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 <-- 찾아다니는 용병단 -->
“곰가죽을 보러 왔습니다.”
드낙은 융을 본채로 곁눈질로만 다른 이들을 순식간에 살폈다.
“상인으로는 안 보이는데···”
융이 웃었다.
“이런 험한 곳에 어떻게 상인이 오겠습니까? 의뢰를 받았습니다. 〈보부상 요베〉라고 아십니까? 그 자가 저희 의뢰인에게 정보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박제사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물건이 산골 마을에 있다고···”
드낙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그분은 잘 지내신가요?”
“요베를 말하는 것이라면 술집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보부상 짓을 안 한다더군요. 하하.”
드낙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머리통 용병단〉을 안으로 들였다. 드낙의 뒤통수를 보며 융이 입술을 혀로 핥았다.
‘제법이군. 사람 볼 줄을 알아. 고작 15살인데···’
한눈에 칼밥 먹는 이들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드낙은 심지어 곁눈질로 살폈다. 그것이 추가 점수를 주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융이 뒤를 보며 속삭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상시에는 나태하고, 서로 간의 존중 따위 없었지만 실전은 달랐다. 특히나 여기까지 허탕을 치고 와버렸기 때문에 여기서라도 이득을 봐야 했다.
“곰 가죽을 먼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저에 대해서 수군수군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면서요?”
드낙의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쁜 평가가 없는 드낙은 뭔가를 죽여서 얻어지는 전생자의 힘을 위해서 사냥을 자주 하였는데 (물론 소득은 없었다.) 그 때문에 항상 필요 이상의 육류가 남아돌았고, 마을에 뿌리다시피 했다.
그런 드낙에 대해서 은근히 묻는데 드낙에게 그런 정보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에 드낙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마을에 제법 영향력이 있어 보입니다.”
융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잔을 따랐다. 하나씩 정성껏 내어주었지만 누구 하나 입에 대는 이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오고 갈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드낙은 술잔을 기울었다.
“뭐 하는 분들입니까?”
융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에게 있어서 나이는 그 어떤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들이 패배했으니 사과하여 넘어가는 길밖에 없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나이에 비해서 몸의 단련이 심각할 정도로 뛰어났고, 손에 굳은살이 많았다.
‘특징적인 굳은살. 〈비전〉을 익혔다는 뜻이다.’
검을 휘두르면 손가락이 시작되는 곳 바로 밑의 손에 굳은살이 많이 베긴다. 하지만 드낙의 경우에는 보통 무인이라면 생길 수 없는 곳에도 굳은살이 있었다. 그것은 〈특징적인 굳은살〉이라고 말해지며 〈기사〉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했다.
1:1은 물론이고 둘러싸여도 교전 비율이 낮게는 6부터 많게는 100명까지도 있다는 전설적인 무용담 대부분이 기사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제법 베테랑 용병이라면, 〈특징적인 굳은살〉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융은 타락한 기사조차도 잡아야 하는 〈인간 사냥꾼〉이자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모르는 게 이상했다.
“미안합니다. 저희는 사실 〈손없는 센다빌〉이 당신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특징적인 할버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툼한 도끼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할버드 말입니다. 그 의심을 접지 못해서 이곳저곳 묻고 다닌 겁니다.”
“아.”
드낙이 단번에 이해했다. 확실히 보통 할버드와는 격이 다른 특수한 할버드였다. 적의 진형을 와해하는 것에 있어서 장창보다 뛰어난 할버드인데 그냥 무식한 도끼로 사용하는 것이 센다빌의 할버드였다.
하지만 그것이 의심을 모두 접게 하지는 않았다.
‘마적조차도 전술을 사용하는 판국에, 용병은 오죽할까?’
지식이 없어도 얄팍한 수를 사용했던 마적이었다. 남녀를 나누어서 창고에 넣는 것은 족히 몇 가지의 이득을 챙길 만한 놀라운 치사한 수법이었다. 아는 게 없어도 멍청하지 않다는 뜻이었고, 드낙은 그 이후로 누구라도 비수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평화로운 현대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그런 비수 하나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마을에 우환(憂患)이 많아서.”
“어려울 것 없죠.”
융은 세세하게 자신들이 행해온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능숙한 거짓말쟁이답게 요베에 대한 것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실로 대단히 진실된 말처럼 들렸다.
모두 믿을 수는 없었지만 긴 여정을 막힘없이 말하는 융의 말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저 외에는 대부분 의심을 접고, 곰가죽이나 매입해서 박제사에게 찾아가서 허탕친 시간을 만회하려고 했죠.”
“그러시군요.”
잠시 드낙이 생각에 빠졌다. 융을 비롯한 용병들이 〈특징적인 굳은살〉과 〈드낙의 정보력〉 때문에 굽히고 들어간 것과는 반대되는 생각을 했다.
‘용병 다섯이 모두 싸움을 제법 겪은 베테랑인데도 날 겁박하지도 않고, 대우를 해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나빠 보이지 않는다.’
온갖 처세술에 대한 책이 난무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은 말과 행동의 중요성을 밥 말아먹은 놈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욕하고 바닥에 침을 찍찍 뱉는 놈은 결코 좋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이곳에는 있을 정도였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 대해서 조사했다면 자신이 15살임을 알 텐데도 척 봐도 30대로 보이는 융이 반말을 하지 않은 것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주일이 넘는 일정을 단번에 이야기해주었다. 거짓말을 섞으려면 나중에 바뀌어야 하는 것 하나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똑똑하다는 소리였기에 당장 그것을 콕 집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되려 의심이 되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드낙은 생각보다 이 세상에서는 교양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더욱 융을 비롯한 용병을 압박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의심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숙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려서도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뜻이었다. 융은 이젠 이 목장이 몰락한 기사 가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곰 가죽을 매입하기 위한 것 또한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다.’
돈을 추구하는 용병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행보였다.
융의 침착한 모습 때문에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은 더욱 현실성이 부여되었다. 잡도둑이 은행을 털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전과 10범이 은행을 털었다는 것은 제법 신빙성이 있기 마련이다.
성격과 행보가 맞아들어가는 것 또한 훌륭했다. 그리고 만약 거짓이라면 섬뜩했다.
반신반의하며 드낙은 개인 창고로 향했다. 늑대 도노가 따라붙었다.
“늑대네요? 어떻게 길을 들였나요?”
메르인이 늑대 도노를 보며 감탄했다. 용병질을 하다 보면 5마리에서 많게는 15마리의 늑대 무리를 보게 되는데, 아주 흉악한 놈들이기 때문이다.
“서로 마음이 맞아서요.”
드낙은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검은 꿈〉을 통해서 얻었다고 할 수가 없었다. 야물찬 드낙에게 모두가 속으로 놀랐다. 메르인의 육감적인 몸매는 결코 떨쳐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메르인을 봐온 용병 단원들도 때때로 멍하게 볼 정도였다.
드낙의 거침없는 쳐내기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의 마음에 메르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드낙은 그것보다는 일단 출세부터 하고 여자를 찾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집부터 구매하고 결혼할 사람을 찾거나 결혼할 여자친구가 있어도 안정이 되고 하고 싶어 하는 일부 남자들과 비슷했다. 자존심이 높아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자신이 미달되면 모든 것을 뒤로 미뤄버리는 것이었다.
드낙의 자존심은 생각보다 굉장히 높았다. 지금까지 마을 처녀 하나 건드리지 않은 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만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현대인의 풍요로운 삶〉에 근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제법 되었다.
그래서 개처럼 일하며 락손에게 수업료를 줘가며 싸움법을 익힌 것이기도 했다.
현대인의 삶에 대한 기억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열등감을 주었고, 마음을 크게 데우는 장작이었다.
물론 여자에 대한 경험이 1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담배도 술도 맛이 들고, 자주 마셔야 좋아하는 법이었다. 여자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에서는 남중남고군대 테크를 타고 대학에서는 장학금에 눈이 멀었던 박호훈이었다.
미녀에 대한 욕구가 엄청날 수가 없었다.
“이게 팔 곰가죽입니다.”
“와우.”
막내 쎈이 감탄했다. 융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능숙하게 가죽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창고 곳곳에 피워진 횃불과 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습기를 없애려고 고생 많이 하시는군요.”
“상품의 질이 아주 높아야지 비싸게 팔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생각이 제법이었다. 융은 바람구멍이라고 할 만한 게 뒷다리에 늑대의 이빨이 파고든 것과 목 밑이 전부임을 알고 혀를 내둘렀다.
‘나도 힘들다.’
“출혈로 죽였습니까?”
“예. 족히 5시간은 버티더군요.”
융이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얼마나 봐?”
메르인에게 시선이 모두 향했다. 정보꾼답게 제법 아는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다면 전투에도 들어오지만 마을이나 도시, 성에서 활동하는 게 본업인 것이 메르인이었다.
“욕심부리면 20닢. 피곤하게 안 가려면 30닢.”
“뭐가 그렇게 비싸요?”
“저렇게 큰 놈이 온전해. 바로 박제될걸. 어디든 전시해도 아깝지 않아.”
“보통은 동면하고 바로 일어나서 기운 없는 큰 곰을 잡는데, 이건 아니야. 덩치가 최고점에 가까운데 잡혔어. 귀족들이건 뭐건 환장할 수밖에.”
베듬이 아는 척을 했다. 실은 뭣도 몰랐다.
“강하게 나가봐야지.”
1시간 티격태격하고 20닢 받으면 이득이었다. 못 먹어도 고를 해야 했다. 왜냐하면 여기까지 오는데 5일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은화 20닢에 파시는 게 어떠세요?”
협상에는 메르인이 나섰다. 융이 협상까지 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드낙과 융은 서로 앙금이 없어야 했고, 돈거래에 융이 나서면 앙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개인 간의 감정에 대해서도 나설 때가 있고 다른 이가 나서게 해야 할 때가 있었다.
“25닢은 받고 싶습니다. 습기를 조절한다고 들인 공이 있어서요.”
“22닢으로 해드리죠. 초를 100개 사도 은화 2닢이에요.”
“작은 마을이라 초가 비쌉니다. 기름은 더하고요.”
이래저래 말을 하다가 결국 드낙이 양팔을 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곰가죽을 쥐고 있어서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용병보다 더욱 곰가죽을 파는 것에 있어서 지쳐있었다.
“그럼 의뢰 하나만 해주시면 22닢에 해드리겠습니다.”
“어려운 것이라면···”
메르인이 말끝을 흐렸다. 드낙은 손사래를 치며 웃음이 만개한 채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싸한 의뢰였기 때문이다.
'말룩산의 얘기가 여기서 도움이 되네.'
“저희 마을에 화폐가 적고, 현물이 좀 쌓였습니다. 큰 마을이나 〈횃불 성채〉까지 가면서 물건을 판다고 이야기가 한 번 나왔는데, 거기에 함께 동행해주시면 22닢에 해드리죠. 가시는 김에 의뢰 하나 하는 겁니다.”
어려울 것 하나 없었다. 큰 마을에 물건을 팔기 때문에 돌아서 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르인이 고개를 돌리며 표정으로 융에게 물었다.
“저희야 좋습니다.”
드낙과 융이 악수했다. 융은 곳곳에 특징적으로 울룩불룩한 굳은살을 다시 한 번 손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뭣도 모르고 덮쳤으면 하나는 죽었겠군.’
용병은 곰가죽을 수송할 준비를 했다. 짐수레를 빌리고, 바닥에 천을 깔고, 곰가죽을 넣은 다음에 그 위에 다시 천을 놓고, 폐기름을 먹인 천막을 다시 덮었다. 새벽에 수분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일정은 금방 잡혔다.
애초에 드낙에게 말하지 않고, 사기 치며 가죽을 구매해간 마을 사람들이었다. 웃으며 그러려니 해도 돈 앞에서는 누구도 이기적인 것이 자본주의였고, 인간의 이기심이었다.
여기서는 법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그냥 코 베이면 지 잘못이거나 생사결을 해야 했다.
‘무림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네.’
산골 마을은 말 그대로 무법이었다. 서로 등 처먹어도 웃으면서 대충 술 먹으며 화를 풀어야 했다.
드낙이 용병을 고용해서 큰 마을에 간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너도나도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마을 회관이 북적거렸다.
“안주 드세요!”
품삯을 받으며 음식을 돌리고, 이번에 만든 가장 좋은 술을 파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드낙이 물꼬를 틀었기에 제법 중심에 위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