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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0화 (50/1,239)

0050 <-- 사냥 : 오크? 인간? -->

드낙은 〈갈색늑대 도노〉와 함께 〈합격술〉의 시작을 알렸던 숏소드의 상단을 내렸다. 〈동생 아만투스〉를 노리는 것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진 케르욘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방패덩치 케르욘〉은 소리 하나 내지 못한채 눈을 굴리며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입이 우물거렸지만 소리를 내지 못했다.

‘던져진 건가?’

생각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까마귀 카이야〉를 통해서 접근하는 오크가 있다면 소리를 내라고 했지만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주먹 자국이···’

찬찬히 케르욘을 훑었다. 무릎이 다친 〈동생 아만투스〉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단한 강철 흉갑에 오크의 주먹이 새겨져 있었다. 움푹 들어가 있었고, 폐를 향하고 있었다. 숨을 쉬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 듯했다.

강철이 안으로 패여서 폐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을 터였다. 충격에 움직이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케르욘의 몸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속은 엉망일 것이다. 입술로 침과 피가 뒤섞여서 묽은 것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오크의 힘이 아무리 대단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먹으로 쳐서 철판에 주먹 자국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달구고 달구고 녹이고 녹여서 탄소 하나 없는 〈순철(純鐵)〉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내 눈앞에 있는 것이고.’

눈을 의심하면서도 빠르게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

숨을 쉬지 못하는 케르욘이 뻐끔거렸다. 드낙은 아만투스를 시선을 올려 쳐다보았다. 언제든지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는 아만투스였지만 절뚝거리는 무릎이었기에 돌진력과 속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구할 수 있다면 구할 수 있다.’

갑옷을 풀어줄 시간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드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투척 단검을 들어 올렸다. 케르욘의 눈이 커졌다.

푹!

그대로 목에 박아 넣고, 위아래로 움직여서 상처를 벌렸다. 목뼈는 끊을 수 없었다. 단검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케르욘은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폐가 압박당해서 공기를 목에 낼 수가 없어서 고통에 울부짖고 싶어도 울부짖을 수 없었다. 몸을 버둥거리기에는 수십 미터를 날아서 아래로 떨어진 것이 케르욘이었다.

중갑은 추락에 있어서 아주 취약했다. 충격에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무슨···! 동료가 아닌가?”

고블린의 언어가 〈동생 아만투스〉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경악하는 감정이 절로 드러났다. 드낙이 대답했다.

“숨을 쉬지 못해서 빨리 죽여줬다. 고통받으며 5분이 넘게 발악하는 것보다는 편한 죽음이겠지.”

드낙의 말에도 아만투스는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피 묻은 투척 단검을 혁대에 집어넣은 그는 생각했다. 케르욘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부정하기에는 눈에 보이는 게 있었다.

오크가 경악하는 사이에도 드낙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생각하는 것만큼 흥분을 줄이는데 좋은 것이 없었다.

‘용병들의 탱커 역할을 하는 케르욘이 날아왔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직접 눈으로 봤다.

‘앞을 막아줄 케르욘이 없다. 용병들의 판단은···’

드낙은 용병들이 와해되었을 거라 여겼다. 그리고 도망치는 용병들을 잡기보다는 자신에게 향할 것임을 알았다. 전투가 끝났는데 도주자를 잡기에는 오크의 〈동료〉에 대한 생각을 방금 확인하지 않았나.

‘놈을 죽이고 싶은데··· 욕심이겠지.’

시리도록 날카로운 드낙이 〈동생 아만투스〉를 노려보았다. 그가 손도끼를 올리는 것이 보였다. 조잡하게 그저 용접하듯이 때려 부착된 철이 들러붙어있는 나무 도끼였다. 하지만 방패와 부딪쳐도 멀쩡하고, 숏소드와 겨루어도 균열이 나지 않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튼튼한 무기였다.

‘물러날까? 하지만···’

용병들이 와해된다면 당연히 도주할 것이며 자신은 오크와 2:1로 싸울 수 있었다. 그래도 드낙은 갈등했다. 〈검은 꿈〉에 대한 탐욕은 정말이지 마약과도 같았다.

“까악! 까아악!”

그때, 까마귀 카이야가 울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 이리저리 소리를 질러대며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오크가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도노!”

드낙이 도노를 불렀다. 〈동생 아만투스〉의 뒤에서 뛰쳐나온 도노는 드낙에게 다가가며 고개만 돌려 아만투스를 바라보았다. 강맹한 늑대의 눈동자는 포식자 그 자체였다.

‘저 인간이, 늑대 조련사였구나!’

그제서야 아만투스가 늑대의 존재를 깨달으며 척추가 으슬으슬 해졌다. 팔뚝에 있는 털이 곤두섰다.

만약 마지막 승부수에서 늑대가 뒤에서 달려들었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케르욘이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큰 부상을 입거나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경사가 높은 2미터의 직각 형태의 벽도 오를 수 있는 것이 늑대였다. 들짐승의 민첩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달려드는 것을 허용했다면 목이 물렸을 것이다.

“쫓아올 생각하지 마라.”

드낙은 그렇게 빠르게 물러났다. 〈동생 아만투스〉는 드낙을 쫓을 수 없었다.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가 자신을 떡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다가간다면 저 까마귀가 시끄럽게 울 것이다.

드낙이 수풀로 사라지자 까마귀도 나무 사이로 날아가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만투스는 서둘러 산을 올라갔다. 입이 근질근질했다. 자신이 만난 것은 복장은 기사가 아니었음에도 실력만큼은 기사와도 같았다. 오히려 용병과도 같이 도망갈 줄도 알았고, 늑대를 이용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늑대를 사용할 정도로 노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강했다.

그 싸움에서 살아남았고, 큰 경험을 얻은 아만투스의 입이 근질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마찬가지로 산을 내려오던 형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형 도네투스〉는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피였다. 상처가 조금 있었지만 큰 것은 아니었다. 약초와 약재로 충분히 다스릴만했다.

“그렇게 산을 타고 다녔는데도 상처가 그렇게 많네. 헛 배웠어. 크크.”

〈형 도네투스〉의 말에 드낙에게 베이고, 얻어맞아서 자잘한 상처와 멍이 가득한 〈동생 아만투스〉가 웃었다.

“그래도 형보다는 작은 상처야.”

도네투스 또한 팔뚝에 상처가 있었다. 얇게 베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깊게 베인 것도 아니었다. 적당했다.

〈동생 아만투스〉는 가죽 주머니에서 독한 술을 꺼냈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독한 술은 철내음을 지우는 용도로 썼다. 오크에게 상처에서 풍기는 철내음은 불길하게 여겨졌다. 전사들의 미신이기도 했다.

“크흐.”

근육이 꿈틀거렸다. 상처는 칼에 당한 상처였다.

“어쩌다가?”

“제법 덩치가 있는 놈이었어. 쉽게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수가 있더라.”

“그래서 날려버렸어?”

이상하리만치 윤기가 좔좔 흐르는 〈히드라의 타투(Hydra's Tattoo)〉를 보며 〈동생 아만투스〉가 말했다. 팔뚝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일곱 개의 머리가 새겨진 문신의 테두리로 피멍이 들어있었고, 피부가 부어있었다.

“혼자만 중갑옷을 입고 있어서 별 수 없었지.”

요행으로 히드라를 죽였지만 확실하게 그 시련을 이겨낸 것이 〈형 도네투스〉였다. 오크 히어로라고 해도 무방한 한 방을 가지고 있었다. 히드라의 일곱 개에 달하는 아가리의 힘이 양팔에 서리는 것이 〈히드라의 타투〉가 가진 힘이었다.

덩치가 제법 있고, 중갑옷을 입어서 체중을 높였다고 하더라도 인간 하나 날려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도네투스가 현기증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피를 말끔하게 닦아내고, 땅에는 달구어진 돌이 가득 넣어졌다. 멧돼지 털가죽을 얼굴까지 덮어쓴 도네투스는 고열에 시달렸다.

약재를 먹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위험한 온도에 도달하면 차가운 물로 열기를 확 식힌 다음에 다시 말끔하게 닦아내고 멧돼지의 털가죽을 다시 덮어주었다. 밤새도록 그를 간호한 것은 〈동생 아만투스〉의 역할이었다.

반나절만에 멀쩡해진 〈형 도네투스〉는 과일을 따러 향했다. 엄청난 회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동생 오크 아만투스는 싸웠던 전쟁터를 훑었다.

형이 돌아오자 과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전날에 있었던 싸움에 대한 것이었다.

“난 왼쪽에 있었지. 기억하지?”

“머리는 안 맞았어. 또렷이 알고 있으니까, 빨리 이야기해봐.”

동생이 다그쳤다. 도네투스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살로 놈들을 견제했지. 너한테 한 놈이 가는 것을 보고 제법 안달이 났지만, 인간 놈들의 집중력을 소모시키는 것은 싸움의 기본이니까.”

그러면서 〈형 도네투스〉가 동생에게 턱짓했다. 너를 치러간 인간의 집중력을 소모시키는데 뭘 했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동생 아만투스〉는 우물쭈물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안 봐도 눈에 선하다. 〈푸아스튜아지 마지 파이세(Puastsuaj maj Poise, 상처입는 돌진 태세)〉로 그냥 무식하게 달려들었겠지. 상대는 한 놈이니까.”

검은 머리카락을 아만투스가 신경질적으로 긁적거렸다.

“인간 놈들은 우리처럼 인내심이 강하지 못해. 〈사냥꾼〉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 인간들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사냥꾼〉 짓을 좀 해본 인간의 인내심은 우리와 비슷하지.”

도네투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옆으로 돌아서 내 뒤를 치려는 놈이 보이더군. 수풀로 보이는 선명한 살색을 구분 못할 리가 없지.”

〈후장털기 베듬〉. 〈형 도네투스〉가 가장 먼저 노린 것은 그였다.

“어떻게 잡았어?”

“화살을 한 발 놈들에게 쏘고, 뒤로 빠져서 옆으로 돌아갔다. 놈은 은신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어서 내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지. 하지만 너무 다가가면 들킬 것 같았다. 신중한 놈이었고, 제법 경험이 있는 인간이었어.”

도끼를 투척했다.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는 베듬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애초에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10걸음에서 쏘아진 투척 도끼는 오크의 옆구리와 팔뚝을 비틀면서 토해지는 가속력을 받아서 빛과도 같았다.

“골통이 깨어졌지. 그리고 돌진했다. 중갑을 입은 인간이 물러서다가 내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맞서더군.”

그 뒤로는 〈동생 아만투스〉도 아는 이야기였다. 케르욘은 팔뚝에 상처를 주는데 성공했고, 막아서는데 성공했지만 〈히드라의 타투〉는 예상 못했다. 부락에서 쫓겨난 오크가 히드라를 잡는 시련을 통과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애초에 그런 타투를 본 적이 없었다.

하늘로 날아올라가서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그다음에 나머지 두 명의 인간이 미친 듯이 도망쳤다. 놈들을 쫓으려고 했지만 타투의 후유증으로 쫓지는 못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네가 인간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서 걱정이 컸지.”

“뭐? 정말 강한 인간이었어. 기사였다니까.”

그 말에 도네투스가 미친 듯이 웃었다.

“강철로 전신을 가리지 않은 기사라니. 거짓말도 정도껏 쳐야지.”

아만투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성급하게 큰 걸 쓰니까 그렇지. 몸 상태도 안 좋았잖아.”

“때때로는 기세를 높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흐흐.”

“인간들은 또 찾아올까?”

동생의 물음에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했다. 인간들은 결코 오늘의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더욱 두려워하며 걱정할 것이고, 그 걱정은 달이 뜰 때마다 더 늘어날 것이고, 이내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형제산〉을 버리는 건 상상하기 힘든데. 이곳만큼 안전한 곳도 없잖아. 가끔 트롤이 와서 노리긴 해도.”

“떠날 준비를 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최대한 과일들을 수확해서 말리고 육포를 챙겨서 떠나자.”

〈동생 아만투스〉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드낙과의 싸움에서 〈생각하는 적〉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화살을 통해서 진을 뺀 〈형 도네투스〉와는 다르게 바로 전투에 들어간 〈동생 아만투스〉는 사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가지게 되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오크 형제는 이 산을 떠날 준비를 했다. 많은 식량을 보존 식품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아만투스! 뭘 그렇게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어?”

그날 이후로 아만투스는 드낙과 싸우는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손도끼를 놀릴 때도 있었고, 그저 허공에서 박투를 하기도 했다. 피해를 보더라도 방패를 손으로 잡아서 진흙탕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드낙의 간합 싸움을 하면서 느낀 바였다. 오크보다 약한 인간이었지만, 〈생각〉을 할 줄 안다는 것에서 결코 약하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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