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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8화 (48/1,239)

0048 <-- 사냥 : 오크? 인간? -->

화살이 두 발 쏘아진 산에서 드낙은 가장 좋은 지점에서 엄폐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바위를 끼고 있었고, 앞에는 나무가 받쳐주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가파르게 내려가 있는 길이라서 대각선으로 바위에 몸을 대고 있으면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곳으로 오크가 이동한다면 드낙이 모를 리가 없었기에 오크들은 드낙의 왼쪽으로는 올 수 없을 것이다.

드낙을 기준으로 저지대인 왼쪽은 사실상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다.

‘내가 지금 가진 게···’

나무에 용접하듯이 식은 철을 무식하게 끼워 넣고, 망치로 두들긴 원형 방패는 겉으로는 가죽 방패로 보였다.

숏소드는 날카롭다고 하기에는 날이 대단히 세워져 있지 않았다. 적당히 벼려져 있었다. 칼날이 너무 날카로우면 쉽게 금이 가고 부서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힘으로 손목을 말끔하게 자를 수 있었고, 팔뚝을 덜렁거리게 만들 수 있었다.

15보의 거리에서 확실하게 장비를 갖추고도 상처를 줄 수 있는 투척 단검이 세 자루 있었다. 보통은 다섯 자루는 가지고 다녀야 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쓸 일이 없었기에 2자루는 전의 마을에서 〈검은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집에 놔두라고 줘버렸다.

출혈을 멈추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흰 가루가 든 가죽 주머니와 약초를 다진 외상약을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크고 작은 가죽 주머니가 혁대에 있었다.

밖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통수를 하도 당해서 다양한 준비가 되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혁대에 가죽 주머니가 많은 이유 중에 하나였고, 가슴 안주머니에도 만약을 대비한 가죽 주머니가 두 개는 더 있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독주머니〉였다. 드낙은 독에 대해서 놀라운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독에 유능한 연금술사에게서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쥐새끼를 잡으면서 〈마을 공동 자원〉을 통해서 품삯을 얻어 가면서 실험에 실험을 한 것이 드낙의 〈구역질 숙성독버섯 독액〉이었다.

‘센다빌과의 전투 이후에 만든 것.’

신체가 우월한 상대를 효과적으로 약체화시키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독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충 만든 것 중에서 그나마 〈즉효성〉이 뛰어난 것이라 실전에 사용하는 것을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비에 걸리거나 체했을 때 먹는 약재인 〈울퉁한 쌍버섯〉을 통한 독액이었다. 쥐에게 먹였을 때 상태가 안 좋은 독초를 9종류 두드려서 다진 것을 폐기름 먹인 가죽 주머니 안에 넣어둔 것이다.

숙성이 되면서 찌꺼기가 조금 있긴 하지만, 액체화가 이루어진다. 검에 묻히면 찌꺼기와 뒤섞인 액체가 칼날에 잘 달라붙었다.

맨손으로 만지면 마비 효과가 있었기에 장갑을 낀 채로 써야 했다.

효과는 헛구역질을 하고, 구토감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며 상처 난 곳의 피가 잘 굳지 않는 효과를 주었다. 물론 혈액 응고 억제 효과는 5분 정도로 매우 짧은 수준이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지만 즉효성이 매우 뛰어나서 싸울 때 조금이라도 우위를 가질 수 있었고, 진녹색에 약간 검은빛을 띄는 것이라서 상대가 단번에 독을 묻인 검임을 알 수 있어서 적을 소극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파괴력이 강한 덩치들을 상대할 때 요긴하지.’

덩치가 크면 클수록 독 묻힌 검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나무에 절반 박힌 화살을 보자마자 드낙은 〈하찮은 독제조〉를 통해서 만든 〈구역질 숙성독버섯 독액〉을 숏소드에 듬뿍 발랐다.

효과를 생각한다면 단순한 허세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의 숏소드를 두려워하는 것에 있었다. 또한 효과도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입을 조금 털어주면 변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드낙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의 후방에 있는 융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오크가 두 마리라니?’

떠돌이 오크 그리고 늙은 오크같이 부락을 떠난 오크들은 결코 2마리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공식이나 다름없었다. 오크는 자존심이 높고, 사회에 대한 가혹한 면도 생각 이상이라서 그곳에 적응하지 못한 오크는 내쳐진다.

패배자를 따라올 오크 하나 없었고, 밖에서 만난 오크들도 자존심이 있어서 함께하지 않는다. 인간의 가치관과 생각과는 달랐다.

오히려 죽고 싶어서 마을이나 도시에서 곤봉으로 사람을 죽이고, 술을 미친 듯이 먹다가 잠에 들어 목이 잘리는 떠돌이 오크도 많을 정도였다.

모든 오크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오크 사회에서 도망쳐 나온 오크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산에 숨어서 살아가는 오크가 두 마리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크 전사인 것도 모르겠다.’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틀어박힌 화살의 소리를 잘 들었던 〈간합의 융〉이었다. 속이 빈 나무를 쏜 것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었다.

‘드낙, 저놈이 겁을 먹었나? 도통 움직이지 않는군!’

시간은 오크의 편이었다. 종족적으로 신체가 뛰어난 것이 오크였고, 상대는 두 마리였다. 모습을 숨기고 있었기에 인간들보다 조건이 좋았다.

준비를 마친 드낙이 바위에 손가락 하나를 올리고 까딱까딱 거렸다. 신호나 다름없었다. 그 신호를 받은 융이 고개를 돌려서 수신호를 놓았다.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겨누고 독수리의 머리처럼 만들어서 쿡쿡 쿡 찔렀다.

독수리는 강자(强者)를 뜻했다. 그것이 자신의 목을 치는 것이니 곧 죽음 혹은 큰 위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만든 독수리 머리는 드낙에게 향했다.

〈드낙을 미끼〉로 쓰자는 뜻이었다. 드낙이 움직이면 오크도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면, 놈들이 어떤 오크인지 알 수 있었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겠지만 호응 정도는 해주겠지.’

드낙은 용병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번 오크와의 전투가 제법 위험한 것을 그들 스스로가 몸짓언어로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용병의 삶이 위험을 달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머리통 용병단〉이 위험 요소를 모두 배제한 채 활동했다면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큰 위험은 큰돈을 가지고 온다. 은화 8닢이면 800~1000만 원 상당의 돈이었다. 거기다가 화폐였기에 때때로 1200만 원까지 가치가 높아질 수 있었다. 보통 은화 1닢의 시세는 들쭉날쭉했고, 지역마다 달랐는데 최소 80만 원~최대 150만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오크의 방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왼쪽은 아니다. 오른쪽으로 간다.’

용병들이 다수 포진된 왼쪽으로 향하는 것은 드낙에게 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적이 2명인 상황에서 1명을 완전히 프리하게 놔두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드낙인 자신이 한 마리를 잡아두는 사이에 다른 용병들이 나머지 하나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드낙으로서는 그저 버티면 될 뿐이고, 상대가 약하다면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죽이면 내가 더욱 여유로워지지.’

만약 오크가 용병들이 주저하는 만큼이나 강하다면, 몸을 빼는 것도 쉬웠다. 한 명의 도망자보다는 동료 오크를 노리는 4명의 인간을 빨리 처리하고 싶을 테니까.

비겁하게 생각해도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드낙의 입장에서는 왼쪽보다는 오른쪽의 내리막길로 향해 오크를 노리는 것이 좋았다. 옆으로 홀로 돌아가는 일이었고, 그것은 오크에게도 위협적이고, 인간들을 여유롭게 하는 일이었다.

“흡!”

드낙이 있는 힘껏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단번에 쏘아진 화살은 정확하게 드낙이 이동하는 경로를 향해서 쏘아졌다.

타다닥!

쉭!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드낙에게 들려왔다. 달리던 드낙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달리는 속도를 가늠하지 못한 오크의 화살이 한참 옆을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깊은숲 사냥꾼〉으로 활동하면서 돈도 모았지만 숲과 산을 잘 타게 된 드낙이었다.

그의 움직임을 평범한 용병과 비교해서는 안 되었다.

갈색늑대 도노는 드낙보다 앞서나가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촤르르르!

드낙은 상대 오크의 화살을 피하자마자 여유롭게 미끄러져서 착지한 다음에 나무를 엄폐물 삼고, 수풀에 몸을 반쯤 가렸다.

달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제법 용감한 놈이로군.’

늑대와 함께 온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달려오는 모습에 드낙의 호승심이 바짝 올라왔다.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락손과 1:1 대련을 통해서 무술을 단련한 드낙은 〈전사〉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대범함을 가지고 있었다.

야수와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달려오는 오크의 발소리에 드낙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나갔다. 그 용감함을 직접 마주 했기 때문이다.

드낙은 나무의 옆으로 나왔다. 방패를 앞으로 쭉 내밀고, 숏소드를 방패 위에 검면을 걸치는 식으로 놓았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달려오는 오크를 보았다.

매우 젊은 오크였다. 수염은 검었지만 마치 동양인처럼 덥수룩하지 않았고, 조금조금 나있는 것이 전부였다. 수염 때문에 늙어 보일 순 있었지만 눈가와 목주름이 없는 젊은 피부였다.

‘덩치는 나보다 크다.’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체중도 한 급~두 급 정도 높아 보였다. 하지만 드낙은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센다빌과의 전투로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한 걸음씩 드낙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악!!!!!”

숲이 떨릴 정도의 함성을 내지르는 〈동생 아만투스〉가 쌍도끼를 든채로 달려갔다. 오른손의 도끼는 위로 왼손의 도끼는 아래에 두었다.

전형적인 쌍도끼 전사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패의 이점을 버린다는 것은 곧 〈숙련된 전사〉임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방패를 든 상대와 동수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독이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가려진 숏소드의 검신이 10보에 닿고 나서야 정확하게 보였다. 검은색과 진녹색을 섞어놓은 듯한 질척한 액체가 발라져 있었다.

기세가 누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푸아스튜아지 마지 파이세(Puastsuaj maj Poise, 상처입는 돌진 태세)〉를 거두었다.

단번에 달려들어 도끼로 적의 무기를 후려침과 동시에 몸으로 상대와 부딪쳐서 넘어뜨리거나 균형을 잃게 한 뒤에 마무리를 하는 〈오크 전사 고대 전투술〉 중 하나가 그렇게 중지되었다.

쌍도끼를 쥔 자세가 변했다. 몸을 드낙과 눈높이를 하듯이 낮추었다. 무릎을 조금 굽히고, 상체를 조급 굽혔다. 머리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상대를 조롱하는 자세 같았다.

‘언제든지 목을 찌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높은 체구를 가졌기에 찔러도 순식간에 높이를 높여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목에 닿지도 못할 터였다. 도끼에 막히겠지. 팔 길이에서도 드낙이 불리했다.

‘신중한 놈.’

용맹함과 신중함을 같이 가지고 있는 〈동생 아만투스〉를 보며 드낙이 입을 열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실험이고 이미 생각해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검은 꿈〉에서 얻은 하나의 언어에 대한 실험이었다.

‘피부색은 서로 똑같은 초록색이잖아?’

얼추 맞을지도 몰랐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고, 궁금했기 때문에 입을 열었다.

〈검은 꿈〉의 〈늑대 왕관〉에 속해있었던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에 대한 힘.

인간의 입에서 고블린의 말이 튀어나왔다.

“고블린의 말을 할 줄 알아?”

그 말에 〈동생 아만투스〉가 움찔했다.

“인간이 어떻게 고블린의 말을 하는 거지?”

“제법 인연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드낙이 발 하나를 슬금슬금 다가오자 아만투스가 왼발을 뒤로 뺐다. 눈은 숏소드를 향했다가 다시 드낙의 몸 전체를 보듯이 그 몸의 중앙에 두었다.

‘큰 수확이다.’

“그럼 인간의 말도 이해할 수 있는 건가?”

“어렵지 않지.”

〈동생 아만투스〉가 짧게 대답하고 되레 물었다.

“왜 우리들을 습격한 거지?”

“마을 사람들이 의뢰를 했거든. 산세를 내야 하나 뭐라나. 나야 잘 모르지만. 의뢰비를 받은 만큼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드낙은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원형 방패를 당겨 팔꿈치를 굽혔다가 다시 뻗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드낙이었다. 당연히 비전을 통해서 단칼에 오크를 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류(原流)는 〈에이네 앙그리프(Eine Angriff, 거짓 공격)〉.’

무거운 무기의 하단을 치는 비전이었다. 무릎을 파괴하는 것이 주된 목표물인 비전이다. 덩치가 크고, 리치가 긴 인간보다 큰 〈중대형 생물체〉를 노리기 위한 비전이기도 하였다.

직관. 감각에 의존한 중대형 생물체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기 때문에 페이크에 약한 면이 강했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비전 : 〈거짓 공격〉이었다.

당연히 철퇴를 비롯해서 강력한 타격력을 지닌 무기를 통해서 사용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숏소드와 원형 방패지.’

리치도 짧고, 파괴력도 대단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사람 손목과 팔 잘라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어깨도 덜렁거리게 만들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충격량이 있다.

스쳐 맞아도 다리에 힘이 순간적으로 풀려서 주저앉을 정도의 파괴력을 내지 못하기에 〈에이네 앙그리프〉의 비전을 곧이곧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변형시켜야 했다.

“후읍!”

승부수를 보기 위해서 숨을 참았다. 그 호흡에 〈동생 아만투스〉 또한 숨을 들이켜며 참았다.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서로가 무기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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