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 <-- 횃불 성채로 향하는 길 -->
〈산버섯 마을〉의 〈켄의 패거리〉는 유명했다. 온갖 장난질부터 제법 큰 사고도 일으켜서 마을의 골칫덩어리들이었다. 청년회와도 정면충돌을 해서 몽둥이찜질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문제아들의 집합소였다.
“이 녀석! 대체 무슨 사고를 또 친 거냐!”
산에 있기 때문에 목책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고, 경비를 서는 마을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나무문은 혼자서도 열 수 있도록 도르래의 형식으로 되어있었으며, 체중을 아래로 내려서 열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다.
〈산버섯 마을〉이었기에 가능했다. 〈횃불 성채〉의 건축에 있어서 도와준 마을이었기에 그 지식을 일부 계승하고 있었다. 〈성채 도르래〉를 목책에 썼기에 문이 눈으로만 본다면 쉽게 열린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새잡이 도박〉의 얼굴이 작은 횃불을 통해서 켄의 눈에 담겼다.
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손을 괜히 모아서 꼼지락거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소꿉친구 레긴〉의 손목이 날아갔다. 켄의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침을 몇 번이고 삼켰다. 그는 이내 그것을 말하지 못했다.
“···전에 상인이 갑옷을 보여준 적이 있잖아. 그것을 사려고 강도짓을 하려고 했다가 되려 잡혔어. 몸값을 내래. 한 명에 은화 1닢이야. 총 8닢이라고.”
짝!
단번에 켄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주먹을 쥐지 않은 이유는 켄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이 산골 마을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생긴 거지 같은 정(情) 때문이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남의 것을 탐내다니! 맞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거기에 뭐? 뭐?”
〈새잡이 도박〉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겨울에는 산을 타고 다니며 새를 잡고 다니는 그였기에 허벅지 근육은 축구 선수와 비견될 정도로 허벅지가 아주 발달되어 있었다. 그의 발달된 허벅지와는 다르게 손목은 앙상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도박의 다리 힘 때문에 켄이 어린아이처럼 밀려나가 목책의 벽에 등을 부딪쳤다.
“자, 잠깐! 못 내면 모두 횃불 성채로 잡혀가서 십 년을 광산 노예로 살지도 모른다고! 촌장님한테 도와달라고···”
그가 서둘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였다. 하지만 도박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소란이 일어나자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리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창문이나 문 앞에서 지켜보았다. 치마폭에 애가 들러붙어 있기도 했다.
“무슨 일이야?”
〈나무꾼 액서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상황은 진정되기보다는 더욱 험악해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말수가 적고 과묵한 나무꾼 액서스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분노했다. 마을의 공동 자원이 허무하게 반토막이 날 정도의 큰 사고를 친 것이다.
“은화 8닢? 은화 8닢이 장난으로 보이냐! 1년을 물레방아 위에서 걸어야지 얻을 수 있는 돈이다! 그것도 사치 하나 부리지 않고!”
“악! 아, 아!!!”
켄의 머리채를 잡고 액서스가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어느새 모인 이들이 막았다. 켄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뜯겨져 나갔다.
“저 개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니까!”
액서스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었다. 워낙 힘이 세서 말리는데 세 명이나 달려들더니 이내 한 명이 더 다가와서 다리를 하나 들자 그제서야 기세를 막을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이게 무슨 소란이야!”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허리가 굽은 채 마을 주변의 버섯부터 시작해서 산에서 나는 온갖 것들의 군생지(群生地)를 알고 있는 〈촌장 마운팅스〉였다. 촌장을 할 정도로 늙어버렸는데, 제법 팔팔할 때는 산주(山主)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산에 대해서 잘 알았다. 마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기도 했다. 척하면 척, 산에 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길이 험해서 모두가 모르는 곳도 척척 기억해내기도 했다.
힘이 떨어진 요즘에는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탁탁!
“윽.”
지팡이 하나 쥔 채 걸어가는데 방해하는 발들을 치면서 앞으로 향했다. 아프다고 소리를 크게 지르지는 못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모두 하나 정도는 있었기 때문이다.
“촌장님! 살려주세요!”
켄이 단번에 무릎을 꿇었다. 아주 자연스러웠고,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을의 여론은 비난 일색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이 다리를 부러뜨려야 해!”
“일을 배울 〈애송이〉가 되지도 않고, 청년회와도 한 번 다퉜던 패거리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만! 입 좀 닥쳐봐!”
〈촌장 마운팅스〉가 지팡이를 이리저리 겨누었다. 지팡이를 겨눌 때마다 조용해졌다. 마운팅스가 얼마나 마을사람에게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 조용해지자 켄에게 발언권이 자연스레 돌아갔다. 그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이 때다 싶어서 〈소꿉친구 레긴〉의 손목이 날아간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금 밖에 없다.’
촌장 마운팅스의 카리스마와 마을에 뻗쳐있는 영향력만 믿어야 했다. 마을 사람을 조용히 시키고, 자신에게 말해보라고 제스처를 취해주자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 고백하자마자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개새끼가!”
핏줄을 세우면서 침을 튀기며 촌장이 지팡이로 켄을 개처럼 패기 시작했다.
“컥! 켁!”
켄이 태아처럼 웅크렸다. 무슨 놈의 지팡이가 곤봉으로 맞는 것처럼 아팠다.
“지, 진정하세요!”
말리는 이가 있었고.
“더 패! 더 패!”
촌장이 스스로 망나니를 후려패니 부추기는 이도 있었다.
“저런 개망나니 놈은 처맞아야지, 정신을 차린다니까!”
다시 난장판이 시작되었다.
“어휴! 저런 씨부럴! 에효!”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밖으로 샌 격이었다. 촌장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은화 8닢이라니? 까마득하게 많은 돈이었다. 무슨 일이 생길 때 써야 하는 마을 공동의 비상금이 애새끼들의 몸값으로 나가게 생겼다.
‘괘씸한 놈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여기며 몇 번이나 용서해주었던 그였다.
대충 바닥에 앉아 분을 삭이는 촌장에게 냉수가 놓아졌다.
“켄! 이 미친놈이!”
켄의 몸이 크게 들썩 거렸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마자 거칠게 뒤로 넘어갔다. 아버지인 겐이 그대로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양쪽 어깨에 손이 다닥다닥 잡혀서 그를 끌어당겼다.
“끌어내려!”
지팡이로 켄의 아버지 겐의 머리통을 쿡쿡 누르면서 촌장이 소리를 질렀다. 소란은 꺼질 줄을 몰랐다.
“레긴의 손목이 잘렸다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 동생 모리슨은? 야! 켄!”
〈켄의 패거리〉 8명의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와 삼촌까지 이리저리 뒤엉켜서 말하기 바빴다.
상황이 진정되고 나서야 생산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족히 1시간은 흐른 듯했다.
“은화 8닢은 개소리야! 이대로 끌고 가서 강도짓을 했다고 해도 받는 보상금은 동화 10닢도 안 될걸?”
“네가 잡아봤어? 횃불 성채는 위험한 곳이야. 무엇이든지 부족해서 범죄자들이 매일같이 죽어나간다고.”
“헛소문이야!”
“내가 봤어! 한 번 갔을 때, 시체를 나르더라고.”
횃불 성채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하면서 괜히 음모론이 퍼졌다. 거기서 범죄자 농노나 노예가 되는 판결을 하기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대부분이 음모였고 헛소리였지만 그것의 진실을 가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 장벽이 있었다.
거짓을 걷어내기에는 수많은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보 자체가 적은 이 세계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놈들에게 흥정을 해야 해. 은화 8닢은 너무 큰돈이야.”
“은화 4닢도 많지.”
“현물 거래를 하는 게 더 나을걸. 화폐를 내어주는 건 난 반대야.”
내어줘야 할 몸값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너무 비쌌다. 〈애송이〉 시절을 보내지도 않고 18살이 된 놈들에게 은화 8닢은 너무 컸다. 한화로 친다면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은화 8닢이었다. 작은 산골 마을에서는 큰 돈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일곱 명을 가지고 있으니 몸값은 내야 하지 않겠소?”
청년회의 막내가 입을 열었다.
“눈 뜨고 코가 베이는 걸 그냥 그대로 당하자고? 놈들은 저 산 너머에 산채를 만들어서 두고두고 우리를 약탈할 거다!”
“모두 몰려가면 놈들도 몸값을 달라고 하지는 못할 거요!”
“맞다! 우리만 해도 40명이 넘는데!”
규모가 작은 마을이었기에 청년회 소속의 남자들은 40명에 불과했다. 그래도 〈검은 산골 마을〉보다는 많았다.
탁! 탁!
〈촌장 마운팅스〉가 상석에 앉아서 지팡이로 원탁을 두들겼다.
“미친놈들. 그 애가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용병이다. 용병!”
휙!
지팡이가 돌아가서 청년회의 남자를 하나 쿡하고 찔렀다.
“너, 몇 년이고 칼밥으로 먹고사는 놈들이랑 싸워볼래? 응? 응?”
쿡! 쿡!
“아, 악! 어, 어르신.”
“어르신은 개뿔, 하나같이 목숨 내놓고 다니냐! 마초적인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그럼 은화 8닢을 그대로 줘야 합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산주님!”
"산주는 얼어 죽을, 산에도 못 가는데···"
촌장이 그렇게 대꾸하면서 물음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화가 나서 켄을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았나?
은화 8닢이면 마을의 큰 문제도 해결할 만큼 큰돈이었다. 괜히 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공동으로 매년마다 조금조금 모은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지. 들어 보라고.”
지팡이를 원탁 위에 놓으면서 쭈글쭈글한 손이 놓였다. 산을 오래 타면서 생긴 실낱같은 흉터들은 마치 주름살과도 같았다.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며 생긴 숱한 상처들. 비를 맞으며 비싼 것을 찾아다녔던 젊은 날의 흉장(胸章)이었다.
“우리가 벌떼처럼 달려든다면 놈들은 우리 마을 사람을 죽이고 도망갈 것이다. 어둠이 깔린 산에서 사람 쫓는 게 쉬운 일인가? 놈들 중에 하나를 잡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잡더라도 끝난 게 아니지.”
누런 이를 드러냈다.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청년회에 속한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누구 하나 불구 되는 건 순식간이야. 난 용병 하나에 사람이 셋이나 죽는 것도 봤어. 개싸움에 능한 놈들이지.”
꿀꺽.
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죽는 이들은 물론이고 부상자도 많다. 불구가 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어. 켄의 말을 들었지? 그 레긴의 손목이 날아갔다. 사람을 공격하는데 두려움 하나 없는 놈들이야.”
“······”
〈촌장 마운팅스〉가 그렇게 말하고 상체를 뒤로 내빼며 한숨 쉬며 말했다.
“분노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산에서 살다 보면 화를 낸다고 다 옳은 것이 아니야. 급하게 산비탈을 내려오면 어찌 되는가?”
“미끄러져서 크게 다칩니다.”
“용병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그들은 사람 죽이는 놈들이지. 도망치고 나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산에 덫을 놓으려 가다가 기습당해서 목이 그어질지도 몰라···”
오싹함이 퍼졌다. 늙은이답게 아는 것이 많았고, 듣는 것도 많았으며 말하는 것도 잘 했다. 그렇기에 늙어서도 살아있을 수 있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닌 마운팅스가 노쇠해서도 병에 들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돈 이외에 다양한 것을 많이 손에 쥐었기 때문에 늙었음에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한 늙은이는 묘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 세상의 논리였다. 스스로 쌓아둔 것이 없다면 먹지 못해서 굶어죽던지, 빌빌 거리며 살다가 병에 걸려 죽는 것이 대부분 노인의 말로였다.
특히나 산에서 자리를 잡은 〈산버섯 마을〉은 더 했다. 다른 곳은 제법 농지만 있어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에서 사는 〈산버섯 마을〉은 달랐다.
자연의 힘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했기에 잔혹한 면모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늙고 병든 늑대가 무리에서 내쳐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을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노인은 점차적으로 먹지 못해 병들어 죽는 것이 보통이었다.
장작이라도 팰 수 있는 〈켄의 패거리〉는 강제로라도 일을 하게 할 수는 있었다.
〈촌장 마운팅스〉의 노련함은 그 나이를 본다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스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주름과 나뭇잎에 베인 실같은 흉터로 가득한 손으로 자신을 빚은 것이다.
〈산주(山主) 마운팅스〉라고 괜히 높여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작은 마을의 촌장이 가지는 생각은 남달랐다. 촌장으로 남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역량이 뛰어났다.
“이대로 은화 8닢을 내어주면 용병들은 평화롭게 일을 마무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존심은 바닥을 치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운팅스의 말에 몸이 행동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도움을 촌장이 그들에게 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존심을 버리면 용병들은 신나게 술집에서 떠들 것이다. 시원한 안줏거리지. 여름에 얼음이 띄워진 맥주를 마시는 기분일 터다.”
“빌어먹을.”
곳곳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상스러운 비속어가 난무했다.
“그러니 그 구색이라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때를 기억하나? 사냥꾼 게릭이라는 녀석이 찾아와서 강매를 하려고 했잖나.”
“아주 빌어먹을 떠돌이 놈이었죠. 실력은 좋아 보였습니다만.”
마운팅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와 지금은 같아. 조금만 주무른다면 상황은 그 때처럼 확연하게 달라질 거야.”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청년회가 그 늙은이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