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 <-- 찾아다니는 용병단 -->
“정말로 할 생각이야?”
드낙이 청년회를 설득하는데 더욱 공을 들이는 사이에 〈정보꾼 메르인〉이 담배가 없어서 육포를 입에서 질겅 질겅 씹으며 〈간합의 융〉에게 말했다. 〈머리통 용병단〉의 대장인 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정말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놈〉은 드낙을 뜻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융이 메마른 웃음소리를 냈다.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되냐는 비웃음이었다. 메르인은 기분이 나빠지며 머리가 냉정해졌다. 화가 나면 타오르기보다는 식어버리는 그녀는 정보꾼으로서도 전사로서도 훌륭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침착하게 걸어왔어. 그런데 갑자기 생뚱맞은 용병들과 함께 횃불 성채로 간다? 앞뒤가 맞지 않아.”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과민반응이야. 우리는 제법 신뢰를 보여줬잖아.”
융은 고개를 저었다.
“난 지금까지 용병질을 하면서 〈특정한 굳은살〉이 있는 놈들이 평범한 것들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어.”
기사의 상징. 비밀리에 전수되는 비전(祕傳). 그것을 모른 채 기사와 마주하면 필패(必敗) 한다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상식과도 같은 공식.
반드시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기사의 비전은 소위 소설에서나 보는 필살기(必殺技)와 다름없었다. 독특한 움직임으로 지독하게 목숨을 앗아가는 기사의 비전은 연마하는데 있어서 숙련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다른 칼잡이에게서는 볼 수 없는 굳은살을 볼 수 있다.
드낙은 락손이 평생을 군복무하면서 얻은 12가지의 비전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전투 중에 자연스럽게 뽑아지는 비전은 3가지에 불과했다.
“과대평가야.”
메르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융의 의견을 거부할 수 없었다. 때때로 불법적인 짓도 하는 용병에게 있어서 용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사실상 대장의 말을 듣는다는 암묵적 의미가 있었다. 의견을 묻긴 하지만 그것을 결국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융의 몫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드낙의 실수는 명백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침착하고 계산된 길을 걷는데 갑자기 머리통 용병단과 함께하는 것은 그것에 반(反) 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융은 드낙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메르인은 아니었다.
“운 좋은 〈애송이〉일 뿐이야. 〈깊은 숲의 드낙〉이라고? 같잖은 소리지. 병신처럼 애새끼나 네 명을 조져놨어. 뒤를 생각하지 않는 15짜리 애새끼라고.”
융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화난 것이 아니야. 이유 있는 분노가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섬뜩하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해. 실제로 드낙은 제법 조용한 성격이지.”
어지간히 감정적으로 들끓은 것이 아니라면 드낙이 이렇게까지 폭력을 행사할 리가 없었다. 융은 그렇게 생각했다. 드낙이 보여준 것을 토대로 냉철하게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답을 찾았다.
메르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이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있었다. 별생각이 없었기에 앞으로 용병단이 움직이는 방향을 그저 듣기만 한 것이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머리통 용병단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씬하고 멀대처럼 키가 큰 〈후장털기 베듬〉이나, 곰처럼 덩치가 큰 〈방패덩치 케르욘〉은 용병단을 운영하는 것을 귀찮아했고, 싫어하였으며, 재능도 없다고 여겼다.
융과 메르인이 큰 기둥으로 용병단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보를 많이 가진 메르인이었기에 노련한 융과 대응할 수 있었다.
키텐의 형 기텐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융이 속으로 웃었다.
‘드낙은 세상 물정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심성 자체가 세상 풍파에 깎이지 않았어.’
모두가 욕망을 가진 채 자신의 안위를 살폈다. 그것은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을 제법 세세히 살펴보면 결국 누가 〈책임〉을 손에 쥐었는가? 드낙이 쥐었다.
결국에는 〈애송이〉인 것이다. 끝까지 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메르인은 드낙을 〈애송이〉라고 말했다. 나이다운 행동을 한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영웅놀이한다고 내려 깔 정도는 아니다.’
만약 융이 드낙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드낙이 말한 의견대로 했을 것이다. 단순한 영웅놀이로 치부할 수 없었다. 실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게 바로 이 세상이었다.
실력 있는 15살짜리가 보여준 기지는 34살 먹은 융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텐은 분위기 좀 잡아주고, 나이 대우 좀 받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참을성 없는 놈이고, 가오를 잡으면서 드낙에게 이번 일을 맡겨버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력 있는 놈이 책임감도 제법 있었다. 그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보통은 볼 수 없는 인간상이었고, 산골 마을에서나 희귀하게 튀어나올 법한 성격이었다. 융은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개인실에 흩어진 놈들이 다시 한 번 개인실 3곳에 모여졌고, 반대편의 개인실에 〈큰마을 두둔의 큰통〉의 지역 유지인 〈양조회 보스 갈튬〉의 막둥이 케르튬이 홀로 들어섰다.
드낙은 없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드낙에게는 맞지 않는 역할이었다. 대신에 케르욘과 융이 개인실에 있었다. 침대는 엎어져서 벽에 붙어있었고,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져 있고, 조금 간격이 벌려진 가구 하나가 그 구멍을 가리고 있었다.
“뭐야?”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방패덩치 케르욘〉의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케르튬이 단박에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내기를 하고 싶어서. 솔직히 제법 대단하던데? 용병이 있는데도 겁 없이 움직였어. 모두 너를 따르던데, 사람 다루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걸?”
“어쩌라고. 살인자 새끼야.”
그리 말하며 케르튬은 강제로 거칠게 의자에 앉혀졌다. 융은 그런 욕에도 상관없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것은 케르튬도 군침이 돋을 만한 제안이었다.
“사고를 제법 많이 치고 다니던데, 이번에도 이렇게 문제를 키우면 또 어쩌려고 그래? 그러니까 시원하게 한 판 해서 승패를 가르자.”
“··· 들어 보고.”
얍삽하게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에도 융은 표정 변화 없이 투척 단검을 휘리릭 던지면서 받으며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너한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패거리 전원이 너에게 충성을 다하면 네 승리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우리의 승리라는 걸로.”
“내가 이기면?”
“모두 풀어주고, 은화도 다섯 닢 내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네 부하들을 후려 팬 놈을 꽁꽁 묶어서 너한테 주지.”
돈은 케르튬의 관심을 크게 이끌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아랫것들〉의 면상을 구긴 놈을 내어준다는 말에는 흥미가 돋았다. 그리고 융이 말하는 〈충성〉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내기의 방식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놈은 네 부하가 아닌가?”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우린 용병이다. 쓸데없는 문제는 그냥 넘어가고 싶은 거지.”
“사람이 한 놈 죽어도? 미친 용병 새끼들.”
퉤!
케르튬이 침을 뱉었지만 단검에 침이 탁하고 막혔다. 그 모습에 케르튬이 놀라워했다.
융은 자연스럽게 케르튬의 침을 그의 옷에 묻혀주었다.
“아, 씨!”
“담배도 피우나 봐? 냄새가 어휴.”
융이 손사래를 쳤다. 메르인이 담배를 피울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리고 케르튬이 완전히 넘어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작은 조롱에도 딴생각을 하고 바로 소리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의 패거리에 속한 놈들을 아랫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고, 기고만장한 것이 한 번도 그들의 충성심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충성심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다.’
애초에 욕이 입에 붙은 놈이 충성 운운하는 것조차 모순적이었다.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른 놈은 고르고 고른 심약한 놈이었다. 가려져 있었기에 누가 왔는지 모르던 케르튬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여유롭게 몸을 뒤로 뺐다.
‘〈반병신 맥스널〉이잖아.’
심심하면 놀리고, 심한 장난을 쳐도 웃기만 하는 놈이었다. 케르튬의 든든한 심심풀이 목각인형이나 다름없는 것이 맥스널이었다.
드낙이 그를 끌고 와서 앉혔고, 뒤에 섰다. 베듬이 테이블을 놓고 맥스널과 마주 본 채로 이야기를 해나갔다.
“··· 그러니까 네놈들 중에 주동자를 말하라고. 그럼 지금 당장 풀어주지.”
“주, 주동자를 말하라고요?”
말을 더듬는 모습에 케르튬이 흉악하게 웃었다.
‘머저리 새끼. 말하는 것 하고는.’
풀려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더듬지 않게 단단히 훈련을 시키고 싶어졌다. 제법 재미날 것이다.
“그래. 너도 빠져나가긴 빠져나가야 할 거 아냐. 벌써 몇 명이나 빠져나갔는데.”
“저···케르튬도 빠져나갔나요?”
“아~그 양조회 보스의 막내? 머리털 하나도 못 건드렸지. 바로 풀어줬어. 그냥 쌩하고 가버리던데?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 없는 거 보면 그놈도 참···”
케르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설마 하는 의심과 함께 맥스널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 정말요?”
그 말을 들은 〈반병신 맥스널〉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척 봐도 고민하는 투였다. 그때 뒤에 있던 드낙이 옆방에서는 안 들리게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내려 귀에 속삭였다. 최대한 목소리를 저음으로 했다.
“케르튬이 주동했지? 케르튬이라고 말해. 우리도 놈을 못 건드려. 그냥 이 문제에 대해서 최소한의 손해배상을 그들의 아비에게 받고 싶은 것뿐이야.”
그 속삭임에 맥스널이 움찔했다. 하지만 드낙이 말한 것에 대답도 하기 전에, 곱씹어 생각하기도 전에 베듬이 입을 열며 으르렁거렸다.
“빨리 말해. 시간 끌지 말고!”
서슬 퍼런 외침이면 족했다. 사고가 굳은 맥스널이 입을 열었다.
“케르튬이요. 케르튬이 모든 걸 계획했어요. 저희들은 잘못 없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1명씩 여관에서 풀려났고, 도둑처럼 도망쳤다. 케르튬이 이미 풀렸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집에 가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케르튬은 어느 순간부터 분노하지 않은 채 그저 손에 깍지를 낀 채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가만히 숨만 쉬었다.
마지막 1명까지 그렇게 여관을 떠나고 오직 케르튬만 남았다.
“내기는 우리들의 승리야.”
“뭘 원하지?”
“오늘 일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
“······”
그가 일어섰다. 누구 하나 케르튬을 말리는 사람 없었고, 밧줄은 칼질 한 번에 뜯겨져나갔다. 그 순간에 케르튬이 융에게 달려들었다. 융은 케르튬의 멱살을 잡아 사정없이 휘둘렀다.
“윽! 크윽!”
어지럽게 시야가 흔들렸고, 케르튬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균형감각이 엉망이 된 상태로 융이 손을 놓았다. 힘을 줘서 밀지도 않았기에 그 자리에 풀썩하고 꼴사납게 쓰러졌다.
상처 하나 없었다.
〈방패잡이 케르욘〉에 의해서 뒷목이 잡혀서 여관의 밖으로 패대기쳐졌다.
“윽!”
몇 번 구르면서 대(大)자로 뻗은 케르튬은 천천히 일어났다. 뭔가 온몸에 힘이 나지 않았고, 무기력감이 느껴졌다.
‘허무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했는데, 그것이 하룻밤만에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에 대한 분노도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허무함이 더했다.
어둠 속으로 케르튬이 사라졌다. 드낙은 2층에서 그것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내일 생각을 달리 먹으면 일이 더 고달파 질 거야.”
융의 말에 드낙은 잠 한 번 못 이뤘다. 선잠을 자면서도 정규군이 들이닥치는 악몽을 꾸었다. 카드놀이를 하던 경비병은 무섭지 않았지만 순찰대의 정련된 모습은 두려웠다. 꿈에서는 그런 순찰대가 드낙을 무릎 꿇리고 밧줄로 묶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악몽을 꾸면서도 드낙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피곤함을 최대한 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심적 압박감 속에서 아침해를 맞이한 일행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별 다를 것 없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청년회는 돈을 들고 다시 마을로 향했고, 드낙은 〈머리통 용병단〉과 함께 〈횃불 성채〉를 향하였다.
‘다시는 하기 싫은 경험이었어.’
〈두둔의 큰통〉이라 불리는 큰마을을 떠나서 걷던 드낙이 뒤돌아 마을을 보며 생각했다. 비록 하룻밤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생소하게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제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생각했고, 드낙은 주먹을 잘못 놀려 큰 곤욕에 빠질 뻔했다. 어제 겪은 일은 결코 드낙의 실력으로 헤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걸린 행운, 요행(僥倖) 히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정말로 행운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괴감과 열등감 그리고 악몽으로 뒤섞인 밤을 겪은 드낙은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