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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6화 (46/1,239)

0046 <-- 사냥 : 오크? 인간? -->

드낙은 거침없이 달리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한 것이 아니었기에 냉정해지는 것은 쉬웠다. 〈막내 쎈〉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그런 잔정에 휘둘릴 드낙이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의 잔혹함 그리고 이기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적이 마을을 유린했을 때, 힘을 합쳐서 그 위기를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탐욕적으로 〈검은 문〉을 열 생각도 함께 가진 드낙과는 다르게 〈사냥꾼 게릭〉의 선택은 도망이었다.

집단보다는 개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곳의 삶. 문제에 대해서 대처하는 모습은 드낙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검은 꿈〉에 휘둘리는 것은 어쩔 수없다.’

그것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욕심이었기에 잠깐 정신줄을 놓아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억지로라도 현대인의 상식을 버리는 것을 해야 했다.

지하철에 떨어진 술 취한 장년을 위해서 거침없이 뛰어드는 젊은 피보다는 사람이 죽어가는 고함소리를 들어도 침묵하며 뒤돌아서야 했다.

그게 바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생존법이었다.

“까악!”

숨어서 은밀 기동을 하며 허리를 숙인 채 천천히 가는 드낙에게 카이야가 내려앉았다.

“카이야! 주변에 적이 없는 게 확실해?”

“깍.”

카이야에게 산딸기 말린 것을 하나 물려주었다. 건포도와 맛과 질감이 가장 비슷한 산딸기의 품종은 숲과 산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 많이 없는 간식 중에 하나였고, 급박한 상황에 〈까마귀 카이야〉에게 열정을 주는 몇 안되는 것이었다.

동물도 맛있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강아지조차도 사료보다는 치킨에 홀리는 법이다.

카이야가 눈에 띄게 빠르게 혀를 놀렸다. 아껴서 먹을 심산이었다.

‘속도를 내볼까.’

드낙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자마자 속도를 빠르게 높였다. 다른 용병들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최대한 빨리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상당히 이타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초기 대응에 있어서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기에 충분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라면 오크들의 술수에 엮어나갈 드낙을 사전에 확인한 〈후장털기 베듬〉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드낙!”

워낙 거칠게 달리고 있었기에 베듬은 거칠게 소리를 내질렀다.

“베듬? 누구의 비명소리였죠?”

땀 하나 차지 않은 채로 드낙이 말하자 베듬이 속으로 놀랬다.

‘굉장한 지구력인데. 산과 숲을 타던 〈깊은숲 사냥꾼〉이라는 이름이 울지는 않는군.’

산을 달리는 드낙은 굉장했다. 하지만 숨도 차지 않다는 것에서 그의 폐활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현대인의 단련법으로 폐를 억지로 키우고 있기도 했다. 높이가 높은 산의 꼭대기에서 비박을 하기도 했다.

산소가 조금이라도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폐활량을 높여주었고, 그곳에서 운동을 조금만 해도 몸은 안 힘든데 숨이 가빠졌다.

그 단련법은 오직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방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는 현대인도 구상할 수 있는 수련법이었다.

“쎈의 비명소리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야. 오크의 함정이 있을 것이 뻔하다.”

드낙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듯했기에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죠?”

베듬이 뒷머리를 긁었다. 고민하는 모습은 짧았다. 드낙이라는 전투원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부나마 오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산버섯 마을〉의 청년들이 강도짓을 하려고 할 때, 어둠 속에서도 뛰쳐나가 선두에 섰던 드낙이었다.

그 용맹함은 이번에는 만용으로 변질될 것이 분명했다.

‘상황은 오크에게 있다. 그를 죽게 내버려 둔다면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어.’

“오크들의 힘은 대단하지. 쎈이 저렇게 비명소리를 하게 놔두지 않을 리가 없어. 놈들의 뜻대로 놀아난다면 모두가 개죽음을 당할지도 몰라.”

드낙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베듬의 뒤를 따랐다. 베듬은 능숙하게 산을 내려갔는데, 그 어떤 곳보다 험하고 가파른 곳만 골라서 갔다.

“헉. 헉.”

베듬은 숨을 거칠게 내뱉으면서도 결코 멈추지 않았고, 내려가는 속도를 높였다. 드낙은 여유로웠다. 산을 내려가는데 그만의 요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어 가능한 속도를 유지하는데 신경 쓰면 될 뿐.’

그중에 하나의 요령은 바로 무리해서 속도를 줄이려고만 하는 짓이었다. 인간의 두 다리는 속도를 줄이는 일에 대해서는 맹탕이었다. 네발로 브레이크를 거는 것과는 달랐다. 또한 길쭉했기에 평지가 아닌 곳에서 균형을 잡는 일도 힘겨웠다.

그렇기에 겁이 날 수밖에 없어서 온몸에 힘을 빡 주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베듬이 하는 짓이었다.

‘나도 저랬었지.’

아무리 산을 타도, 요령을 얻고 안 얻고는 결국 자신의 몫이었다. 배우지 못하는 용병이 그것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평생을 어렵게 산을 내려가야 했다.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착지할 때 강하게 힘을 줘서 브레이크를 줘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주문이었다. 두 다리로 내려가면서 생기는 속도감을 줄이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베듬도 온 힘을 주면서 때때로 수풀을 잡으면서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발을 살짝 비스듬하게 주면서 옆으로 표면력을 주었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잘못하다간 발목이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거침없이 발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주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안정적으로 착지 지점을 제대로 확인했는데, 단순히 한 곳만 보지 않았다. 눈을 빠르게 돌려서 앞으로 가야 할 곳도 체크했다.

척 보면 위험해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몸 또한 옆으로 돌았기에 옆으로 내려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옆으로 내려가는 게 더 편하다.’

그리고 이 하산 방법은 드낙의 삶에서 얻은 요령이 아니었다. 잘 걷지 않고, 내성발톱으로 고통받았던 박호훈의 군 시절에 얻어낸 요령이었다. 앞으로 우직하게 내려가면 엄지발가락의 발톱으로 큰 고통을 느꼈었다.

평범할 때는 겪지 않았지만 산을 내려갈 때마다 짓눌리면서 고통을 느꼈기에 느리게 내려가면 욕을 하도 먹었었다.

그렇게 해서 옆으로 걷기를 얻게 되었다. 내성발톱도 없고, 되려 전사와도 같은 몸을 지닌 드낙의 육체는 그 요령을 한 차원 진화시켰다.

“많이 지치지? 후욱. 훅.”

암반을 잡거나, 수풀을 잡고 혹은 나뭇가지를 쥐기도 했던 베듬은 떨리는 손을 주억거리며 그것을 숨기며 말했다. 하지만 드낙은 태평했다.

“아뇨. 합류지점이 따로 있습니까? 가는 길이 다른데.”

“마을 쪽이야. 그곳으로는 제아무리 이번 일을 계획한 오크라도 허튼짓은 하지 못했을 거야.”

과연, 그곳으로 가니 용병들이 보였다.

“베듬! 가장 뒤에 있는 놈이 왜 이렇게 늦었어?”

“갈 때도 후방인데 올 때도 후방이면 내가 왜 너희들이랑 돈을 나눠 가지겠어?”

융이 베듬을 껴안았다. 그리고 드낙을 보더니 헛기침을 했다.

“다행히 엇갈리지 않았군요.”

“베듬이 아니었으면 오크의 저녁밥이 되었을 겁니다.”

불 하나 지펴지지 않은 곳이었고, 공터라고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막내 쎈〉에 대한 잔정 때문에 드낙이 먼저 말했다. 다른 용병들에게는 성질 급한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산골마을 출신답네.’

‘무지렁이나 다름없군.’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쎈을 구하러 갑니까?”

“이미 우리의 계획이 어긋났는데, 여기서 다시 오크를 잡으러 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드낙은 답답할 노릇이었다. 벌써부터 추적술에 능한 것이 드러나는 오크를 만났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무려 〈순찰자 수업〉을 받은 막내 쎈을 박살을 낸 것이다. 떠돌이 오크인지, 늙은 오크인지 상관없이 죽인다면 바로 〈검은 꿈〉을 꿀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로 쎈은 유능한 정찰병이었다.

활을 두 종류나 다루는 것부터 용병질을 하면서 얻은 경험치까지. 허투루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젊고 유망 있는 용병이 죽었으니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고, 마음도 급해졌다.

반대로 머리통 용병단은 내켜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목숨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래? 대장.”

융이 고민했다. 그리고 드낙을 곁눈질로 보더니 이내 한숨지었다.

“6명이서 오크 하나도 잡지 못하고 되레 동료를 잃고 마을로 돌아간다면 〈산버섯 마을 사람〉들은 저희에게 은화도 내어주지 않을 겁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융에게 다가가듯이 내밀면서 말했다.

“무서워 보이던 용병이 오크 하나에게 꼬랑지를 보이며 도망쳤는데, 자존심 때문이라도 은화를 주지 않으려 할 겁니다.”

‘돈! 용병들은 결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군다나 쎈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이미 사라졌다. 잘 하면 머릿수도 하나가 줄어드니 〈머리통 용병단〉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은화는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 질척한 생각까지 드낙은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돈으로 보는 용병들의 생리를 생각한 것뿐이라 은화에 대한 것을 걸고 들어간 것이다.

“일리 있어.”

〈정보꾼 메르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융이 그녀를 쳐다보자 양팔을 펼치며 말했다.

“왜? 은화 8닢이야, 대장.”

드낙은 굳이 그 은화 중 1닢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융의 눈이 〈방패덩치 케르욘〉에게로 향했다. 〈손없는 센다빌〉과도 견줄 수 있는 덩치를 지닌 케르욘은 어깨를 으쓱했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돈도 중요하지만, 제법 경험 많은 오크일 거야.”

“그래도 늙거나 떠도는 오크라고. 쎈이 당한 건 우연일지도 몰라.”

“숲에서의 싸움이니까 가능한 일이야.”

메르인의 말에 융이 한 마디 거들었다. 베듬이 고개를 끄떡이며 끼어들었다.

“쎈의 복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복수에 대해서는 케르욘이 몸을 크게 일으키며 덧붙여 말했다.

“그 오크는 곱게 죽지는 못할 거야.”

융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결국 한 번 더 가는 것으로 되었군.”

말은 그렇게 해도 돈 이야기에 귀가 팔랑 거린 것은 비단 메르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융 또한 드낙의 말이 매우 현실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은화 8닢이다.’

추가적으로 융은 그 오크가 늙은 오크라는 것임을 직감했다.

가장 약한 쎈을 이용한 것부터 자신들 5명을 모두 상대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것이다. 혼자서 여섯을 상대하기에는 버겁고, 자신이 가꾼 산을 버리기에도 이제는 나이가 찼다.

더는 가지 못하는 떠돌이 생활의 종착역인 이 산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을 것이다.

‘만약 늙은 오크라면 그런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쎈이 고함을 지르게 만든 거다. 경고의 의미로 떠나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용병과 마주치는 것조차도 어려워하는 늙은 오크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법 신빙성이 있었다.

그 고함 소리를 듣고 융을 비롯한 용병들의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용감하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 것은 오직 드낙 뿐이었다. 급박한 상황,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는 18년이 넘도록 지겹게 들은 윤리관과 20년이 넘도록 본 생생한 미디어를 통한 간접 체험이 매우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용병들은 생생하게 싸움을 경험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계획이 비틀어졌다는 것은 곧 생명의 위험을 뜻했다. 도망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베듬이 융에게 속삭였다.

“드낙은 이번에도 쎈을 구하러 미친 듯이 달렸어. 내가 봤다고.”

융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지도 않았다. 드낙은 오크와의 싸움에 집중한 채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해당 정보를 공유 받은 용병단이 속으로 검은 웃음을 지었다.

‘선두를 그에게 맡기면 되겠군.’

말하지 않아도 선두를 차지할 것이다. 〈오크 슬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산골마을에서 제법 주워들었을 것이다. 그 명예로운 이름 속에 깃들어있는 짙은 피맛과 쌓아올려진 뼈 무더기를 보지 못한 채 그저 높은 이름이라고만 생각하겠지.

‘산골 마을 출신답다.’

“준비되셨습니까? 놈은 늙은 놈일 겁니다.”

만약 젊은 놈이어도 상관없었다. 젊다고 모두가 〈오크 전사〉인 것이 아니었다. 오크에게서 〈전사〉는 곧 계급이었다.

‘드낙과 오크의 첫 부딪침으로 오크가 전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훌륭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융은 사전에 약을 쳤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젊은 놈이라도 상처는 두려워할 겁니다. 이곳 근처에는 오크 부락이 없기에 상처를 입으면 그대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낌없이 떠돌이 오크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해주었다. 드낙은 그것을 매우 주의 깊게 들었다. 오크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시피했고, 아주 가끔 상인과 함께 찾아오는 〈이야기꾼〉은 별 거지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오크를 잡는 오크 슬레이어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했고, 열병을 비롯해서 관절염까지 걸린 오크를 상대하듯이 썰어젖히는 주인공이 있었다. 믿을 수 없었기에 융이 말해주는 〈떠돌이 오크〉에 대한 정보는 드낙의 귀를 매우 집중하게 만들었다.

“접근하면 알아서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싸울 줄도 모릅니다. 부락에서 쫓겨난 오크라서 힘만 쎈 깡패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들 겁니다.”

“그런 놈이 쎈을 어떻게 잡은 걸까요?”

“기습이겠죠. 초록색의 피부를 생각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막내 놈이 다른데 정신 팔렸을 때를 노렸을지도 모르지.”

용병들은 하나같이 쎈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야만 드낙이 오크에게 가장 먼저 달려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오크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있었던 판타지 소설? 그곳에서 오크는 1만 명이 덤벼도 10미터짜리 소드맛스타들이 일검에 썰어버린다.

반지의 제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 오크도 찬밥 신세네.’

물론 그런 것보다는 강할 것이다. 하지만 떠돌이 오크에 대해서 들어본 바에 의하면 형편없는 도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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