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 <-- 찾아다니는 용병단 -->
용병들에게 〈횃불 성채〉로 가는 것을 또 의뢰한 드낙은 값을 먼저 치르고, 그다음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용병패를 미리 얻는다며 온 김에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드낙의 돈을 받으면서 1명당 동화 10닢씩 챙겼다.
수고비였고, 드낙이 올 때까지 관리해주는 관리비이기도 했다. 동화 50닢이 빠지는 것이었지만 드낙에게 있어서는 최선이었다. 동화 440닢을 쥐고 가는 것과 한 푼 없이 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여기는 법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안 쥐고 있는 게 최선일 정도였다. 용병단을 꾸리려는 이유도 결국에는 혼자서 출세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무리를 이끌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블린 때 보여준 〈토벌을 업으로 삼는 용병단〉을 봤기 때문이고, 마적떼를 겪으면서 숫자가 가지는 힘을 계속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한 늑대의 덕을 봤기에 드낙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배신을 두려워해서 혼자 다니기에는 가진 힘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손이 있었을 때에는 수백 명을 아래에 두던 〈손없는 센다빌〉을 무력의 최소 조건으로 삼고 있었기에 생긴 오해였다. 손이 잘려나가도 마적 두목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화상으로 크게 일그러진 부관까지 두고 있었으니, 손 있었을 때 얼마나 대단한 악명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신중하게 행동하는 드낙의 행보를 〈간합의 융〉은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다.
‘우환을 많이 겪었다고 해도 지나치게 신중한데.’
그런 생각에 대해서 용병단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메르인이 한 소리를 했다.
“지나친 생각이야. 생각해보라고, 대장. 퇴역군인 락손에게서 매달 은화 하나씩 바쳐가면서 출세욕이 있는 애라잖아.”
“애로는 안 보이는데. 저게 무슨 열다섯이에요.”
〈막내 쎈〉이 헛웃음을 지으며 메르인의 말에 대꾸했다. 애초에 별명이 〈막내〉인 그와는 다르게 드낙은 〈깊은숲 사냥꾼〉이라는 제법 멋들어지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무려 3살이나 어린놈이 말이다.
드낙에 대한 의심은 그렇게 흘러갔다. 애초에 산골 마을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있어서는 제법 이름이 나있던 락손도 용병들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손쉽게 시세보다 싸게 하고 때때로 보여주기식 할인을 보여줘서 물건을 일찍 판매했기에 해가 저물면서 여관에 도착했기에 일찍 저녁을 먹고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렇기에 청년회 사람들은 저녁을 제법 크게 먹고, 큰 마을을 구경나갔다.
드낙은 가지 않고, 방에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런 촌동네에서 구경을 다니고 싶은 마음 하나 없었다. 63빌딩도 간에 기별이 안 가는 것이 박호훈이었고, 드낙이었다.
‘가봤자 뭐가 있겠냐.’
차라리 눈을 감고 비전에 대해서 쉐도우 배틀을 벌이는 것이 좋았다. 실전도 이제 3번 4번도 넘어갔고, 사냥도 많이 해서 몸을 다양하게 움직인 사냥꾼의 경험 덕분에 상상도 제법 현실적이었다.
‘이번에는 포위? 등을 대고 싸워볼까? 적은 누구로 정할까?’
드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눈을 감은 채 눈을 굴리다가 그대로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일찍 잠을 들은 드낙과는 다르게 다른 이들은 시끌시끌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그 소란에 드낙이 눈을 떴다.
‘얼마나 마신 거야. 마을로 돌아갈 때 돈이 남아나질 않겠군.’
당장 문 밖을 나가서 한 소리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드낙은 이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의 약점으로 더 좋은 때에 사용할 마음을 가졌고, 말다툼이 일어났을 때 이 일을 꺼내서 기를 죽이기에도 좋았다.
지금 나가봤자 괜히 감정적으로 부딪칠 뿐이었다.
그것은 가장 거지 같은 선택이었다. 다소 마초적으로 쾌감 하나는 느끼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반감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남들 다 술 먹는데 혼자 술 안 먹으면 회식 자리는 물론이고 그 다음날부터 신명 나게 까이는 것처럼 모두에게 물어뜯기는 고깃덩이가 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드낙은 정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뒤적거리다가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다시 이불을 덮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장비를 단번에 찾아내는 연습을 했다.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고, 제자리 운동을 하다 단번에 혁대에서 필요한 것을 꺼내는 것이었다.
‘숙련되어야 한다.’
드낙이 괜히 이런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의 빛은 태양과 달빛을 제외하고는 보기가 힘들었다. 횃불은 생각보다 타오르는 불에 비해서 밝히는 거리가 적었고, 한 걸음마다 훅훅 밝기가 꺾이는 아주 저급한 조명장치였다.
〈어둠〉에 익숙해져야 했다. 어디서든 그림자와 어둠이 있었다. 야밤에도 불을 밝히는 현대의 풍요로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당장 방 안에만 해도 밤에 불을 켜려면 따로 돈을 주고 초를 임대해야 했다.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인심이 좋은 것이 이 여관은 먹고 자는 것은 제법 싸다는 것이다. 추가로 술도 부담 없이 먹기 좋았다.
‘〈산딸기 밀주〉는 제법 과일 풍미가 좋은데··· 가기 전에 가져갈까?’
연습하면서 딴생각을 하기도 했다. 제법 익숙했다.
멍하게 있는 것보다는 바쁘게 생각하는 드낙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달빛이 방 안의 바닥을 하얗게 비추었다.
몸이 편하니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실전을 겪으면서 단번에 자극을 받은 드낙의 몸체는 이미 전사의 육체라고 할 수 있었다. 돌을 데운 것을 흙 밑에 두고 그대로 잠을 자도 꿀잠을 자는 혈기가 가장 왕성한 나이이기도 했다.
덜걱.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에 드낙이 눈을 떴다. 그는 귀신처럼 상체만 일으켰다.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쎄하다.'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어둠에 적응할 무렵, 달빛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열린 창문으로 나무로 된 갈고리가 창틀에 부딪치더니 다시 떨어졌다.
‘뭐 하는 거야?’
대거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낸 드낙이 무기를 뽑았다. 달빛에 대거의 칼날이 날카롭게 빛이 났다. 나무로 된 갈고리는 다시 두어 번 걸쳐지더니 단단하게 걸리자 누군가가 올라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드낙은 벽에 들러붙은 채 놈을 기다렸다.
‘오기 전에 타격하는 것은 어리석다.’
적이 몇 명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대한 확정적으로 1~2명을 타격하기에는 올라오고 나서 뒷목을 치는 게 최고였다.
“······”
건장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림자가 가렸기 때문이다. 제법 젊은 놈으로 보였다. 노련미보다는 끓어오르는 혈기가 느껴졌고, 또 한 가지. 술 냄새가 맡아졌다.
‘취했군.’
비틀거리지는 않았지만 진한 술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들어온 놈은 침대를 슬쩍 보더니 이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가장 먼저 드낙의 가죽 배낭을 탐냈다. 드낙은 추가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자, 곧바로 놈의 뒤를 덮쳤다. 머리채를 잡아서 그대로 벽에 쳤다.
“으극!”
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했다.
콱! 콱!
두 번을 후려치자 도둑놈의 힘이 확하고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드낙이 홱하고 뒤로 당기자마자 벌러덩하고 뒤집어졌다. 한 손에는 단검까지 쥐고 있어서 발로 쳐서 단검을 널찍하게 보냈다.
“이! 새···”
술 취한 놈은 소리를 지르려다가도 달빛에 비추어지는 날카로운 대거의 칼날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목에 차가운 것이 조금 눌러지며 상처를 냈다. 목젖에 놓는 것보다는 그냥 조금 베는 것이 아주 효과적인 것을 드낙은 잘 알고 있었다.
락손에게서 배운 제압 노하우였다. 병사는 쉽게 터득할 수 없는 노하우였는데, 당연히 인질로 잡힌 적이 있었다. 피해자의 신분으로 피가 날 정도로 짓누르는 단검 때문에 정말 혼비백산했었다.
그 경험은 고스란히 드낙에게도 이어졌다. 1달에 은화 1닢. 그것의 가치는 상당했다. 때로는 일을 대신하면서 현물로도 낸 적이 있을 만큼 지키기 어려운 수업료였다. 그만큼 얻은 간접 경험이 많았고, 드낙은 충실하게 생각이 멍해질 정도로 평온하고 지겨운 산골 마을에서 곱씹으며 간접경험을 자신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었다.
“조용히 해. 목에 큰 흉터 하나 멋들어지게 새기고 싶진 않잖아?”
“예···예···”
바닥에 쓰러진 도둑놈의 얼굴이 환하게 달빛에 비추어졌다. 반면에 쓰러진 이는 드낙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둠이 잔뜩 드리워져 얼굴을 가렸다. 그것은 드낙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도둑놈은 절로 침을 삼켰다.
그 때문에 대거가 조금 더 피부를 긁어베었다. 고통에 그가 신음소리를 살짝 흘렸다.
“너 뭐하는 놈이야?”
“저, 저는 젭콘이고요. 그냥 애들 따라와서···”
드낙은 기가 찼다. 대거를 빼내자 안심하는 표정을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후려쳤다. 도둑질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화가 나도 너무 화가 났다. 이런 거지 같은 세상에 전생했다는 것이 끔찍할 정도로 진절머리가 났다.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파괴적인 마음이 활화산처럼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운이 좋은 건지 살면서 도둑 한 번 든 적이 없었다.
지갑을 잃어버려도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던 곳에서 뚝딱 떨어져 값어치 있거나 제법 돈 벌었다는 소리가 들리면 찾아오는 밤손님이 빠짐없이 오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기분은 드낙의 모든 감성을 부수는 기분을 들게 했다.
“어억!”
“개새끼가, 돌았냐?”
머리채를 잡고 따귀를 다섯 대를 때리고서야 놓아주었다. 산을 타고, 무기술을 수련하며 홀로 허수아비와 아귀다툼까지 하는 드낙의 손은 매워도 너무 매웠다. 단번에 얼굴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퉁퉁 부은 젭콘이 쓰러졌다.
밖으로 나와서 방 곳곳을 드낙은 급습했다. 대거 하나 쥐지도 않았다. 청년회 사람들의 개인실만 들어갔다. 용병은 명색에 용병인데 알아서 잘 할 거라 여겼다.
벌컥!
“헉!”
문을 열자마자 어둠 속에서 엉거주춤한 청년이 숨을 급하게 들이키면서 화들짝 놀랐다.
“이, 이씨! 너 뭐야!”
드낙은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다리로 사타구니를 거침없이 걷어찼다.
“흐억!”
그는 주먹을 휘둘러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현대인이라서 이곳의 윤리관에 화가 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선을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팬티에 이름까지 써야 했던 거지 같은 한국 군대. 유치원 다닐 때도 하지 않은 짓거리를 해야 할 정도로 결핍으로 가득 찬 곳에서 살아야 한 드낙에게 있어서 〈도둑질〉과 〈거짓말〉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되어있었다.
2년이 넘게 도둑질에 시달리고, 팬티에 이름을 써도 사라지고, 면도기는 물론이고, 구멍 뚫린 양말까지 사라지던 곳이 바로 대한민국 육군이라는 곳이었다.
거짓말 하나에 중대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드낙의 거친 모습이 토해졌다.
단번에 마을 청년 패거리들 4명을 박살을 낸 드낙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자 용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하나 각자 청년들의 머리채를 잡거나, 발아래에 두고 있었다.
“거긴 몇 명입니까?”
“셋입니다.”
“개인실에 널브러져 있는 놈이 4명입니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용병대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제법 익숙한지 크게 당한 청년이 하나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에 끌려 나오는 놈은 메르인에게 팔이 접혀서 끙끙 거리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들이! 이거 놔! 놓으라고!”
“가만히 있어! 상황 파악 하나 못하나!”
“퉤! 칼밥 먹는 백정새끼가 어디서.”
메르인을 돕기 위해서 잽싸게 다가온 〈막내 쎈〉의 신발에 침을 뱉기까지 했다. 말할 때마다 술 냄새가 지독하게 나왔다.
쎈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팔을 들어 올렸지만 융이 그것을 막았다.
“여기는 마을이야. 정규군조차도 마을 편을 들 거다."
그렇게 말한 융은 드낙이 개박살을 낸 4명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손속을 이렇게 하시면···”
1층에 내려와서 의자에 앉힌 놈들에게 횃불의 불빛이 들어가자 처참했다.
“이 정도로 때리지는 않았는데···”
드낙이 말끝을 흐렸다.
한 놈, 한 놈.
아주 정성들여서 후려팼다. 현대였다면 합의금을 두려워해서 평생 주먹 하나 못할 정도로 면상부터 시작해서 사타구니를 맞은 놈은 불X이 너무 푸르게 멍이 들어있었고, 팅팅 부어서 서둘러 물을 떠서 담가줄 정도였다.
바닥에 엉거주춤해서 바지를 벗은 채 자신의 사타구니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애새끼 한 놈.
눈썹이 찢어지고, 한쪽 눈이 팅팅 부은 채 양볼에 잔뜩 부어오른 호빵맨같은 놈이 하나.
손가락 하나가 부러져서 메르인에게 눈물 펑펑 쏟으면서 겨우 맞추어 부목을 댄 찌질이 하나.
코가 비틀려 있고, 쌍코피를 쏟은 흔적이 있으며 앞니가 와르르 무너져서 입 주위가 피로 범벅이 된 놈이 하나.
그렇게 넷이 드낙에게 박살이 난 마을 청년들이었다.
‘좋지 않아.’
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들이 하나같이 반병신처럼 얼굴이 박살이 나있자 막내 쎈에게 침을 뱉은 놈이 큰소리를 뻥뻥 쳐대었기 때문이다.
‘양조회의 보스, 갈튬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