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 <-- 횃불 성채로 향하는 길 -->
“안 됩니다!”
화창하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가을 하늘 아래에서 〈형 도네투스〉가 소리쳤다. 그의 옆에는 피떡이 된 채 굵은 송곳니가 반으로 부러진 〈동생 아만투스〉가 쇠사슬을 찬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비켜라, 도네투스! 전통의 법도 대로 모든 것이 결정 났으니, 그를 죽여 대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쌍둥이의 저주가 내리기 전에 흙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골도, 신장도, 얼굴도 똑닮은 도네투스와 아만투스는 오크 쌍둥이었다. 그리고 그 불경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면 누구라도 불안감을 느꼈다. 마치 〈살아있는 호수〉와도 같아서 괴기스러우며 이질적이었다.
호수에 비친 한 명의 오크가 살아서 두 명으로 두 개의 심장으로 세상에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미신은 오크의 전통이 되어서 내려오고 있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전사(大戰士) 수브락키(Souvlacki, 단단한 발)〉! 약속을 지켜주시오! 나는 한 명의 전사가 되었고, 전통을 거부할 〈히드라의 타투(Hydra's Tattoo)〉를 얻었소!”
〈형 도네투스〉가 주술사의 옆에 있는 대전사에게 다가가서 오른팔을 과시하듯이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머리가 7개인 히드라가 서로 뒤엉키며 팔뚝으로 이빨을 들이밀고 있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모두 진녹색의 히드라 문신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였다.
“······”
“수브락키..단단한 발! 그 이름을 얻은 자가 왜 대답을 못하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겠지! 안 그런가! 뭐라고 말을 해보라!!!”
아명(兒名)을 가지고 있을 뿐인 도네투스가 도끼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모두가 소리쳤다. 아우성을 질렀다.
“거기까지다! 도네투스! 이것은 전통이야! 모두가 원하고 있다! 단순히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도네투스가 소리쳤다.
“이 문신 또한 전통이다! 이게 너희들이 원하는 전통이다!! 그 전통을 거부하는 것이 너희들이다!”
주술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오크의 시련〉을 뛰어넘어 〈전통의 거부권〉을 획득한 것이 도네투스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권력자가 쌍둥이의 죽음을 원한다.’
누구 하나는 죽어야 했다. 〈쌍둥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도네투스는 뛰어난 〈오크 전사〉였지만 그는 부락에 영향력 있는 오크 전사는 아니었다.
프랑스의 구국 영웅이라고 칭송이 대단한 잔다르크조차도 자국의 병사들이 올린 성문을 보며 소리치다 적에게 포로로 잡혀야 했다. 영웅조차도 권력자를 이기지 못하는데 그저 뛰어난 오크 전사를 증명한 도네투스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끝까지 〈히드라의 타투〉를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이 부락에서 나가라. 그게 네가 피를 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대주술사의 말에 〈형 도네투스〉가 번쩍하고 피떡이 된 동생을 팔로 잡아서 허리에 두었다.
“도네투스!”
그의 가족이 그를 불렀다. 그가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으흐흐. 흐흑. 미안하다. 미안해.”
과일나무를 특히나 좋아해서 산에서 과일나무를 관리하며 멧돼지를 쫓는 것이 특기인 그의 어머니가 도네투스에게 눈물을 흘렀다. 동생의 머리를 왼손으로 만졌고, 오른손으로는 도네투스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정말로 갈 것이냐? 부락을 떠난 오크는 살아남기 힘들다.”
도네투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더러운 명예욕이 그의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지독했다. 아명을 가지고 있을 뿐인 어린 오크가 히드라를 때려잡았다. 요행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오크가 밖에 나가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하는 가증스러운 입을 쥐어뜯고 싶어졌다. 거짓을 논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형 도네투스〉는 부락을 떠났다.
최소한으로 자비를 받아 동생을 치료할 약은 얻을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굵직한 중저음이 〈형 도네투스〉에게 들려왔다. 어둠을 헤치고 동굴로 들어온 오크는 〈동생 아만투스〉였다.
“이거 봐. 전에 말벌집을 찾았다고 했잖아.”
“그새 술을 담갔어? 숙성은?”
“벌써 다 됐지~."
아만투스가 거침없이 바닥에 앉았다. 시냇물가에 있는 점토를 허물어가져와서 구운 큰 독 안에는 산 채로 수장당한 말벌이 가득했다.
“몸은 괜찮아?”
“그래. 며칠만 좀 쉬다 보면 괜찮아질 거다.”
멧돼지 털 가죽을 몇 겹이나 덮고 있는 〈형 도네투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윤기가 죽어있었고, 흰머리와 새치도 많았다. 생기 있는 눈보다는 고통에 잠을 못 이루어 눈 밑이 검었다.
깊은 곳에 사는 〈숲 트롤〉이 오크 형제가 가꾸며 키운 산을 노렸고, 그들은 당연히 거세게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그 전투의 여파로 〈형 도네투스〉는 3일째 앓아누워 있었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흐으. 좋다.”
말벌술을 비롯해서 산에 나는 뿌리 약재를 제법 달인 것을 섞어 뜨겁게 마시면서 도네투스가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동굴을 둘러보며 주제를 골랐다.
“식량은 충분하잖아. 아침에 어딜 갔다 온 거야?”
“약재 찾으러 다녔지. 그 트롤놈이 또 올 때를 대비해서 함정도 여럿 놓았고.”
“혼자 오래 다니지 마. 술 가지러 가는 것도 미리하고. 밤에는 오크라도 위험해.”
그 말에도 동생 아만투스는 어깨만 끄덕일 뿐이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똑같은 쌍둥이 오크였지만 동생의 튀어나와있는 송곳니는 하나가 반으로 똑 부러져 있었다.
“잔소리는. 이거 봐봐. 트롤과 싸우고 나서 〈야지(野地)의 신〉께서 시련을 내려주셨어.”
앞가슴을 열어젖히며 희미한 자국에 불과한 타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쭉 찢어진 눈과 큰 귀걸이를 하고 있는 형상의 희미한 타투 자국이었다.
“들은 적이 있는데.”
그가 기억을 더듬었다. 동생 아만투스가 기대에 찬 모습을 했다. 그리고 〈형 도네투스〉가 킬킬거렸다.
“아, 진짜.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라고.”
“지금 정색한 거냐?”
반쯤 남은 말벌술을 동생이 당기자 형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며 유쾌하게 말했다.
“신의(信疑)의 중간에 끼여서 평생을 믿음과 의심으로 살아가는 〈탐욕의 인간〉을 사냥하는 시련이다. 우리들의 신께서는 네가 독립하기를 원하는구나···”
인간을 죽이는 것. 그것은 어엿한 한 명의 오크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형 도네투스〉가 말끝을 흐렸다.
“이참에 뒷산을 내 산으로 해버릴까?”
“애꾸눈 트롤을 잡고 나서는 해봐도 될 것 같지만 아직은 이르다.”
“나랑 동갑이면서 뭐가 이르다 마네야.”
티격태격하면서 그들은 말벌술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른 오크가 없는 인간들의 세력이 있는 곳의 인근 산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었다. 〈오크의 전통〉이라는 울타리에서 도망치는 것은 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동생 아만투스〉는 그들 형제가 이름 붙인 자신들의 산인 〈형제 산〉을 둘러보며 전날과 다른 것을 둘러보며 다녔다.
태어나면서부터 뛰어난 사냥꾼의 재능을 타고난 오크는 인간이 숙여서 확인해야 할 흔적을 가만히 걸으면서 볼 수 있었고, 인간이 가까이서 맡아야 하는 냄새를 멀리서도 맡을 수 있었다.
그저 지나가는 수풀의 아주 작은 틈새의 색깔마저도 곁눈질로 무슨 색이 지나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의 분별력이 뛰어났으며 석궁의 장력에서 튀어나오는 빛살과도 빠른 볼트를 10걸음걸이에서도 피할 수 있었다.
인간들은 오크들을 천박하게 부를 때 〈걸어 다니는 들짐승〉이라는 뜻의 〈게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
〈형제 산〉의 중턱. 그중에서도 가장 완만한 곳이라서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을 멀리서 둘러보던 〈동생 아만투스〉가 눈을 좁혔다.
〈수풀의 자연스러운 흐들거림〉이 무너진 곳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수풀의 흐들거림〉은 멀리서 확인할 수 있는 오크 종족만의 분별력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뻗은 수풀의 헝클어짐을 확인하는 것을 말하였다.
‘짓눌린 것처럼 망가져 있군.’
동물들이 다니는 숲길조차도 〈형제 산〉에는 없었다. 철저하게 오크에게 관리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식물을 밟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동생 아만투스는 그것을 확인한 것이다.
훅!
평지를 내달리는 준마처럼 초록색의 피부를 가진 오크가 내달렸다. 내리막길에서도 질풍처럼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오크였다. 인간은 겁이 나서 못 달리는 내리막길이고 설사 달린다고 해도 앞으로 머리부터 고꾸라질 속도에도 능숙했다.
들썩! 파사사!
큰 나무에 착지한 동생 아만투스가 히죽하고 웃었다. 속도감에 몸이 저릿했다. 나무는 체중이 150kg이 넘는 아만투스의 몸을 버티고도 멀쩡했다. 형이 크게 아끼는 오크 나무였다. 다른 오크 나무와는 다르게 등이 굽어 있어서 착지하기도 좋았다.
〈코머 브리따(Kommer Bryta, 부러지지 않는 활)〉를 만들기 위한 그들 부족만의 전통 있는 오크 나무 생장 방법이었다. 위에는 바위가 자연적인 것처럼 곧게 자라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3명. 흔적을 지운 것을 보니 한가닥 하는 놈들이군.’
인간이 지워버린 흔적을 통해서 인원수를 정확하게 맞추어낸 〈동생 아만투스〉는 무릎을 꿇고 눈을 바닥에 가까이 대었다.
‘체중이 무거운 놈. 발바닥이 크다. 여자도 하나 있군.’
나머지 하나는 특징이 없어서 알 수 없었다. 적당한 전사라고 봐야 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감히.’
화가 끓어올랐지만 금방 진정되었다. 곰 앞에서 활을 쏴야 하는 것이 사냥꾼이었다. 누구보다도 흥분 속에서 냉철해야 했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오크의 기본 덕목이기도 했다.
〈동생 아만투스〉는 초입까지 훑었다.
‘나무 위에서 정찰까지 했군.’
나무의 껍질을 강하게 짓눌러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힘을 잔뜩 써서 생긴 상처를 손으로 더듬었다. 그 위로도 사람의 짧은 보폭처럼 나무의 상처가 확연하게 그 눈에 담겼다.
‘전문적인 놈들이다.’
〈동생 아만투스〉가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큰 줄기는 3명으로 이루어진 한 그룹이었다. 그들은 완만한 중턱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올라갈 때 내려갈 때 모두 방향을 크게 생각하였다. 멀리서는 보기가 힘든 곳만을 골라서 다녔다.
그곳 가까이 간다면 그 흔적을 볼 수 있었지만 가지 않을 곳이었기에 오고 갔을 것이다. 〈수풀의 흐들거림〉이 아니었다면 오크의 눈조차도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정찰꾼까지 썼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동태를 살피고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산버섯 마을의 인간들이 기어코 우리들의 경고를 무시하는군.’
두 명의 오크 형제가 가꾸고 키운 〈형제 산〉의 자원을 함부로 가져간 그들 인간에게 경고한 것이 1년 전이었다. 더는 오지 않아서 잊었는데, 놈들이 인간 전사들을 보낸 것으로 보였다.
“희멀건 원숭이 새끼들이.”
형제산의 초입과 중턱 사이에 있는 또 하나의 〈오크 나무〉에서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크 나무로 도끼의 형태를 잡고, 불순물이 가득한 매우 단단해서 깨지기도 제법 잘 깨지는 철을 붙이는 오크의 무기를 제작하는 〈오크 나무〉는 오크들에게 있어서 매우 민감한 자원이었다.
그것을 파헤친 흔적에 크게 노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나무 밑동을 조심스럽게 파보았다. 중요한 뿌리가 몇 개 부러져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짐승 내장〉과 산약재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서 하급의 오크 나무가 될 수밖에 없었다.
‘10년째 기르던 놈인데.’
이번 년 아니, 내년까지는 자원으로 쓰지 못하고 놔둬야 했다. 뿌리가 다시 자라서 흡수력이 높아질 때까지는 써도 가구로나 쓸 법했다.
‘인원은 총 5명인가? 예비까지 둔다면 7명은 되겠지.’
〈동생 아만투스〉는 그대로 반대편의 인간이 오르기 힘든 거친 곳을 통해서 동굴로 되돌아갔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을 잘 알았다.
사냥 당하는 쪽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멈추어섰다.
그의 형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