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27화 (27/1,239)

0027 <-- 찾아다니는 용병단 -->

〈험상궂은 세제본〉은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불로 달구고, 비에 살살살 적신 상태로 물 묻은 돌로 슥슥 갈았다.

솩! 쏵!

여기에는 10여 분을 투자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신속이 최우선이었다.

‘쇠창살을 단검으로 뜯어야해.’

다른 곳에 가기에는 동선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윽!

닫힌 나무 창문으로 밖을 이리저리 주시하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곰가죽을 넣을 상자가 필요했다. 아주 큰 상자가 필요했다. 당연히 그것도 있었다.

덜컹! 스슥!

보부상용 나무 상자가 쩍 하고 열렸다. 세제본이 짊어지는 보부상용 가방이었고, 팔아야 할 물건이 가득했다.

‘조심, 조심.’

그곳에서 말끔하게 하나씩 꺼내서 조심스럽게 바닥 놔두었다. 자신이 몸을 누웠던 천에 놓았다. 또한 습기를 우려해서 누더기 천 자투리로 덮어놓기도 하였다.

‘충분해. 이런 폭우에서도 보부상 상자는 특출나지.’

폐기름으로 둘러치고 며칠이고 며칠이고 함께했던 중고 보부상용 나무 상자를 들쳐매었다. 폭우가 심했기에 위에만 옷을 걸쳤다. 빗줄기에 제대로 맞으면 폐기름으로 몇 년이고 사용된 중고품이라도 물이 침투할 수 있었다.

‘후우.’

단검을 가슴속에 품으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주변은 빈집들이 제법 있었고, 하늘에는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둑놈들이 활개를 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세제본은 폭우 속에서 움직였다.

‘늑대는 볼 것도 없다.’

후각이 발달한 늑대는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X밥이나 다름없었다. 쫑긋 세워져서 청각을 듣기도 좋은 늑대 귀 또한 빗소리가 자신의 발소리를 지워줄 것이다.

흙내음과 비냄새로 가득한 곳에서 자신의 냄새를 맡는다? 어렵다.

집 안에서 어찌 자신을 볼 수도 없었다.

‘안 들킬 자신이 있다.’

그러한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험상궂은 세제본〉이 창고를 털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잡도둑부터 시작해서 인간 백정들이 넘쳐나는 곳을 헤쳐 나와 여기까지 온 막장 인생을 겪은 자였다. 험상궂은 얼굴로 시작했던 깡패짓으로 시작된 인생의 내리막길의 끝은 보부상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나쁜 손버릇은 또 도졌다. 은화 50닢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쏴아아아-!

미친 듯이 내리는 폭우에서도 세제본은 능숙하게 〈드낙의 개인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번 미끄러지지 않은 것은 그의 날렵한 균형감각 덕이기도 했고, 경험이 충분하기도 했다.

도둑은 비오는 날을 가장 좋아했다. 부상의 위험보다는 걸릴 위험을 줄이기 때문이다.

처르렁, 철컹!

창고를 두르고 있는 쇠창살을 한 번 잡아당겨본 세제본은 능숙하게 견적을 냈다.

‘단검으로 끊어내려면 좀 어렵겠는데.’

철 자체가 탄성이 있는 것이 접쇠나 담금질을 한 강철을 사용한 듯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캉!

캉!

캉!

세제본이 단검을 세 번 내려쳤다. 그리고는 끊어지지 않자 폐기름을 가죽에 먹인 중고 보부상 나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단검을 쥐었다.

“크흡!”

체중을 실어서 달달달 손을 떨었다. 뚝하고 부러졌지만 고작 하나뿐이었다.

‘젠장.’

세제본의 개지랄이 시작되었다. 단검으로 쑥쑥 톱질을 하기도 하고, 체중을 실어서 껑충껑충 뛰기도 했다.

“어엇!”

미끌려서 크게 위험할 뻔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까마귀가 입을 쩍 벌렸다. 하도 잠을 많이 자서 잠이 오지 않았다.

목장의 2층에 있는 드낙의 방에서 카이야가 눈을 꿈뻑이면서 나무 창문을 제 맘대로 살짝 열어놓고 털을 고르고 있었다.

최근 사춘기가 온 것처럼 구는 카이야 때문에 드낙은 〈갈색늑대 도노(Dono)〉와 사냥을 하는 게 빈번했고, 덕분에 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는 것이 카이야였다. 아침에 슬쩍 일어나서 밥 먹고 날아올라 드낙의 침대에서 자는 게 일상이다.

또한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슬슬 드낙을 〈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칭얼대면 과일과 육포가 나오고, 이제는 밋밋해서 질린 곡물가루를 발로 슥슥 밀다 보면 말린 옥수수가 떨어졌다.

“까악!”

한껏 소리를 내지른 카이야는 세제본이 하는 것을 폭우 속에서도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드낙의 개인창고〉가 무엇인지는 잘 알았다.

똑똑한 것이라면 동물 중에서도 원탑이라고 꼽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 검은 까마귀였다.

카이야는 단번에 드낙에게 날아가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부리로 어지럽혔다. 드낙은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불을 한껏 높였다. 카이야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카이야가 버둥거리면서 일어나서 발작하듯이 머리를 털었다.

“악! 뭐, 뭐야!”

크르르, 컹!

드낙의 머리로 날아올라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머리를 쿵하고 찍고 부리로 이마를 쿡하고 찔렀다. 잘 자는 중에 고통이 느껴지니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카이야의 날갯소리에 그의 표정이 야차처럼 흉악해졌다.

더불어서 놀란 도노도 소리를 냈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해졌다. 드낙은 상황을 파악했다.

“이 조류 대가리가?”

“깍!”

카이야가 나무로 된 창틀에서 날개를 쿡하고 허공에 찍었다. 비가 쑤수수 내리는 곳에서 나무 창문이 반쯤 열린 채 있었다. 드낙은 한숨 한 번 쉬고 창문으로 향했다. 인간의 시야로는 폭우 속에서 250M를 어둠 속에서 꿰뚫을 수가 없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뭐야?”

카이야는 답답하다는 듯이 개인 창고를 가리켰다. 하지만 드낙은 영문을 모를 뿐이었다. 조류의 색채 없는 시야는 명확하게 세제본이 허공으로 양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단검으로 창고의 옆쪽을 공략하는 게 보였는데 이 멍청한 인간놈은 모르는 것이다.

인간의 동공 확장과 까마귀의 동공 확장에도 차이가 분명했다. 빛을 흡수하는 데에도 양적으로 차이가 났다.

드낙은 카이야가 꿀밤을 맞아도 바락바락 대들면서 개인창고를 가리키자 이 막장 까마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뭔가 사단이 났구나.’

그제서야 개인창고에 있는 은화 30닢짜리 곰가죽이 생각났다. 깊은 숲에서 흉측한 몬스터도 앞발로 원투펀치를 날리고 아가리로 두개골을 박살내던 〈번쩍 두다리 곰〉! 그 녀석을 잡는데 노력한 드낙이 다급하게 장비를 찾았다.

‘숏소드? 아니야.’

센다빌의 할버드를 집어 들었다. 데드리프트로 제법 잘 썼던 놈이다. 길이가 길어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도 양팔의 단련에 큰 도움이 되던 놈이었다.

자물쇠를 열쇠로 열다가 도둑놈을 놓치면 안 되었다. 단번에 쇠사슬을 끊어야 했다.

원형 방패는 센다빌의 노하우를 적용했다. 팔뚝에 고정시켰다.

투척 단검을 혁대에 세 자루 걸고, 한 자루는 뽑아서 왼손에 쥐었다.

“읏차.”

할버드를 어깨에 짊어지고, 문밖을 나섰다. 도끼날은 당연히 돌려서 자신의 몸 아래로 향하게 했다. 무식하게 밖으로 나선 드낙은 잠옷 차림으로 문밖을 나섰다.

폭우 속에서 움직이는 와중에 개인 창고에 불이 밝혀지는 것이 보였다.

‘이런 미친.’

드낙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주르륵 미끄러지기도 했다. 물웅덩이에 발이 푹하고 들어갔다. 거칠게 움직였다.

‘개새끼가. 어떤 개새끼가.’

드낙은 자연스럽게 몸이 크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길을 내려가면서 침착해졌다. 도착 30걸음 전에는 조용히 움직였다.

창고 입구에서는 열쇠를 열지도 않았다.

“후웁!”

단번에 어깨를 들썩이며 할버드를 드는데 도움을 얻었다. 오른팔로 우악스럽게 할버드가 휘둘러졌다. 센다빌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165cm에 달하는 할버드는 도끼 부분이 특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파괴력 하나는 절륜했다.

드낙이 사용해도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출력의 몇 배를 할버드를 통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길이가 길수록 원심력이 더해지고, 도끼 부분이 두꺼울수록 무서울 정도로 힘이 더해졌다.

쾅!

유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드낙이 단번에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갔다. 할버드를 무슨 연쇄살인마마냥 질질 끌었다.

안에서는 어둠 때문에 곰가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횃불 3개에 모두 불을 붙인 대범한 도둑 세제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크!”

소리를 내지르며 놀라 하다가 그대로 보부상의 나무 상자를 드낙에게 던졌다. 드낙은 할버드로 능숙하게 상자를 후려치고, 동시에 왼손을 놀려서 미리 쥐고 있는 투척 단검을 쏘았다.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푹.

조용한 소리 하나 났지만 세제본이 입으로 크게 악 소리를 냈다. 두툼한 허벅지에 맞았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었는데, 드낙이 카이야에게 머리가 쪼이고 소리를 내면서 깨운 늑대 도노가 짖었다.

입을 쩍 벌렸다.

“크르르르! 캉!”

“허업.”

세제본이 다시 안으로 머리를 내빼었는데, 머리카락이 도노에게 물려잡혔다.

“켁!”

단번에 머리 위쪽이 구멍과 부딪쳤다.

드낙이 할버드를 옆이 쿵하고 찍었다. 그리고 왼손 팔뚝에 고정시킨 원형 방패로 세제본의 머리통을 한 번 쿵하고 밀어서 때렸다. 할버드에 이마가 찍혔다.

“아큭!”

코뼈가 단박에 비틀렸다.

“개 같은 잡도둑 놈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너 뭐 하는 새끼냐?”

드낙이 왼손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그리곤 멱살을 잡아서 당겼다. 도노가 머리카락을 악물고 놓아주지 않자 소리쳤다.

“도노! 돌아서 내 쪽으로 와!”

늑대 도노가 쏜살같이 사뿐사뿐 네발로 균형을 잘 유지하며 순식간에 입구로 들어왔다. 그 사이에 드낙은 멱살을 잡아서 흔들며 추궁하고 있었다.

“뒤지고 싶어서 환장한 새끼야. 너 뭐 하는 놈이냐고?”

“사, 살려주시오.”

드낙이 놈을 거칠게 밀어서 땅에 패대기치며 할버드를 잡아 들어 올렸다.

“주시오? 정신 못 차렸지?”

“으허억!”

드낙은 온갖 욕설을 해대었다. 아주 크게 흥분했는데, 사냥꾼 게릭에게 마브로스 리꼬에 대한 대금도 못 받은 상태에서 마적 습격이 이루어졌고, 당연히 게릭은 〈검은 늑대 가죽〉을 홀라당 가져가버렸다.

그때 이후로 최근 돈에 대해서 예민하게 되었다.

열불이 안 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게 드낙이었다. 길을 내려오며 냉정했던 것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제대로 된 장비를 구매하려던 검은 늑대 가죽 대금은 허공으로 사라졌고, 〈번쩍 두다리 곰〉을 때려잡아서 얻은 통가죽조차도 허공으로 사라질 뻔한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세제본이 벌벌 떨었다. 드낙의 기세는 15살짜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덩치도 벌써 170cm였고, 〈센다빌의 백병전술〉 때문에 인간 백정 냄새도 났다. 고블린을 비롯해서 검은 늑대와의 실전도 경험했다.

수많은 사냥도 깊은 숲에서 행하였다.

사냥꾼의 비릿한 들짐승 냄새가 함께 났기 때문에 세제본은 그저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에 박힌 단검이 크게 움직이고 있어서 상처를 더 벌렸지만 죽음의 공포 때문에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도노야. 아버지랑 형들 좀 불러와라. 저 목장에 있는 사람을 불러와. 카이야, 너도 가라!”

까마귀와 늑대가 빠르게 움직였다.

드낙은 발로 세제본을 걷어차서 끝으로 몰았다. 할버드를 어깨에 짊어지고 왼손에 다시 한 번 투척 단검을 쥐었다.

“다, 단검을 빼도 됩니까?”

자신의 허벅지에 박혀있는 단검에 대해서 말했지만 드낙은 노려 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세제본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있어야 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기름 먹인 횃불이 곳곳에서 피워올라 야밤에 불을 밝혔다.

“보부상의 나무 상자에, 흠집이 많은 단검. 거기에 창고를 두른 쇠창살을 끊은 것까지. 현행범으로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있나?”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 상황과 현장을 정확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세제본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단검이 빼내지고, 밧줄에 묶였다. 그다음에 약초로 허벅지의 상처와 얼굴에 난 상처가 치료되었다. 붕대가 칭칭 감겼다.

“마을 회관으로 끌고 가서 바로 재판을 하겠습니다. 보부상들 또한 모아주시오.”

“이건 저 혼자서 벌인 일입니다!”

“그건 두고 볼 일이고!”

세제본이 모순되게 자신과 함께하던 보부상들을 대변하며 소리를 지르자 드낙이 거칠게 놈의 머리채를 흔들며 똑같이 소리를 질러주었다. 그는 그 뒤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드낙을 위로했다.

“이런 미친 일이 또 마을에 생기다니···”

“어서 팔아버리는 게 좋아.”

너도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드낙은 하나하나 대답해주며, 할다낙과 세르낙에게 부탁을 했다.

“곰가죽 팔면 두둑하게 해드릴 테니, 창고 수리 좀···”

“내일 할게. 내일.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아버지인 할다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은 세르낙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은 별 수 없이 놈을 이끌고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곰가죽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