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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2화 (42/1,239)

0042 <-- 횃불 성채로 향하는 길 -->

마을 회관은 〈검은 산골 마을〉보다는 규모가 컸다. 그곳에서의 원탁회의가 마무리되었을 때에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드낙과 〈머리통 용병단〉은 횃불을 끄고 모닥불을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횃불은 아까웠기에 주변의 장작을 모아서 모닥불을 지필 수밖에 없었다.

“크으응.”

모두가 잠을 청했다. 〈방패덩치 케르욘〉이 코를 골았다.

카이야가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었고, 늑대 도노는 포로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눈을 조금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것만으로도 누구 하나 탈출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겁이 나기보다는 진정으로 죽을 수 있다는 기분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손속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듯한 용병단의 사전 준비를 보면서 누구도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

“동쪽으로 가면 바로 가파른 언덕이 있어. 올라가면 정확하게 나무 사이로 여기가 보여. 사격하기에는 최고야.”

주변을 정찰 나가며 바닥에 눈여겨볼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장털기 베듬〉부터 막내 쎈은 사격하기 좋은 곳을 손으로 두 곳만 딱하고 집었다.

만약 난전이 일어나더라도 일행은 그 2곳에 있는 사람을 아군으로 여길 것이다.

다른 이들은 마을을 향하는 길 밖으로 잔디를 엮어서 함정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드낙은 새삼 이 용병단이 정말로 강한 용병단임을 알 수 있었다.

‘준비가 남다른데.’

다수의 힘을 가진 용병단과는 다르게 실력이 높고, 대응하는 수준이 정밀했다. 간단하고 자원이 들지 않는 함정은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난 마름쇠를 가지고 다니려고 했는데, 저렇게 풀끼리 엮어두면 발이 걸려 넘어질 거다.’

마을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었기에 많은 인원이 달려오다가 뒤엉킬 것이다. 부상은 크지 않겠지만 바닥을 바라보고 걷는 이가 많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나 또 배우네.’

그렇게 해서 준비를 마친 용병들은 자정까지 쥐 죽은 듯이 휴식을 취했다.

“까악! 깍!”

푸드득! 푸드득!

카이야가 신나게 날개를 퍼덕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누구 하나 뭐라고 할 것 없이 바로 일어났다.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은 밤에 까마귀의 움직임은 귀에 선명하게 파고들어올 수 있었다.

“끙.”

몸을 일으킨 케르욘은 찌뿌둥한지 불편한 소리를 냈다. 용병단에서 가장 힘이 좋았고, 체격이 크기에 그는 중갑옷을 가지고 다녔다. 평상시에는 가죽 갑옷이 전부였지만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중갑옷을 덧입었다.

중갑옷을 입고 잤기에 불편한 것이 당연했다.

몸을 움직이며 잠을 깨우며 근육을 예열하기 시작했다. 물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이미 충분히 마셨다. 약간의 술 한 모금과 육포 한 조각이 일어나서 먹은 것의 전부였다.

횃불이 가득했다. 족히 30개는 넘어 보였고, 곤봉을 비롯해서 농기구를 쥔 40명의 장정들이 문에서 나와서 천천히 걸었다.

“케르욘은 뒤로 먼저 가 있어.”

“어찌 돈 좀 쥐어본다 싶더니.”

결국에는 피를 봐야 하는 듯했다. 돈을 주는 것은 어렵지만 사람이 죽는 것은 쉬운 것이 이 세상이었다.

케르욘이 짐수레를 끌고 후방으로 향했다. 짐수레의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드낙은 바로 옆에서 짐수레가 끌려나가는 것처럼 들리자 귀를 후볐다. 밤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멀리까지도 뻗어나갔다.

100걸음 밖에서 촌장과 장정 셋만 가까이 다가오자 케르욘이 어느새 융의 옆으로 왔다.

“짐수레 지키라니까.”

“초장에 기세를 잡아야죠. 대장. 그 무거운 곰가죽을 어떻게 훔치고 달아나겠소?”

‘또 도졌네. 말을 말자.’

융은 더 말하지 않았다. 케르욘은 100번 말을 잘 듣다가도 1번 거부할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러했다. 그때는 용병 대장인 그조차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순한 황소처럼 따르다가도 이상한데 꽂혀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게 〈방패잡이 케르욘〉의 성격이었다.

〈정보꾼 메르인〉은 그럴 때마다 케르욘이 생리를 한다고 갈구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머리통 용병단〉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황당할 정도의 가벼운 의견에 대해서 말하며 그 고집을 안 꺾었기 때문이다.

생리한다고 말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고집을 때때로 피우는 게 케르욘이었다.

물론 그때 한 번 넘어가면 그 이후로는 아주 어려운 결정에도 융의 말을 따르기도 했기에 아직도 그가 융과 함께 용병질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몸값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말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단박에 반말이 융의 귀에 들려왔다.

“용병답게 돈부터 찾는군.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대신에 다른 것을 통해서 은화 8닢을 주고 싶다.”

〈촌장 마운팅스〉가 지팡이에 양손을 꼭 감싸서 몸을 지탱한 채 말했다. 〈간합의 융〉은 뽑지 않은 롱소드에 오른손을 올린 채 두 걸음 나왔다. 서로 간에 10걸음이나 간격이 있어서 그의 얼굴은 모닥불의 빛에서 나오는 그림자에 가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닥불을 등진 용병단의 모습은 제법 무서운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쥔 횃불의 희미한 붉은빛이 아주 옅게 그들을 비추었지만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일단 조건을 말해봐라.”

융은 처음에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마운팅스는 반말로 시작했기에 융도 말투를 바꾸었다. 그 무례한 모습에 성난 표정을 지었지만 마운팅스는 무덤덤했다. 애초에 용병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것이 〈촌장 마운팅스〉였다.

‘오히려 그렇게 나와주니 마음이 편하다.’

악인(惡人)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분노는 훌륭한 면죄부였다. 분노에 휩싸인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애인을 죽이고, 부모도 죽일 수 있었다. 용병을 죽이기에는 충분한 면죄부였다.

“은화 8닢을 주는 대신에 우리 마을의 의뢰를 하나 맡아주었으면 한다.”

같잖은 소리나 다름없었다.

“의뢰? 우리가 그것을 받을 이유가 있나?”

“안 받으면 별 수 없지. 포로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촌장이 강하게 나왔다. 용병들이 보기에는 노골적인 연기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안달이 난 것은 포로들이었다.

“산주님! 산주님! 저 모리슨입니다! 여, 여기 레긴도 있어요! 레긴은 손목이 잘려나갔어요! 범죄 농노나 노예가 되면 죽을 거예요! 촌장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포로들이 버둥거리다가 한 명이 휘청거리자 한꺼번에 옆으로 쓰러졌다. 목을 중심으로 연결이 되어있었기에 몸을 가누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허리로 엮어있다면 힘으로라도 균형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목은 그러지 못했다.

용병들의 포승법이 가지는 무서움이었다. 도주를 해도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바로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포승을 하는 용병들만 알았다.

“악!”

쓰러진 이들을 향해서 촌장이 역정을 냈다.

“입 다물어! 뭐가 잘 났다고 살려달라고 하느냐! 마을 안에서 똥물을 그렇게 싸고 다녀서 밖에서도 싸고 다녀도 된다더냐? 철없는 놈들아!”

촌장이 몸을 돌렸다. 함께하던 청년회의 장정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정말로 가야 하나?’

멀뚱히 있는 장정들에게 촌장이 손에 쥔 지팡이로 다리를 쳤다.

“뭐 해? 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들에게 전해서 빚을 내서 데려오든지 말든지 하라고 해.”

그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융으로서는 보낼 수 없었다.

‘빚? 말도 안 되는 소리.’

다시 찾아온다면 모르쇠로 답할 것이 분명했다. 저들은 목책도 두터웠다.

‘이번 〈길〉은 돈이 되는 길이다.’

허탕을 칠 것 같았지만 엄청난 상품의 곰가죽을 얻었다. 늑대를 부리고 까마귀를 조련하는 겁 없는 사냥꾼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가 세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것도 행운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융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저건 쇼다.’

융은 40명이나 끌고 왔으면서도 야유조차 하지 못한 것도 눈여겨보았다. 촌장에게 〈산주(山主)〉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촌장의 마을 장악력이 대단한 듯했다.

‘협상을 해도 괜찮은 집단이다.’

“기다리시오. 의뢰가 어떤 것인지는 들어보고 가시오.”

결국 융이 그를 멈추어 세웠다. 일단 대화를 최대한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촌장 마운팅스〉가 몸을 다시 돌렸다.

“들을 마음이 생기셨나?”

“용병에게 돈 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안 들을 수가 있나.”

융이 낮은 저음으로 키득거렸다. 다른 용병들도 흐흐 거리고 웃었다. 메르인은 여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미소만 지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확연하게 횃불의 불빛으로 보였다.

‘악귀같은 놈들이구나.’

난폭한 케르욘의 웃음소리가 가장 끔찍하게 들려왔다. 이 모든 것은 연출에 불과했다. 가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세울 줄 아는 것이 용병이었다. 최고의 용병은 가오 하나만으로도 싸움을 중지시키는 용병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물론 실제로 가오가 전투력인 곳도 있었다. 제법 큰 도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먹 용병〉의 경우에는 가오가 곧 전투력이었다.

“마을에서 해가 지는 쪽에 보이는 산에 늙은 오크가 하나 살아가고 있네.”

“고작 오크 하나 잡아달라는 것이 의뢰요?”

융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마운팅스를 바라보았다. 촌장이 혀를 찼다.

하지만 기싸움이 끝난 두 명이 대화를 시작했다.

“끝까지 들어보시게. 보통 늙은 오크가 아니니까 이러는 것이지. 산에서 어떻게 사람이 오크를 이기겠나? 우리 〈산버섯 마을〉은 약탈할 것이 전부 산에 있어. 버섯을 양식하고, 잘 큰 나무를 베어서 약초를 옮겨 심기도 하지.”

“봄부터는 나무 수액을 얻기도 하고. 그런데 그 늙은 오크가 나타나고 나서는 힘들어졌어. 놈은 〈산세(山稅)〉를 내라고 하며 패악질을 하고 있는지도 벌써 1년이지.”

“용병 고용은 해보지 않았소?”

“해봤지. 산에서 오크를 상대하는 일이라 오는 용병단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 은화 몇 얻자고 찾아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오크에게 팔 하나는 날아가고 꽁지 빠지게 도망쳤지.”

메르인이 융에게 속삭였다.

“오크 전사 같은데.”

융이 턱에 손을 올렸다.

“선수금으로 은화 3닢. 놈의 목을 가지고 오면 나머지를 드리지.”

선수금을 걸었다. 의심스러운 의뢰에 대한 확신은 돈으로 얻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죽을 놈들.’

“···좋소.”

또한 융은 모든 포로를 풀어주었다.

“대장?”

“풀어줘.”

모두가 그 말을 의심했다. 하지만 융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촌장 마운팅스〉가 말한 〈산버섯 마을〉의 약점 때문이었다.

‘스스로 그런 말을 하다니. 어지간히도 설득시키고 싶었나 보군. 실수였다.’

마을의 약탈할 것이 전부 밖에 있다는 말을 한 그의 말은 융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은화를 안 줬을 때 장기전으로 돌아가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내어줄 것이다. 오크가 괜히 산세를 걷으며 산 것이 아닐 터였다.

‘산적에게는 노다지겠군.’

마을의 규모가 커서 그간 잘 피해왔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큰 마을의 경유지에서 반나절 떨어져 있는 것도 컸다. 산적의 핫 플레이스에서 떨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장정 40명이라서 작은 산적은 일찌감치 리스트에서 지우고, 규모가 되는 산적은 거들떠도 안 보는 애매한 곳.

그곳이 바로 〈산버섯 마을〉이었다.

포로까지 단번에 풀어준다는 말에 마운팅스가 크게 좋아했다. 일부러 숨기기에는 아주 큰 이득이었고, 확실하게 마을 사람들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대화에서 이득을 본 이는 겉으로는 마운팅스로 보였지만 확실한 방지책을 손쉽게 얻어낸 융도 속으로 웃고 있었다.

“드낙 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융이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며 몸을 돌려 드낙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다뇨? 가만히 있어도 은화 1닢 받는 거 아닙니까?”

능청스러움에 융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일이 바뀌었으니 지분을 원하신다면 함께 하셔야죠.”

“하하.”

드낙이 말도 안 된다며 헛웃음을 냈지만 속은 달랐다.

‘떠돌이 오크라···’

군침이 돋았다. 자본주의에서 태어난 현대인의 욕망은 수많은 소비문화를 통해서 그릇 자체가 이곳의 사람들과 차원이 달랐다. 〈검은 꿈〉으로 얻는 다양한 능력은 그 어떤 마약보다 강렬했다.

레벨업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고블린을 만나더라도 능숙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늑대 무리에 둘러싸여도 되려 몸을 돌려 늑대의 편이 될 수 있었다. 사용해보지 못한 무기도 실전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은화 2닢은 어떻습니까. 저는 산에서라면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융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만 해도 과잉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 드낙을 끼우는 것일 뿐이었다. 은화 8닢 중 1닢을 사용해서 든든한 전투원 한 명을 넣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어중이떠중이라도 오크 하나 못 잡다니. 한 수는 있는 놈이 분명하다.’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 것이 융의 운용 방식이었다. 그들의 사냥은 준비된 사냥이었고,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도와드리죠.”

융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최대한 함께 다니면서 산을 수색할 생각입니다. 며칠 걸릴 수 있지만 놈이 저희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 중요하죠.”

작전은 간단했다. 최대한 은밀기동해서 멱을 따버린다는 것이었다.

또한 마을에서 추가 식료품을 구비하기도 했다. 독은 없었는데, 그것을 확인해준 것은 드낙이었다. 드낙이 야생의 새 하나를 단번에 조련해서 미리 먹여보았기 때문이었다.

융이 감탄했다. 쓸모가 많은 것이 드낙이었다.

‘보면 볼수록 굉장한 조련술이야.’

“누구한테서 배웠습니까?”

“고블린한테서 배웠습니다. 이빨이 전부 나간 놈이었죠. 늙었고. 동굴에서 살았는데, 1년도 안 되는 만남이었죠.”

드낙은 그 말을 끝으로 더 말하지 않았다. 매우 궁금한 이야기였다. 물론 다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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