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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9화 (39/1,239)

0039 <-- 횃불 성채로 향하는 길 -->

〈횃불 성채〉는 그 독특한 모습과 거기에서 오는 역할답게 주변 지역에 몬스터가 많았다. 때때로 오우거가 무리를 끌고 내려올 정도로 험악하게 싸우기도 했다. 횃불 성채의 거대한 횃불은 몬스터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몬스터를 처리하고도 그 주변에 몬스터가 많을 정도로 골치 아픈 지역이기도 했지다.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나절을 가는 도중에 강도, 산적은 고사하고 몬스터도 만나지 못했다. 드낙은 아쉬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도 전에 비박할 곳을 찾았다.

일행은 해야 할 일을 배분 받고 흩어졌다. 드낙은 이곳의 지리를 몰랐기에 〈방패덩치 케르욘〉과 함께 주변 장작을 모으는 일을 맡았다. 막내 쎈과 메르인은 가장 힘든 일인 물을 퍼오는 일을 맡았다.

힘이 좋은 케르욘이 물을 퍼오는 것이 얼핏 보면 공평해 보였지만 철저하게 당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이번에는 메르인과 쎈이 물을 가지러 간 것이었다.

“흐으응흐~.”

술집에서 주워들은 노랫소리를 내며 케르욘은 느긋하게 장작을 모았다. 적당한 크기의 떨어진 나뭇가지를 많이 주워야 했기에 허리가 꽤나 아플 것 같았지만 용병답게 요령을 잘 피웠다.

촤아악. 쫘악.

발로 장작을 한 곳에 잔뜩 흙이랑 함께 모아놓고,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장작을 모으고 마른 덩굴로 묶었다. 드낙은 그 모습을 뒤늦게 보고 따라 했다. 케르욘은 굳이 드낙과 말을 섞지 않았다. 애초에 말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이는 성격이었다.

드낙도 과묵하다면 누구보다도 과묵해질 수 있었다.

두 남자는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장작을 가득 모았다. 생각보다 많은 장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무가 가득한 곳의 밤은 매우 춥기 때문이었다. 돌을 데워야 했고, 데우지도 않고 그저 땅바닥에 잠만 자면 컨디션이 확 줄어들었다.

언제 무슨 전투를 할지 몰랐고, 적을 사전에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기감이 좋아야 했다.

‘피곤은 모든 능력치를 떨어지게 만들지.’

온기는 인간의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발로 장작을 가득 모으고, 줍기를 1시간. 그리고 죽은 나무를 손도끼로 손도끼로 후려 패서 팔뚝만 한 것을 8개 가져왔다. 이 굵직한 나무는 불을 오래 유지해줄 것이고, 모닥불의 형태를 잡는데 중요했다.

죽은 나무 넝쿨도 보이면 뜯어왔다. 그것을 가져온 드낙은 앉아서 넝쿨을 손으로 비볐다.

싹싹싹! 파사삭!

가루로 변하면서 수분기가 사라져갔다. 나무와 흙을 쥐면서 손에 메말랐기에 땀 하나 없어서 열이 바짝 나는 비비기에 넝쿨은 부서지며 조금 있던 수분기마저도 사라졌다.

그곳에 부싯돌로 탁탁 쳐주면 그만이었다. 드낙이 첫 불을 놓을 곳을 만드는 사이에 케르욘은 능숙하게 모닥불의 형태를 잡고 있었다. 굵직한 나무를 4개 놓고 그 안쪽에 최대한 작은 나뭇가지를 끼운 다음에는 마치 오와 열을 놓듯이 작은 장작들을 세워 눕혔다.

탁! 탁!

부싯돌이 두 번 번쩍이며 그대로 불씨가 태어났다. 손으로 가리고 살살살 불자마자 단번에 흰 연기가 훅하고 뿜어졌다. 모닥불에 불씨를 놓고, 바람을 불었다.

“후! 후!”

드낙이 몇 번 불다가 뒤로 빼었다. 케르욘은 눈치도 좋게 대신 불어주었다.

그 사이에 융은 새를 2마리 잡아왔다. 베듬은 버섯이나 먹을 수 있는 산에 나는 것들을 가져왔다.

“끙!”

메르인이 소리를 내며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천천히 그리고 넘치지 않게 가져왔다. 그것은 쎈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은 곰가죽이 실려있는 짐수레에서 자신의 냄비를 가져와서 가장 먼저 물을 끓였다.

“뭘 하려고 물을 끓여요?”

메르인이 다가와서 묻자 드낙이 입을 열었다.

“끓여서 마시거든요.”

그녀는 별난 취급을 했다. 시원한 물만큼 맛있는 게 없는데 뜨겁거나 미지근한 물이라니? 듣기만 해도 별로였고, 마시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금방 흥미를 잃었다. 물로 대충 고양이 세수하듯이 세안을 마친 이들은 각자 먹을 것을 꺼냈다. 공통으로 먹을 수프는 제법 큰 냄비가 함께 썼고, 언제나 융의 역할이었다. 그만큼 수프를 잘 만드는 사람이 없었다.

능숙하게 가져온 물로 채소를 한 번 헹구고, 손으로 비틀어 찢어발겨 안으로 넣었다. 편식하는 케르욘 때문에 맛없는 채소들은 전부 손으로 찢어발기기 싶다시피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먹질 않았다.

“또 그렇게 넣는 거야? 이젠 먹는다니까···”

“이거 더 걸쭉해지고 좋아.”

케르욘이 틱틱 거렸다. 그러든 말든 융은 수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베듬이 가져온 먹을 수 있는 버섯의 머리는 따서 넣고, 그 아랫부분은 얇게 썰어서 넣었다. 고기도 빠질 수 없었다. 지방이 두툼한 것이 좋았다.

돼지비계가 가득하고 살코기가 적은 뱃살 부분이었다. 물론 소금으로 절여놓은 것이었다. 생육을 여행 가는데 가져갈 병신은 이곳에 하나도 없었다. 훈제를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는데, 가격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금 절인 돼지고기를 사용하면 소금 간이 필요 없지.’

그리고 훈제한 오리고기를 소량 꺼냈다. 이것은 제법 아껴야 했다. 살코기는 없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은 구이용이었다. 비계만 먹기에는 살코기의 식감과 맛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깍.”

까마귀 소리를 내며 카이야가 모닥불로 거침없이 다가왔다. 막내 쎈은 그것이 실로 신기한지 쳐다보기 바빴다. 케르욘이 거칠게 말했다.

“하루 종일 짐수레에서 잠만 자던 놈이 밥때가 되니 기가 막히게 찾아오는군.”

오는 길 내내 짐수레에서 껌뻑 곯아떨어져서 배까지 보인 놈이 바로 〈까마귀 카이야〉였다. 드낙은 무덤덤하게 카이야의 밥을 챙겨줬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말했다.

“밤에는 자면 안 돼.”

“깍.”

“이 녀석이 불침번을 선다고요?”

쎈이 기가 찬 표정으로 물었다.

“예. 생각보다 똑똑해요.”

드낙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카이야가 쎈을 보고 울음소리를 내며 마치 그를 평가하듯이 주위를 돌더니 이내 엉덩이를 콱하고 부리로 쪼고 드낙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악! 이 녀석이 절 쪼았어요!”

“정말로 똑똑한데.”

케르욘이 크크하고 웃으면서 데우던 술의 온도를 확인했다. 융은 수프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요리에 제법 신경을 많이 쓰고 공을 들이는 티가 팍팍 났다.

‘누가 보면 셰프인 줄···’

크응.

늑대 도노에게도 고기가 돌아갔다. 드낙은 생각보다 먹는 것에 들어가는 돈이 제법 되었다. 고기를 먹고 나서는 뼈다귀 하나가 쥐어졌다. 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케르욘이 은근 슬쩍 발을 들이밀어 뼈다귀를 툭하고 건드렸다.

찌릿.

눈총을 쏜 늑대 도노는 소리 하나 안 내고 뼈다귀를 물고 으슥한 곳으로 사라졌다. 마치 같잖다는 표정이었다. 재미를 못 본 케르욘은 입맛을 다시면서 데운 술을 돌렸다.

“한 잔 들자고.”

술 한 잔을 하며 일행은 까마귀의 불침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확신이 필요했기에 이것저것 카이야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한 번 실험을 해보자고. 쎈이 조심스럽게 여기로 다시 와 보는 거지.”

“그건 안 통할걸요. 이미 한 번 봤잖아요.”

“그런 것도 구분할까?”

“예. 제가 잘 알아요.”

하루아침에 방침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루 보고, 이 까마귀의 덕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 상관없습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하등 불편한 것이 없었다. 용병들의 불신도 잘 알았다. 까마귀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기 때문이었고, 그중에서도 카이야는 특출나다는 것을 몰랐다.

고객인 드낙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그대로 데운 돌을 땅속에 넣고, 흙으로 덮었다. 바닥에 털가죽 하나 펼치고 잠을 청했다. 도노는 능숙하게 드낙의 등에 몸을 맞대었다.

까마귀 카이야는 두툼한 나뭇가지에 올라갔다. 용병들 모두 그것을 확인했다.

“괜히 노려보는 것 같네.”

한 번 쪼인 막내 쎈이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불침번 하는 내내 카이야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었다. 가끔 나뭇가지의 나뭇잎을 쪼아서 아래로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불침번을 서려고 일어난 용병들을 놀래켰다.

“너 이 자식아.”

케르욘은 크게 화를 내지 못했다. 모두가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짐승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꿋꿋이 참는 그의 앞으로 나뭇잎이 줄줄 떨어져내렸다.

“하지마라.”

“까악.”

코웃음 치는 듯한 울음소리에 케르욘이 술을 찾았다. 드낙이 아끼는 것이었기에 쳐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법 말귀도 알아들었기에 비싼 놈이었다.

‘혼꾸멍을 내주고 싶지만 너무 작아서 뭐 후려팰 수도 없네.’

딱밤을 때려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건드릴 수도 없었다.

"옜다. 이놈아. 이거 먹고 떨어져라.”

육포 하나를 집으면서 흔들어대자마자 카이야가 냉큼 날아와서 발톱으로 육포를 잡아채서 나뭇가지에 다시 올라서서 부리로 쪼아 먹었다.

먹을 걸로 놀릴 셈이었던 그로서는 눈뜨고 빼앗긴 격이었다.

새벽녘에 꾸벅꾸벅 졸던 막내 쎈의 마지막 차례까지 카이야는 깨어있었다. 불침번을 통해서 카이야가 깨어있는 것을 알았지만 동물에게 불침번을 세운다는 것은 믿음직하지 못했다. 의심은 사라졌지만 믿지 못하는 것이다.

“깍! 까악! 까악!”

푸더덕! 푸득!

날갯짓이 거칠게 소리를 내었다. 졸던 막내 쎈이 벌떡 일어났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푸다닥 거리는 날개 소리에 너도나도 몸을 일으켰다. 드낙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야밤에 개인창고에 도둑이 들었을 때, 카이야에게 머리가 쪼이고서 일어났던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기민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방패덩치 케르욘〉은 방패부터 집어 들어서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주위는 조용했다. 소란스러움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저 까마귀 놈이?’

속았다는 기분이 용병들에게 스며들었지만 드낙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 도노를 보며 무기를 뽑아든 채 일어섰다.

“도노야, 잡으러 가자.”

대답도 안 하고 도노가 앞장섰다. 드낙이 뒤를 따라가자 융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인은 짐을 지켜줘. 쎈은 옆으로 돌아가고. 베듬은 나무 위로 올라가.”

융의 말에 모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드낙과 함께 가는 이들은 융과 케르욘 두 사람뿐이었고, 베듬은 나무 위로 순식간에 올라갔다. 쎈은 장비를 서둘러 갖추고 뒤늦게 딴 길로 사라졌다. 메르인은 모닥불에서 빠져나와 나무를 등지고 수풀을 앞에 두는 곳에 매복했다.

굳이 융이 세세하게 말하지 않고 그저 짧은 한 마디만 해도 누구나 전술적으로 행동했다. 노련함이 돋보였고, 그렇기에 영주와 계약까지 한 것이다. 실력이 없었다면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을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을 업(業)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영주와 계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울 때 숲으로 들어간 드낙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윤곽만으로 도노를 능숙하게 따라갔다. 산을 타면서 미끄러지던 그는 사라지고 노련한 사냥꾼이 있을 뿐이었다.

용병들 또한 울퉁불퉁한 산을 달리는 것에 거침없었다. 50걸음도 가기 전에 수풀을 크게 흔들며 다가오는 일행을 본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뭐, 뭐야?”

앞에서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융이 소리를 크게 질렀다.

“너희들은 누구냐! 누구인데 우리에게 다가왔지?!”

대답이 없고 적들이 허둥거리기만 하자 케르욘이 짐승처럼 포효하자 곳곳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가 두드리는 방패의 둔탁한 소리는 절로 위협적이었다.

“피난민입니다! 우린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마을의 피난민이냐!”

“산버섯 마을입니다!”

소란이 그렇게 끝이 나지는 않았다. 드낙이 다가가자 단번에 뭔가를 휘둘렀다.

‘어림없지.’

드낙은 거칠게 무기를 피하며 숏소드로 단번에 놈의 손목을 베었다.

“아아아악!!! 아! 으아아아! 내 파아아아알!!!”

손목이 잘려나간 놈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넘어진 채 바짝 웅크렸다. 고통 때문에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놈을 당장 죽이기에는 주변에 적이 많았다.

“피난민은 얼어 죽을, 무기를 들고 있다!”

드낙의 외침에 케르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명에게 곰처럼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꺽!”

방패에 몸을 맞은 놈이 뒤로 튕겨져나가 형편없이 뒹굴었다. 케르욘을 노리던 두 놈 중에 한 놈은 그것을 보고는 그대로 무기를 버리며 납작 엎드렸다.

“살려주십쇼!”

옆으로 돌아간 막내 쎈은 활시위를 당긴 채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었다. 워낙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살려달라는 소리와 고통의 울부짖음이 튀어나오자 곳곳에서 항복! 혹은 투항!이라고 외치는 이들로 가득했다.

“꼼짝 말고 있어!”

어둠 속에서 그들을 포승한다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나무가 가득한 곳에서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서히 주변이 밝아지자 융과 케르욘을 비롯한 일행은 그들을 묶었다.

“아흐흐흑. 흐흐흑.”

드낙에게 손목이 말끔하게 날아간 놈이 어린애처럼 울었다.

“피난민 같은 소리하네.”

하나같이 흉흉한 무기를 쥐고 있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나서 드낙이 이죽거렸다. 그런 드낙에게 융이 다가갔다.

“호위를 맡겨놓고서 가장 선두에 서는 것은 뭡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과 적이 다수로 보였기에 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검은 꿈〉을 꾼지도 제법 오래되어서 갈증이 생겨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달려든 것이었다.

큰마을 두둔의 큰통에서 세력의 거대한 힘을 깨달았기에 갈증은 더욱 심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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