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 <-- 횃불 성채로 향하는 길 -->
욕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칼밥을 먹는 것도 모두 〈융〉이 생각하고 있는 은퇴를 다른 이들도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칼 휘두르며 살아도 결국 그들 또한 노후를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머리통 용병단〉의 욕심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상처 입으면 도와줄 보험료 따위 없었으며, 가족도 도와주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친밀함의 정도는 가계마다 달랐지만, 자신의 인생을 버려서까지 남을 도와주는 가족은 손에 꼽았다. 그리고 그럴 여건이 안 되는 것도 대부분이었다.
불구가 된 가족을 정부, 사회단체로부터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는 현대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그들에게 지워지기에 결국 짧고 긴 차이가 있을 뿐 파국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삭막하다고 여기는 그들의 행동은 정글과도 같은 사회가 한몫하고 있었다.
용병단의 욕심은 자신이 살기 위한 것이었다. 욕심쟁이가 아니라면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것은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사냥꾼 게릭도 똑같았다.
마을에서 제법 멀리 있는 야산으로 향하는 길은 재미 하나 없었다.
“마을이 약속을 어기면 좋겠는데.”
케르욘은 메르인과 보폭을 맞추며 말을 꺼냈다.
“또 흉악한 소리를.”
“크크.”
〈방패덩치 케르욘〉이 비열하게 웃었다.
“왜? 뭐가 어때서. 놈들에 대한 확실한 처리가 가능하잖아? 굶기기만 해도 그들이 가진 은화를 다 가질 수 있을걸?”
“우린 강도가 아니야.”
〈정보꾼 메르인〉이 질색했다. 말 그대로 산적의 수법이었다.
“못해도 마을에 은화 20닢은 있을걸. 그러니까 8닢을 애새끼들 몸값으로 주겠지.”
“애새끼들 몸값이 아니라 오크 잡는 대가라잖아.”
케르욘은 다르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저었다.
“무력시위도 제법 좋겠지. 불화살만 쏴도 항복할걸? 오크 하나 못 잡아서 우릴 보내는 것만 봐도 겁쟁이 소굴이라고.”
“시끄러워.”
메르인이 매몰차게 대했다.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것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늘씬한 몸에 멀대같이 키가 큰 〈후장털기 베듬〉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식한 놈아. 진흙에 오랫동안 묻히고 묻힌 목책이야. 불화살을 쏜다고 해서 놀랄 것 같아? 전혀 아닐걸. 놈들의 집을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대비가 되어있을 거라고.”
“흥. 그렇다고 해도 겁이 많은 놈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장정이 다 몰려와도 협박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집단이라고.”
그렇게 케르욘과 베듬이 티격태격했다. 드낙은 그것을 엿들으면서 케르욘을 쓰레기로 생각했다.
‘미친 새끼네.’
산적과 다를 바가 없는 마인드였다. 용병이 한순간에 강도가 될 수 있음을 크게 깨달았다.
‘제대로 횃불 성채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융의 신뢰와는 다르게 케르욘의 천박한 생각은 드낙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마적으로 인해서 락손의 죽음을 본 드낙이었다.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있었는데 죽어버렸기 때문에 〈산적〉 같은 놈들을 보는 것은 락손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정말로 불쾌한 기분을 만들게 했다.
산의 초입에 들어서기 전에 휴식을 가졌다. 여기까지 오는데 융은 능선 반대편의 숲길을 이용했다. 상대가 산에서 내려다봐도 볼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었다. 드낙은 그런 융의 철두철미함에 감탄했다.
‘그저 나무로도 가려질 것인데.’
시간을 더욱 들여서 아예 길에서 내려가서 험지를 걸었던 것이다. 불만 하나 없는 것을 보니 자주 하던 짓인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융이 〈기본적인 용병단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때 험지도 거침없이 갈 수 있는 용병단이 가진 무게를 떠올렸다.
‘적을 치러 갈 때마다 길을 벗어나니. 자랑으로 여길만 하지.’
그것이 자랑이고 자부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만의 노하우이기도 했지만 안다고 해서 따라 할 수가 없었다. 번거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편해지고 싶은 게 사람인데, 적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렵게 길을 걷는다?
‘힘든 일이지.’
대장이라도 부하들의 불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려면 평범한 용병 대장과는 다르게 영향력이 아주 커야 했다. 그리고 융은 신체적으로 봤을 때, 케르욘보다 한수 아래였음에도 용병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바로 저 산이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산이다.”
“함정일 리는 없겠지?”
케르욘의 말에 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놈들의 면상을 보면 모르나? 용병단을 잡아먹을 정도로 간이 큰 놈들이 아니야.”
“난 좀 의심스러워. 40명의 장정들이 우리에게 시비 하나 털지 않았잖아. 뭔가 노리는 게 있다고 봐.”
드낙은 메르인의 의견에 찬성했다.
“조심해서 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오크가 여럿 있는 것 아닐까?”
막내 쎈의 말에 융이 한 소리를 툭하고 내뱉었다.
“그랬다면 벌써 수백 마리로 늘어나 있겠지.”
융이 발로 바닥의 흙을 고르게 하고 나뭇가지 하나 쥐어서 작전을 설명했다.
“동그라미 친 곳이 목표지점인 야산이야. 오늘은 중턱까지는 갈 거다. 야산으로의 진입은 마을 방향이 아니라 측면으로 돌아서 들어갈 거야. 오크가 있다면 반드시 마을 쪽으로는 보기 좋게 관측 지점을 만들어놨을 거다."
마을에서 나와서 직선으로 가는 것은 실로 어리석었다. 거기에 추가로 융은 땅의 낮은 지점으로 억지로 힘들게 걸어왔기 때문에 여기서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그가 만든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짓이었다.
다른 방향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았다.
“베듬은 후방에 접근하는 놈이 있는지 봐줘야 하니 우리들의 뒤에서 따라와.”
“맨날 하던 짓이니 걱정 말라고.”
“막내 쎈은 오른쪽을 맡아서 정찰을 해주고.”
“예. 대장.”
융의 눈이 드낙에게 돌아갔다.
“드낙 씨는 왼쪽을 정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늑대 도노와 까마귀 카이야를 부리는 드낙이었다. 어떤 상대가 숨어도 간파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우직하게 산의 중턱으로 향하며 오크의 흔적을 찾는다.”
간단한 전략이었다. 후방에 요원을 배치해서 안전성을 도모하고, 양측면은 소수의 인원으로 적을 찾는다. 그리고 중앙의 인원은 빠르게 오크의 흔적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혼자 있을 때, 결코 오크의 흔적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오크를 찾는데만 집중하셔야 합니다.”
융은 드낙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드낙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케르욘이 한 걸음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드낙의 머리를 가리키며 진지하게 말했다.
“충고를 받아들여라. 오크를 상대해본 적이 없잖아? 흔적에 감각이 돌아갔을 때, 정확하게 도끼가 네 골통에 박힐 수도 있다.”
드낙이 입을 열었다.
“알았소.”
“흥.”
케르욘이 몸을 돌렸다. 싸움도 못 거는 것을 보니 드낙이 형편없는 놈으로 여겨졌다.
‘미친 곰탱이가 돌았나?’
드낙은 케르욘을 속으로 욕했다. 용병단을 등에 업은 놈이기에 싸움을 건다면 드낙이 10번 싸워 10번 질 것이 뻔했다. 패배할 싸움을 할 드낙이 아니었다.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자신의 덩치만 믿고 있는 놈을 벌써 한 명 죽여본 것이 드낙이었다. 센다빌의 거친 숨결을 대거로 목을 그대로 그어버린 것이 자신이었다. 케르욘은 두렵지 않았다. 〈센다빌과의 대결〉 이후에 덩치 큰 놈도 목을 그어낼 생각을 한 것이 드낙이었다.
그 자신감의 발판이 그를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다. 생판도 모르는 놈들을 따라서 호위비를 낸 것이다.
호위비를 냈는데 싸움에 동원된 이유는 드낙 또한 은화를 만지기 위해서였다.
베듬이 귀신처럼 뒤로 물러났다. 은신하며 천천히 자신들을 따라올 것이다. 거리가 차이가 나도 누구 하나 뒤를 돌아보는 이 없었다. 그만큼 〈베듬〉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드낙에게 〈막내 쎈〉이 말했다.
“자꾸 뒤를 돌아보지는 마세요. 적에게 힌트를 주는 것이니까요.”
“예.”
대답하며 드낙도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솔로 플레이나 다름없는 쎈과는 다르게 드낙은 든든한 아군이 따라왔다.
잘 먹어서 처음보다 덩치가 커진 〈갈색늑대 도노(Dono)〉 그리고 나무 위에서 동태를 살피는 〈까마귀 카이야(Kaiya)〉가 드낙을 지켜줄 것이다.
융과 케르욘의 충고대로 드낙은 오크를 찾는데 집중했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높이를 가늠하고, 오르기 좋은 두툼한 나무를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살피기도 했다. 카이야가 그 위에서 이리저리 내려다보았다.
늑대 도노는 코를 벌름거리며 이리저리 코를 들이밀었다.
‘있기는 한 건가? 심한데.’
1시간 동안 냄새 하나도 잡지 못한 드낙이 오크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을 할 정도였다.
“깍.”
카이야가 소리를 내며 다가와서는 날개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드낙은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뭐가 있다는 거지?’
지나치게 곧게 자란 나무였다. 그 주변에는 이상하게 다른 나무가 없었고, 자잘한 잡초나 꽃 혹은 수풀만 있을 뿐이었다. 본능적으로 인위적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운 좋게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공터로 볼 수 있었지만 〈다른 나무〉가 없다는 것이 드낙의 생각에 잡혔다.
‘오크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자란 나무가 오크의 흔적인가? 그건 알 수 없었다. 근처를 수색한 드낙은 오크가 없다고 확신하자 나뭇가지로 공터 바닥을 훑으며 나무에 다가갔다. 혹여나 〈덫〉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덫도 없네. 흔적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도노가 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다.
‘뭔가 있다!’
드낙도 땅을 파헤치는데 도움을 주었다. 검집으로 훅하고 흙을 긁어냈다. 단번에 썩은 내가 물씬 풍겨왔다. 도노를 뒤로 물린 드낙이 검집으로 나무 밑을 유심히 보았다. 파헤쳐 진 곳에서 나오는 썩은 내는 온갖 동물의 내장이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뭐지? 비료로 쓰려고 해놓은 건가? 약간 한약 냄새도 조금 나는데.’
먹지 못하는 부위를 모아서 나무 밑에 놓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짓은 아니었다. 드낙은 파헤쳐진 흙을 도로 돌려보내고, 검집에 묻은 썩은 내를 지우기 위해서 나뭇잎을 뜯어서 비볐다.
도노의 앞발은 흙으로 냄새를 지웠다.
또 다른 흔적은 그 뒤에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새하얀 곰의 척추뼈였다. 워낙 굵어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나뭇가지에 엮어놓은 넝쿨 밧줄로 묶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경고의 의미인가?’
곰도 혼자서 잡는다는 것을 알리는 듯했다. 평범한 마을 사람이었다면 팬티를 지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둠을 사냥으로 이용하는 〈마브로스 리꼬〉 검은 늑대마저도 잡아낸 사냥꾼이었다.
‘같잖네.’
오크의 면상을 보고 싶어졌다. 분명 소설과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전에 약속된 시간이 되어서 드낙은 돌아갔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융이 드낙이 오자마자 말했다.
“해가 중천이 되었을 때, 다시 초입에서 모이는 거 아니었습니까?"
“도착했을 때를 말한 거였습니다.”
서로 간의 작은 오해가 있었다.
“오크를 보셨습니까?”
“아니요. 나무 밑의 내장 썩은 것과 곰의 척추뼈가 묶여있는 것을 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의 말에 케르욘이 히죽 웃으며 막내 쎈을 놀렸다.
“이런! 순찰자도 꿈꾸던 녀석이 사냥꾼한테 져버렸네?”
과장되게 ‘이런!’이라고 소리친 케르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익살스러움에 메르인이 키득거렸다.
“하지 마세요. 내기도 안 했는데.”
“패배지, 패배.”
케르욘은 막내 쎈의 자존심을 건들며 히죽거렸다.
융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을 진행했다.
“그건 〈오크 나무〉랑 〈곰의 경고〉라고 불리는 것이오. 확실하게 오크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증거요?”
“오크들이 관리하는 나무가 바로 〈오크 나무〉요. 보통 나무랑은 확연히 다른 품질을 지니고 있지. 평범한 철검 따위 그대로 구부려버릴 정도로 대단한 내구력을 가지고 있어서 통나무는 큰 값을 받을 수 있소.”
동물 내장을 비롯해서 〈독특한 방법〉을 사용해서 키우는 오크 나무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강력한 목재 무기였다.
“곰의 징표는 인간을 겨냥한 경고 신호요. 근처에 인간이 보이면 초입에 하나 걸어놓는 것이지.”
“많이 걸어놓지는 않나 보군요.”
융이 드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고를 못 봤다고 말을 해도 도끼부터 날리는 놈들이 바로 오크지. 사실상 〈전통〉에 지나지 않는 것이 〈곰의 경고〉요. 전통을 생각하는 오크이기에 귀찮지만 하는 것이고 실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되려 환영하는 게 오크입니다.”
“환영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드낙의 물음에 융이 즉답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지방이 많아서 먹기가 좋고, 좋은 물건을 들고 있어서 전리품으로 딱이라는 소리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크에게 인간은 걸어 다니는 황금 고블린이라는 소리잖아.’
그것을 무덤덤하게 말하는 융은 그런 오크를 제법 상대해 본 것 같았다.
“아직 해가 떠있는데 더 추적할 겁니까?”
“놈의 모습을 봤다면 추적했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일찍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융은 그렇게 하루를 소비했다. 산에서 특히나 적을 찾는 일은 생각 외로 몸과 정신이 크게 소비되는 일이었기에 오래 할 것이 못 되었다.
목표물이 된 오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면 강행할 수 있었지만 그의 머리털 하나 보지 못했기에 오늘은 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