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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7화 (57/1,239)

0057 <-- 횃불 성채 -->

드낙은 말짱하게 아침 일찍 일어났다. 확실히 젊음이 좋았다. 메르인의 집에서 일어나서, 할 일을 하고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장비를 챙겼다.

“어디 가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려고요."

메르인의 물음에 드낙이 즉답했다. 그녀는 드낙에게 돈 갚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자신의 눈을 믿었다. 보통은 안 빌려주겠지만 드낙의 행실을 믿었다.

‘나를 의심할 수 있어.’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드낙은 융과 메르인을 의심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사과가 5개에 동화 1닢! 지금 빨리 사시오!”

“쭈글쭈글한데···”

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 메르인은 딱히 드낙에게 나가라고 눈치를 주지 않았고, 융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이 스스로 부담을 느껴서 나가지 않는다면 애초에 빈집일 때가 많고, 방도 충분히 있는 메르인의 집에서 살아도 될 것이다.

문제가 생긴다면 메르인이 즉각적으로 말할 것이다. 속으로 끙끙 앓는 성격도 아니었다.

‘되려 있어주면 좋겠지.’

은화 1닢을 빌린 드낙이었다. 큰돈이었기에 메르인이 그렇게 빌려준 저의를 몰랐다. 실상은 드낙의 평소 행실 덕분이었지만, 드낙은 자신이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다.

“제대로 된 놈이 없군.”

〈해변 항구〉출신의 덩치는 말만 그렇게 하고 다음날이 되어도 메르인의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융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 만난 용병들을 양피지에 적거나 그리면서 기억나는 특징을 적고 있었다.

메르인 또한 함께 다녔기에 그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융과 메르인은 새로 용병단을 꾸리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저녁에 자기 전에 말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드낙은 일찌감치 자신의 방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두 사람의 작성은 계속되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평가를 정리했다. 순위를 나누었다. 드낙은 융이 첫인상으로 용병을 영입한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치밀했고, 안목이 뛰어났다.

“당분간은 찢어져서 동료가 될 용병을 찾아보자고.”

마음에 드는 용병이 없자 융이 정보를 얻기 위해 효율성을 높였다. 메르인은 반대하지 않았다.

“알겠어.”

드낙은 문틈을 살짝 열어놓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침대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다들 바쁘게 지내고 있군.’

마지막 의심마저 사라졌음에도 드낙은 신중하게 하루를 더 보냈다. 용병들을 영입하는 시간에 투자했다.

“뭐? 용병대장? 네가 내 대장이 된다고? 입 조심해. 경험도 많이 없어 보이는 놈이. 퉤!"

“미친 새끼. 〈깊은 숲의 드낙〉? 들어 본 적 없다. 비켜!”

대부분이 바닥에 침을 뱉거나 드낙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드낙의 첫인상은 결코 노련한 용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홀로 의뢰를 수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융의 극진한 말에 드낙도 극진하게 말했다. 융은 평범한 용병처럼 보였지만 오늘 하루 용병들을 만나 본 드낙은 그것조차도 재수정해야 했다. 〈간합의 융〉만큼 침착하고 냉철한 용병은 없었다. 거친 용병들은 마초이즘에 빠진 상남자들이었다.

드낙에게는 머리에 똥만 들어있는 남자들로 보일 뿐이었다.

“용병단을 꾸려보려고 했는데, 모두 제가 경험이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융이 이해한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냈다.

“크크크. 그거야 그렇죠. 언제든지 말하세요. 제 용병단은 열려있습니다.”

드낙의 실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융이 말했다. 그의 고민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융은 자신을 대접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드낙이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늑대 도노는 침대 위로 올라와서 다리 옆에 자리 잡았다. 까마귀 카이야는 도노의 몸 위에 있었다. 까마귀가 아주 상전이었다.

‘현상금 사냥꾼도 나쁘지 않지.’

특히나 드낙의 〈검은 꿈〉을 생각한다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 다음 날에 드낙은 어김없이 비슷한 시간에 출발했다. 이번에 그가 향한 곳은 〈강철 대장간〉의 대장장이 아이언에게였다.

“철만 취급하냐고? 가죽도 취급해. 하지만 그리 좋게는 못 쳐줘. 본업이 아니거든.”

다양한 것을 물었다. 드낙은 화살을 다섯 발 구매하고, 동화를 10닢 건네주었다. 확실히 가격이 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은 15닢~25닢이었다.

“언제든지 오라고.”

화살을 과잉 보급한 드낙은 성문을 바로 나서지 않았다. 〈만물 잡화점〉의 〈잡화상 소레〉를 찾아가서 튼튼한 밧줄을 5m짜리로 구매했다. 동화 3닢에 불과했다. 3천 원짜리 밧줄인 셈이다.

“밧줄치고는 짧아서 아무도 안 가져가려고 했거든. 싸게 가져가. 대신에 자주 찾아와줘.”

“네. 감사합니다.”

아무리 적어도 8m 이상을 구매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불로 끝을 조정하고, 자투리 가죽까지 써서 양쪽 끝을 마감했기 때문에 더 건드리는 것은 손해라고 보았다.

드낙은 밧줄까지 챙겨서 성문 밖으로 향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횃불 성채의 인근에 있는 〈조용한 산〉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약초꾼들이나 찾는 곳이었다. 그마저도 너무 자주 가서 가는 이들이 적었다. 약초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산에 〈락손의 유산〉이 있었다. 그의 비전서에 그려진 지도. 드낙은 그곳으로 향했다.

초입을 지나고, 중턱에 올라서 길을 크게 벗어났다. 어느새 드낙의 손에는 길쭉한 나뭇가지가 대거에 손질되어 손에 잡혀있었다.

촤라락!

거칠게 수풀을 헤쳤다.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밑으로 내려갔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뒷걸음질 치며 발자국을 지웠다. 다시 올라간 드낙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도는 형편없었다.

‘척도가 병신이라서 하나하나 다 뒤져야 하네. 이쯤이 확실한데.’

오르고 내려가고를 반복해야 했다.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고, 드낙은 더욱 힘을 내서 곳곳을 누볐다. 험한 산길이라도 깊은 숲에서 논 드낙을 막지는 못했다. 무식하게 인근을 뒤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여기군.’

생각했던 것보다 300걸음 멀리 떨어진 곳에 비밀통로가 있었다. 시각적으로 사각에 있어서 내려가야지만 볼 수 있는 곳이었고, 그것은 분명 〈설계된 노림수〉였다.

‘함정이 있을 수 있지.’

드낙이 횃불을 들고 조금씩 길쭉한 나뭇가지로 곳곳을 두드리며 앞으로 진행했다. 통로는 매우 길었다. 직선형이었으며 뚫는데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보였다.

벽화를 본 드낙의 표정이 변했다.

‘이건···락손이 가르쳐준 비전이잖아.’

그의 손이 벽화를 더듬었다. 방패를 갑옷처럼 대체해서 사용하는 비전의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블록키렌 쥬크팡(Blockieren Zuruckfang, 막아내며, 되돌려잡기)〉.’

그 밑에는 글이 써져 있었다.

[〈악키르 롤레온(Akkir RollLeon)〉이 모함당한 친구를 기리며 기사의 묘를 만드는데 힘을 보탠다.]

‘이런 씨.’

병사 시절 락손에 〈덩쿨 나무숲〉에서 기사를 구해주고 받은 비전의 배경이 한순간에 거짓말로 변했다.

드낙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락손 스스로가 비전에 대한 배경을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단번에 적으로 찍힌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드낙은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거짓말임이 탄로 났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거짓말 때문에 락손이 죽음 직전에 자신의 비전서를 챙기라고 말한 것을 깨달았다.

‘······’

“휴우.”

한숨을 쉬며 드낙은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메롱 홀그린(Merung HallGreen)〉이 모함당한 붕우를 기리며 기사의 묘를 만드는데 힘을 보탠다.]

12가지 비전이 모두 이 직선로 통로에 그려져 있었다. 락손의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검은 산골 마을〉로 은퇴를 결정한 것 또한 도망일 수 있음을 알았다.

‘빌어먹을 늙은이. 마지막에 기사를 키우는 기분을 느꼈겠지.’

통로의 끝에서 욕을 하던 드낙은 가로막힌 문양이 가득한 벽이 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착 달라붙어있는 문고리를 손으로 바로 잡지는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나뭇가지로 툭툭 쳐보고, 문을 찬찬히 보았다.

문양 속에 글자가 적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드낙은 손으로 더듬으면서 글자를 읽어나갔다. 멋을 위해서 혹은 은폐를 위해서 날림으로 새겨져 있었고, 양각(陽刻)으로 새겨지다가도 갑자기 음각(陰刻)으로 새겨져서 놓치기도 했다.

[모함으로 멸문당한 불파겐 가문의 가주(家主),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아. 원한을 갖지 말고 묻혀서 모든 것을 묻어라. 너를 지켜주지 못한 12명의 친우가 너를 위해 세운 묘다. 사형장에서 잘린 그 목. 그것을 봉해 들고 가며 수십 번을 멈추며 눈물을 흘린 〈귀신방패 악키르 롤레온〉을 기억해다오.]

[불파겐, 불쌍한 내 친구. 너를 위해 검 하나 들지 못한 나를 용서해라.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을 위해서 매일 밤 술을 기울이겠노라.]

[타지에서 친우의 반란 소식을 듣고 불명예를 어깨에 짊어진 채 달려왔지만 너는 도망치지도 않고 그렇게 빨리 가버렸구나. 간악한 혀를 놀렸던 놈을 반드시 죽이겠다. 〈릭 쟝(Rick Jean)〉의 이름을 걸고.]

[너의 가족은 반드시 책임지겠다. 폐하께 모두가 간청한다면 가족만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너의 딸 세리안이라도 지키겠다.]

문양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글씨였다. 드낙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것을 모두 해독하는데 시간을 썼다. 그곳에는 이 〈기사의 묘〉를 만들었던 12명의 친구들의 편지나 다름없었다.

복수를 다짐하거나, 원한을 떨쳐내라고 말하거나, 미련을 가지거나. 가족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려는 등의 모두 제각각의 말들이 쓰여있었다.

드낙은 손으로 문고리를 끄집어내서 당겼다.

그르르드드드.

돌과 마찰하며 소리를 냈다. 통로였기에 그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부는 원형의 방이었다. 그곳에는 관이 하나 있었고, 앞의 바닥에는 또 무언가가 쓰여 있었다. 바로 앞 벽에는 롱소드 하나가 거치 되어 있었는데, 횃불 빛에 날카롭게 칼날이 반짝였다.

먼지로 가득한 곳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롱소드의 모습은 기괴함을 주었다.

“후! 후!”

드낙이 입김을 불며 바닥의 글부터 확인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

메디오 지방의 북쪽의 명문가의 128대 가주이며 오천 년의 역사를 지닌 가문은 오늘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향한다.

모든 것이 잊히겠지만 메디오 지방의 기사 가문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하리라.]

문단이 띄워지고 12명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제법 공을 들였군. 황금이라도 있나.’

드낙은 거침없었다. 무령왕의 왕릉조차도 관광으로 돈을 버는 현대인이었다. 묘지에 대한 윤리관을 지킬 리가 없었다. 무덤은 곧 돈이었다. 이곳의 도굴꾼보다 더욱 잔혹한 것이 자본주의 사상이었다.

관을 그대로 열었다.

먼지가 조금 올라왔다. 앙상하지만 골격이 아주 제대로 무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해골이 보였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장신구가 제법 있었다. 관의 틈을 막기 위해 있는 다양한 물건들 또한 제법 값이 나가는 것들뿐이었다.

‘금반지는 하나뿐이네.’

다른 것은 대부분 은으로 된 장신구였다. 그것만 해도 30닢의 값어치는 될 것 같았다. 정신없이 드낙이 가죽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손이 해골의 뼈와 접촉했다.

“아!”

드낙이 짜릿한 느낌에 소리를 질렀다. 검은 연기가 그를 덮쳤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뒤로 크게 넘어진 드낙이 혼비백산하며 벌떡 일어났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땀은 이것이 현실임을 말해주었다.

“컹컹컹!”

늑대 도노가 크게 짖었다. 까마귀 카이야는 밖에 있었다. 관에서는 계속해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왔다.

기괴한 현상 속에서 드낙은 원형 방패를 고쳐들고, 숏소드를 뽑았다. 연기 속에서 타오르는 회색의 선명환 불똥 두 개가 타올랐다.

[크아아아아아악!!!!! 내 모든 것! 내 명예! 나의, 나의 딸!]

헤져있는 고급진 기사복을 입은 해골이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아래턱을 끝까지 내린채 절규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더니 거칠게 뒤에 벽에 거치된 롱소드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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