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2 <-- 사냥 : 오크? 인간? -->
융과 메르인 뿐만 아니라 드낙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짐수레를 힘들게 끌고 왔지만 숨는 게 먼저였다. 한 번 잡혔던 마을 청년들이 분명 〈짐수레〉에 대한 것을 알렸을 것이다.
‘깊게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지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1시간을 깊은 곳으로 되돌아간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법 조용히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에서도 떨어진 곳 아닙니까. 우리들이 실패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미 오크들에게 용병단이 패배하는 것을 예상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청년 몇이 오크를 죽이러 산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메르인이 그럴싸한 추측을 내놓았다. 분명 〈마을 청년〉들이 오크와 한 번이라도 얽혔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대놓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찾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들키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드낙의 숲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수풀에 숨은 사냥감을 보기 위해서 익숙해진 눈이었다. 상당한 거리였고, 야생의 숲은 시끄러웠기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길에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길을 수정해야겠습니다.”
융의 말에 드낙이 물었다.
“되돌아갈 겁니까?”
“분명 잡힌 놈들이 짐수레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시간이 걸려도 크게 돌아가야 합니다.”
융이 즉답했다. 이런 일을 한 번 당해본 것처럼 능숙했다.
“인간만큼 지독한 게 없죠. 상당히 멀리에도 우릴 찾으려고 하는 놈들이 분명 나올 거예요.”
인간의 지독함은 드낙도 인정하는 바였다. 메르인의 말에 딴죽을 걸지 않았다.
짐수레의 선두는 번갈아가면서 바꾸었다. 가장 힘든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보꾼 메르인〉 또한 예외는 없었다. 여자라서 힘든 일을 기피한다면 진작 〈머리통 용병단〉에서 퇴출 당하거나 밤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어느 한 곳에서 봐준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더 해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귀여워하며 키우던 자기 새끼조차 형편이 안 되면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세상이었다. 노예는 금지되어있었지만 그것을 감독할 경찰 같은 시스템이 없었다. 치안은 병사(군대)의 몫이었다.
메르인은 목에 핏발이 설 정도로 힘을 내야 했다. 상체를 앞뒤로 흔들면서 반동을 주기까지 했다. 드낙은 그것을 보면서 용병질을 하면서 살았던 메르인의 독(毒)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하면 몸에 멍이 들 텐데.’
자신의 체중 두 배의 힘을 내기도 힘든 것이 인간이었다. 팔힘이 제법 붙어서 롱소드와 무게가 비슷하면서 좀 더 긴 레이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자의 몸으로도 용케도 짐수레를 거침없이 끌고 갈 수 있었다.
그 독함 때문에 드낙 또한 왠지 모르게 힘을 더 주었다. 왠지 가슴에 불이 지펴졌기 때문이었다. 드낙이 짐수레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고행을 해나가는데 자신만 빠지는 것은 융과 메르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말싸움을 한다면 드낙이 승리하겠지만, 질척하게 끝날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말싸움할 것을 만드는 것은 드낙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용병들에게 얻어내야 할 것이 많다.’
〈횃불 성채〉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들킨다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드낙의 살가죽까지 벗겨낼 것이다. 〈애송이〉의 주머니를 터는데 두려워하는 놈들은 없었다. 용병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드낙은 횃불 성채에서의 위험을 모두 지나칠 수 있었다.
인간은 약자에게 강하게 나오고, 잔혹하게 나오는 법이었다.
그저 약하고 처음 왔다는 이유로 하이에나에게 물려죽는 사슴처럼 될 수 있었다. 치안을 병사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드낙의 〈치안 불신〉은 도가 지나친 면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언제나 자신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죽음이 확하고 다가온다.’
〈사냥 대회〉가 그러했고, 〈마적 침입〉이 그러했다. 드낙은 용병과 한 배를 탔는데 그런 용병들과 짐수레 끄는 것으로 감정적으로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되려 스스로 나서서 짐수레를 끄는 순서에 끼어들었다.
“고맙습니다.”
융이 말했다. 굳이 하지 않을 일을 드낙이 나서서 짐수레를 끄는 순번을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을 제법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 행동이었고, 그것은 곧 〈싹수가 있는 놈〉이었다. 육체노동 하나로 호감을 얻는 일이었다.
“나 혼자만 안 끌면 좀 이상해서 말입니다.”
메르인은 드낙의 선행에 고개를 까딱거렸다. 말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그런 메르인의 가벼운 반응에도 발끈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냐. 마을 사람들 전부가 나온 건가.’
곳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여자까지 횃불이나 곤봉 혹은 농기구를 들고 다니며 그들을 찾았다.
‘헉.’
〈부상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을 만큼 근접하기도 했다. 나무 등치에 휴식하고 있는 마을 사람을 확인하지 못하고 크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가슴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일행과도 떨어져서 있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 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흔적을 찾아도 그것이 수레 자국인줄 몰랐다. 흔적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발로 짓이겨서 비볐기 때문이다. 짐승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기에는 힘이 들었기에 임시방편으로 혼란을 준 것이었는데 추적이 능한 사람이 없어서 효과적이었다. 사냥꾼이라고 다 추적에 능하지 않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횃불 성채가 있는 먼 길에 올라서려면 족히 2일은 가야 한다고 융이 말했다. 〈횃불 성채〉에 도착하는 것은 아마 오늘을 기점으로 6일은 걸릴 것이라 예견했다.
“여기서 밤을 지내야겠습니다. 그래도 불은 피울 수 있을 겁니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다가오기 전에 노을빛이 들어오는 자연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이 좋다기보다는 길에서 벗어나서 걸었기에 볼 확률이 높았을 뿐이었다.
“휴우.”
물을 찔끔찔끔 아껴마시며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드낙과는 다르게 융과 메르인은 거침없이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메르인은 손을 주물렀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렸다. 힘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다.
땀을 식히기도 전에 장작을 구해 와야 했다. 융은 모닥불의 불빛을 막는데 쓸 돌을 줍기 시작했고, 메르인과 드낙은 장작을 주웠다.
서로 말을 하기에는 피곤함이 컸다. 메르인은 몇 번이나 나뭇가지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쓴소리 하나 하지 않고 묵묵하게 〈용병〉으로서의 일을 다했다.
“죽겠다.”
메르인이 장작을 동굴 안에 놓으며 그대로 드러누웠다. 융은 거침없이 돌을 꼼꼼하게 쌓고, 흙으로 틈을 막은 다음에 장작을 중앙에 잘 쌓기 시작했다.
“전 사냥감 있는지 보러 갔다 올게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메르인은 눈을 감았고, 융은 고개만 끄덕였다.
드낙은 소득 없이 오지는 않았다. 까마귀 카이야가 새들을 찾아냈고, 여러 마리를 근처에 있는 넝쿨로 줄줄이 엮어서 4마리를 가져왔다.
“와우!”
메르인이 크게 좋아했다. 융이 요리를 맡았다. 능숙하게 털을 다 뽑아내고, 내장을 꼼꼼하게 빼내었다. 물을 최소한으로 사용해서 세척도 했다.
두 사람은 새의 머리까지 알차게 먹었지만 드낙은 그러지 않았다. 머리에 손도 안대자 메르인이 물었다.
“머리 안 먹어요?”
“예. 드세요.”
메르인의 손이 새의 머리로 향했다. 아도독하는 소리가 들리자 드낙은 조금 섬뜩했다.
“불침번은···”
누가 불침번을 설 것인지 정하지 않았다. 귀가 밝은 동물만 2마리였다. 드낙은 눈을 감은 채 피곤에 젖은 몸을 달구어진 돌이 넣어진 흙에 눕혔다. 뜨끈한 열기가 차올랐다.
금방 잠에 빠졌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은 굉장한 기세로 소리를 크게 냈다. 바람에 의해서 크게 소리가 날 때면 잠에서 깼다.
휘오오오!
‘무슨 바람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동굴 안으로 들어오면서 아주 거센소리를 내었다.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지만 옮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이렇게 동굴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기에 야생동물이 이곳에 자리를 잡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세 사람에게 있어서는 되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 드낙은 검은색의 연기가 자신의 눈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허무하게 죽었지만 쎈과 케르욘은 〈검은 꿈〉을 꾸게 만들기에 충분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어!’
드낙은 바닥 속으로 보이던 오른팔의 손가락 하나가 툭하고 튀어나온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서둘러 다가갔다. 마치 냉동된 시체와도 같이 희멀건 인간의 손가락이었다. 그 밑으로는 바닥 속에 오른팔이 떡하니 있었다.
더욱더 자세히 볼 수 있게 거리도 가까워져 있었다.
손가락을 만지자마자 드낙은 환상을 경험했다.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없었고, 그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 처럼 물이 흐르는 것을 물속에서 듣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맡아지는 것도 없었다. 아니, 맡을 수 없었다. 코로 냄새를 맡고 싶었지만 그런 행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
강력한 힘! 막강한 완력? 아니었다. 좀 더 기괴한 다른··· 어떤 〈힘〉이었다.
“헉!”
환상에서 깨어난 드낙이 휘청거렸다. 오른팔이 욱신거렸다.
“아그극.”
오른팔의 근육이 잔뜩 힘이 쥐어진 채 경련이 났기 때문이다. 억지로 활짝 펼쳐서 근육을 풀어주었다. 손으로 주물럭 거려야 했다.
‘뭐지?’
드낙은 바닥에서 오직 손가락만 튀어나온 희멀건 오른팔을 쳐다보았다. 전과 다른 점은 〈인간〉을 죽였을 때 오른손이 이렇게 튀어나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좀 더 많은 인간을 죽이면 쓸 수 있다는 건가?’
드낙은 그렇게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제서야 드낙이 이 〈전생자의 특전〉에 대해서 의문을 크게 가졌다.
‘뭔가 있다.’
드낙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뭔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 힘을 주고 있는 당사자는 인간을 죽이길 원하고 있었다.
‘아니야. 설마.’
드낙은 이내 그 〈음모〉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다. 다른 생명체를 죽이면 두각이 드러날 것이다. 애초에 다른 것을 죽이지 않았으니, 〈인간 사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환생하면서 뭔가가 영혼에 얽힌 것일 수도 있었다. 온갖 초월적인 방법이 드낙의 머리에서 생각나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결론은 그 무엇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검은 문〉은 여섯 개가 넘었다.
하나하나씩 모두 확인했다. 〈막내 쎈〉의 경우 순찰자가 되기 위해서 훈련했기에 그와 관련된 힘이 주어졌다.
〈방패덩치 케르욘〉의 경우 드낙이 예상했던 대로 중갑운용에 관련된 노하우가 있었다. 파티의 선두에서 싸우는 중갑보병다운 능력이 주류였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킬 더 배틀〉. 뭔가를 죽였을 때 시간이 마치 느려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능력. 맨 처음 고블린과의 첫 실전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능력이었다.
〈문화의 오른발, 야만의 왼발〉. 짐승 조련술이었다. 고블린이 다뤘던 것만 다룰 수 있었고, 그리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다. 이름만 거창했다. 이것으로 〈까마귀 카이야(Kaiya)〉를 길들였었다.
〈늑대 왕관〉. 〈갈색늑대 도노(Dono)〉와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를 터득했다. 드낙의 생각으로는 〈문화의 오른발, 야만의 왼발〉 능력과 겹쳐져서 서로 상승효과가 생긴 듯했다. 능력의 이름과는 다르게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센다빌의 백병전술〉. 다양한 무기를 실전적으로 다루는 기술과 다양한 종류의 인간을 상대한 경험을 강제적으로 획득하게 해준 능력이었다.
인간과의 실전이 부족한 드낙에게는 꿀맛과도 같은 능력이기도 했다.
드낙은 이번에 생성된 〈검은 문〉을 건드리며 선택할 능력들을 떠올렸다.
〈순찰자의 생존방식〉
〈금을 쫓는 순찰자의 감각적인 활솜씨〉
〈노예의 함정제작(木)〉
위의 3가지는 막내 쎈을 죽이고 얻은 검은 문들이었다.
〈투우(鬪牛)의 중갑운용 노하우〉
〈판단없는 용맹〉
〈거친 협박범〉
하나씩 드낙이 판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