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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1화 (51/1,239)

0051 <-- 사냥 : 오크? 인간? -->

드낙은 도망치는 척하면서 도망치지 않았다. 이유는 양 손목과 한쪽 발목만 잘린 채 흰 가루로 오크에게 응급치료가 되어있는 쎈이 바위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활과 화살을 덮고 있는 가죽을 꺼냈다. 안쪽은 찌꺼기가 걸러진 폐기름으로 절여져 있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폐기름조차도 아까울 정도였기 때문에 수분을 막음과 동시에 손에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의 기름이었다.

활과 화살을 꺼냈다. 수분을 막기 위한 기름을 먹였기에 헝겊으로 몇 번이나 닦아야 손에 착 들러붙었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아주 X같은 곳이 이 세상이었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은 볼 것이 다양해서 좋겠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사막이 되려 좋겠다.’

활을 손질하는 게 귀찮으면 기름을 써야 했고, 기름을 쓴다면 전투 직전에 이렇게 활에서 기름을 닦아내야 했다. 그게 싫으면 손질을 자주자주 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전투 중에 활대가 부러지겠지.

푹!

오크들이 떠난 곳에서 정신이 나간 〈막내 쎈〉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경험이 많다고 해도 손목과 발목이 잘렸는데 그 충격이 얼마나 끔찍할까. 드낙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목에 화살이 박히고, 옆구리 특히 폐를 겨냥했다.

성공적으로 쎈을 죽인 드낙이 물러났다.

〈오크 전사〉 중에서도 특출났던 〈오크 쌍둥이 형제〉와 조우했기에 〈머리통 용병단〉이 허무하게 3명을 잃은 것이지 결코 〈막내 쎈〉의 역량이 시정잡배 수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특기인 활 솜씨를 쓰지도 못하고 죽었다.

드낙은 막내 쎈의 활 솜씨를 얻고 싶었다.

‘케르욘은 중갑을 잘 사용했지.’

자면서도 입을 정도로 능숙한 중갑보병이었다. 〈손없는 센다빌〉은 드낙에게 다양한 무기술을 제공해주었지만 그중에 갑옷의 운용술에 대한 것은 없었다. 무엇을 손에 들어도 익숙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지만 드낙은 무기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맞이한 적도 없었다.

모두 하나씩 특출난 점이 있었다. 타고난 덩치로 무거운 체중의 중갑을 입고 다닌 것만 해도 케르욘은 〈희소성〉이 있는 용병이었다.

〈머리통 용병단〉에 기용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어디서든 대우를 받을 거란 소리였다. 성정이 제법 사교적이었다면 외딴 영지의 기사도 될 수 있었다. 그만큼 덩치는 최고의 피지컬이었다.

덩치가 크다고 둔하고 느린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벌써 어린아이들에게 세계정복을 당했을 것이다. 몸길이가 길면 적을 먼저 타격할 수 있고, 덩치가 크면 방패째로 상대를 후려팰 수 있다.

‘그 정도까지만 커도 좋을 텐데.’

현재 드낙은 딱 융 정도의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근육은 보다 더 붙어있지만 그리 확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케르욘처럼 크는 것은 욕심일지도 몰랐지만 드낙의 현재 나이가 15살인 것을 생각한다면 성장 가능성이 있었다.

‘아버지의 덩치도 제법이었으니까.’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 목장의 주인이었기에 근골이 제법 컸다. 조상은 북부에서 내려온 북부인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수염이 적게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쎈에게서 얻고 싶은 것과 케르욘의 중갑 운용술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하산한 드낙은 곧장 〈짐수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망친 용병들은 반드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케르욘과 쎈이 죽었으니까, 3명이 살았겠군.’

드낙은 분명 용병들이 오크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미 눈치를 깠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로 그것을 추궁하기에는 부족했다. 말싸움으로 번진다면 숫자적으로 불리한 드낙이 질 것이 뻔했다.

그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었다. 항우가 아니고서야 불확실한 정황만 가지고 지랄을 떨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확실한 우열을 가리고 싶어 하는 강자(强者)나 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증거 하나 없이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고서야 패주한 용병들을 상대로 시빗거리를 내놓는 짓은 드낙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미친 짓이지.’

오크에게 패주했다고 해서 용병단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나빴을 뿐이다. 용병들 또한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터였다.

용병들에 대한 호감이 사라졌음에도 드낙이 그들에게 가는 이유는 단순히 기댈 곳이 없어서였다. 혼자서 여행한다는 것은 불확실함의 연속이었다.

‘숫자가 적어도 함께 다니는 게 좋다.’

강도 3명만 만나도 드낙은 죽은 목숨이었다. 도노의 날렵함을 기대해야 하는 것은 드낙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적의 럭키샷 한 방에 인생이 끝날 수 있었다.

당장 이번의 죽음만 해도 그러했다.

‘역시나.’

드낙의 눈에 짐수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간합의 융〉과 〈정보꾼 메르인〉이 보였다.

그들은 낭패한 얼굴로 서로를 보지 않은 채 휴식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5명의 용병단원 중에 3명이 죽었기 때문이다.

융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십 년이 지나도 융은 오늘의 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악의 악재였다.

‘떠돌이 오크도 아니었고.’

오크 부락의 실패자들. 제대로 무기 하나 놀리지 못하는 젊은 겁쟁이 오크거나 늙어서 송곳니가 빠진 놈들. 그런 놈들이 대다수였는데 이번은 아니었다.

‘오크 전사도 아니었고.’

타투의 힘으로 덩치 큰 중보병을 수십 미터를 하늘로 날려버리는 힘을 가진 오크 전사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오크 전사를 이끄는 대전사와도 같은 면모였다. 물론 융은 대전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소문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도끼로 집 한 채를 무너뜨린다는 헛소문이었지만 오늘 그것을 본 것 같았다.

목을 만졌다.

‘만약 정말로 부락의 싸움에서 패배해서 운 좋게 도망친 대전사라면?’

살아있는 게 용했다. 목이 붙어있음을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더 크게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 못해도 1년은 쉬겠군.’

용병단을 다시 꾸려야 했다. 하지만 꾸려도 전 같은 〈머리통 용병단〉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젊은 정찰병이 죽었다. 항상 어느 곳에서든지 용병단이 기습, 선제타격을 하게 해주었던 〈막내 쎈〉은 머리통 용병단의 수입을 정확하게 1/N로 나누었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용병이었다.

중갑보병이 죽었다. 최고의 돌격병이었고, 든든한 수호자였다. 자신보다 7살 어리지만 전투에서는 형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던 전사였다. 일이 잘못되어도 케르욘의 힘으로 우직하게 위험을 부순 적도 많았다.

암살자가 죽었다. 숫자가 많은 적을 상대할 때 베듬만한 사람이 없었다. 함성을 지르는 적의 뒷목을 쑤시는 그림자와도 같은 대거!

‘휴우···’

보통이라면 10년 30년을 함께했을 라인업이었지만, 고작 떠돌이 오크 하나 잡는 의뢰에서 3명이 몰살을 당했다.

“여기 계셨군요. 두 사람뿐입니까?”

드낙이 어깨에는 까마귀 카이야를 올려놓고, 옆에는 갈색늑대 도노와 함께하며 나타났다. 조용히 움직이는 그는 실로 사냥꾼다웠다.

“드낙···씨는 상처가 하나도 없으시군요.”

융은 가장 먼저 그의 모습을 훑었다. 그가 드낙을 〈씨〉라고 말하는 이유는 〈특징적인 굳은살〉때문이었다. 몰락한 기사의 후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오크가 그렇게 강합니까?”

융과 메르인이 고개를 크게 저었다. 인상을 가득 찌푸린 채로 두 사람 모두 입을 열어 말했다.

“절대로 아닙니다. 오늘은 마(魔)가 낀 날입니다. 지독해도 이런 지독한 날은 처음입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충격적인 날이죠.”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마주한 오크는 센다빌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물론 그것이 결코 드낙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기세의 차이.’

인간 도살자라고 말해도 괜찮을 마적 두목 센다빌이 죽인 인간의 숫자만 수백이 넘었다. 그가 발하는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드낙은 센다빌에게 한 번을 비비는 것도 두려워 했었다.

세 사람은 정보를 나누었다. 드낙은 정말로 오크 하나가 케르욘을 하늘로 날려버렸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진짜였군.’

진짜겠지 싶다가도 의심하던 현상이었는데 이렇게 듣자 더욱 가슴이 쿵쾅거렸다. 놈을 죽이면 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욱 탐이 났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드낙의 말에 융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급한 것은 휴식이었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짐작이지만 〈오크 대전사〉와 마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다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서 생각해봅시다.”

피곤하게 대답하면서 일행은 서둘러 더 멀리 도망쳤다. 하지만 〈산버섯 마을〉로 가지는 않았다. 그곳으로 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폐쇄된 사회나 다름없는 이 세상은 인터넷도 없었다. 인터넷이 있어도 섬노예가 있는 판국에 윤리를 따지는 것도 웃기다.

드낙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용병들은 더 잘 알고 있었다. 마을이 흑심을 품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은 이미 첫 단추부터 산버섯 마을의 일원과 부딪침이 있었다.

마을의 공동자원인 은화 8닢을 탐내기까지 했다. 그것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강탈〉이라고 생각하고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손에 쥔 돈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을 인근을 지나서 빠져나가 길을 타야 한다.’

짐수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융이 짐수레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드낙이 홀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빠진다면 다시 〈검은 산골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길만 4일은 걸릴 것이다.

‘위험한 길이지.’

여자 혼자 인도로 여행 가는 것만큼이나 미친 짓이었다. 드낙은 자신의 실력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4일 내내 칼 같은 전투력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다.

‘별 수 없다. 이대로 가는 수밖에.’

이미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곰가죽에 대한 대금을 챙긴 드낙이 짐수레를 포기하자고 한다면 결코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어느 미친 용병이 은화 50닢짜리를 포기할까? 자기 목숨 죽는 줄 모르고 살아가는 놈들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입을 여는 순간 드낙은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다. 앞뒤 분간 못하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애송이〉. 용병들이 정말로 드낙의 말처럼 짐수레를 버린다면 그들은 용병이 아니라 다른 비밀 결사단쯤 될 것이다.

“끙!”

거친 산길에서 짐수레를 끌었다. 길이 아닌 곳을 가기란 힘겨웠다. 마을의 길로 향했다. 적어도 그 길을 적당히 이용하기는 해야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드낙의 눈에 뭔가가 지나갔다. 새하얀 무언가가 수풀을 지나갔다. 거리는 제법 되었다. 50걸음? 아니, 30걸음인가. 숲이라서 시야가 막혀서 거리조차 제대로 재는 것이 힘들었다.

“숙이세요.”

드낙이 작게 말했다. 하지만 경험 많은 메르인과 융이 그대로 몸을 낮추었다. 짐수레를 꽉 잡아서 천천히 힘을 빼었다. 갑자기 짐수레가 멈추며 소리를 냈다.

“······”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융과 메르인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드낙의 눈썰미를 믿기 때문이었다. 〈오크 전사〉와의 싸움에서 상처 없이 빠져나온 드낙이었다. 늑대와 까마귀의 도움을 얻었을 것이라 감안하더라도 굉장한 일이었다.

사실은 〈동생 아만투스〉를 거침없이 홀로 밀어붙인 드낙이었지만 그것까지 추측하지는 못했다. 동물을 이용해서 얻은 승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용병들이 가지는 최선의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3명이나 목이 따였기 때문이다. 드낙의 강함을 곧이곧대로 추측하고 여기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찮은 산골 마을의 경험적은 애송이 아닌가? 아무리 거창한 이름을 가져도 나이가 15이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처럼 딱딱 이성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비이성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됐습니다.”

“뭐였습니까?”

“마을 사람들입니다. 기름먹인 천을 두른 횃불이 지나갔습니다. 수풀에서요.”

꿀꺽.

융이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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