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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1화 (2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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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이 입에 침을 묻혔다.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적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잘 아는 인간이었기에 인간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괜히 긴장하는 것이었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남녀로 구분한 것은 실로 탁월했다. 마적들 또한 작은 마을을 습격하고, 점령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었다. 그것은 당연히 이번에도 빛을 발휘했다.

멍청해도 경험이 쌓이면 날카롭게 변한다. 더군다나 드낙은 그들이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탐하면서도 창고에 마적이 한 명이나 두 명이 있다는 것 또한 대단했다. 왜냐하면 드낙처럼 늑대를 부리지 않으면 혼자서 창고 두 곳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는 게 마적들의 노림수였다. 만약 드낙이 혼자였다면 공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힘 있는 그놈 덕도 있겠지.’

목책 위에서 해를 등지고 역광을 이용해서 크게 봤을 때, 본 곰 같은 마적 두목을 드낙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놈이 대장이면 밖에서 술 마시고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라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맞아 죽기 싫다면.

다행이라면 사람들이 있는 창고를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단 한 번도 야습을 당한 적 없겠지.’

드낙처럼 정신 나간 놈이 아니라면 이길 수 없는 배팅을 할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담보는 자신의 목숨이다.

‘배팅 안 하지.’

사냥꾼 게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보통은 도망간다는 소리가 아니다. 대부분이 튄다.

혼자서 덤빌 수 없었고, 마적 몰래 용케도 화를 피한 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기 위한 수단도 단단히 나누어져 묶였다.

불을 지펴 연기를 올려보내면 생존자들보다 마적이 먼저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 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늑대들이 있어.’

사냥꾼 게릭과는 다르게 드낙은 혼자서 이 문제를 풀지 않았다. 늑대가 네 마리나 있었다. 남자 쪽에 2명 있는 마적과 여자 쪽에 혼자 있는 마적. 총 세 명을 조지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드낙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철저하게 모든 것을 계획하였다.

‘양쪽 창고를 손쉽게 얻고, 남자들에게 무기를 들게 해줘야 해.’

혼자서 남자들이 들 무기를 잔뜩 가져오는 것은 시간이 걸릴뿐더러 체력 소모도 상당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적들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어딘가에 모아두었고, 드낙은 그곳을 몰랐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풀어줘도 저택에 있을 마적을 죽일 방법이 있어야 했다.

“······”

어둠 속에서 횃불 아래에 나와있는 것들을 보는 드낙의 눈이 빛났다.

아침이 밝고, 설렁설렁 일어나서 창고에 있는 이들을 불태워 죽이기 위한 장작과 기름 그리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덕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한 양이었고, 몽둥이로 쓰기에 적합한 것이 장작이었다. 끝에 불을 지른다면 던지기만 해도 훌륭한 견제 수단일 것이다. 드낙은 또 한 가지를 믿고 있었는데, 마적들의 무기 관리였다.

화공(火攻)하는 도중에 마적들이 뛰쳐나와도 싸울만하다는 뜻이다. 날이 무딘 것은 몽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숫자가 많았고, 무엇보다 마적들에게 떡이 된 락손의 모습으로 열이 바짝 올라있었다.

그 속에서 드낙과 늑대가 협공해서 마적을 차례차례 죽인다면 승산이 있었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지 몰랐다.

‘용병조차도 무기 관리에 소홀했는데, 마적들이 제대로 할까?’

불붙은 장작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각목과는 다르게 나무껍질도 통째로 있어서 마찰이 심해서 단단히 양손으로 쥘 수 있었다.

“아···”

그 싸움을 생각한 드낙은 이내 입을 조금 벌렸다. 예상치 못했던 것이 머릿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저택 안에 있는 마을 여자들.’

그들이 드낙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는다면 저렇게 마당에 쌓아둔 장작과 기름통이 어디에 쓰일지 불 보듯 뻔했다. 쓴맛이 쓸개즙처럼 들어왔다.

‘젠장.’

결국 모두를 살릴 수는 없었다. 이 일이 끝나더라도 그를 원망하는 이들이 분명 나올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신의 가족이 얽히면 감성적으로 변한다. 그것을 잘 아는 드낙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기로 생각을 했다.

가만히 눈으로 정찰을 하던 드낙은 추위를 느끼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느꼈다.

“너희들은 옆으로 돌아가서 저기 건물에 있는 남자 한 명만 죽이고 바로 내 쪽으로 뛰어와라. 절대로 짖으면 안 되고, 남자의 목을 단번에 물어뜯고 입을 쥐어뜯어버려.”

늑대 세 마리가 순식간에 대꾸도 하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드낙은 〈늑대 도노〉와 함께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움직였다.

‘어둠.’

드낙은 그 특성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검은 늑대(Mavros lyko)〉와 어둠 속에서 마주하면서 어둠의 특성을 고민했다. 그것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은 제법 상당한 전투력 상승을 이루어주었고, 또 다른 시야를 드낙에게 제공했다.

자신의 곁에 빛이 가득할수록, 코앞에 있는 어둠 하나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었다.

‘어둠의 우월성.’

그 위험함.

검은 늑대가 자신만만하고 기고만장했던 이유를 이해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은신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인간은 시각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낙의 기습은 수 분이 흘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각과 인기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천천히 접근했다.

늑대 도노는 드낙이 달려들면 귀신같이 따라서 다른 놈의 목을 물 것이다.

창고의 끝 바로 뛰쳐나가면 창고의 정면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술과 마을 여자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며 위협하며 괴롭히는 마적이 보일 것이다.

“크흐흐. 어? 자꾸 왜 그래~, 더 벌려봐. 힘주지 말랬지? 다리~. 그흐흥.”

마적이 짐승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흐흑···”

드낙은 들숨 날숨을 천천히 하다가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며 뛰쳐나갔다. 코너에서 고개를 내밀지도 않은 이유는 자신의 머리가 적을 염탐하려고 본다면 상대방도 알 수 있었다. 그때는 더욱 상황이 안 좋았다.

보지도 않고, 달려드는 게 최선인 것이다.

“흡.”

그의 손에는 대거와 투척 단검이 들려있었고, 허리춤에는 숏소드가 검집에 꼽힌 채 덜렁거렸다.

“윽!”

길을 가로막던 여자가 그대로 드낙의 몸에 치여서 옆으로 패대기쳐졌고, 눈을 감은 채 혀를 이리저리 할짝거리는 마적이 눈에 들어왔다. 단번에 목에 대거를 박아 넣었다.

“너···”

도노가 드낙을 보며 일어서며 입을 연 마적의 뒷목을 그대로 물었다. 엎어진 마적이 소리를 지르려다가 엎어져서 혀를 깨물었고, 그 사이에 정수리에 드낙의 투척 단검이 쏘아져 정확하게 깊게 박혔다.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한 드낙이 마적 두 명의 품을 뒤졌다.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용의주도했다.

‘마적 두목에게 있겠군. 부숴야 한다.’

쇠사슬과 자물쇠는 단단해 보였지만 담금질을 하며 열처리 된 숏소드보다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성급하게 철소리를 내지 않았다. 놈들이 영악하다면 자신도 급하게 뛰어가면 안 된다.

반드시 걸려 넘어질 것이다.

“들리세요? 깨있는 사람 있습니까?”

문에 급하게 머리가 쿵하고 들러붙었다. 손발이 묶여있었기에 문이 들썩였다.

“누구, 누구십니까?”

“드낙입니다.”

“오, 맙소사! 드낙이야!”

“드낙?”

“〈깊은숲 사냥꾼 드낙〉!”

웅성거림은 금방 줄어들었다. 그것은 꽤나 희망적이었다. 적어도 그들을 통제하는 이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누가 있습니까?”

수많은 이름이 말해지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걸렸고, 갇힌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의 이름을 대었다.

“락손. 락손이 여기에 크게 다친 채 있어.”

“상태가 어떻죠?”

그에 대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다쳐서 널브러진 사자에 대한 것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그것보다 빨리 우리를 여기서 꺼내줘! 놈들이 술 취한 채 말하는 걸 들었다고! 불을 지를 거야. 모든 마을이 타버릴 거라고!”

철렁. 철컹.

쇠사슬이 흔들렸다.

“진정하세요. 나오자마자 바로 락손의 대저택 앞에 있는 장작을 들고 화덕에 불을 붙이고 저택을 불태워야 합니다. 마적들이 안에 있어요. 그들을 다 태워 죽여야 합니다.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소리를 크게 지르지도 말고.”

드낙은 끊임없이 말을 전달하게 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지 못한 채 의사전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이 잠겨져있어서 드낙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야 했다.

앙심을 품는 이들도 있었다.

“나가면 뺨을 후려갈기겠어.”

“나가고 생각해.”

안에서 묶인 이들은 드낙의 여유로움에 분통을 터트렸다.

깡! 깡! 깡!

단 세 번만에 자물쇠가 뜯겨져나갔다. 단번에 창고를 열었다. 숏소드를 집어넣고, 대거로 순식간에 밧줄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마적들 중에 덩치 큰 놈 봤죠? 놈이 가장 위험하다구요!”

“우윽. 헉헉.”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바로 일어난 남자가 그대로 옆으로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다리가 저려왔고, 피가 돌면서 머리가 아찔했다. 그러면서도 손으로 흙을 쥐면서 일어났다.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그들의 소란은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마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술을 들이붓기 바빴고, 마을 여자들을 탐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도착한 남자는 불을 붙이고 대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의 소리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마적만 있는 게 아니잖아.”

“뭐 하는 거야? 드낙이 불을 빨리 지르라고 했다고.”

“안에 우리 사람이 있어.”

“그래서? 활도 잘 쏘고 검도 잘 휘두르는 인간 잡는 백정이랑 싸우겠다고? 꺼져!”

장작에 거침없이 불을 붙이고 달려온 이들에게 하나씩 쥐여준 남자가 말했다.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가. 뒤에서부터 불을 질러야 해. 그래야 다 타죽지.”

“알겠어.”

사람을 태워 죽인다는데 그 누구도 딴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에 마적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청년이 앞으로 걸어나가자 단번에 마을 사람한테 제압을 당했다.

“이 새끼 끌어내!”

“놔! 윽!”

입에 손이 들어왔다. 소리를 내자 단번에 입을 다물게 만들려고 우악스럽게 손을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한 명이 들러붙었는데, 화덕을 지나갈 다섯 명이나 청년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입에는 천쪼가리가 틀어막혀서 콧구멍으로 콧물이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같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아, 안돼. 내 동생. 레니, 레니가 저깄어!’

그가 버둥거렸다. 호흡이 막혀올 정도로 사람들이 그를 짓눌렀다. 나중에 가서는 여동생에 대한 생각도 사라졌다.

“흐읍. 흐으! 읍! 크!”

‘사, 살려줘.’

살려고, 숨을 쉬려고 버둥거렸지만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그대로 숨이 멎을 때까지 사람들은 그가 죽어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에는 모두가 책임을 피하며 허둥지둥 거리를 벌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 창문을 닫은 채 떠드는 대저택을 송두리째 불로 지피려고 장작과 불붙은 장작을 들고 갈 무렵, 드낙은 락손을 확인하고 있었다.

“드···낙···”

그의 손목은 잘려 있었다. 락손의 눈은 덜렁거리더니 툭하고 떨어졌다. 드낙은 잘린 손목이 밧줄에 묶여져서 모빌처럼 천장에 묶여진채 덜렁거리고 있는 손목을 잘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개새끼들.’

“괜찮으세요?”

붕대가 감겨진 상처는 2차 감염이 벌써 일어나 누런빛을 띄고 있었다. 좋지 않았다.

피떡이 된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고,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르르···”

늑대들이 소리 내며 다가와서 드낙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여자들을 지키던 마적도 죽음을 맞이한 듯했다.

‘저택에 일곱 명.’

드낙은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내···흐으···”

말을 하던 락손의 입에서 침과 뒤섞인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침조차 못 삼킬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아래턱을 움직이자 이빨 하나가 툭하고 떨어졌다.

끔찍한 상태. 남들은 한 걸음 물러설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하지만 드낙은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뭐라고요? 락손? 락손님?”

숨을 고르기만 하던 락손이 눈을 부릅뜨면서 고개를 들었다. 핏물이 이마에서부터 주르르륵 흘러내렸다. 섬뜩했지만 드낙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숨조차 쉬지 않았다.

바락바락한 마지막 외침이 드낙의 귀를 때렸다.

“내 비전서를 찾아라! 그 끝에 필사하지 못한 게 있을 거다! 그곳으로 향해!”

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드낙이 그 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동동거리면서 움직일 혈맥에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부릅뜬 그의 눈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가는 길, 마적이 불타죽는 것이나 구경하시오.’

락손의 비전서는 그의 2층 개인 집무실의 특정한 목함에 있었다. 그것을 가져와야 했다.

‘퇴역군인 락손의 유산.’

그렇게 대단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드낙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군인으로 살면서 얻어낸 기사들의 12가지 검술비전만해도 범상치 않았다. 젊었을 적에 야망 하나는 컸을 것이다.

그런 락손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드낙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는 집을 보며 그대로 마적들이 묶다가 놔둔 여분의 밧줄을 쥐어들었다. 두툼한 돌 하나를 묶고, 2층 창문으로 던졌다.

새벽에 일어나 환기를 위해서 열어둔 2층 창문은 닫을 사람이 없어서 열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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