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 <-- 늙은이를 위한 마적 -->
드낙은 〈늑대 왕관〉을 통해서 갈색늑대 한 마리를 지배했다. 그것은 조련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검은 늑대를 잡고 검은 세상에서 얻은 강력한 힘이었다.
“크흐응.”
으르렁거림과 뒤섞인 기분 좋음에 갈색늑대 도노(Dono)가 소리를 냈다. 처음 본이라면 섬뜩해할 것이었지만 드낙은 웃음이 만연한 채 도노의 등을 긁어주었다.
벌러덩 넘어지자 옆구리를 긁으면서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도노는 드낙의 말은 칼처럼 알아들었기에 개보다도 월등하게 높은 수준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다.
“많이 먹어라.”
푹~익혀서 고기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뼈째로 씹었다. 제법 오랫동안 삶았기에 뼈도 순식간에 아작아작 소리를 나며 들어갔다.
‘체중이 많이 불었어.’
홀쭉해 보이던 야생 늑대와는 다르게 덩치가 큰 것이 도노였다. 짐승의 우월한 신체능력이 인간의 보급력이 투입되면서 체중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특히나 드낙은 오랜 연습으로 200m 멀리 있는 새를 활로 쏘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15세가 된 드낙은 이제 어엿한 한 명의 장정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 나이면 스마트폰을 짭짭 빨면서 사랑받으며 지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세상은 달랐다. 12살이 지나면 먹고살아야 할 길을 걸어야 했고, 〈애송이〉라고 불리는 시간을 버텨야 했다.
드낙은 11살 때부터 그 난리를 치고 다녔으니, 애송이로 지낸 기간이 남들보다 빨랐고, 극복하는 시간도 빨랐다. 일찍 시작해서 평범한 것보다 3개월 정도 빠른 수준에 불과해서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반짝 빛이 났던 〈고블린 첫 실전〉은 사실상 〈킬 더 배틀〉의 효력으로 빛이 났을 뿐이고, 실제 드낙의 재능은 1년이 넘도록 고정 목표물 200미터를 겨우 맞출 정도였다.
맞춘다는 것도 10점 명중이 아니라 대중없이 맞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숲과 언덕이 제법 있는 〈검은 산골 마을〉에서는 100미터 명중이면 족했기에 실력이 없어서 오는 어려움은 적었다.
와구 와구, 카드득.
씹는 사이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는데, 절로 군침이 돋는 소리였다.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넘겼는데, 도노가 그것을 보고 더욱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안 먹어. 이놈아.”
기가 찬 드낙이 한 소리 했지만 도노의 먹방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가자.”
모두 먹어치운 것을 확인한 드낙은 이제 어엿한 〈깊은숲 사냥꾼〉이었다. 게릭과는 다르게 멀리 가는 이유는 크게 한 탕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은 무릇 큰 놈을 좋아하는 법이지.’
2주일에 한 번. 드낙은 큰 거 한 방을 꿈꾸며 숲으로 향한다. 바로 깊은 숲이었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짐승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드낙은 제집처럼 돌아다녔다.
이유는 드낙의 실력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검은 산골 마을 근처의 깊은 곳은 늑대들이 강하게 움켜쥔 영역이었다. 〈검은 늑대(Mavros lyko)〉가 이런 촌동네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이기도 했다.
같은 늑대도 잡아먹는 마브로스 리꼬였다. 똑똑하기로 유명한 늑대들은 설설 피했을 것이고,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늑대 왕관〉의 효능 덕택에 늑대를 지배할 수 있고, 마브로스 리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드낙이었다. 거침없이 깊은 숲으로 갈 수 있었다.
“깊은 숲에 가는 길이야?”
“그래. 오늘도 큰 거 하나 가져와야지.”
“휘유~.”
〈청년회〉에도 소속될 정도로 수입이 높아진 것이 드낙이었다. 그가 잡은 큰 놈들은 육류는 그리 값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가죽은 말 그대로 상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한 방 수입이 대단했다. 그 외에도 급하면 가죽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멧돼지가 최고지.’
멧돼지 가죽은 굵다. 거기에 멧돼지 털은 빗자루를 비롯해서 빗으로도 사용되기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고기 또한 누린내를 잘 잡도록 발전된 이 세계에서는 별미였다.
가죽도 생활용품으로 잘 쓰이고, 털까지도 아낌없이 상품이 될 수 있는 데다가 한 놈을 잡으면 못해도 100근(60kg) 이상의 고기 획득은 확정이다. 작정하고 배 터지도록 먹어도 1인당 2근이니, 족히 60명한테 돌아가는 고기가 떨어진다.
‘지금까지 못해도 150kg 멧돼지만 잡았다.’
적어도 150근 이상의 육류가 떨어지는 사냥 성공만 있었다. 깊은 숲은 그러한 곳이었고, 당연히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짜릿한 맛이 있지.’
현대의 문화에서 강제로 뜯겨져서 이 세상에 전생한 박호훈에게 있어서 익스트림 스포츠나 다름없었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끊을 수 없었다. 큰놈을 사냥해서 오는 흥분감 속에 지겨움 따위 없었다.
서벅, 솨솨삭.
수풀을 헤치며 드낙은 몇몇 늑대들을 마주치자마자 지배하며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당연히 부려먹기만 하지 않았다. 한 입에 삼키기 좋게 잘라놓은 육포를 먹여주며 배를 두둑하게 불려주었다.
‘짐승은 짐승.’
이 작업은 드낙이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짐승이 괜히 금수(禽獸)라고 불리겠는가? 야생 늑대들은 그리 잘 먹고 잘 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멧돼지를 사냥해서 허겁지겁 먹기 바쁘다.
드낙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 명령이 듣지 않는 것이다.
그 덕에 배를 불려놓는 게 중요했다.
핑!
멀뚱멀뚱 있는 새를 쏴 죽이는 것은 깊은 숲에서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때문에 시야가 크게 차단되어 있는 것도 커서 사각을 만들기에 좋았다.
또한 숲이란 곳은 시끌시끌한 곳이었다. 깊은 숲은 마구잡이로 온갖 소리를 겹쳐놓은 곳이었기에 화살 소리도 놓치기 쉬웠고, 화살 소리를 자주 듣는 것도 아니라 유효적이었다.
“끽!”
짧은 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진 새를 쥐었다. 하도 멍청해서 고블린들이 〈멍청새〉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양식도 쉬워서 고블린 부락에 드글드글한 놈들이다. 야생에서도 살아남기는 살아남는데, 높은 곳을 좋아하는 습성 덕분이었다.
그 외에는 죽어도 할 말 없을 만큼 눈치도 없는 새였다.
털을 북북 뜯어내고 관절을 뚝 부러뜨리고, 머리의 목뼈를 꺾어잘라내고 나머지를 던져주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늑대 네 마리를 추가로 끌고 갔다. 그중에서도 도노는 드낙과 함께 생활하며 먹어댄 덕분에 덩치가 컸다.
늑대 다섯 마리를 이끌고 드낙은 본격적으로 사냥감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사냥꾼 게릭〉과 함께하면서 얻어낸 노하우가 듬뿍 들어갔다.
‘운이 좋다.’
멧돼지 털이 수북한 수풀을 발견했다. 아주 낮은 곳에도 든든하게 굵직한 멧돼지털이 묻어 나왔다. 새끼 멧돼지였다.
멧돼지 일가족을 쫓는 일은 코를 푸는 것보다 쉬웠다. 족적이 분명하게 남는 것은 물론이고 수풀을 들어가더라도 길이 보였다.
진흙을 두 발로 걸으면 더욱 확실하게 남는 것처럼 무성한 수풀에서 일가족이 움직이는 길은 확연하게 시야로 들어왔다.
킁킁.
흐으르···
늑대들의 군침이 투둑 떨어지는 것을 본 드낙은 거침없이 먼저 달렸다. 컹컹 짖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보인다.’
드낙은 단번에 활을 당겨서 가장 큰 놈의 뒷다리에 쏘았다. 맞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소리를 쳤다.
“달려들어! 도노! 넌 큰놈의 옆으로만 돌아라! 나머지는 새끼를 잡고, 다른 한 놈을 맡아!”
말을 하면서도 한 손에 있는 세 발의 화살은 덩치가 큰 멧돼지에게 정확하게 박혔다. 2발은 큰놈의 두툼한 뒷다리에 맞혔고, 한 발은 그다음으로 큰 놈에게 맞았다.
“쿠워엉엉! 엉엉!”
괴성을 지르는 수컷 멧돼지는 주둥이에 뿔이 나있었다. 도노는 능숙하게 놈의 옆구리로 신체를 이동하며 견제를 했고, 다른 늑대들은 짖으면서 새끼 멧돼지를 노렸고, 어미 멧돼지를 견제했다.
“끼에에엥! 끼에엑!”
새끼 멧돼지가 거칠게 어미의 품으로 파고 들어왔다. 다리 사이에 있으면서도 어미 멧돼지는 거칠게 몸을 돌리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휘저어대었다. 인간보다 낮은 높이였지만 150kg는 되어 보이는 초대형 멧돼지였다.
날렵함과 단단함을 가진 늑대라도 쉽게 넘볼 수 없었다.
순간 속도가 늑대에 비해서 한참 떨어지는 드낙이 뒤늦게 흙이 자욱하게 올라오는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가장 먼저 드낙은 단창을 던져서 새끼 멧돼지를 죽였다.
〈킬 더 배틀〉이 발동되면서 모든 것이 느려졌다. 고블린 때 느꼈던 강력한 전생자의 힘!
그 속에서 드낙은 느리게 하지만 빠른 사고력(思考力)으로 순식간에 뒷다리를 숏소드로 갈랐다. 투척 단검이 아랫배의 털이 없는 곳을 푹하고 찌르면서 긋고 지나갔다.
훌쩍!
아크로바틱하게 늑대 한 마리를 손으로 짚어서 넘어가며 숏소드를 투척했다. 그대로 박혔다. 끝이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숏소드였다. 하지만 깊게 들어가지 못해 금방 빠질 듯했다. 가죽을 헤집고 가서 뼈에 맞아 멈춘 것이다.
출렁거리는 움직임에 맞추어서 체중을 반대로 옮기며 균형을 잡고 투척 단검을 하면서 손이 빈 왼손에 대거를 쥐고 오른손은 목가죽을 움켜잡았다. 상체를 내리면서 그대로 목을 갈랐다.
있는 힘껏 가르면서 〈킬 더 배틀〉의 효과가 풀렸다.
‘윽!’
상상을 초월하는 어미 멧돼지의 힘에 그대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끝이 나 있었다.
“꾸에에에엑! 꾸에엑!!!”
뒷다리가 숏소드에 깊게 베이고, 아랫배에 투척단검이 꽃히면서 거친 멧돼지의 움직임과 드낙이 빠져나가는 그 강력한 힘의 충돌에 쭉 찢어져 내장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함을 꽥꽥 질러도 조만간 죽어갈 수컷 멧돼지였다.
어미 멧돼지는 그대로 엎어졌다.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번들거리는 코에서는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낙은 가장 큰 놈을 가져갔다. 나머지는 데려온 늑대들의 것이었다.
그는 희희낙락했다. 사냥은 재밌고 짜릿했지만 그는 〈12 비전 개량 검술〉을 개발하는데 큰 목적을 띄고 있었다.
‘빨리 집에 가자.’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화륵!
이름 모를 동굴 속에서는 한창 야영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죽 갑옷을 입고, 야지에서의 숙영을 위해서 무두질이 안 된 부들부들한 가죽 털옷을 가죽 갑옷 위에 입고 있는 이들도 보였다.
“두목. 내일이면 도착합니다. 기대되지 않습니까?”
머리가 홀라당 타버리고 화상으로 가득한 얼굴을 한 사내, 〈일그러진 세탄〉이 술병을 들고 앉으며 말했다. 옆에서 모닥불을 멍하게 보고 있던 마적두목 〈손없는 센다빌〉이 갑자기 웃음소리를 흘흘냈다.
“당연하지. 물어서 뭐 하냐? 어제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 미친 듯이 날뛰고 싶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케헤헤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내 핏발 서린 눈으로 모닥불을 쳐다보며 과거를 회상하며 입을 다물었다.
‘락손.’
악명을 퍼뜨리며 〈양손도끼 센다빌〉이라고 불리던 그는 이제 없었다. 도망을 다니며 작은 마을을 털어내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손없는 센다빌〉만 있을 뿐이었다. 그의 오른손은 정확하게 손목이 잘려 있었다.
3미터가 넘는 마치 트롤과도 같은 덩치를 하고 있어도 성정이 난폭하기로 유명해서 병사가 되지도 못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아군을 후려 패 죽이는 것이 더 많았다.
“산골 마을에서 살 정도로 자기가 제법 원한 하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어디서 뒤졌나 생각했는데 촌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50명 이상의 병사를 통솔할 정도로 락손은 출세욕이 제법 있는 자였다. 그 덕에 범죄 농노를 10명이나 구매하고, 대저택을 짓고 산골 마을에 자리 잡을 수 있기도 했다.
“읏차! 고기 올라갑니다!”
마적의 막내가 허둥지둥 사슴의 뒷다리를 두 개 꼬치로 꿰어 가져와서 모닥불에 척하고 올렸다. 보이는 곳에서 으깬 야채와 채소를 듬뿍 발랐다. 이 세상의 야채와 채소는 향이 가득한 것이 특징이라서 따로 향신료가 필요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금을 살살살 쳐주면 그만이었다.
“크으!”
손없는 센다빌은 왼손으로 꿀떡 꿀떡 먹으며 술까지 거침없이 마셨다. 텅 빈 오른손목에는 갈고리 의수가 있을 뿐이었다. 실생활에서도 제법 사용할 수 있었고, 동시에 전투용으로도 적합했다.
20명에 달하는 마적들은 전원이 기병이었다.
큰 악명은 떨치지 못했지만 암세포와도 같은 존재로 유명했다. 특히나 덩치가 큰 센다빌은 다른 산적을 기세로 휘어잡아서 순간적으로 세력의 몸집을 불려서 토벌단을 털어먹은 적도 있었다.
잡아먹은 토벌단의 규모는 매우 소규모였지만 그래도 평범한 산적들에게 있어서는 그것도 악명이었다.
특히나 이런 허접한 곳에서는 센다빌만한 덩치만 봐도 산적들은 도망만 갔기에 거침없이 술을 마셔도 하등 상관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부쩍 난다.”
센다빌과 세탄.
서로 병사가 되었지만 문제를 일으켜 불명예 제대했고 그대로 산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세탄은 락손의 화공(火攻)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산채를 가졌던 산적 두목이었다.
산적이 사는 산채는 가족들도 당연히 있었고, 그날 세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잃었다.
“제가 그때 살아남은 것은 이때를 위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귀족에게 복수는 꿈 꿀 수도 없었기에 락손의 소식은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아주 거대한 장작이었다.
“크크크.”
손없는 센다빌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혈기 있을 때, 노련한 락손과 마주한 그는 한순간에 손목을 잃었다. 워낙 맷집이 대단해서 살아남아서 광산 노동형에 처해졌었다.
밤이 깊어갔다. 복수의 날은 바로 다음이었고, 두 명 모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