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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8화 (58/1,239)

0058 <-- 세파리아스 불파겐 -->

‘검은 꿈과 관련이 있다.’

검은 연기를 뿜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빼박이었다.

그저 뼈다귀로만 이루어져 있었음에도 언데드는 2m는 될 법했다. 생전에는 더 컸을 것이다. 해골은 고통에 몸서리치며 일어나서 원한에 맺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거치 된 롱소드를 뽑아서 그대로 드낙에게 달려들었다.

롱소드의 검신은 정확히는 볼 수 없었지만 드낙은 손잡이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립의 길이가 30cm는 되어 보인다.’

양손으로 쓰는 것을 감안한 최대의 그립 길이었다. 그립이 길다는 것은 무게가 무겁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롱소드의 장점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롱소드의 장점은 명쾌하다. 〈크기와 길이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 다루기 편한 검〉이다. 다른 양손용 도검과는 다르게 최대 총 길이가 1.3m에 달하면서도 무게는 2kg을 넘지 않는다.

당연히 그립이 길다면 검신도 긴 법이었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1m는 안 될 것이다.

드낙이 첫 간합을 가늠하며 원형 방패를 몸에 바짝 당기며 뒤로 물러났다. 이미 돌진하느라 발을 쓴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의 롱소드가 그대로 원형 방패를 조금 긁고 갔다.

‘1.3m 짜리 롱소드.’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시작이 좋았다.

[너는 누구냐? 왜 나를 깨웠지! 원하는 게 무엇이냐!]

드낙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악다물고 세파리아스의 검을 막아서야 했다. 양손으로 굵직하게 들어와서 원형 방패를 타격하는 롱소드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웃.’

하지만 그것보다도 드낙이 공세를 펼치지 못하게 한 것은 기세였다. 언데드 기사의 기세는 피부를 타고 느껴진다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기세만으로 상대를 억누른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마치 〈카리스마〉를 능력치나 스킬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기회는 온다.’

기세를 통한 맹공(猛攻) 속에서도 드낙은 침착했다. 원형 방패를 앞세워서 롱소드의 긴 길이를 통한 파괴적인 원심력을 방해하며 우-직하게 막아섰다. 기세 때문에 강력한 공격으로 느껴졌지만 실전을 여럿 경험한 드낙은 놈의 약점을 단번에 파악했다.

‘키에 비해서 체중이 가볍다.’

뼈만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진 세파리아스였다. 드낙과는 체중이 크게 차이가 났다. 키와 골격은 그가 우월했지만 체중은 드낙이 높았다. 이 때문에 세파리아스는 페이크를 섞다가도 강력한 내려치기를 자주 했다.

‘그것을 노린다.’

[모두 죽일 것이다! 메디오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지금!’

드낙이 원형 방패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팔꿈치를 굽혔다. 세파리아스의 롱소드가 성대한 헛스윙을 했다.

후우웅!

그 파공성! 그것이 드낙에게 상대가 전심전력으로 체중을 실어서 했다는 것을 믿게 해주었다. 또한 세파리아스의 상체가 굽혀진 것 또한 증거였다. 단번에 드낙이 원형 방패를 쭉 밀면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기이한 공기 소리가 났다.

휘릭.

원형 방패로 제한된 시야 속에서 드낙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비전이다.’

숏소드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자신이 모르는 비전이었기 때문이다. 〈듣기 힘든 바람소리〉를 내며 롱소드가 마치 뱀처럼 휘어져서는 원형 방패를 지나 드낙의 팔을 노렸다.

땅!

기적적으로 그것을 숏소드로 찔러 막아냈다. 드낙의 이마에서 땀이 주륵 흘러내려 눈에 들어갔지만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서둘러 두세 걸음을 물러났다.

[넌···기사로 보이지는 않는데.]

비전을 막아낸 것이 놀라웠던지 세파리아스가 원한에 찬 분노에서 냉정을 되찾았다. 그만큼 〈비전〉을 막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락손과의 대련 경험이 아니었다면 못 막았다.’

“이름이 뭐지?”

비전에 대한 이름이 궁금했다.

[〈엘라스티쉬 제스트렁(Elastisch Zerstorung, 탄력적인 파괴)〉이다. 물론 그 뜻은 너는 모르겠지만.]

드낙이 웃었다. 무식하게 큰 언어 사전을 달달달 외운 것이 그였다. 그것은 지금에는 사용하지 않는 기사들의 비전명에 사용되는 고어(古語) 또한 있었다.

“탄력적인 파괴? 방패를 파괴하지 않고, 쏘아지면서 이름이 생뚱맞은데."

[···!]

그렇게 말하면서도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시야가 가로막았지만 뛰어난 상상력으로 다양한 비전의 어레인지를 만들었던 그였기에 무슨 비전인지 전후 상황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미친 비전이군.’

욕부터 나왔다.

아래를 내려친 것은 페이크였다. 〈전심전력(全心全力)〉.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서 내려쳤음에도 그것이 헛수(虛數)라는 것이 무서운 점이었다. 그 말은 곧, 언제든지 전력으로 내려쳐도 상대를 역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진짜 공격과 페이크 공격의 경계선에 선 것이나 다름없는 비전이 바로 엘라스티쉬 제스트렁이었다.

‘내려치고 그다음에는 올렸겠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기사의 테크니션〉. 기술이었다. 오랫동안 수행해야 하는 비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알아도 드낙은 사용할 수 없었다.

기술적으로 어렵기도 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롱소드의 탄력〉을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탄력은 곧 탄성이었다. 부서지지 않는 특징이다. 심하면 구부러지고, 적다면 쉽게 부서질 것이다. 강철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힘이었지만 〈무기의 특징〉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드낙이 사용할 수 없었다.

‘저 롱소드···’

단단하면서도 강력한 탄성을 지닌 모순적인 롱소드여만 가능한 것이었다. 칼의 날 밑에 양 끝으로 뻗어있는 가드에 멋지게 문양이 있는 것을 보니 보통 검이 아니었다.

〈구부러질 정도의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하면서 강하게 부딪쳐도 구부러지지 않는 모순된 검이었다.

‘마법검인가?’

그런 검이었기에 가능한 비전이었다. 뱀처럼 휜다는 것은 무르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 롱소드는 원형 방패와 부딪쳐도 멀쩡했다. 모순되었기에 드낙은 불편함마저 가져야 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드낙은 죽기 싫었기에 제법 간을 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캉!

숏소드가 중단과 하단을 오고 가며 손목을 꾸준히 노렸다. 롱소드가 어지럽게 움직였다. 드낙의 숏소드는 정확하게 수를 노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확률론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견제였다.

때때로 부딪칠 때면 원형 방패와 함께 드낙이 거칠게 어디든지 한 번은 실드 차지를 먹였다.

“으르르! 크헝! 헝!”

늑대 도노는 후방과 좌우를 오고 가며 짖어대었다. 결코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다. 드낙은 도노를 애지중지했고, 늑대의 치악력을 맹신하고 있었다. 필살의 한 방을 원했다. 그런 수련까지 거친 도노는 인간 사냥을 하는데 적어도 드낙의 목을 반반의 확률로 물 정도로 숙련도를 지니게 되었다.

‘무조건 들어간다.’

방패를 통해서 안전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에 숏소드는 자연히 중하단에 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들어 올려고 하는 드낙은 빈틈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롱소드와 숏소드의 리치 차이는 물론이고, 세파리아스의 높은 키 때문이었다.

세파리아스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후아아아압!]

거친 기합이 토해졌다. 세파리아스는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내려치기는 아니었다. 찌르기였다.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고, 마치 삼각형을 이루듯이 팔과 롱소드가 ∧형태가 되어있었다.

팔은 상단으로 롱소드는 강하게 아래로 찌르는 형세였다. 원형 방패로 올려 막는다면 멍청이였다. 팔만 막고 롱소드는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급한 상황이었기에 직관적인 판단은 원형 방패를 자연히 올리는 것이었다.

‘어딜.’

〈블록키렌 쥬크팡(Blockieren Zuruckfang, 막아내며, 되돌려잡기)〉.

드낙의 비전이 순식간에 발휘되었다. 방패가 찔러지는 롱소드와 함께 움직이며 롱소드를 조금이라도 밀어냈다. 동시에 드낙의 피부에 들러붙은 갑옷처럼 롱소드보다 먼저 도달했다. 드낙의 몸 쪽에 있는 방패였기 때문이다.

안과 밖의 차이로 롱소드가 뒤늦게 갑옷 역할을 하는 방패를 찔렀다. 드낙이 상체를 숙였다. 동시에 원형 방패를 쥔 팔에 힘을 주었다. 롱소드에게 타격을 받았기에 이렇게 힘을 보태야지 앞으로 갈 수 있었다.

방패가 앞으로 향하면서 떼어져 나와서 세파리아스의 롱소드를 옆으로 강하게 밀었다. 회수하려고 했지만 방패는 껌딱지처럼 붙었다.

놀라운 기술이었다.

‘마지막이다!’

드낙이 거칠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방패가 롱소드를 밖으로 밀고 있었기에 세파리어스는 당연히 무방비 상태였다. 숏소드가 휘둘러졌다.

[하!]

세파리아스가 기합을 지르더니 그대로 발을 놀렸다. 상체를 롱소드 쪽으로 기울였다. 뒤쪽의 발 또한 롱소드 쪽으로 향했다. 그것은 드낙의 검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방패를 쥔 손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드낙의 숏소드의 거리를 피할 수 있었다.

까득!

갈비뼈의 일부가 숏소드에 얻어맞았지만 그것뿐이었다. 롱소드를 다시 회수한 세파리아스가 정신파동을 보냈다.

[〈악키르 롤레온(Akkir RollLeon)〉의 자손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드낙은 솔직하게 말했다. 락손에게서 호되게 거짓말로 통수를 맞은 상태였기에 거짓말에 대한 혐오마저 걸려있는 상태였다.

“웬 은퇴 병사에게서 배웠습니다.”

[흥.]

기가 차지 않는다는 투로 소리를 냈다.

한 손으로 롱소드를 붕붕 두 번 원을 그리고 다시 양손으로 고쳐잡는 세파리어스가 재차 달려들었다. 늑대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한 주먹 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드낙은 생각했다.

경험이 풍부한 기사였다. 야수를 상대해봤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기회가 된다면 드낙보다 늑대를 먼저 죽일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드낙을 죽이는 것보다 도노를 죽이는 것이 확실하게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파리어스가 롱소드를 추켜올렸다. 척 보아도 자신의 키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드낙에게는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흥분으로 가득했다. 끝장을 보고 싶었다.

‘체중이 적다는 것을 이용할 수 있는 비전···’

〈세드릭 제라드(Cedric Gerald)〉의 비전이 가지는 경쾌한 발놀림. 그것을 어레인지 한 것을 사용할 생각을 가졌다.

〈위엔 피에드(Wie ein Pferd, 가벼운 말처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비전은 사족보행하는 말의 발놀림을 두 개의 발로 따라 하는 비전이었다. 그것은 앞뒤로 내달리는 말과는 반대로 좌우로 움직이는 방향성을 지녔다.

강하게 좌우로 움직이기 때문에 하체의 힘이 대단히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균형을 잃고, 다리가 쭉 찢어지거나 형편없이 넘어지고 만다. 산을 타고 다닌 드낙은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폭발적인 허벅지의 힘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비전은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것의 어레인지를 쓸 생각이었다. 본래 위엔 피에드는 레이피어 같은 찌르기에 몰빵한 무기에 어울리는 비전이었다.

원형 방패와 숏소드를 사용하고 있는 드낙이 사용하기에는 효과가 좋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락손에게서 비전을 가르침 받을 때부터 생각한 것이었고, 꽤나 오래전부터 〈열두가지의 비전〉을 어레인지 하는데 공을 들인 것이 드낙이었다.

‘〈스트룸 라우치(Sturm rausch, 폭풍 돌진)〉.’

간단명료한 이름답게 원형 방패의 무식한 방어력을 이용하는 비전이었다.

“후우.”

드낙이 마음을 새롭게 잡으려는 듯이 심호흡을 했다. 세파리아스도 싸움을 길게 가지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갈비뼈 한 대가 조금 부러진 것에 불과했지만 체중이 적은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큰 손실로 다가왔다.

체중이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균형이 미묘하게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부딪친다면 허물어지는 것은 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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