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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9화 (2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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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횃불 성채〉는 작년의 피해를 수복했고, 다시금 사람들이 성문에서 줄을 이었다. 곳곳에 횃불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다면 배의 길쭉한 돛대처럼 굵직했다.

신기한 것은 거대한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음에도 나무는 심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검게 그을린 채로 있을 뿐이었다.

몬스터를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몬스터를 태워 죽이는 〈횃불 성채〉만의 트레이드 마크 〈엔토르챠(Antorcha, 모순의 횃불)〉였다.

엔토르챠의 존재 때문에 횃불 성채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졌다.

성문에는 병사가 한 무리나 있었다. 검문으로 따지면 가장 삼엄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병사가 많이 투입되어 있었다. 그만큼 검문에 대한 불만사항이 나올 정도로 거센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니, 옷까지 벗으라니! 미치셨소?”

한 소리만 해도 바로 연행되었다.

“악! 이런 미친! 아아악!”

팔이 꺾여서 고통을 호소했다. 소리를 지르자 병사 하나가 그대로 주먹으로 머리를 치기도 했다. 옆구리에 킥을 먹이는 병사도 있었다. 병사들의 얼굴은 투구로 가려져 있었고, 모두가 중갑옷을 입고 있어서 위압감이 대단했다.

‘또 한 명이 〈불잡기〉를 당하는구만.’

〈횃불 성채〉에 처음 오는 놈들이 저지르는 가장 많은 실수 중에 하나였다. 이것을 많은 이들이 〈불잡기〉라고 불렀다. 검문을 받기도 전에 감옥에 끌려가서 하루 동안 고역을 치르는 일종의 〈횃불 성채〉만의 신고식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성채 안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다른 성채보다 널널했다. 검문에서 초장에 분위기를 잡아서 문제가 크게 발생하지 않았고, 그 덕에 성채 경비원의 기세가 훈훈했다.

“언제나 봐도 무식하네요.”

〈막내 쎈〉이 〈불잡기〉를 당하면서 처참하게 끌려가는 보부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양민을 저렇게 후드려패는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 다물고 있어.”

〈방패덩치 케르욘〉이 조용히 말했다. 검문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을(乙)인 것이 현실이었다. 4명의 서로 체형이 제각각 다른 용병이 병사들의 앞에 섰다.

“신문 증명.”

가장 앞에 있던 적당한 체형의 〈간합의 융〉이 용병패를 꺼냈다. 앞면에는 도끼와 검이 교차하고 있었고, 교차하면서 생기는 위아래로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또한 뒷면에는 〈메디오(Medio) 지방〉의 영주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병사가 뒷면을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전체적으로 횃불의 형상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손잡이에 눈을 집중하면 그 주위로 불똥이 튀어나오는 착시가 일어나는 것이 메디오 지방의 영주문장이었다.

‘진품이군. 〈영주문장〉이다.’

병사의 눈이 4인의 용병에게 향했다.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영주에게 고용되었다고 보기에는 형색이 그리 대단치 않았다. 어느 평범한 용병들이었다.

“〈머리통 용병단〉? 웃기는 이름이군. 들어본 기억도 없어. 몽타주를 만들고 난 뒤에 성채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

“예.”

짐을 확인한 머리통 용병단 4인은 그렇게 병영 내부에서 몽타주까지 그려지고 나서야 횃불 성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듣던대로 검문 하나는 최강이군.”

〈간합의 융〉의 말에 깡마른 〈후장털기 베듬〉이 대답했다.

“괜히 메디오 지방 최강의 성채가 아니지.”

“이런 곳에 메르인이 산다고? 금방 옥살이를 할 것 같은데.”

“감옥부터 들리는 게 어때?”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약속된 곳으로 향했다. 〈해가 지는 가장 서쪽에 있는 여관〉을 찾았다. 정보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 근처에 여관이 있습니까?”

적당한 체형에 인상도 좋은 〈간합의 융〉이 지나가던 시민에게 물었다.

“여긴 거주 지역인데··· 여관이 있는 건 못 봤습니다.”

물을 때마다 그런 소리가 나왔다.

“여관이 없어서 식당 종업원으로 있겠는데?”

융통성 있게 식당을 찾았다. 〈레스토랑 톰〉이라는 곳이었다. 척 봐도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곳이었다.

“어서오세요~.”

간드러지는 소리와 함께 여종업원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웨이브 진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척 봐도 매력적이었고, 관리도 잘 되어있고, 기름도 먹여서 반짝반짝 윤기가 났다.

긴 눈썹과 큰 눈 그리고 이목구비가 확실했다. 어깨가 제법 떡 벌어졌기에 기가 아주 세보였다.

“자리 안내해드릴게요~, 창가 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그리 말하면서 여종업원이 메뉴를 테이블에 놓으며 상체를 약간 숙였다. 풍만한 가슴골이 앉은 사람에게 절로 보였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뒤질래?”

허스키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응대할 때와는 격이 다른 목소리였다.

“니미. 이래야 메르인이지. 간단하게 먹을 거 가져와. 가장 싼 거 두 개랑 맥주 한 잔씩.”

“네에~ 주문받았습니다. 런치 세트 둘~에 맥주 네 잔~.”

엉덩이를 흔들고 사라지는 것을 보니 핫할 시간에는 금화를 벌어올 정도로 보였다.

밥을 먹는 사이에 메르인에게서 찢어진 양피지 조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집이었다.

식사를 모두 마친 네 사람은 그곳으로 향하지 않고, 여관에 짐을 풀었다.

〈현상금 사냥꾼〉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이상, 인간을 가장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가는 것조차도 어지럽게 골목길을 이용했다. 그것은 양피지 조각의 뒤쪽에 있던 약도였다.

만약 그들을 오랫동안 추적한 사람이 있다면 놓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횃불 성채를 잘 아는 메르인의 미행 제거 루트 중에 하나였다.

자정이 되어서야 움직였다. 횃불에 의지한 채 순찰하는 경비병들은 결코 어둠을 잘 이용하는 〈머리통 용병단〉의 움직임을 캐치하지 못했다.

끄윽-! 끄으익!

〈검독수리〉의 울음소리가 울리자 메르인의 집 문이 살짝 열렸다. 4인은 쏜쌀같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주행성인 검독수리가 야간에 울 리가 없었다.

“그놈의 검독수리 소리. 다른 걸로 바꾸면 안 돼? 너무 거지 같다고.”

말린 담뱃잎을 꾹꾹 누르면서 메르인이 화덕에 불을 붙이며 입술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로브를 벗으면서 〈머리통 용병단〉 5인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정보꾼 메르인〉

〈간합의 융〉

〈후장털기 베듬〉

〈방패덩치 케르욘〉

〈막내 쎈〉

하나같이 개성이 모두 달랐다.

“쓸만한 정보는 건졌어?”

“그놈은 잡았고?”

대장격인 간합의 융이 말하자 정보꾼 메르인이 되물었다.

“그래. 확실하게 목을 따서 소금에 절여서 메디오 영주에게 줬다.”

“다친 사람은 없고?”

방패덩치 케르욘이 가슴을 두드리며 짜증을 냈다.

“일 없으면 빨리 찢어지자고. 이 근처에 낚시할 포인트가 아주 좋다고.”

“벌써부터 휴식할 생각을 하는 거냐?”

“음침한 놈이 하수구 뒤지는 것보다는 낚시하는 게 낫지.”

“유물 탐사다.”

케르욘과 〈후장털기 베듬〉이 서로 티격태격 거렸다. 메르인이 담배 연기를 가득 피워냈다. 세상 살아가는데 하등 큰 이유가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취미도, 흥미도 적어서 담배는 유일한 즐길거리였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담배를 입에 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비싼 술을 모으고 마시는 취미를 가진 것이 전부였다.

“이번 타깃이야. 최근에 활동을 확인했지.”

양피지를 여러 장 내어주었다. 가장 먼저 〈간합의 융〉이 그것을 읽어보았다.

“〈손없는 센다빌〉? 내가 아는 그 센다빌이 맞나?”

“그래. 한동안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손 하나 잘린 채 마적질을 하고 있지.”

“손 하나 없이 어떻게 마적질을 할까요?”

〈막내 쎈〉이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말 그대로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무시하고 정보를 나누었다.

“할버드를 귀신같이 휘두르는 놈이야. 한 손으로 다루었지.”

“맞아. 할버드에 제법 큰 원형 방패를 손 잃은 오른팔에 고정한다고 하더라고.”

케르욘이 메르인을 보고 말했다.

“제법 자세히 아는데?”

적이 사용하는 무장은 퍼지기가 힘들었다. 마적은 기병이기 때문에 도망쳐도 죽기 일쑤였다.

“놈을 겪은 놈이 이 성채에서 일을 하거든.”

모두가 놀랐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매우 컸다. 놈에게 다가가는 길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고, 그렇기에 메르인이 센다빌을 다음 타깃으로 설정한 듯했다. 목격자만큼 확실한 족적이 없었다.

“뭐 하는 놈인데?”

“〈보부상 요베〉라고 불렸던 녀석이야. 이 지방의 산골마을이란 마을은 죄다 돌아다녔던 놈이지.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나 봐. 온갖 이야기를 떠들면서 술집을 운용하고 있어.”

이야기가 많은 놈이 술집을 여니 제법 번창할 수밖에 없었고 유명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안줏거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당연히 좋은 안줏거리가 되었다. 〈정보꾼 메르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협박이 통하는 놈인가?”

“가능할 것 같은데, 겁쟁이거든. 근데 문제가 있어.”

“문제?”

“범죄수들을 종업원으로 두 명 부리고 있어서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거야.”

메르인을 제외한 이들이 입맛을 다셨다. 전투의 전문가라고 해도 전투는 언제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전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그것은 더욱더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기에 매우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고, 베테랑의 싸움에 있어서 성질 급한 놈이 더 승률이 낮았다. 전투란 생각보다 사전 준비와 마음 자세가 승리를 높여주는 비율이 제법 되었다.

“범죄수를 고용한 전직 보부상이라.”

“손님들은 대체로 거친 남자들이 많고, 불법적인 일에도 제법 연관되어 있다더군. 그래서 보안이 더욱 삼엄할 거야.”

“알고 있는 방범은 뭐 있어?”

“창문 쪽으로는 진입하지 않는 게 좋아. 제법 돈을 들였다고 목수들이 좋다고 떠들었지.”

여기에 대해서는 〈후장털기 베듬〉이 아쉬워했다. 깡마르고 멀대 같은 그에게 있어서 창문 진입이 금지된 것은 큰 단점이었다.

“후장 터는 놈이 부랄을 털러가겠군.”

뒤를 털어야 하는 놈이 그럴 수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시끄럽다. 겁쟁이 요베의 전투력은?”

“놈에게 지는 순간 은퇴해서 농사나 지어야 할 거야.”

“그 정도야? 쎈, 너는 망이나 봐야겠다. 혹시라도 지면 바로 귀향이다. 으흐흐.”

〈방패덩치 케르욘〉이 막내를 놀렸다. 18살에 불과하지만 마인드가 좋고, 〈정찰병〉의 재능을 지녔기에 용병단에 들어온 〈막내 쎈〉은 인내심이 제법 있었기에 같이 웃는 것이 반응의 전부였다.

“3일 뒤에 치자고.”

바로 치면 용의선상에 들러붙을 수 있었다. 돈 아끼는 용병들답게 〈협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자마자 다른 길은 말로 꺼내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범죄자에게서 돈을 빌어먹는 놈이라는 소리에 폭력적인 일을 하는 것에 거부감 하나 느끼지 않았다.

그 뒤로 3일에 걸친 사전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막내 쎈〉이 움직였다. 전투를 많이 경험하지 못해서 앳되어 보이는 쎈은 염탐하기에 최고였다.

“이게 뭐라고요?”

노점상 주인은 메뉴 두 개를 구분 못하는 등신새끼를 연기하는 쎈에게 열변을 토하다가 손을 놓아버렸다.

“반반으로 따로 만들어줄 테니, 알아서 먹고 판단하쇼."

상인이 등신새끼를 위한 맞춤 반반 먹거리를 제조하는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며 하품 한 번 한 쎈이 능숙하게 벽에 주저앉아서 냠냠 먹었다. 낮의 술집은 조용했다. 밥을 먹고 골목길로 들어가서 능숙하게 뒤로 한 바퀴 돌며 쎈이 빈집으로 쏙하고 창문으로 뒤로 들어갔다.

“어때?”

빈집에 새벽에 자리를 잡은 다른 이들이 카드를 돌리다가 쎈이 창문으로 들어오자 〈간합의 융〉이 물었다. 그 물음에 쎈이 대답했다.

“술집은 그냥 연막 같은데요? 해가 중천인데 출근도 안 했어요.”

뭔가 또 다른 비밀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곧 부수입이나 다름없었다. 범죄자의 물건은 그냥 장물이나 다름없었다. 먹는 놈이 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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