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5 <-- 횃불 성채 -->
가장 먼저 간 곳은 일찍 문을 여는 것이 당연한 대장간이었다. 길쭉한 형태의 집이었는데, 횃불 성채에서도 제법 외곽이었다. 벽이 없지만 지붕만 있는 대장간 그리고 그 옆에는 무기가 진열된 상점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 있었다.
서로 벽 하나를 두고 함께 있었다.
‘저걸 무슨 구조라고 하더라.’
“아이언!”
융의 외침에 화덕의 불씨를 키우던 〈대장장이 아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제법 나이가 찬 얼굴이었다. 드낙의 눈에는 40대로 보였다.
“이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군. 용케도 죽지 않았어.”
〈강철 대장간〉은 용병들이 자주 찾는 대장간이다. 다른 곳에 비해서 값이 싸기 때문이다. 무기의 질은 평균 수준이었지만 결국 돈이 싼 곳이 최고인 것이 용병들이었다.
“이쪽은 드낙이라고 이번에 알게 된 용병이지.”
“앳되어 보이는데. 〈애송이〉가 아니고?”
“사냥꾼이야. 〈깊은숲의 사냥꾼〉이라고 불리더군. 곰도 잡아.”
융의 설명에 아이언이 살짝 감탄했다. 그것은 드낙의 나이를 듣고 더 커졌다.
“15살이 곰을 잡아? 허!”
융의 말이었기에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이번에 용병이 되기로 했거든. 그래서 내가 다니는 곳을 알려주는 중이지.”
“잘 왔네. 다시 한 번 소개하지. 나는 강철 대장간의 아이언이다.”
자존심 높은 대장장이답게 처음부터 말을 놓았다. 드낙은 고민 없이 존대를 해주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 좋은 물건은 없어. 하지만 실망할 물건도 없는 것이 여기지. 값도 싸고.”
“이 주변에 있는 용병들은 대부분 여기를 옵니다.”
무기들을 확인했다. 당연히 방어구들도 있었다. 그냥 평범했다. 단출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가격. 그것 하나는 혹했다.
“이게 동화 50닢이라고요?”
멀쩡한 메이스가 은화 1닢을 넘지 않았다. 제법 철이 들어간 것이라도 은화 3닢을 넘지 않았다. 확실히 용병들이 자주 올 만했다.
“왜 이렇게 쌉니까?”
드낙이 직접적으로 묻자 아이언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 그야··· 비밀이지.”
드낙과 처음 만났는데 이야기해 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드낙은 앳되어 보이는 얼굴로 〈남자들의 이야기〉에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어리숙하기 때문이다. 멍청해 보이는 얼굴도 남자들이 함께는 해도 깊이 있게 함께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진지한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번 써봐도 됩니까?”
“아무렴. 부서지지만 않는다면야.”
그 말에 드낙은 무기를 쥔 손을 놓았다. 서로 빙긋 웃었다. 다시 잡은 드낙이 메이스와 메이스를 부딪쳤다.
깡!
단단함의 정도 그리고 탄성의 정도도 괜찮은 듯했다. 자주자주 무기를 확인해서 내구력을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싼 가격〉이었지만 이 정도면 만족할 만했다.
뭘 사지는 않았다. 대장간에서 벗어난 융이 말했다. 그는 드낙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생각이었고, 실제로 비밀까지도 이야기해주었다. 그간 함께하며 드낙이 결코 〈애송이〉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물〉입니다. 나쁜 의미로든 좋은 의미로든 용병들에게 장물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아이언은 그것을 받아서 다시 녹여 무기와 방어구를 만듭니다.”
“아하. 그래서···”
철괴를 살 필요가 없으니 싸게 팔아도 마진이 남는 것이었다. 용병은 철로 된 장물을 아이언에게 팔 수 있어서 좋았고, 아이언은 그것을 녹여서 새제품으로 만드니 싸게 팔 수 있었다. 서로 공생 관계인 셈이었다.
그것이 〈나쁜 장물〉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드낙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가격이 싸다는 탐욕은 그의 양심을 꺼뜨렸다. 결국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한 양심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마치 운전하다 보이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숫자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고를 당해서 죽기 전까지 그 숫자가 지닌 공포감을 체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드낙이 장물에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은 이유는 피해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횃불 성채〉 중심지에 있는 골목길 끝에 있는 〈만물 잡화점〉이었다. 그곳은 여주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널브러진 시장 바닥 같네.’
온갖 물건이 난잡하게 책상 위에 쌓아올려져 있었다. 책상의 밑에도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뭐 찾는 거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문소리가 들려도 얼굴 하나 들지 않은 채 수공예로 옷을 만들던 〈잡화상 소레〉가 입을 열었다.
“하루라도 쉴 틈이 없이 일하시네요.”
융의 말에 소레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푸근하게 웃었다.
“이게 누구야. 용병대장 융 아니야. 오늘도 뭐 사러 왔어?”
융은 이곳에서 제법 돈을 쓴 듯했다.
“아니요. 저 같은 큰손은 한 번에 확 구매하지, 자주 사지는 않아요.”
“그래? 아쉽네.”
융은 드낙을 소개해주었다.
“찾는 게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오세요. 며칠이 걸리긴 하지만 없는 게 없어요.”
온갖 것을 구매 가능하다는 점에서 용병들에게 친숙한 곳이 바로 〈만물 잡화점〉이었다. 의뢰에 쫓겨 다니는 용병들은 소레를 통해서 물건을 구매했다. 마치 이 세상의 택배회사 같은 곳이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용병 일을 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는 일이 생기고, 도시나 마을에 오래 있지 못해서 물건을 구매할 때 웃돈을 주기도 하죠.”
가격은 시세보다 동화 몇 닢 높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오는 이유는 상술 때문이었다.
상인들만큼 용병들의 생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구매하기 힘든 것을 용병이 구하려고 하면 단번에 가격을 올렸다. 용병단에 소속된 것이 용병들이었기에 시간에 쫓기는 것은 그들이었고, 상인이 아니었다.
그 피난처가 바로 〈만물 잡화점〉이었다.
“아는 용병은 많지 않아. 보다시피 여주인 혼자서 운영하는 곳이거든.”
“아들이 조금 도와주긴 하지만 여기는 왜 이렇게 어려 보여?”
드낙에게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과 나이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한탄했다.
“드낙만큼 우리 아들도 빨리 돈을 벌었으면 좋겠는데. 요즘 힘들어.”
마치 아들에게 돈을 빌려준 듯한 뉘앙스였다. 드낙은 대답만 짧게 했다.
〈잡화상 소레〉는 그렇게 제법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융은 뭔가를 구매하지 않았다. 드낙은 그것도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없었기에 내일 물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혹은 헤어질 때 묻거나.
“저곳은···”
드낙이 손가락으로 중심가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뭔가 인공적으로 하얀 건물이었다.
“〈빛의 신전〉이야. 상처를 입었을 때 가는 곳이지.”
〈정보꾼 메르인〉이 말했다. 드낙이 융을 쳐다보았다. 융은 그 눈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딴소리를 했다.
“언제든지 가도 됩니다. 동이 트지 않아도, 달이 중천에 있어도 상관없죠.”
“뭐··· 돈은 안 듭니까?”
드낙이 결국 직접적으로 말했다. 두 사람은 드낙의 말에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신을 믿는 이들은 돈을 손에 쥐는 것을 〈금기(禁忌)〉로 여깁니다. 탐욕을 부리는 사제가 있다면 신성력을 곧바로 잃게 될 겁니다.”
“그럼 저 큰 건물은 어떻게 운용됩니까?”
“은혜를 받은 이들 중에서 여유로운 이들에 의해서 운영됩니다. 대부분 귀족이나 부상(富商)들이죠. 물론 치료받고 조금이라도 헌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단, 돈은 안 받으니 현물을 가져가야 합니다.”
드낙은 감탄을 했다. 하지만 이내 납득하게 되었다. 〈신(神)〉의 힘을 사용하는 인간이 돈을 탐낸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모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산골 마을에 사이비 사제라도 방문했나 보지?”
“아··· 예. 저도 당황스럽네요.”
어리숙하게 말하자 산골 마을 출신다운 모습이라 자연스러웠다.
“특히 〈리라엔 사제〉를 뵙고 싶다고 해. 용병들의 평판에서 가장 치료술이 뛰어난 사제님이야.”
메르인이 정보를 건네주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는 판타지 소설과 이 세상은 조금 맞지 않는게 조금 있었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여기는 소설이 아니야.’
〈마법사의 연구소〉라 불리는 곳도 외관만 볼 수 있었다. 위치만 알려주는 이유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안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마법 아티팩트가 있지만 〈기사〉들이 사용할 정도는 없다고 했다.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소리였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돌다리의 휴식처〉라 불리는 음식점이었다. 제법 흉흉한 덩치들이 손님으로 있는 곳이었다. 종업원은 생활력이 넘칠 것 같은 아주머니였다. 머리가 꼿꼿이 위로 올라가 있었으며 덩치가 제법 컸다.
“어서 오세요!”
여자치고는 걸쭉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몇 명?”
대뜸 반말을 하기도 했다.
“세 명이요.”
융은 말하면서 그대로 2층으로 향했다. 2층은 곳곳이 비어있었다. 메뉴를 주문하는 것도 없었다. 그냥 음식과 술이 나왔다.
"매일 가장 싼 식재료로 꾸려지지. 그래도 구성은 알차.”
메르인이 과일을 하나 집었다. 물에 담가놓은 것이 보이게 과일에는 물방울이 묻어있었다.
“싼 음식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하나 알고 있으면 편합니다.”
융이 말하면서 고기를 썰었다. 드낙은 이곳에서 싼 음식점을 하나 알았다. 메뉴는 변경 불가능했지만 그런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구성이 좋았다. 싱싱한 과일 or 채소 그리고 고기는 반드시 있다고 한다.
생선은 절인 생선이 대부분이었다. 소금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식량에 큰 변화를 주었다. 특히 물고기와의 궁합은 인류의 식문화는 물론이고 발전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다.
절인 생선이 없을 때가 없다고 한다.
“때때로 상어 고기를 절인 것도 나옵니다.”
“그건··· 한번 먹고 싶네요.”
드낙은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과일 즙을 절인 생선에 뿌려야 했지만 나쁘지 않은 점심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용병패를 받고, 의뢰를 할 생각입니까?”
“아뇨. 보부상들이랑 함께 다시 산골 마을로 가야겠죠.”
“여기까지 와놓고요?”
융의 물음에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전 준비가 안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에 융이 포크를 쥔 채 손을 저었다.
“무슨 소리를. 그 정도면 용병 중에서도 특출납니다. 오크 전사를 묶어두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용병이 수두룩합니다. 어디를 가서든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절 띄워주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드낙의 말에 융이 웃었다.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이렇게 된 것도 인연 아닙니까. 함께 〈머리통 용병단〉에서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해보시는 게.”
‘이걸 노리고 날 위해서 발을 움직였군.’
드낙은 그제서야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융이 이곳저곳 다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머리통 용병단〉.
‘실력은 좋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용병단이 아니다.’
용병단의 주인은 〈간합의 융〉이었다.
제법 뛰어난 용병단이다. 하지만 그곳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의 용병단이 아니었고, 융의 용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드낙이 원하지 않는 일을 상황에 따라서 강제될 수 있었다.
‘성향도 맞지 않아.’
동료를 버리고 가는 것? 이해한다. 귀신 잡는 해병대라도 총을 난사하는 후임을 앞에 두고 빤스만 입고 도망친다. 드낙 또한 도망을 쳤기에 남 말 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최고의 전술이 바로 도망이었다.
상대가 강하면 도망친다. 그것보다 더 좋은 전술은 없었다.
드낙이 용병단의 성향 중에서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대인의 감성. 아직 지워지지 않은 희미하다가도 상황에 직면하거나 감정에 따라서 불쑥 튀어나오는 녀석. 거기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박호훈의 진정한 죽음〉을 의미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함께해도 맨날 싸우겠지.’
지금이야 서로 대우해주지만 정작 상황마다 드낙과 융은 부딪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악화될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융은 용병대장이었고, 드낙은 굴러들어온 녀석이기 때문이다.
‘내가 용병대장이어야 한다.’
“제의는 고맙습니다. 적어도 제가 제법 뛰어난 용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융은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거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쉬움이 남은 융은 술을 한 병 더 시켰다.
“이다음에는 어디로 갈 겁니까?”
드낙의 말에 융이 손으로 동전을 그렸다.
“〈고르곤 상회〉로 갈 겁니다. 그곳에 연줄이 닿아있습니다.”
‘곰가죽.’
드낙이 흥미진진해졌다. 제법 큰 거래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기대한 것만큼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드낙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