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 <-- 횃불 성채 -->
드낙의 일행은 사람이 늘었다. 여자 1명에 남자 2명이라서 그런지 어중이떠중이들이 시비를 자주 걸었기 때문이다. 〈영주문장〉을 가지고 있는 현상금 사냥꾼인 〈머리통 용병단〉의 용병대장 융은 그들을 모두 체포했다.
길에서 시비를 거는 것들은 대부분이 도적들이었다. 드낙을 이길 수 있는 도적은 없었다. 원형 방패만 들이밀어도 뒤로 밀려 넘어지는 형편없는 놈들이었다. 말 그대로 〈싸울 줄 모르는〉 것들이 재물을 탐한 것이다.
메르인의 미모도 한몫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용병으로 살기 위해서 단련이 된 몸은 매력적이었다.
“케르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상당한데.”
융은 혀를 찼다. 인원이 적으니 파리들이 꼬였다.
“살려주십시오! 절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성자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눈탱이가 동태라서 몰라뵀습니다!”
“흑흑.”
늑대를 보고도 겁을 내지 않는 이 간덩이가 부은 4명의 도적들은 손이 닳도록 빌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드낙은 이 싸움에서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오크와의 싸움, 케르욘과 쎈의 죽음 이후로 손속이 조금 누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값진 경험을 했기에 사람이 순간적으로 유해진 것이었다. 〈동생 아만투스〉에 비하면 적의 전력을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하는 이런 하급 도적들은 드낙에게 불쌍한 존재로 여겨졌다.
‘쯧쯧.’
강자가 가지는 오만함이 마음속에 조금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산버섯 마을〉의 추적을 피해서 평온을 되찾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4명의 도적들은 능숙하게 포승이 되었다. 팔을 단단히 묶고 그다음에는 목을 묶는다. 목으로 묶고 난 다음에 다음 사람의 목으로 그다음에는 팔, 다시 목으로 반복하는 포승법이었다.
목을 돌리는 것이 버겁기 때문에 사각이 많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가장 유효하고 쓸모 있는 포승법이기도 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목을 묶기 때문에 급하게 뛰면 호흡 곤란이 오기도 했다.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신경 써주는 이는 드낙이 유일했다. 작은 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죄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정을 봐준 것이다.
“그렇게 이놈 저놈 사정 다 봐주면 안 된다고. 언제 통수를 칠지 모른다니까.”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 둬요?”
메르인은 드낙과 어느새 친해져서 서로 반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과호흡 증상을 보이는 도적을 놔두기에는 박호훈의 삶에서 32년 넘게 쌓인 윤리관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2016년 세계 치안 1위를 기록했던 한국이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인 박호훈의 윤리관과 도덕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양심이 가슴을 쿡하고 찌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목 대신에 팔을 뒤로해서 더욱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답답해하는 것을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적인 듯했다.
융은 그것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드낙을 가장 뒤로 배치시켰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행동으로 도적들에 대한 빈틈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했다.
2일을 더 가서 〈횃불 성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여전히 성벽에 거대한 횃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와.”
그것을 본 드낙이 감탄했다. 판타지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효율성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첨탑과도 비견되는 큰 횃불이 대낮에 타오르고 있었다. 보통 정신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시나 봅니다.”
융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거대한 횃불은 대체 뭐죠?”
“〈엔토르챠(Antorcha, 모순의 횃불)〉라고 불리는 마법의 횃불입니다. 몬스터를 부르고, 태워 죽이는 물건이죠. 아주 대단할 것 같지만 그리 강력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성채가 있는 이유는 엔토르챠가 지닌 힘이 대단하지 못하다는 뜻이죠.”
융은 엔토르챠라고 불리는 거대한 마법 건축물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드낙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간합의 융〉은 베테랑 용병이었고, 용병단을 이끄는 용병대장이었다.
그의 판단은 제법 날카로운 감이 있었다.
‘작년인가.’
〈범죄농노〉에게 횃불 성채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제법 큰 피해를 봤다고 했었다. 그것과 융의 비판적 판단이 연결되어있는 건지도 몰랐다.
“사람이 진짜 많네요.”
“그렇지?”
메르인이 그 말에 끼어들어서 이것저것 특이한 〈횃불 성채〉의 검문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병사의 말을 안 들으면 단박에 감옥행이라고 말했다. 태도가 나빠도 안 된다고 했지만 메르인은 자신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영주문장〉이 있었기에 강압적으로 대해도 결국 끝까지는 못 간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간다면 영주의 귀에 들려올 것이 뻔했다. 영주의 일을 대행한다는 뜻에서 주어지는 〈영주문장〉을 가진 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죽이는 것은 더 문제였다. 〈횃불 성채〉의 성주든 경비대장이든 정적(政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
〈머리통 용병단〉의 차례가 왔다. 검문소의 업무를 괜히 오랫동안 한 것이 아닌지 경비병들의 눈썰미는 대단했다. 인원이 줄어들었음에도 단번에 〈머리통 용병단〉임을 알아보았다. 물론 그 판단에는 〈정보꾼 메르인〉의 역할이 컸다.
“〈머리통 용병단〉? 영주문장을 가지고 있는가?”
경비병의 물음에 융이 영주문장을 품에서 꺼냈다. 횃불의 형상에 손잡이 끝을 계속 노려보면 주변에 불똥이 보이는 마법의 영주문장이었다.
“확실하군.”
경비병은 그 뒤로 검문을 실행했다. 곰가죽을 한 번 뒤적거리더니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곰가죽을 양손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람구멍이 하나도 없는데 굶겨 죽였나?”
궁금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곰가죽이었다.
“목 아래를 베어 죽였습니다.”
드낙이 아주 빠르게 대답했다. 경비병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자 이목이 조금 모였다. 곰가죽을 제법 봤는지 상인 하나가 대뜸 훈수를 두었다.
“곰의 다리를 보면 언제 죽였는지 알 수 있지. 단언컨대 봄에 죽인 곰이 아니야. 바짝 덩치가 오른 겨울에 죽인 놈이야. 부르는 게 값이겠어.”
그 말에 옆의 상인이 물었다.
“그럼 금화를 건네주고 사보지?”
“미쳤냐? 그럴 돈이 어딨어. 하하하!”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신 곰가죽을 쳐다보았다. 보통 곰가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잘라서 팔아도 다른 곰가죽보다 2배 가격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곰사냥은 확실하게 철이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봄이었다. 달리는 자동차와도 함께 내달리는 것이 곰이었다. 수십 미터 나무를 올라가는 것은 기본이다.
그냥 야생의 완전체에 탑3에 들어가는 것이 곰이었다.
그런 곰을 사냥한다는 것은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곰이 약해졌을 때를 노려야 했다. 그것은 겨울인가? 아니다. 죽기 딱 좋은 곰사냥이 겨울 사냥이다. 몇몇 산골 마을에서는 마을의 죄를 짓거나 범죄를 저지른 남자가 용서를 받기 위해서 겨울에 곰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열에 열이 죽는다. 예외는 없다.
동면에서 깨어나서 살이 홀쭉해진 봄에 곰을 사냥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동면하는 곰을 창으로 쑤시는 짓은 〈애송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창으로 곰을 막는다는 상상은 상상으로 끝날 뿐이고, 현실은 피 튀기는 현장이다.
“겨울에 잡은 거대한 곰이라.”
경비병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짐수레의 다른 곳을 뒤적거렸다. 그다음으로는 일행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흰 가루나 약초 같은 것은 모두 경비병의 혀를 거쳐야 했다.
도적 4명은 그대로 경비병들에게 인도되었다. 포상금으로는 두당(頭撞) 동화 5닢으로 동화 20닢을 받았다. 별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영주문장〉을 가진 용병단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근처 마을 사람이나 증인 혹은 약탈한 증거가 필요했다. 미심쩍으면 포상금은 받지 못한다. 도적 4명은 몇 년이고 노동력을 토해낸 뒤에 풀려날 것이다.
마을에 주둔한 병사들의 도적 처리와 성채에 주둔한 병사들의 도적 처리는 엄연히 달랐다. 전자는 손목을 자르고 끝내지만 후자는 노동력으로 대신했다.
“이상이 없군. 통과!”
병사들이 그들을 통과시켰지만 이내 다시 잡혀야 했다. 제법 나이가 찬 경비병 하나가 뒤에서 앉아있다가 일어서서 팔로 융의 앞을 막았다.
“경비대장님을 한 번 보고 가셔야겠소.”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 말에 베테랑 경비병이 말했다.
“머리통 용병단의 인원은 다섯 아니오? 하지만 인원이 크게 줄어들었고···”
턱짓으로 드낙을 가리켰다.
“신참 하나가 들어왔지 않소?”
그렇게 말하면서 뒤에다가 소리를 치듯이 말했다.
“거기에 그 신참은 용병패도 없군!”
검문을 진행하는 경비병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휴식 시간 때 굴려질 것을 직감한 것이다.
드낙의 바로 앞에 선 베테랑 경비병이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어디 출신이지?”
“〈검은 산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머리통 용병단〉에는 왜 합류한 거고?”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융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횃불 성채〉는 이 주변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용병대장 융. 그대들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이유는 충분해.”
“그것은 〈세베긴 경비대장〉에게 말하겠습니다.”
“흥.”
융이 병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낙을 보며 고개를 까딱하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여기 경비병들은 정말로 오만합니다. 최전선에 있는 놈들이죠. 성격이 고약합니다.”
“미친놈들이야. 사람들에게 시비 걸 시간에 훈련이나 더하지.”
메르인이 그렇게 말하며 추가적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드낙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태평한 병사보다 신경질적인 병사가 나은 법이죠.”
드낙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 모욕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상처 입히려고 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이미 옛날의 자신이 아니었다. 흥분은 그 무엇도 안 됨을 깨달았고 그것을 제법 실천할 줄 알았다.
물론 그 평정심은 언제 깨질지 몰랐다. 그는 감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드낙은 훌륭했다.
“〈머리통 용병단〉? 살인자들이 용케도 병영에 스스로 찾아왔군.”
병사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도발했다. 〈영주문장〉을 가졌기 때문에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었다. 메르인은 매우 불쾌하면서 벌처럼 쏘아붙였다. 병사들은 여자인 메르인과 말싸움을 하기 싫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들어가라. 경비대장님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마라.”
“당신이나 잘 해. 넌 네가 쿨한 줄 알지? 하이에나나 다름없어.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도적이야.”
“뭣···”
메르인은 그 말을 톡 쏘아붙이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는 병사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경비대장 세베긴〉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요즘 업무에 치여살다시피했다.
“머리 하나 들고 있지 않은 걸 보니, 일은 실패했나 보군.”
“찾는 놈이 그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왜 인원수가 줄어들었나.”
융은 솔직하게 말을 했다. 〈횃불 성채〉의 경비대장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산버섯 마을〉에 오크 전사? 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모습을 취하면서도 세베긴은 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엄청나게 귀한 정보다.’
“〈오크 나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겠지?”
“예. 아주 많았습니다. 작정하고 가꾼 산입니다.”
〈경비대장 세베긴〉이 크게 웃었다.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한 정보를 그냥 주는 것은 아닐 테고, 뭐 원하는 것이 있는가?”
오크 나무만 해도 군침 돋을 이들이 많았다. 건축가, 부상(富商), 귀족이 모두 얽힐 판이 하나 갖춰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리도 가까웠다.
“그저 편의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편의라···”
수염을 조금 잡아당기며 작은 통증을 즐긴 세베긴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명분은 충분했다. 그들은 〈영주문장〉을 가지고 있는 용병단이었다. 〈메디오(Medio) 지방〉의 영주 업무를 대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냥 편의를 봐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문제가 불거져도 빠져나갈 구멍도 충분했다. 영주문장을 가진 이들이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하려고 한 것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 위에는 영주문장을 준 메디오 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피지 하나를 펼쳐서 나무못으로 오른쪽 위에 하나. 왼쪽 아래에 하나를 박고 쓱쓱 뭔가를 써 내려갔다.
“〈큰 문제〉가 아닌 이상은 경비병들이 자네들의 편의를 봐줄 걸세.”
융이 감사를 표했다. 잉크가 마를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근황을 물었다. 융은 〈곰가죽〉에 대해서 말했고, 세베긴은 〈치안〉에 대해서 말했다.
“피난민 때문이지. 마을 하나가 아주 박살이 났거든. 그에 대한 문제를 〈내청(內廳)〉이 답을 내줘야 하는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야. 1500명이 넘는 피난민이 이곳에 있어서 미쳐버릴 지경이지.”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그 때문에 치안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의 목에 돈을 거는 영주인 메디오 영주는 제법 괜찮은 영주였기에 횃불 성채는 충분히 그들을 수용했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이 어떻게 박살 났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용병에게 이야기할 것이 아닌 듯했다.
“여관은 굳이 필요가 없어. 메르인은 이곳에 집을 가지고 있거든.”
“임대지만.”
가는 내내 마치 적진에 온 것처럼 융과 메르인이 긴장하고 있는 것을 드낙이 알아차렸다.
‘현상금 사냥꾼이라서 그런가?’
인간을 사냥하기에 어쩌면 이들을 노리는 인간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장을 본 다음에 그대로 여독을 풀었다. 드낙은 좀 더 밖에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용병들의 스케줄에 맞추기로 했다.
다음 날 드낙에게 융이 말했다.
“용병 생활하며 필요한 곳을 소개해주겠습니다.”
“저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