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 <-- 늙은이를 위한 마적 -->
세탄은 쏜쌀같이 달려나다가 수풀이 크게 허리를 만나자 그대로 엎어졌다. 숨을 최대한 고르게 쉬며 그대로 실낱같은 숨만 쉬며 가만히 있었다. 어둠이 자신을 편안하게 품었다.
슬금슬금 거리며 웅크린 채 더욱 몸을 숨기자 그는 자신을 잡을 수 없음을 확신했다. 바람 소리에 수풀이 흔들렸다. 침을 삼키며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웅크린 채 체온을 유지하였다.
콧물이 조금 나왔다.
세탄이 콧물을 큼하고 들이키자마자 그의 목이 늑대의 아가리에 물렸다. 뒷목을 잡고 그대로 털었다. 팔을 들어 올리면서 그대로 척추가 뚝하고 부러졌다.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살려고 입을 꾹 다물고 힘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그러진 세탄〉은 뒷목이 정확하게 물어뜯겨 죽음을 맞이했다. 놈의 시체를 늑대가 포식하기 시작했다. 올빼미부터 다른 동물들이 피냄새에 슬금슬금 기다리며 늑대의 다음 수순을 기다렸다.
〈손없는 센다빌〉은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했다. 하지만 드낙은 수월하게 놈을 쫓을 수 있었다. 덩치가 크고 작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체중이었다.
마라토너의 몸은 얇다. 체중이 적다.
축구선수의 허벅지는 굵다. 체중이 제법 나간다.
천천히 달리는 말과 미친 듯이 날뛰는 말의 차이였다. 체중이 무거운 센다빌은 거기에 원형방패와 가죽갑옷에 할버드까지 들고 있었다. 주체 못 하는 힘을 지녀서 드낙이 감탄할 만큼 내달렸지만 그리 오래 달리지 못했다.
숲에서 150m를 달린 것도 용했다. 매일같이 단련하는 전사가 아니었고, 시민을 위해 피를 쏟아 평화를 유지한다는 군인의 마음가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약탈을 위해서 단련된 몸과 매일같이 피땀을 흘리는 군인의 육체는 엄연히 달랐다.
견고한 정신론까지 더해진다면 똑같은 스펙으로도 족히 두 배는 더 달릴 것이다. 다행이라면 센다빌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지만 드낙의 예상보다는 더 멀리 뛰었다. 악착같이 살기 위해서였다.
그 생존본능이 그를 이끌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달리는 모습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그것은 훌륭한 장작이었다.
“헉! 헉!”
미친 듯이 내달리던 센다빌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윤곽만이 흔들거렸다. 숲에서 뭔가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에게 힘든 일이었다.
‘날 놓쳤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송곳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반푼이는 절대로 못 알아차릴 〈송곳 바람 소리〉를 한때 날아다녔던 센다빌이 모를 리가 없었다.
텅!
원형 방패가 화살을 막았다.
“씨부럴의 놈이, 당장 나와!”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서석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앞에서 흔들렸다. 번개처럼 센다빌이 그곳으로 향했지만 노린내만 코를 타고 맡아졌다. 늑대였고, 재빨랐다. 인간이 쫓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리한 센다빌이 발을 삐끗했다. 이곳은 숲이었고, 평지가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나무뿌리와 돌부리가 가득했다. 주르륵 미끄러진 센다빌은 다시 한 번 〈송곳 바람〉을 들을 수 있었다.
가벼운 송곳이 쏘아지는 듯한 소리. 하지만 그것은 섬뜩할 정도로 길쭉하게 이어지는 긴 바람 소리였다. 그 특유의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는 미끄러지는 상황 속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텅!
다시 한 번 원형 방패가 화살을 막았지만 미끄러지고 있는 와중에 막은 것이라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방패를 빗기고 지나가는 화살은 센다빌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윽!”
화끈거리는 고통이었다.
드낙은 건장한 윤곽이 움찔거릴 뿐이자 속으로 혀를 찼다.
‘무슨 터미네이터야, 뭐야?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소리만으로 화살을 방패로 막는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경험이 쌓이면 몰랐지만, 아니. 그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방패 하나 주고 화살을 막으라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밤바람이 심하고 수풀이 휘날리는 이 속에서는 누구도 하지 못했다.
‘비슷한 놈이 있긴 있지.’
내달리며 허우적거리는 고블린의 어깻죽지부터 시작해서 온갖 약점을 명중시키며 속사를 했던 〈쇠주머니 용병단〉의 〈용병단장 조세(Jose)〉의 활솜씨처럼 드낙이 상상하기 힘든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었던 것과 같았다.
드낙은 〈고블린을 잡는 화살〉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검은 문〉을 통해서 경험해 본 적은 있었다. 그렇기에 센다빌의 재능 또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탐이 나는군.’
단순히 화살을 막기 좋은 재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보다 발달된, 전투 감각일 것이다.
어쨌든 저렇게 미끄러지는데도 화살을 막는 데에 타고났다. 백병전을 기가 막히게 하는 놈이라는 소리였다.
‘덤벼서 이길 것 같지가 않아.’
곰처럼 생긴 체형? 위협적이다. 원형방패는 백병전의 신이라고 불렸던 적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면적이 넓어서 공격하기도 좋았고, 면적이 넓어서 방어하기에도 좋았다.
리치가 짧은 무기를 들어도 방패로 밀고 들어가며 턱만 후려쳐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숙련된 병사가 아니면 방패를 든 병사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장거리로 조지는 것도 불가능.’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센다빌은 조용해졌다. 본능적으로 드낙이 결코 자신에게 덤벼오지 못하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온갖 욕을 해대며 드낙을 도발했다.
드낙의 어머니부터 시작해서 형제까지 싸고 놀아제끼는 방탕한 욕부터 시작해서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했다.
‘웃기지도 않는군.’
드낙은 그 도발에 놀아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그의 저급한 도발은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 어떤 감정을 건드리지 못했다. 초딩과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기분이라서 더 즐거워질 뿐이었다.
대답없는 도발을 하던 센다빌은 결국 제풀에 지쳐버렸다. 원래부터 말을 그리 많이 하지 않은 남자였기에 입을 놀리는 것조차도 피곤해져버렸다.
‘놈이라면 언제 덤벼들까?’
자신이 가장 지쳤을 때를 노릴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어둠이 주는 메리트를 잘 이용하고 있는 놈이었다.
‘새벽녘이 오기 전.’
달과 태양 모든 것이 저물어버려 빛 한 점 없을 때, 그때 노릴 것 같았다. 센다빌의 이러한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드낙 또한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
‘벌거벗은 놈을 죽인 늑대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때가 되면 늑대 4마리에 나까지.’
새벽녘이 오기 전에 최강의 전력으로 최고로 피곤할 때 치는 것이다.
불을 지르기 전에 마을에서 보충한 육포와 물을 늑대들에게 먹였다. 센다빌이 체력 보존을 위해서 가만히 있었기에 직접 돌아다니면서 늑대들을 다독였다. 드낙 또한 육포를 하나씩 먹으면서 물을 홀짝였다.
거리를 충분히 두고, 거대한 곰같은 윤곽만을 지켜보았다.
“우웩!”
센다빌의 상태는 결코 좋지 않았다. 마비가루와 진통가루가 뒤섞인 저열한 수준의 흰가루를 눈이 빠진 곳에 가득 뿌렸는데 그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고, 부작용으로 속이 니글거리고 구토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시고, 음식도 폭식했기 때문에 몸에 있는 수분기가 적은 것도 그의 상태를 악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너무 많이 땀을 흘렀어.’
입이 바짝 말랐다.
센다빌은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면서 오줌까지 누고 싶어졌다. 그는 바지를 조금 풀어서 천천히 내린 채로 오줌을 찔끔찔끔 싸면서 손으로 받아마셨다. 끔찍한 맛이었지만 지금 살기 위해서는 물을 마셔야 했다.
토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렇게 마신 뒤에 5분이 지나자 그나마 상태가 나아졌다. 현기증도 누그러들었다.
‘지금 덤벼오면 좋을 텐데.’
피가 말라가는 기분을 느꼈고, 무엇보다 가만히 있어서 체온이 줄어들었다. 집 안에서 나무 창문을 닫고 파티를 벌였기에 옷도 얇게 입었다. 최소한으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게 체온을 빼앗아가는 자정이 넘은 시간의 숲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털이 뭉텅이로 빠져나간 가죽갑옷에 보온 기능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반면 드낙은 그가 먹이고 키운 〈갈색늑대 도노(Dono)〉를 껴안은 채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차이는 상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체온이 적으면 제대로 크게 움직일 수 없었으며 근육이 수축되어서 제대로 된 힘을 내기가 어려웠다.
충분히 열을 내지 못하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운동선수들이 없는 것처럼, 충분한 열을 내는 몸과 추위에 떠는 몸은 차이가 컸다.
〈손없는 센다빌〉은 갈수록 고통스러워했다. 눈의 상처가 컸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한이 온몸을 스며들어왔다. 눈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진땀을 흐르게 만들었다.
‘더 이상 약이 없어.’
진통 효과가 있는 가죽 주머니는 텅텅 비어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대량으로 썼는데, 도망치면서 달리는 반동으로 피가 쏟아져 나와 가루가 빠져나간 것이 많았다.
‘그때 너무 써버렸다.’
갈등하던 센다빌은 손을 더듬거리며 혁대에 달려있는 것들을 확인하며 이 상황을 모면할 것을 찾았다. 드낙과는 다르게 준비되지 않았다.
무게가 무겁다고 물 주머니도, 육포도 없었다. 부하들에게 말만 하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 그를 위하는 부하는 한 명도 없었다. 가벼운 혁대는 그에게 무엇 하나 주지 못했다.
비상약 하나가 전부였다.
촉촉하게 느껴지는 가죽 주머니 안의 촉감을 느낀 센다빌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약초 주머니가 틀림없었다.
단번에 오른쪽 눈에 털어 넣었다. 고통은 더욱 심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상처가 벌어지는 느낌마저 들었고, 주륵 흘러내리는 따뜻한 피를 느꼈다. 피부가 워낙 차가워서 뜨겁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고통은 잠시뿐이었다. 온갖 약초가 뒤섞인 약초 다진 것이 안에 들어가자 한결 나아짐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부작용 중에 통증 완화보다는 마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싸우기 직전에 사용할 걸 그랬다.’
조용한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는데, 센다빌은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팔뚝을 꼬집고, 억지로 이곳에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게 걸음 소리를 내어도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다.
주변을 훑어본 센다빌은 적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어졌다. 침묵이 1시간 2시간 지속된 것이 아니라 3시간 가까이 지났기 때문이다.
‘도망쳐볼까? 아니야.’
그렇게 나무에 기댄 센다빌은 꾸벅꾸벅 졸다가 거센 바람에 수풀이 흔들릴 때면 주위를 크게 살폈다. 청각에 집중하며 선잠을 자기 시작했다. 적이 반드시 새벽녘이 오기 전, 가장 어두울 때 덤벼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드낙 또한 깜빡 졸았다. 늑대가 있었기 때문에 센다빌보다는 보다 안심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도노의 털 안쪽에서 느껴지는 온기탓도 컸다.
“크흥. 흐응.”
늑대 도노의 혓바닥 때문에 드낙은 단번에 일어났다. 카이야가 어느새 일어난 드낙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드낙이 속삭였다.
“넌 올라가 있어.”
“깍.”
카이야는 그런 게 아니라는 듯 신경질적으로 한 번 귀에 울더니 그의 목 사이를 쪼았다. 따끔함을 느낀 드낙은 가죽 주머니를 더듬어서 카이야만의 곡물가루를 내놓았다. 말린 과일 때문에 향긋한 과일향이 나도록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먹이였다. 맛나게 먹은 카이야가 이내 날아올라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커먼 것이 이제 곧 움직여야 했다.
드낙은 앉았다 일어나며 양팔을 올린 채 숏소드를 수평으로 놓으며 몸에 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풀에서 소리쳤다. 센다빌의 어그로를 끌었다.
“죽을 때가 왔다! 덩치 큰 놈아!”
드낙이 숏소드를 뽑아들며 다른 손에는 원형방패를 쥐지 않았다. 질 좋았던 원형 방패는 사냥 나갈 때 가져가지 않아서 마적들이 어딘가에 쌓아놓은 곳에 있었다. 그 대신에 드낙은 대거를 쥐었다.
드낙은 수풀을 숏소드로 베면서 큰 소리를 쳤다. 센다빌은 서둘러 원형 방패를 쥐고, 할버드를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힘이 전 같지 않아.’
한 손으로 양손무기인 할버드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자 그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싸움은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그가 소리를 크게 그리고 길게 질렀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며 부르르 온몸을 떨며 악 소리를 숨이 한계에 다할 때까지 질렀다. 숲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함성에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엄청난 성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기세가 팍 꺾임을 느꼈지만 놈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그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해준 락손의 복수를 해야 했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고향이 사라질 위험을 제거해야 했다.
‘죽일 수 있다.’
드낙도 양팔을 벌리며 소리를 한껏 질렀다.
“그하핫!”
센다빌이 코웃음 쳤지만 드낙은 다시 몸에 열이 끓어오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