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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5화 (3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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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마을 두둔의 큰통〉으로 가는 길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애초에 산골 마을과 큰마을 사이에서 산적질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큰 마을로 향하는 이가 사라지면 당연히 인구가 적은 산골 마을에서는 쉽게 알아차리기 때문이고, 큰 마을은 산골 마을로 가질 않았다.

〈보부상 요베〉가 괜히 드낙의 양보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다시 오기를 원하며 적당히 선처를 해줄 만큼 산골 마을로 오는 상인은 드물었다.

산적이 먹고살기에는 힘들 수밖에 없었고, 화전민을 일군다면 위치가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 강도보다는 차라리 큰 마을에서 살면서 도둑질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큰마을 두둔의 큰통〉만해도 정규군의 숫자가 30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몬스터와 야수 때문일 정도로 주변에 산채 하나 없었다.

어쩌다가 여행자가 강도로 돌변한 정도가 전부였다.

“멈추시오!”

두둔의 큰통 주위를 순찰하는 〈사자 삼십대〉 중 10명으로 이루어진 순찰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척 보아도 비싸 보이는 중장비를 입고 있었고, 잘 버려지고 도끼 부분이 작은 할버드를 다섯이 들고 있었으며 나머지 다섯은 방패와 한손 철퇴로 무장하고 있었다.

모든 병사의 등에는 석궁이 들려져 있었기에 원거리 전투에서도 전투력이 유지되었다.

‘와우.’

정규병의 모습을 처음 보는 드낙은 눈을 반짝였다. 그들은 머리를 완전히 뒤덮는 투구를 쓰고 있었고, 곳곳에 아주 작은 구멍이 많았다. 밖에서 활동하는 만큼 머리의 열이 빠르게 퍼져나가게 하기 위함인 듯했다.

투구는 길쭉했고, 당연히 머리 윗부분에는 텅텅 비어있어서 바람이 제법 드나들 것이다. 오직 눈만 보였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목 아래는 가죽이 둘러져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사슬 소리가 났다.

“우리는 〈검은 산골 마을〉에서 왔습니다.”

“흠. 물건 판매인가? 격년도 안 되었는데, 오다니. 별일이로군.”

순찰대장은 그 어떤 표식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일행을 훑어보더니 단박에 〈방패덩치 케르욘〉을 손으로 부르며 호출했다.

“거기, 덩치.”

“케르욘이오. 〈머리통 용병단〉에 소속되어 있소.”

“알겠으니, 가까이 오시오. 용병 대장이 있는가?”

“접니다. 융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꼼꼼하게 행적을 물었다. 생각보다 더욱 대단한 숙련병들이었다. 융 또한 이곳에서 순찰 도는 이를 처음 보았는지, 물었다.

“상당히 베테랑이신데 혹시 다른 곳에서 복무하다가 오신 것입니까?”

“북부에서 10년을 복무하고 좌천되었지. 크크.”

순찰대장은 자신의 노련미를 알아본 융에게 선뜻 말하며 웃어젖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검문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짐수레에 있는 것 전부 꺼낼 필요도 없었다.

인원도 용병단을 넣더라도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반나절도 흐르지 않아서 두둔의 큰통이라 불리는 큰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제법 그럴듯하게 술통이 척척 놓여 있었고, 표지판의 그림도 술과 포도 그리고 밀이 그려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경비병이 둘이 앉아있다가 드낙 일행이 오든 말든 서로 카드를 쥔 채 도박하기 바빴다.

“저··· 들어가도 됩니까?”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검은 산골 마을입니다.”

“아~.”

병사 두 명은 그렇게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다. 도중에 만난 순찰병과는 군기 자체가 달랐다. 드낙은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막힘없이 들어선 그들은 능숙하게 매번 묵었던 여관으로 향했다. 〈검은 산골 마을〉의 자원이 제법 넘칠 때마다 이곳에서 팔았기 때문에 아는 여관은 꼭 있을 수밖에 없었다.

“〈봄바람 여관〉.”

드낙이 글씨를 읽었다. 〈문장가〉가 쓴 간판이었기에 제법 글씨체가 부드러웠고, 읽기가 힘들었다. 멋이 잔뜩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씨 외에도 여관을 뜻하는 그림이 조각처럼 새겨져 있었다.

덜컹.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이 울렸다. 드낙은 단번에 오래된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노을이 지기 전이었기에 햇빛으로 가득하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이 쫙 깔렸다가 눈이 적응되면서 잦아들었다.

‘제법 깔끔하네.’

안으로 들어서며 들은 첫 느낌의 쎄한 것과는 다르게 말끔했고, 냄새도 심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젊은 여자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소미? 다 컸네.”

청년회의 중년인이 말했다.

“레미에요. 검은 산골 마을에서 오셨죠? 이번에는 제법 빨리 오셨네요. 아직 가을도 아닌데.”

“가을에만 오나?”

“안 올 때가 많죠.”

〈장녀 레미〉는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아무 데나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척 봐도 딱딱 알아맞히는 것을 보니 천생 상인으로 살면 대통할 것 같았다.

“여기는 모녀 셋이서 운영하는 곳이거든. 깔끔하지? 몇 십 년도 되었어.”

“아, 그래요? 그런 것치고는 그리 반갑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데···”

드낙의 말에 청년회가 테이블에서 클클 웃었다.

“원래 좀 무뚝뚝하지. 그래도 바로 알아보잖아?”

머리통 용병단과 청년회는 다르게 앉았다. 테이블이 10인 테이블이 없었고, 굳이 합칠 정도의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용병단은 드낙과 조금 관계가 있을 뿐이었다.

물을 세팅하면서 능숙하게 과일주를 꺼내왔다. 상표 하나 없었고, 통도 그냥 그릇에 큼지막하게 받아져왔다.

“이렇게 술이 오네.”

드낙의 중얼거림에 장녀 레미가 바로 말해주었다.

“지하실에 술통이 있어요. 저희가 직접 만드는 술이라서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싫어하시는 분은 좀 밋밋하다고 하세요.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쎄지 않고, 달지도 않아서 자주자주 오시고요.”

장녀 레미의 서비스는 확실했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단골인 청년회에 세팅을 먼저 해주었고, 그다음이 용병단이었다. 물론 거기에도 하나의 수작질을 했다.

청년회에는 능숙하게 술을 먼저 가져다준 것이다.

“음. 괜찮은데.”

“조금 새콤한 것도 있어. 입맛이 확 돋는걸.”

그런 소리를 들은 용병단에게 다가간 레미가 말했다.

“물만 서빙해드릴까요? 메뉴 정하시는 사이에.”

“아뇨. 저희도 저 담근 술이랑 물도 함께 해주세요.”

〈정보꾼 메르인〉이 능숙하게 말했다. 술은 담그는 사람에 따라서 전부 맛이 달랐고, 제법 술을 찾는 단골이 있는다는 말에 그대로 넘어간 것이다. 또한 바가지 안에 레몬이 동동 떠있어서 더욱 마시고 싶어졌다.

“동화로 얼마죠?”

〈간합의 융〉이 가격을 물었다.

“한 바가지에 동화 2닢도 안 돼요. 싸도 과일향이 진해요. 산딸기를 쓰거든요. 아, 근데 2번째부터는 3닢이에요. 싸다고 막 시키고 버리는 사람도 많아서요.”

직접 담그기 때문에 남기거나 버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호오.”

절로 큰 관심이 갔다. 술이 사람 머리만 한 큰 바가지에 2닢이라니.

‘지하실까지 만드는데 제법 돈을 들였을 텐데··· 싸다.’

“너무 싼 거 아니에요?”

“이 여관만 200년 되었어요. 그냥 그때 그 가격 그대로 하는 거예요. 고집이죠.”

레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쌩하고 사라졌다.

드낙은 한 잔을 따로 담아서 용병단에게 내어주었다.

“미리 한 입만이라도 해보세요. 좋더라고요."

“아, 감사합니다.”

〈후장털이 베듬〉 빼고는 모두 좋아할 만한 술이었다. 도수는 10도 되지 않아서 낮에도 즐길만했고, 그냥 음료처럼 마시기도 좋았다.

한 끼를 뚝딱 해결하고, 그대로 여독을 풀었다. 모두 그 대로 곯아떨어졌다. 드낙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부탁해서 도시락을 받았다. 우산으로 쓰는 두꺼운 나뭇잎에 꽁꽁 싸매어진 양념된 고기 한 덩이와 따로 과일 세 개가 도시락이었다.

“천 팝니다! 가죽 팝니다! 동물 기름도 싸게 팝니다!”

시장에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장 거리는 널찍해서 자리 잡기가 결코 어렵지 않았다. 또한 새벽부터 나온 사람 하나 없었고, 아침에도 느긋하게 장사 준비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에 반하면 드낙의 일행은 굉장히 빨랐다.

용병 다섯은 똑같이 호위를 해주었다. 곰 가죽을 싸게 구입한 값을 해야 했다. 물론 그중에서 〈케르욘〉은 여관에 남아서 곰 가죽을 지키느라 시장에 오지 않았다. 지키는 것은 곰 같은 케르욘이 최고였다.

육감은 융보다도 대단한 놈이었다. 그냥 들짐승 그 자체였다. 털도 북슬북슬해서 케르욘의 별명은 불곰이었다.

“이거 얼마요?”

“동화 5닢이요.”

“너무 비싸잖아.”

마을 사람들은 그리 많이 팔지 못했다. 가격도 대충 2년 전의 시세를 말하기도 했다. 드낙은 온라인 게임에서 나쁜 것만 배워서 선제시로 밀어붙이고, 그다음에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못 팔면 손해. 팔면 이득.’

〈화폐 유동〉 자체가 어려운 이 세계에서는 현물보다는 돈이 더 가치가 높았다. 희소성 때문이었다. 가죽 하나 무겁게 들고 가서 밀로 바꾸기보다는 짤랑거리고 들고 가서 바꾸는 게 최고였다.

큰 마을의 화폐를 훔쳐 오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아이고. 동물 기름 여기서는 동화 5닢 주고도 한 줌 주는 게 고작이잖아요? 저는 4닢입니다. 예예. 한 주먹 드릴게요. 좀 덜 줬네. 조금 더 받아 가세요.”

“고맙습니다.”

아이콘택트만 되면 그냥 판매가 가능했다.

대한민국에서 〈손님은 왕〉이라는 개 같은 소리에 놀아나며 알바를 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자존심을 파는 것이 현대의 서비스업이었다.

드낙은 그야말로 이곳에서 눈 부시는 서비스를 내어주었다. 하나가 적당히 주고, 조금 더 주는 두 번 주면서 흐뭇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입소문이 나겠지.’

2일만 장사해도 모두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는 무참하게 부서지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완판!’

가죽과 동물 기름을 모두 팔 수 있었다. 드낙이 가져온 가죽들은 모조리 팔렸고, 동물 기름 또한 마을 재산 중 자신에게 수익이 돌아가기에 열심히 팔았던 덕분이었다.

“바로 옆에서는 동화 4닢에 판다니까. 왜 여기는 6닢이야?”

“먼 곳에서 왔잖아요.”

티격태격하는 곳에 드낙이 끼어들었다. 제법 열심히 손을 본 가죽 신발이었다. 만져보면 안쪽은 거칠고 억센 마른 풀을 엮은 것으로 비벼대었기에 부드러웠고, 밖은 단단했다. 드낙은 단번에 가죽 신발을 만지면서 그 장점을 이야기해주었다.

“12시간. 여기 안쪽에 만져보세요. 끝부분이랑요. 부드럽죠?”

“어으응. 그러네.”

얼굴이 앳되지만 덩치가 있는 드낙이 밀고 들어오자 청년회 소속의 마을 사람은 밀려났다. 큰 마을의 마을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법 값이 나갈 수밖에 없어요. 가죽 길들이는데 얼마나 오래 걸려요? 조금만 거칠게 달려도 아프죠. 5닢만 받을게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니까요.”

“음···”

“잘 생겨서 가죽끈도 하나 더 준다. 오케이?”

“그럼 가죽 신발 하나 더 주시오. 가죽끈은 좀 튼튼한 걸로. 우리 애가 워낙 거칠게 다녀서 집안에 있는 건 남아나는 게 없어.”

드낙은 청년회가 쓴소리를 하면 그곳에 난입해서 좋은 소리를 했다. 옆구리를 치면서 때때로 호응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배드캅 굿캅으로 고객을 들었다 놓았다.

고개 숙이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우렁차게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싸다! 싸다! 자 동화 1닢 더 깎아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우왁!"

갑자기 대뜸 할인을 해주기도 했다. 그 덕에 활기가 확 뛰어서 충동구매를 하는 고객도 있었다. 굳이 사야 하지 않아도 정가에 사버리는 것이다.

굳이 2일을 머물 필요도 없었다.

드낙의 큰 활약으로 성황리에 조금 싼 가격이지만 모조리 팔아버렸다. 가죽 주머니에 동화가 가득했다.

마을로 돌아와서는 청년회 사람들은 나오질 않았다. 각기 돈 헤알리기 바빴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돈 욕이라면 누구보다 높은 게 그였다. 키가 모두 크면 중장갑을 맞출 것이기 때문에 바짝 저금을 해야 했다.

하나···둘···셋···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동화를 헤알려야 했다. 그만큼 드낙은 남다르게 깊은 숲에서 온갖 것들을 사냥했기 때문이다. 〈사냥꾼 게릭〉에게서 배운 노하우가 큰 역할을 해서 하루에 한 마리는 무조건적으로 잡았다.

‘그리 많지는 않네. 시세대로 팔 걸 그랬나?’

그리 많이 판 것치고는 동화가 490닢에 지나지 않았다. 은화 0.5닢 정도였다. 형편없이 적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은화는 생각보다 보기 힘든 것이었다.

제법 호화롭게 저녁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드낙은 그 과소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용병단과 상의할 것이 있다며 테이블을 바꾸었다.

“무슨 상의를 하시려고?”

“무슨 상의긴요. 횃불 성채에 동행하고 싶은데, 괜찮나요?”

“동행이요? 호의임무는 별개입니다. 따로 돈을 주셔야합니다.”

그 말에 드낙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통 용병단〉은 믿을 만한 용병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에 번 돈을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청년회에게 맡겨버릴 셈이었다. 적당한 대금도 쥐어준다면 홀라당 먹으려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예. 다양한 물건에 대한 시세를 알려면 횃불 성채가 제격인데다 거기에만 용병패를 주는 곳이 있잖아요.”

“? 용병 등록을 벌써 하시려고?”

융이 의문을 냈다. 시기상조였다고 여기는 드낙이었기 때문이다.

“네. 마을 밖으로 나온 건 위험때문인데 지금이 가장 안전해서요. 한 김에 거기까지 갔다오려고요.”

드낙은 집돌이마냥 한 번 밖으로 나갈 때 아주 뽕을 뽑으려고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믿을만했기에 돈을 전부 줄 셈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동물 기름〉 수익금 때문이라도 제법 되어서 돈 문제가 생겨도 그의 편을 들어줄 것이 청년회였다.

“어려울 것 없는데, 그리되면 동화 50닢은 주셔야 합니다.”

“어려울 것 없죠.”

이미 곰가죽이 대한 대금을 받은 것이 드낙이었다. 그의 비밀 금고에는 벌써 은화만 해도 27닢이 있었다. 또한 융이 말하는 동화 50닢은 아주 싼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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