 큰방패라는 이름도 자신이 주장하는 이름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애송이 이스핀〉으로 불렸다. 드낙을 제외한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그랬다.
그저 비웃고 끝내는 이스핀과는 다르게 〈석궁사수 베드리〉가 오삼을 보며 비웃으며 톡 쏘아붙였다.
“돌팔매질하는 놈보다는 전위에 서는 대장이 낫지. 넌 검은 늑대를 잡아보지도, 목격한 적도 없잖아?”
“새빨간 거짓말이겠지.”
“그럼 그냥 갈 길 가라.”
드낙은 오삼을 바라보았다. 그는 우물쭈물거리다가 이내 다시 앉았다.
“간다는 놈이 왜 다시 앉습니까?”
드낙의 말에 오삼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다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병신 새끼.”
베드리는 신랄하게 그를 욕했다.
“오삼을 잘 아시나 봅니다.”
“예. 나이 19 먹고 아직 의뢰 하나 제대로 못한 놈입니다. 저도 할 말은 없지만 저놈보다는 낫죠.”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부터 한 명을 거르고 시작해서 되려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크게 담지도 않았다.
“서로 할 수 있는 용병 의뢰를 가져오세요. 그중에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의외였다. 다른 용병단원들이 크게 좋아했다. 보통은 그런 결정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4명으로 이루어진 〈드낙 용병단〉은 그들에게 좋은 시작을 알렸다.
많은 용병대장이 독단적이기 때문이다. 융의 경우에는 〈타협하는 척〉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모든 결정이 융의 마음대로였다.
드낙은 무난한 야수 토벌을 가져왔다. 사냥꾼인 자신이 크게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첫걸음부터 큰일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었다.
‘뭐 저렇게 갈팡질팡을 하는 거지.’
애송이 용병들은 드낙의 속을 답답하게 했다. 드낙은 도노의 털을 고르게 해주면서 나무 빗으로 빗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도노가 꿈실 꿈실거렸다. 기분이 좋았다.
“벌써 고르셨습니까?”
〈수염 도렌〉이 한 장을 쥐고 자리에 앉았다. 드낙은 잡담을 떠들며 다른 이들을 기다렸다. 도렌은 자신이 쥐고 온 의뢰를 말하고 싶었지만 용병대장이 막았다. 모두가 오면 공평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럼 먼저 온 순서대로 도렌, 베드리, 이스핀의 순서대로 의뢰를 볼게요.”
반대는 없었다. 드낙이 턱짓을 하자 도렌이 말했다.
“제가 들고 온 것은 〈삼거리 언덕길의 치안 확보〉입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서 경쟁할 용병단도 없습니다. 간다면 바로 배치받아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그리고 헛걸음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일당은 하루에 동화 50닢입니다.”
“두당?”
“아, 아니요. 용병단 전체에게 주는 겁니다.”
‘5만원? 미쳤나.’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신에 식량은 제공한다고 합니다.”
“퍽이나. 제대로 된 것을 안 줄게 뻔하군. 영주께서 주신 식량은 빼돌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했을게 뻔해.”
〈석궁사수 베드리〉가 비웃음을 날렸다. 오삼 때도 그렇고 매사가 부정적인 놈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드낙도 동의하는 바였다.
“중요한 것은 4명이서 동화 50닢을 나눈다면 하루에 고작 10닢도 안 됩니다. 1달을 해도 300닢. 3달을 해도 은화 1닢이 안 됩니다.”
먹고 살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일 것이다. 드낙의 말에 〈수염 도렌〉이 이마를 긁었다.
“아쉽지만 보수가 너무 적습니다. 물론 경험 삼아서 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런 일을 했다고 자랑할 수는 없을 겁니다.”
〈수염 도렌〉을 비롯해서 모두가 드낙의 말에 설득되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도렌이 가져온 의뢰서는 나가리였다.
“전 몬스터 토벌로 가져왔습니다.”
〈더듬이 나무그림자〉를 잡는 의뢰였다. 마을 인근에 출몰해서 과일나무가 심어진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흠.”
드낙이 턱을 쓸었다. 어느새 모두가 드낙을 보고 있었다. 무엇도 하지 않았음에도 드낙이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바로 〈수염 도렌〉 덕이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리. 나무가 성성한 곳에서 도렌이 어디로 향할지 눈 감고 알 수 있습니까?”
“아니요.”
“서로 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몬스터를 잡는 것은 힘들 겁니다. 더군다나 이놈은 은신을 잘하는 놈 아닙니까. 순식간일 겁니다.”
드낙은 몬스터에 대해서도 제법 잘 알았다. 락손과의 저녁 식사 덕분이었다. 병사는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었고, 용병이 손을 대지 않는 위험한 곳에 투입되기도 했다. 자연스레 드낙은 다양한 몬스터를 알고 있었다. 〈마브로스 리꼬〉는 병사가 보기 힘든 것이라 락손에게서 듣지 못했지만 〈사냥꾼 게릭〉 덕에 알고 있기도 했고, 잡기도 잡았다.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는 분에게 들어본 적이 있는 놈입니다. 놈은 서식지가 분명치 않아서 어디든지 나타날 수 있죠. 때때로 성채나 도시의 하수구에서 살다가 대로에 튀어 나오기도 한답니다.”
“와우···”
드낙의 정보에 애송이 용병들이 눈을 크게 떴다. 몬스터가 대로에 나타난다니. 끔찍했다. 더 이야기를 원하는 듯했지만 드낙은 다음으로 바로 넘어갔다. 몬스터 정보는 소중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었다.
서로만 아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큰방패 아스핀〉은 도망 노예를 포획하는 것을 가져왔다.
“병사로 키워진 놈이라서 누구나 안 한다는 걸 가져왔습니다. 은화 10닢짜리입니다.”
시작부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의뢰였다. 오직 돈만 본다는 성격을 알 수 있었다.
“〈범죄노예〉들은 웬만하면 도망치지 않는데.”
대우가 좋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대부분 목줄이 묶이기에 평범한 양민보다도 좋은 삶을 살았다.
또한 드낙이 살 수 없고, 살 생각도 하지 않을 만큼 비싸다. 또한 노예들은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잘못하면 큰돈을 잃는 짓이었다. 그리고 병사로 키워진 노예? 맡았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놈인데···”
유일한 것은 몽타주였지만 이런 세상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한다. 대범하게 큰 곳에서 사는 게 아니라면··· 찾는 게 불가능했다.
“누구도 안 하는 의뢰는 안 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1년 내에 찾으면 재수지만, 5년이 지나도 못 찾으면? 1년 동안 뒤져도 못 찾으면 여기서 몇 명이나 손을 떼겠습니까? 몽타주만 기억하는 게 좋겠군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의뢰임을 상기시켰다. 마지막은 드낙의 차례였다.
“〈횃불성채〉에서 제법 먼 곳입니다. 〈세 개의 강가〉에 〈붉은털의 곰〉이 출몰했습니다. 보부상이 제법 당했더군요. 놈을 잡는 의뢰입니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위험하다고 까인 〈석궁사수 베드리〉가 말했다. 드낙이 웃으며 조목조목 자신의 의뢰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