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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20화 (2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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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해가 저물기 시작했을 무렵, 마을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굳이 깊게 볼 필요도 없었다. 마을 입구는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으며 잘린 나무의 선명하고 밝은 색상에 들러붙은 피는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일이 터졌다.’

그가 가장 먼저 행한 것은 목장으로 향하는 일이었다. 크게 외곽을 돌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목책의 벽에 근접해서 빠르게 마을을 돌았다. 그만큼 그의 마음속에는 아버지 할다낙과 장남 세르낙이 있었다.

겉으로는 툴툴 거렸지만 어머니 없이 부자지간은 제법 잘 지내왔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정이 쌓이듯이 드낙은 자신의 형제와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었다. 특별히 생일을 축하한 적이 없는 동생의 죽음 속에서 울지 않는 형은 없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잘해주느냐도 필요하겠지만 그저 함께 지내온 세월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장간보다 멀리 있는 것이 목장이었다. 많은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미 문짝이 뜯겨져 나가있었다.

‘씨발.’

절로 욕이 나왔다. 섣불리 접근하지는 않았다. 주변을 충분히 돌면서 염탐을 했다. 내부에 사람이 있는 기척 하나 없었기에 창문으로 들어갔다. 이 집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소리 하나 없이 들어갔다.

스윽.

조심스럽게 발에 걸거치는 그릇을 발로 능숙하게 안쪽으로 당긴 후에 안으로 들어선 드낙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1층을 먼저 둘러보았다.

조용했고, 위에서 걷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천천히 숏소드 대신에 대거를 뽑아든 채 2층과 다락방까지 훑었다.

질척한 질감이 드낙의 손에 느껴졌다.

그의 표정이 잔뜩 굳은 채로 덜렁거리는 다락방의 사다리를 올라갔다. 콰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다리가 뚝하고 부러졌지만 드낙이 대부분 올라가고 부서져서 떨어졌다.

“빌어먹을.”

싸운 흔적이 있었다. 피가 많았다. 거친 숨을 내뱉던 드낙은 이내 빠르게 냉정해졌다.

‘시체가 있었다면 방치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 되었던 살아서 끌려갔다는 뜻이다. 드낙은 훌쩍 뛰어내려 2층에 내려와서 그대로 목장을 벗어났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당연히 사냥꾼 게릭의 집이었다. 그는 우수한 전투원이었고, 드낙이 가족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시체.’

안에서 시체를 발견한 드낙이 집을 다 훑었지만 게릭의 모습은 없었다. 다시 시체를 자세히 보았다. 정확히 뒤통수 그것도 확실하게 두개골을 부수기 위해서 위에서 아래로 쐈다.

동물의 둥근 머리통을 화살로 몇 번이고 실패한 사냥꾼 게릭의 노하우가 엿보였다. 정수리 부근의 두개골은 약점이었다. 어느 동물이건 가장 마지막에 두개골로 덮이는 만큼 다른 두개골보다는 쉽게 관통되는 곳이었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지.’

마른침을 삼키며 그 화살이 쏘아진 곳을 훑었다. 사슴의 박제가 있었고, 머리 부분에는 흙이 묻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냥꾼 게릭이 죽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없었다.

‘화살. 화살은 어딨지?’

드낙이 빠르게 집을 다시 한 번 뒤졌다. 약간의 화살은 확인했지만 그 외에 많은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 집에서 화살이 다섯 발밖에 없다? 말도 안 된다.

‘화살이 많이도 비었어. 가져갈 수 있을 만큼 가져간 거야.’

화살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양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 5종류 이상의 재료가 필요했기에 〈소모품〉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비싼 몸이다.

화살을 챙긴 드낙의 마음속에 허탈함이 쑥하고 내려앉았다.

‘갔구나. 도망간 거야.’

“젠장···”

주먹을 쥔 드낙이 눈을 추켜세웠다.

‘개새끼가, 자기만 혼자 살겠다고 가?’

쾅!

테이블을 후려쳤다. 분이 삭히지 않았다.

‘락손!’

그는 이곳에 많은 현물 자산이 있었다. 그것은 사냥꾼 게릭에게서 들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라면 어딘가 숨어서 이 마적들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으려고 하고 있을 것이다.

사냥꾼 게릭의 집에서 뒤로 돌아가서 드낙이 쏜살같이 뛰었다.

그의 머리 위로 〈까마귀 카이야(Kaiya)〉가 하늘에 나타났다. 달리는 드낙을 봐주는 것이었고, 만약 마적 중 누군가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면 카이야가 대신 시선을 끌어줄 것이다.

〈갈색늑대 도노(Dono)〉는 마을 밖에 있었다. 드낙은 이곳에서 최대한 전투상황을 피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었다.

락손의 집도 초전박살이 되어있었고, 무엇 하나 얻을 것이 없었다. 이미 마적이 모두 수거해간 탓이다.

드낙은 목책 위로 올라갔다. 해가 지는 곳을 등지고 올라섰기에 다른 마적들은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다. 강렬한 노을빛 속에서 숨어있는 것이 바로 드낙이었다. 그는 역광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가족여행가서 찍어보며 누나에게 아주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 역광도 모르는 반푼이는 사라지고, 빛 속에 숨는 노련한 사냥꾼이 이 자리에 있었다.

‘락손도 도망갔을 수 있다.’

사람 몇은 쉽게 죽일 수 있어 보이는 게릭조차 도망갔다. 락손에게 기대를 하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노련한 퇴역군인이었다. 그런 그를 믿을 수 없었다. 해를 등지고 드낙은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눈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이동하는군.’

남녀가 서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았다. 고작 10명에 불과한 마적이 수십 명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도 확연하게 주변 사람과 덩치가 크게 나는 마적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있었다. 드낙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검은 욕망이 드글거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쳐날뛰었던 추악하기 그지없는 욕망은 이 세계의 주민과 차원이 달랐다. 수만 가지가 넘는 상품 속에서 부유하고 수만 가지가 넘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현대인이 누린 수많은 재화. 그것은 이곳에 대비하면 그저 거대한 욕망이나 다름없었다.

수작업을 하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이곳의 주민과 드낙의 욕망은 차원이 다르고 아주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이 산골마을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겹다고 여겼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던 것처럼.

‘놈을 잡으면 〈검은 꿈〉을 꿀 수 있겠지.’

고블린의 조련술을 익히게 해주고, 늑대를 다룰 수 있게 하였으며,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를 터득하게 해준 기괴한 꿈.

그것은 항상 무언가를 죽이고 피를 봤을 때, 자신을 찾아왔다. 그것도 제법 대단한 놈을 잡아야 했다. 저 큰 덩치를 잡으면 분명히 검은 꿈을 꿀 것이다.

드낙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가 검고 찐뜩하며 차가운 뭔가가 심장 속에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순간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뭐지?’

기이한 감각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할 때, 저녁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몸이 떨리며 추위를 느꼈다.

‘오한인가?’

드낙은 목책 밖으로 슬금슬금 몸을 매달아서 최대한 내려온 다음에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낙법을 하면서 일어났다.

‘아버지와 형을 구해야 해.’

드낙이 그리 생각하며 숲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컹.”

짧은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도노가 수풀에서 튀어나왔다. 녀석의 앞쪽 가슴과 목뒤를 긁어주며 드낙이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숲의 어둠은 더욱 빠르게 찾아왔다.

‘땀을 내면 안 돼.’

드낙은 뛰는 것을 멈추고, 호흡을 정돈했다. 숲에서의 바람에 땀을 흘리고 다닌다면 금방 지칠 것이고, 자정에 싸울 때 스태미나가 버텨주지 못할 것이다.

퍼서석.

흙이 깎아내려가는 자연스럽게 파도처럼 굽은 곳에 기대며 드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를 빛이 있을 때, 확인하기로 했다. 어눅했지만 무엇이 무엇인지는 구별이 가능했고, 정확하게 혁대에 손에 대었을 때 순서적으로 무엇인지를 지금 기억해야만 했다.

‘약초 다진 것.’

사냥꾼 게릭의 함정들을 손봐주는 일을 하면서 얻은 비약(祕藥)이었다. 물론 효과는 평범했다. 하지만 그것도 감사해야 했다. 적어도 독에 중독되거나 부작용이 없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비약이었다.

‘진통과 마비가루 그리고 지혈 가루가 섞인 것.’

추가로 드낙은 새와 쥐를 통해서 진통과 마비가루 그리고 지혈에 필요한 조잡한 약초학을 터득했다. 그것을 빻아서 섞은 가루가 또 다른 가죽 주머니에 작게 들어있었다.

‘투척단검 세 자루.’

활의 거리에 따른 각도 등의 감소에 따른 계산을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차선책으로 익혔던 단검 투척술. 지금은 활도 제법 잘 쏘았고, 단검은 당연히 번개처럼 쏠 줄 알았다.

‘대거.’

단검보다 길고,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검 손잡이와 검신 사이에 길쭉하게 나있는 힐트가 존재하는 짧은 백병전 무기가 바로 대거였다. 좁은 곳이나 몸싸움을 할 때 기회가 된다면 뽑아서 역전을 노리기에도 좋았다.

‘숏소드.’

드낙이 가장 자주 사용했고, 주력으로 삼고자 노력했던 무기였다. 신장이 모두 자라지 못한 드낙에게는 마치 롱소드와도 같은 무기다.

‘원형 방패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숏소드와 뗄 수 없는 방어구다. 목장에 갔을 때는 없었다. 마적들이 돈 되는 것은 모조리 수거해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백병전에서 방패만큼 좋은 것이 없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활과 화살 9발···에 5발까지 해서 14발.’

사냥꾼 게릭이 못 챙기고 남겨두었던 다섯 발에 사냥하고 남았던 9발.

‘육포와 물이 든 가죽 주머니. 이건 남겨두는 것이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육포를 혁대에 다시 걸고, 물주머니는 가죽 배낭에 넣은 드낙이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꺼냈다. 물은 반을 남기고 모두 마시고, 육포는 그 자리에서 먹어해치웠다.

‘다음은 없다. 드낙아.’

자신은 가족을 구할 것이다. 사냥꾼 게릭처럼 도망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검은 꿈〉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도노. 늑대들을 찾아. 가자, 가자!”

드낙이 도노의 윤곽만을 보면서 쫓았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져 가더니 이내 새까매졌다. 오늘은 지독하게도 달빛이 적었다.

주르륵!

“헙.”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진 드낙의 심장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을 했다.

어둠만이 가득한 숲은 적은 달빛이 들어오다가 나무에 가렸기에 윤곽만 볼 수 있었는데, 바닥은 아예 그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하동굴에 갇힌 듯한 시야만을 보여줬다.

“학학.”

도노가 그새 다가와서 그의 손등을 핥았다.

“그래. 천천히 가자.”

드낙은 손을 허우적거려 나뭇가지를 굵직한 것을 뜯어내 대거를 뽑아서 감각적으로 쑥하고 밀어서 지팡이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의지한 채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숲을 돌아다녔다.

킁킁킁킁!

도노가 냄새입자를 맡기 위해서 크게 벌름거리는 콧소리를 들으면서 때때로 까마귀 카이야의 날갯짓이 들려왔다. 은신하지 않은 채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벅찬 드낙의 기척 때문에 주위의 벌레들은 금방 입을 다물어서 조용했다.

‘젠장.’

족히 3시간을 넘게 헤매었지만 불러 모은 늑대의 숫자는 고작 3마리에 불과했다. 이것도 하울링을 해서 얻은 결과였다. 깊은 숲으로 가기에는 다른 야행성 짐승부터 몬스터까지 불러 모을 수 있었기에 가지 못한 까닭이다.

‘늑대 4마리.’

역전을 노리기에는 적었다. 하지만 적어도 드낙의 가족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할다낙과 세르낙은 함께 갇혀있을 것이 분명했다. 남녀를 나누는 것을 확인하고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마을 어귀에 되돌아왔다. 드낙은 나머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마을 입구에는 초병 하나 없었고, 목책 위도 조용했다.

마을 사람을 모두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지 않더라도 자신들에게 덤벼오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당연하지.’

드낙 또한 그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게릭은 어딨는가? 도망쳤다. 락손은? 도망쳤다 아니면 갇혀있거나. 어찌 되었던 드낙은 그들과 합류하지 못했고, 다른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

적은 10명이나 되고, 도망친 마을 사람이 공격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직 마을 사람들이 살아있으니 큰마음을 먹기도 힘들었다. 마적들이 그대로 약탈만 하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우!”

고개를 세차게 저어서 약해지려 하고, 자꾸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자신을 흔들어 깨운 드낙은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시끄러운 소리는 당연히 락손의 대저택에서 흘러나왔다. 남녀는 구분되어져서 락손의 빈창고에 들어가졌다. 그곳은 테이블 한 개가 놓여져있고, 마적 두 명이 마을 여자를 끼고 술을 야외에서 마시면서 틈틈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어렵다.’

척 봐도 식량창고 두 곳과 락손의 대저택은 서로 가까이 있었다. 괜히 건들면 좋은 꼴이 나지 않을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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