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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8화 (2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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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베를 비롯한 보부상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묶여서 마을 회관으로 끌려갔다. 비가 쏟아지는 새벽이었기에 쥐처럼 쫄딱 젖어서 드낙의 앞에 섰다. 그 사이에 그는 따뜻한 수프를 한잔했다.

몸을 데우고, 화덕이 피어오른 곳에는 횃불이 벽에 걸려있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다시 잠자러 갔다. 내일에도 상황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호기심이 강하고 남들에게 말하길 좋아하는 청년회의 몇몇 인원들만이 지켜보고 있었다.

번쩍! ······콰르르릉!

세제본은 꽁꽁 묶인 채 빗속에서 질질 끌려서 오며 몇 번이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고꾸라져서 구르기도 하였기에 정말 엉망이었다. 그는 흐느낄 기운도 없었고, 그저 벌벌벌, 벌벌 떨고 있었다.

너무나도 추웠기 때문이다. 젖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있었다. 팔은 어찌나 강하게 묶었는지 피부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 모습은 처참했다.

꿀꺽.

요베는 도살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드낙에게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무릎을 꿇고 있었기에 드낙의 키가 매우 커 보였다. 마치 〈곰〉같았다.

내려진 시야에서 도끼 부분이 큰 할버드와 원형 방패가 요베의 눈에 크게 들어왔고, 뇌에 각인되었다.

“당신네 보부상 하나가 내 개인창고에 들어와서 곰 가죽을 훔치려 했소. 앞에 있는 것이 그 증거물들입니다.”

비에 젖은 사각형의 보부상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서리를 덮고 있는 가죽 부분은 새하얗게 닳아있고 동시에 폐기름 특성상 거무튀튀한 반점이 가죽 곳곳에 점처럼 박혀있었다.

‘틀림없는 세제본의 상자다.’

요베는 욕할 정신도 아니었다. 그를 욕하기보다는 자신이 살아날 구멍이 필요했다.

증거품들은 다른 것도 많았다. 흠집이 크게 나고, 날이 상한 단검도 있었다.

“그의 단독 행동입니다. 저는 그와 함께한 지 1달이 채 되지 않습니다. 저런 잡도둑놈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죽이든 노예로 만들든 마을의 법규대로 하십시오.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자네가 데려온 사람이 우리 마을에 피해를 입히게 했는데, 상관이 없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응?”

덜그르럭.

할버드를 질질 끌며 드낙이 다가왔다. 순간 원형방패가 쑥하고 다가왔는데, 얻어맞는 줄 알고, 요베가 크게 버둥거리다가 옆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실제로는 그저 다가간 것뿐이었지만 시야가 아래에 있어서 팔이 휘적거렸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었다.

“크크크.”

마을 사람들이 웃었다. 요베의 겁쟁이 같은 모습은 실로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웃음소리 때문에 요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도 사내였다. 거친 곳을 돌아다니는 보부상이라서 제법 자존감이 높았다.

‘개새끼들.’

속으로는 욕을 해도 겉으로는 일절 드러나지 않았다. 물가에서 〈상인의 얼굴〉을 연습했던 요베였다. 하지만 다른 보부상들은 아니었다.

“개새끼들아! 이렇게 겁박하고, 묶어놓고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 강도 새끼들!”

퍽! 퍼벅!

“악!”

입을 놀린 보부상은 거칠게 얻어맞아야 했다. 청년회 일원들의 몽둥이가 그를 두들겼다. 도둑놈의 한패일지도 모르는 놈이 감히 선량한 마을 시민에게 욕을 하다니. 무례하다고 생각됐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 상황에서 완벽한 강자였고, 더욱이 그들은 평범한 보부상이 아니라 죄인이었다. 마을의 재산을 훔치려고 한 강도였다. 앞에 있는 단검이 그 증거였다.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강도 주제에 감히 자신들에게 똑같이 강도라고 소리친 것이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강도는 되려 너희들이다.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일 리가 없지. 큰 곰 가죽인데 당연히 들킬 것을 저 도둑놈 새끼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을 벌였다. 너희들도 알고 있었다는 거다.”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모습이 토해졌는데 또 나쁜 소리가 보부상들에게서 나올 리가 없었다.

“아니다! 아니오! 아닙니다!”

요베가 고개를 크게 저으면서 소리쳤다. 〈막내 제큰〉은 끙끙 앓으면서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너도나도 감정적으로 나왔기에 요베의 간곡한 소리에 사태가 한 번 진정되었다.

‘여,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요베, 우리 사이가 이런 걸로 찢어지지는 않을 거 아닌가? 다음에 올 때에는 은화 30닢을 가져오시오. 제대로 곰 가죽의 값을 받아야겠습니다.”

요베가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예! 그래야죠! 예!”

“그리고 이 강도 새끼에 대한 손해배상도 당신이 해줘야겠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새끼라서 놈이 있던 빈집을 뒤졌지만 돈 되는 것 하나 찾지 못했소.”

거짓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널브러진 물건을 그냥 홀라당 다 가져가버려서 없다고 말했다. 유교관이 존재했던 시대조차도 기근이 오면 서로 옆집마다 아기를 교환해서 삶아서 생(生)을 도모해야 했고, 조난당한 산채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은 일은 공공연한 생존법이었다.

드낙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손해를 메꾸기 위해서는 요베를 물어야 했다.

‘돈이 더 필요해.’

경제가 멈춰있는 이 마을에서 화폐를 잔뜩 모으는 일은 힘들었다. 드낙은 현금보다는 현물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중에 장성해서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때, 중갑옷을 만들기 위해서의 사전 준비부터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기괴하게 저금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대장장이 말룩산을 가죽이나 비싸 보이는 것으로 물물 교환해서 노동력을 사야 했다. 대부분 드낙이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해야만 했는데, 목마른 드낙이 우물을 파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고금리에 대출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중고물품도 닥치는 대로 사야 했다. 제법 단단해 보인다는 철을 산다고 하다 보면 탄소 함유가 제법 되어 보이는 강철을 보게 되는데 강철을 볼 때까지가 그야말로 즉석복권 당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현대의 상업 시스템이 얼마나 발전되어있는지 뼈저리게 느낄 정도로 원하는 것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더불어서 화폐를 손에 쥐기도 어려웠다.

“당연히 손해를 메꿔야지요. 은화 세 닢을 드리겠습니다.”

요베의 말에 드낙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은화 세 닢은 큰돈이었다. 거침없이 말한 것부터 그것으로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는 것이 컸다.

‘이런 걸로 장난질하기에는 액수가 크다.’

이미 예상했던 액수와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요베가 하지 않은 일에 더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검은 산골 마을〉에 오는 보부상 중에서 가장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요베가 유일했다.

“그렇게 합시다. 집으로 돌아가시오.”

드낙이 할버드를 놓고, 단검을 쥐어서 풀어주었다. 보부상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고개를 굽신굽신 거리며 마을 회관에서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봐 조마조마했다.

미친 듯이 달려나가다가 요베가 진흙탕에 엎어졌다. 흥분제 먹은 투견처럼 벌떡 일어나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대로 보부상들은 값을 치르고, 도망치듯이 마을을 떠났다.

드낙은 요베에게 적절한 대처를 했다고 했지만 요베는 아니었다. 그는 모든 꿈을 접고, 사라졌다.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과 산골 마을과는 연관 자체를 짓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도시로 가자. 거기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게 더 낫겠다.’

자신의 커리어라면 어느 상단에서든지 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가게의 종업원에서 시작해도 금방 수완을 드러낼 자신이 있기도 했다.

보부상 4명은 그렇게 줄행랑을 쳤다.

그 사이에 드낙은 〈험상궂은 세제본〉의 처리를 고민했다.

“드낙, 그렇게 고민되면 그냥 농노로 삼아버려. 어차피 근본 없는 놈. 죗값을 치를 때까지 농노로 삼는 거지.”

“농노요?”

드낙은 고민했다. 그가 현대인이라 인권에 대해서 대단하게 생각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성폭행 전과 15범 같은 여자 인생 여럿 날린 놈도 버젓이 사회로 다시 돌아오는 현대의 인권은 박호훈, 드낙에게 있어서 개줫같은 소리였다. 더군다나 세상도 다른데 현대의 법과 사상을 들고 오는 짓은 사리에도 맞지 않았다.

거기에 호응해줄 놈은 없고, 〈미친놈 드낙〉이라는 소리가 나돌 것이다.

‘농노? 괜찮긴 한데 관리가 힘들어.’

자신이 할 일은 많았다.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세제본을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드낙은 놈을 내려다보았다.

〈험상궂은 세제본〉.

‘죽인다면?’

도둑질 같은 능력을 얻을 것이다. 필요가 있는가?

없다.

드낙의 삶에 있어서 도둑질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출세하는 사람의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박호훈의 지난 삶에서도 도둑질은 없었다. 배고팠던 적이 없었던 것이 현대의 삶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사치와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이 출세를 꿈꾸고 있었다. 이런 산골 마을에서 도저히 지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상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지겨운 삶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은 〈버틴다〉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죽여서 얻는 것도 없고, 도둑질해서 손목을 자르면 후환이 두렵다.

‘척 봐도 미래를 알 수 없는 놈이다.’

드낙이 흉흉한 생각을 할 때마다 눈빛이 번들거렸다. 거칠게 살아온 세제본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주 보던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이고 봐왔던 〈살인하기 전의 인간의 눈〉이었다.

‘살아야 한다.’

그가 추위로 덜덜 떨면서 입을 웅얼거리며 열다가 캑캑거렸다. 목이 메말라 있어서 안이 뻑뻑했다. 그러면서도 양손으로 드낙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쯧쯧.

남은 3명의 청년회 사내들이 혀를 찼다.

“마을의 재산으로 이 자를 농노로 삼으면 어찌 됩니까?”

그 말에 단박에 사내들이 좋아했다. 말을 속사포처럼 내뿜으면서 당연히 좋지!라고 목소리를 제법 높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노동력은 이 산골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장만 해도 다섯 곳 이상으로 놈을 굴려댈 곳을 생각할 수 있었다.

세제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고 드낙이 할버드를 주억거리자 씻은 듯이 마음을 바꾸었다.

“몇 년이라도 농노로 살겠습니다.”

“내 할버드에 골통이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놈에 대한 관리는 청년회에서 대신해주지.”

드낙은 그리하겠다고 말하였다. 청년회의 일원은 당장 내일 회의를 열어서 세제본이 할 일을 배당하기로 하였다.

세제본은 옷을 갈아입고, 달구어진 화덕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가 몸을 누운 곳은 딱딱한 나무 바닥이었지만 그 밑에는 뜨겁게 달구어진 돌이 세 덩이 들어있어서 온기가 슬슬 흘러나왔다.

산골 마을이라서 추위가 추울 때는 여름에도 덜덜 입술이 떨릴 정도라 야영지에서 할 법한 수단이 집에 즐비하게 있었다.

다리와 팔에는 묵직한 철로 단단히 잠가졌다. 집의 기둥과 이어져있어서 도망은 꿈도 못 꾸었다. 락손이 가져온 〈범죄농노〉 10명도 이러한 식으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세제본에 대한 처우가 마을 회관에서 열렸다.

그도 그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도둑질을 했지만 크게 손해를 본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평생 농노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10년! 그것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어느 누가 은화 50닢도 받을 큰 곰 가죽을 탐하겠소? 살아생전에 저런 천박한 도둑놈은 처음 봅니다.”

마을의 재산이 될 세제본은 아주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했다. 매년 혹은 격년(2년)마다 찾아오는 세금 징수원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고작이라서 이곳에는 법관도 없었다.

〈마을 법규〉가 모든 것을 판단했다. 심지어 〈검은 산골 마을〉의 마을 법규는 제대로 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을 사람들의 그때그때 마음에 따라서 달라졌다.

다른 곳은 달랐지만 이런 촌구석의 법률은 실로 조잡했다. 복수적인 성격이 강했고, 이기적인 성향이 컸다.

그렇게 세제본은 〈검은 산골 마을〉의 농노로 10년을 복역하게 되었다.

드낙은 그렇게 세제본을 놓아줘도 무덤덤했다. 어차피 그 덕에 마을은 조금 더 발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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