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 <-- 늙은이를 위한 마적 -->
‘놈은 늑대를 부린다.’
〈손없는 센다빌〉은 전투의 전문가였다. 가끔 흥분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백병전에 이골이 난 베테랑이다. 그런 그는 겉으로는 흉포했지만 속은 약삭빠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겉으로는 불곰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살쾡이처럼 생각해서였다.
살쾡이였기에 〈일그러진 세탄〉을 구출한 것이었다.
그의 꾀는 그에게 있어서 세력을 적당히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수입을 가지고 오기도 했기에 미래를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물론 자신을 끝까지 쫓아오는 상황에서는 순식간에 버려버리기도 했다.
그것이 〈손없는 센다빌〉이었다.
언제든지 생각을 180도 홱하고 바꿀 수 있는 인간이 센다빌이었다.
〈늑대 조련사〉로 보이는 드낙은 아주 위협적인 상대였다.
‘들짐승은 1:1이라도 상대하기 버겁다.’
성인 남성이 무기를 쥐고 있어도 까딱 잘 못하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늑대였다. 작아 보이지만 날렵하다. 인간은 시야가 높고, 양팔에 쥔 무기로 리치에서 이득을 보지만 그것이 한 번 실패하면 바로 목이 물린다.
늑대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순식간에 사각을 파고들기도 하며 바닥에 들러붙은 것처럼 보여서 숙련된 병사도 창으로 늑대를 찔러잡는 것이 힘들 정도다.
대부분의 늑대가 덫으로 잡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드낙은 특출난 사냥꾼이었다.
〈숲의 사냥꾼 늑대〉를 부리는 드낙은 센다빌에게 있어서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놈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거칠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기로 방패를 두들기며 급박하게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적당히 걸으면서 센다빌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드낙의 나이는 이제 15. 나이보다 발달이 좋았지만, 그래도 곰 같은 사내인 센다빌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애새끼, 걸리면 단박에 골통을 부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늑대다.’
센다빌은 백병전의 전술을 늑대부터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드낙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우와아아아!!!!”
센다빌이 소리를 내지르며 어두컴컴한 곳에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밤바람 때문에 수풀이 흔들려서 늑대가 어딨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부상은 피할 수 없겠는걸. 그렇다면 몸을 아끼지 않겠다.’
못해도 늑대는 3마리는 있을 것 같았다. 총 4마리였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는 법이다. 한 마리는 반드시 세탄을 잡으러 갈 거라고 여겼다.
그 생각은 단박에 적중하고 있었다. 드낙은 철저하게 후환을 없애고 싶어 했고, 늑대 하나를 세탄에게 쫓게 한 것이다. 상대는 벌거벗은 인간이었고, 환경부터 시작해서 숲과 산은 결코 인간에게 이점이 되지 않았다.
귀가 좋은 센다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드낙은 말 그대로 4방향에서 센다빌에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센다빌은 공격의 순간 단번에 왼쪽으로 몸을 던졌다.
“컹!”
왼쪽에 있는 늑대가 달려들었고, 거친 노린내가 센다빌의 어깨를 물었다.
“크흐!”
그대로 늑대와 함께 쓰러진 센다빌이 거칠게 늑대를 오른쪽의 팔뚝에 고정시킨 방패로 후려쳤다.
“깨갱!”
그대로 소리가 나면서 늑대가 떨어져 나갔다. 할버드로 한 번을 쑥하고 휘저었다. 드낙의 숏소드가 할버드와 부딪치며 불똥을 토해냈다.
“으윽!”
발목을 문 늑대를 방패로 후려쳤다. 하지만 그 순간 도노가 도착해서 그대로 옆으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달리는 속도 그대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근육으로 다부진 도노는 드낙에게 키워진 늑대였다.
덩치가 다른 늑대와는 크게 달랐고, 옆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라 센다빌이 옆으로 쓰러졌다. 도노는 급하지 않았고, 한 번 뒤로 물러났다. 방패가 휘저어졌는데, 허공을 갈랐다.
어두웠기에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었고, 이것은 드낙과 늑대에게 큰 행운이었다.
“아악!”
도노는 물러나면서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센다빌이 일어서려다가 다시 확하고 도노가 잡아당기자 넘어졌다.
드낙이 숏소드를 휘두르며 센다빌의 윤곽에 아무렇게나 칼질을 했다.
서걱!
왼쪽 가슴부터 옆구리까지 드낙의 숏소드가 훑고 지나갔다. 할버드는 지금 자세에서 휘두를 수가 없었다.
“덤벼! 개새끼들아!!!!”
센다빌은 할버드의 손잡이를 위로 크게 다시 잡으면서 방패로는 자신을 가렸고, 할버드로 사정없이 사방을 휘저어대었다.
“헉! 헉!”
늑대 두 마리는 단 한 번 센다빌에게 얻어맞았지만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새액거리거나 기절한 채로 널브러졌다.
‘괴물 새끼.’
드낙은 도저히 덤벼들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영악한 도노도 마찬가지였다. 한 방 얻어맞은 늑대가 다시 일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으흐으-!”
센다빌이 일어나려고 했지만 늑대에게 한 번 물리고, 도노에게 물려잡혀 당겨진 발이 문제였다. 할버드를 지팡이로 삼아서 일어났다.
“도노! 내 곁으로 와!”
“크엉!”
드낙은 거리를 벌렸다. 센다빌이 드낙의 윤곽이 조금 거리를 벌리는 것 같자 크게 한 걸음 내 뻗었다. 발목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끄흐아아아···으으···흐···”
한 걸음 걷고 그대로 벌벌 떨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한순간에 쭉하고 나왔다.
‘발목이 부러졌나?’
센다빌의 표정이 깊게 어두워졌다. 상대가 달려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날이 밝았다. 대치는 쭉 이어졌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정도로 주변이 밝아졌다. 센다빌의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었고, 전신이 땀범벅이었다. 옆구리에는 가죽갑옷이 쭉 잘라져서 덜렁거리고 있었고, 오른발목은 피로 가득했다.
“이제 어쩔거냐? 엉! 날 죽이려면 덤벼!”
“그런 도발은 통하지 않아. 난 여기서 마을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거야. 그럼 넌 죽겠지.”
그런 드낙에게 센다빌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좋아. 알겠다고. 넌 대체 왜 나를 그렇게 죽이고 싶어 하는 거지? 내가 죽인 연놈 중에 네 여동생이라도 있었나?”
드낙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주저앉아서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옆에 있는 그 덩치 큰 늑대가 제법이던데.”
센다빌은 온갖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드낙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대치했다. 센다빌도 주저앉았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었다.
“개 같은 벌레 새끼들.”
손을 휘저었다. 숲모기가 그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습한 숲에서 상처는 세균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 순식간에 감염이 일어났고, 벌레들을 모으고 있었다. 센다빌의 정신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어가던 센다빌은 이내 포기했다. 질질 끌리는 발목의 고통이 너무 컸다. 뼈가 부러져서 말 그대로 끌리면 너무 아팠다. 눈이 꿰였을 때, 약초와 하얀 가루를 다 써버렸기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놈을 노렸어야 했어.’
늑대 조련사라면 당연히 조련사만 쳐죽이면 늑대는 뿔뿔이 흩어지거나 짐승처럼 덤벼서 어떻게든 승부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센다빌이 늑대 2마리를 한 방에 쳐죽이면서 늑대 도노와 드낙이 몸을 사렸고, 그 결과가 이렇게 흐지부지한 끝이었다.
그렇게 마적들의 습격은 끝을 맺었다.
저녁 늦게 드낙의 시체라도 찾겠다고 숲으로 들어온 몇몇 청년회의 의리있는 사람들에게 발견될 때까지 센다빌은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횃불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센다빌은 어느새 정신을 잃은 채 고열에 시달리며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무기 버려! 개새끼야!”
장대로 쿡쿡 찌르고, 철사로 된 올가미가 목에 걸어졌다. 올가미가 잡히자마자 그대로 끌려갔다.
“크흐.”
“가만히 있어! 무기부터 회수해!”
마을 사람 중에 살아남은 남자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마치 마을에 나타난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었다.
“개새끼! 네가! 네가 내 딸을!”
“당장 죽여야 해!”
퍽! 퍼벅!
단단히 묶기도 전에 머리에 돌을 맞아 정신을 잃은 센다빌은 개처럼 끌려갔다. 그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신명나게 마을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나무 기둥에 묶였지만 살아있었다.
드낙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 피떡이 된 그 앞에 섰다.
“마지막 보는 아침해가 어때?”
퉤!
드낙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와 뒤섞인 침을 천으로 된 손수건으로 닦았다. 대거로 그대로 센다빌의 목을 잘라냈다.
콱! 콱! 콱! 콱! 콱! 텅!
다섯 번이나 목을 후려쳤다. 잔뜩 일그러진 센다빌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을은 50가구가 채 되지 않았는데, 이번의 일로 더욱 줄어들었다. 마을 남자 중에서 4명이 죽었다. 말스와 부에릭 외에도 락손과 자식이 죽어서 정신병을 앓던 알렉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크게 저항하다가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처음 문지기를 섰던 두 명은 살아남아 부상을 치료하고 있었다.
마을 여자는 특히나 불에 타죽은 시체만 해도 9구나 되었다. 창문을 닫고, 술과 여자를 탐하고 매우 시끄럽게 굴었기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도망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린 마을 여자들은 한 곳에서 뭉친 채 질식해 죽었다. 시체는 비교적 온전했다.
마적들의 시체는 마을 밖에 버려졌다. 그들을 묻어준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화장 시켜주는 것조차도 큰 용서를 필요로 했다. 불에 타죽은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분노로 사지가 잘려나갔다.
잔혹했다.
처음에 보여줬던 쉽게 항복한 것과는 다르게 저항하지 못하는 마적들의 시체는 분풀이로 사용된 것이다.
드낙은 그 모든 것에 흥미가 사라져 있었다. 마을 사람과는 다르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 불과했다. 락손의 장례식에 꽃 하나 준 것이 전부였다.
‘락손의 지도.’
그것은 척보아도 〈횃불 성채〉를 뜻하는 성벽 너머의 야산 골짜기의 특정한 장소를 말하고 있었다. 골짜기에 있는 동굴이 그의 유산이 있는 곳이었다. 드낙은 이곳을 〈골짜기 동굴〉이라고 이름 지었고, 다음 목표지로 삼았다.
‘지금은 나갈 수 없어.’
몸을 키워야 했다.
센다빌과의 싸움은 드낙에게 명확한 피드백을 주었다. 곰만한 놈을 상대하려면 못해도 몸집이 제법 있어야 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는 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였다.
‘내가 멍청했다.’
고블린과의 성공적인 실전. 생명체를 죽여서 얻어지는 시간의 느림과 냉정해지는 마음. 검은 문을 통한 특수한 능력들.
모두 당장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말해주었지만, 마적 두목 하나에 쩔쩔매었던 것이다. 결국 그를 정면에서 죽이지도 못했다. 너무 큰 손에 팔만 잡혀도 형편없이 나뒹구는 모습만 뇌리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투에 있어서 체급은 중요했다.
‘방패만 있었어도 한 번은 부딪쳐볼만했는데. 아쉽다.’
경험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컸다. 방패라는 든든한 방어 수단과 적의 공간을 밀어내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면 센다빌의 무서움을 보다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드낙은 몸에 열을 내고, 냉수로 샤워를 했다.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곰과 같은 센다빌의 기세에 눌려서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후우.”
'아직 부족한게 많아. 좀 더 많은 것을 세련되게 만들어야해.'
늑대와의 협동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드낙이 중심을 잡고, 늑대가 히트 앤 런 형식으로 싸워야하는게 옳았다. 그게 늑대를 사용하는 제대로 세련된 방법이었다.
'젠장. 이런 상태로 밖에 나갔다면 요절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덩치 큰 상대에게 덤벼들지 못한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지만 남자답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낙! 큰일을 해주었어. 네가 굉장히 피곤할 거라면서 내 엄마가 이걸 전해달라고 해서. 저녁 거리야. 닭 한 마리를 잡았어.”
“너무 많은데?”
“끓이면 며칠이나 먹을 수 있어.”
농사를 지으며 닭도 키우는 빈니가 찾아왔다. 그는 〈검은 늑대(Mavros lyko)〉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냄비에는 닭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가 있었고, 닭기름이 먹음직스럽게 둥둥 떠다녔다. 온갖 야채가 다져져서 걸쭉한 국물에 있었는데 매콤한 맛이 나지 않는 커리와 비슷한 맛이었다. 향과 담백한 맛이 일품인 전통 닭요리인 〈야채닭 스프〉였다.
“맛있게 먹겠다고 전해줘.”
그걸 든 채로 집으로 들어갔다. 세르낙과 할다낙은 장례일에 매달리고 있어서 집에 없었다. 드낙은 미지근한 야채닭 스프를 먹었다. 걸쭉한 국물의 식감이 조금 미묘했다. 하지만 다진 야채를 마지막에 넣어서 아삭한 맛과 무른 맛이 뒤섞여 있어서 제법 식감이 좋았다.
한 끼를 뚝딱 해치운 드낙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연기가 그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