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 <-- 찾아다니는 용병단 -->
“케르튬? 들어본 기억이 있어. 적어도 구라는 아니야.”
〈정보꾼 메르인〉이 기억난다는 듯이 굴었다. 그리고 〈머리통 용병단〉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미 확정적인 정보나 다름없었다. 정보를 취득하고 조정하는 것에 있어서 기억력이 좋은 메르인이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은 이 녀석이 진짜 〈큰마을 두둔의 큰통〉의 지역 유지를 하고 있는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차남이었나··· 삼남이었나?”
“막내다. 개 같은 갈X년아.”
술이 조금 깨더니 분노로 담긴 욕보다는 칼처럼 날카로운 어조로 욕을 내뱉었다. 아주 개망나니가 따로 없었다.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양아치 중의 양아치였다. 〈지역 유지〉의 자식이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막장인지 알 수 있었다.
‘병신.’
메르인은 욕을 하든 안 하든 평온했다. 되려 도발을 하지도 않았다. 능숙하게 마른 담뱃잎을 파이프에 꾹꾹 누르며 화덕의 불똥을 조금 넣어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이 중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저 멍청한 놈을 죽이려고 마음먹는다면 사건사고 없는 조용한 날에 이름 모르게 죽게 할 것이다. 그녀가 가볍게 욕을 넘기며 담배 파이프를 물었다.
‘담배 냄새.’
드낙은 질색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고민했다.
‘이거 잘못하면 나 혼자 독박이다.’
꽁꽁 묶인 놈들은 〈양조회 보스 갈튬〉의 아들인 케르튬이 멀쩡하게 욕을 지껄이자 너도나도 풀어달라고 소리쳤다.
결국 2명 3명씩 개인실로 나누어졌다. 여관을 운용하는 모녀는 집이 따로 있었기에 이 여관은 밤에 한정해서 그들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거 놔! 열어!”
버둥거리는 놈의 얼굴에 〈방패덩치 케르욘〉의 머리가 들이밀어졌다.
“조용히 좀 가자. 너 하나 묻어버리는 거 어려운 거 아니야. 사람 하나 죽이고, 마을 떠나면 그만이지.”
서슬퍼런 말에 버둥거리던 마을 청년이 얌전한 햄스터처럼 조용해졌다. 몸에 힘도 풀었다. 케르욘은 놈을 허리에 끼고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가서 마지막 남은 개인실에 넣었다.
조용해진 1층에서는 조곤조곤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서였다. 벌레집을 건드렸으니,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젠장.’
드낙은 홀로 구석에서 눈을 감은 채 팽팽하게 머리를 돌렸다.
‘왕 노릇하는 놈을 자르는 게 최고다. 덤터기를 씌워 버릴까? 아니, 어려워··· 어떻게?’
온갖 생각이 흘러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케르튬을 죽여서 마을 청년들의 탓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일이 더 커질 수 있었고, 그것은 드낙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간합의 융〉이 사람들을 모았다. 경험이 많은 용병답게 벌써 의견 하나를 도출하고 하나로 합친 듯했다. 사실은 융이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였지만.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야반도주를 해야 합니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큰 마을의 일원을 작은 마을도 아닌 산골마을의 일원이 개 패듯이 아작을 냈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피를 볼 겁니다.”
융은 드낙을 보며 말했다.
“마을의 크기마다 시민들이 가지는 자존심은 대단합니다. 그것은 특히 작은 세력이 덤볐을 때 더욱 타오릅니다.”
강자에겐 약하지만 약자에게는 강해지는 법이었다. 없던 자존심도 확 생기는 것이다. 또한 메르인이 나서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 더욱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가구수가 500? 700이나 되는 큰 마을을 확 잡고 있는 것이 〈양조회 보스 갈튬〉이죠. 정규군은 뇌물을 받았을 테니 도움이 안 될 것이고, 〈세금 징수원〉을 통해서 영주와도 줄이 놓아져 있을뿐더러 이곳의 일은 귀족이 끼어들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해결할 공산이 크죠.”
물론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로 큰 마을이 공통적으로 그러했기에 메르인은 거침없이 확신하는 투로 말할 수 있었다. 이 마을도 분명 어느 정도 타락했겠지만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허어···”
마을의 타락을 기정사실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그 모습에 청년회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놀라워했다. 그 말에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이미 한 배를 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드낙은 그런 것도 묻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친절하게 말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메르인은 큰 마을의 〈지역 유지〉를 매섭게 말해주며 자신들의 의견을 꼭 해야 한다고 설득력을 높였다.
‘이 용병 놈들이 자기들만 생각하는구나.’
드낙이 서둘러 반대했다. 안된다고 말해야 했다. 용병의 말을 듣는다면 곤혹은 검은 산골 마을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정도로 일이 커진다면 드낙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 그렇게 야반도주해도 결국 〈검은 산골 마을〉에 피해가 생길 겁니다.”
그의 말에 융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능숙하게 더욱 위험한 상황을 말하였다.
“지금 잡힌다면, 누구 하나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나중에 돈으로 갚는 것이 낫습니다. 분노한 시민을 상대하기보다는 마을 단위로 만나 해결하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그 정도로 격렬하게 나오겠습니까?”
그 물음에는 메르인이 말해주었다.
“양조장에 대한 대부분의 권익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갈튬이예요. 괜히 〈양조회 보스〉라고 불리는 게 아니죠. 마을의 수입 7할이 술을 팔아서 생기는 이득이죠. 적어도 우리는 이 마을에서 빨리 나가는 게 좋아요. 들키기 전에···”
메르인은 말을 흐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실로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하는 듯했다. 물론 거짓된 몸짓 언어였다. 용병들은 그냥 이 순간만 피하면 될 뿐이었다.
골치 아픈 문제를 일단 뒤로 물려만 놔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아들이 조져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조져요. 여긴 그들의 땅이니까요.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돈이든 폭력이든. 그들 내키는 대로 할 것인데, 몸이라도 건사하려면 흥분을 가라앉힌 그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미친놈이라도 그놈에게는 사랑스러운 막둥이일 뿐이죠.”
설득력이 제법 있었다. 흥분한 술주정뱅이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화가 가라앉은 놈에게 사과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까지 따라온 청년회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양식장의 기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용병이 있을 때, 승부를 보는 것이 더 낫다.’
무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마을에 몇 번 위기가 오면서 전투력에 대한 생각이 부쩍 많이 뇌에 있던 기텐이었다. 특히나 그의 동생 키텐의 죽음을 보며 힘에 대한 중요한 의식을 깨우칠 수 있었다.
“탈주자에 대한 분노가 더 대단할 것 같은데. 차라리 아침에 이실직고하는 것이 나을 거요.”
이실직고라는 말에 드낙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대로 그저 항복한다면? 자신에게 얻어맞은 놈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할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또한 융도 마찬가지였다.
용병단의 장비들은 하나같이 돈이 되는 것들뿐이었다. 손때가 묻어서 비싸 보이지 않을 뿐이지 가죽 갑옷조차도 안에는 아주 얇게 제대로 공을 들인 철판이 인체의 굴곡진 것에 맞추어서 되어있었다.
몇몇 소비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 맞춤형이었다.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융이 위협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기텐은 아니었다. 용병들의 무력이 있을 때, 승부를 보거나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서로 피해가 생긴다면 말로 해결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기텐은 하지 않아야 될 말도 했다. 드낙을 노린 뉘앙스를 풍겼다.
“돈을 물어내던지 뭘 하던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 아닌가?”
그 말에 드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도 나한테 책임을 지게 만들려는 것처럼 말하네?’
믿을만한 놈이 하나도 없었다. 인생은 혼자, 독고다이 한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닌 듯했다.
용병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서 야반도주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마을 사람들은 향후를 위해서도 그리고 명확하게 가해자가 드낙인 현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고, 투항하길 원했다. 자신은 살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이미 깔려 있었다.
물론 가진 돈은 다 빼앗길 공산이 컸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벌금이 제멋대로인 세상이었기에 큰 분노보다는 살아서 돌아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문제가 크게 불거져도 나는 살 것 같다.’
기텐은 용병 전력도 생각했다. 여기만 10명이다. 저들도 문제를 크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싸했기에 기텐은 드낙이 홀로 고민하는 사이에 청년회 사람 4명을 포섭한지 오래였다.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병과 청년회의 눈초리가 쎄하게 서로를 노려보았다. 드낙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용병이 없었다면, 의견이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면 산 채로 잡혀 구워졌을 것이다.
‘세력이라는 게 정말 깡패구나.’
세력과 드낙 중에 누굴 선택하느냐? 답은 정해져 있었다. 큰 마을 〈두둔의 큰통〉의 지역 유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그들의 영토였다. 매일같이 형식적으로 외상을 달아두며 병사들에게 술을 베풀었기에 정규군이 책임 있게 중재할 수도 없었다.
돈으로 엮인 정규군. 드낙은 그 내막까지는 몰랐지만 부패한 병사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순찰대는 기강이 제대로였지만 마을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은 아니었다.’
또한 드낙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한 〈지역 유지〉라는 단어와 세력에도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깡패고 나발이고 개같이 패고 닥치는 대로 집어넣었으며 무고한 피해자까지 생겼던 대한민국에서 법과 어깨동무하는 〈지역 유지〉는 있을 수 없었다. 있다면 섬이나 누구도 가지 않는 작은 촌동네 정도일 것이다.
‘내가 안일했다. 너무 거침없이 움직였어.’
큰 곰 가죽의 도난 사건. 거기에 이번까지 맞물려서 감정적으로 대처했다. 냉정해야 했었다.
후회해도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다. 물은 땅에 엎어졌다.
산골 마을의 〈청년회〉의 힘을 뼈저리게 깨닫기에는 그가 이미 청년회 소속이었기에 크게 와닿지도 않았고, 그리 대단하지 못한 것도 컸다.
인구가 4천에 근접하는 큰 마을을 경제부터 정규군에게 뇌물 등을 먹여서 자신의 것으로 다루며 세금 징수원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양조회 보스 갈튬이었다.
‘빌어먹을.’
개인의 은원따위 세력에 있어서는 개풀 뜯어 먹는 소리인 것을 확인한 드낙은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전면에 나서야 했다.
“···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조금 입을 벌리면서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뭔가를 잡은 드낙이 입을 열었다.
“어떤?”
드낙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자신의 실책으로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농노로 몇 년을 살지 모르지.’
다른 이를 위해서 활 대신에 곡괭이를 쥐어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간 모은 은화를 모조리 탕진하게 되거나.
“결국에는 케르튬이 펄쩍 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쉽겠습니까?”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쉽습니다. 그가 알았던 친구들이 그를 스스로 배신하게 만들면 될 겁니다.”
“케르튬은 막둥이죠. 제법 용돈도 많이 받으며 자랐으니 거칠게 없는 놈입니다. 덩치도 커서 누가 그를 배신하려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질 않을 겁니다. 아까 테이블에 모아놨을 때 보셨지 않습니까?”
케르튬이 별 상처 없이 바락바락 욕을 해도 아무것도 못했던 것이 자신들이었다.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개인실에 구멍을 뚫어놓고, 옆방에 케르튬에게 재갈을 물려놓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명씩 불러서 농간질을 하는 것이죠.”
융이 흥미를 보였다.
“주동자를 이야기해주면 아무 탈 없이 조용하게 풀어주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케르튬에 대한 것도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주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라서 벌써 풀어줬다고요.”
“질투를 유발할 수 있겠군. 또한 케르튬이 벌써 떠났는데 자신들은 잡혀있으니 불안감도 조금 생길 것이고.”
융이 대답을 받았다. 드낙은 그 말에 크게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재빠르게 이어나갔다.
“다른 이들도 벌써 풀어줬다고 하면 다급해질 것입니다. 질투, 불안감, 다급함. 아직 나이도 차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힘든 압박감일 겁니다.”
“모두가 케르튬의 이름을 말한다면···.”
드낙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끝을 흐리다가 웃었다.
“케르튬은 다친 이들을 나 몰라라 할 겁니다. 되려 그놈들에게 크게 실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족치기보다는 그놈들부터 족칠 겁니다.”
말을 마친 드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케르튬이 스스로 자신의 패거리를 버리게 만든다라···”
융이 중얼거렸다. 즉흥적인 작전치고는 제법이었다.
“한 번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