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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6화 (1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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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걱정했었다.”

사냥꾼 게릭이 그를 크게 맞이해주었다. 전과 비교한다면 온도 차이가 제법 컸다. 양팔에 할퀸 상처도 상당했기 때문에 드낙이 용감한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덕에 자신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드낙이 더 크게 다쳐버렸으니,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

“상처는 괜찮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갈아줘야 해요. 냄새가 나서.”

“술 냄새를 풍기는데? 부상 입을 때 술 마시면 안 된다.”

“상처 소독에 쓴 거예요."

“그래? 붕대는 누가 그렇게 자주 감아주디? 빨려면 힘들 텐데.”

목장에는 남자뿐이었으므로 빨래 같은 일을 나서서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돈으로 해결했죠. 옆집 아주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잡담을 나누며 안으로 들어간 드낙에게 어육포와 술을 꺼내온 사냥꾼 게릭이 술병은 자신의 앞에 놓고, 그에게는 물컵 한 잔을 대접했다.

“끓인 물이죠?”

“그래. 네가 물을 가린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잖아?”

드낙이 특히나 〈애송이〉 취급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주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끓는 물을 먹고, 필요 이상으로 청결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대청소도 끔찍하게 함과 동시에 벌레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괴짜.

그 덕에 다른 이들은 평탄하게 가는 〈애송이〉 즉, 청소년 때 남들보다 힘든 길을 걸어야 했다. 그 괴짜 같은 것을 고치려고 너도나도 함부로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 한 번 가지면 드낙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흘러나오는 게 〈검은 산골 마을〉이었다.

재미난 이야기가 적었기에 당연히 드낙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 안줏거리였다.

“예. 고맙습니다.”

드낙은 짧게 감사를 표하며 끓인 물을 마셨다. 당연히 끓인 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에이. 안 끓이셨네.”

“하하하! 당연하지. 네가 언제 올 줄 알고 물을 끓여놔?”

드낙이 물컵을 밀었다. 대신 어육포에 손을 대었다. 척 보아도 후추가 뿌려져있는 것이 군침을 돋게 했다.

“얼마나 돈을 받고 싶었으면 이렇게 바로 오냐? 몸 좀 추스르고 오지.”

“한 번 쥔 돈, 계속 쥐고 있으면 손 아프잖아요.”

작은 웃음소리가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사냥꾼 게릭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 그대로 육포를 씹었다.

“검은 늑대는 진작에 줄을 서서라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 뜸을 들이는 중이다.”

그 말에 드낙이 의문을 품었다.

“락손에게 팔면 가장 큰돈을 받지 않겠어요?”

게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 양반은 현물이 많은 거다. 현금이 많은 게 아니야. 마을에서 크게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쓰는 돈이 많아서 쥐고 있는 것이 적다.”

“귀족 같네요.”

영토와 범죄 농노 등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당장 화폐를 많이 쥐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내심 속으로 가진 패물이 제법 될 것이다.

“아무튼 그 덕에 뜸을 들여야 해. 보통 비싸게 팔리는 게 아니야. 쥐고 있는 게 중요하지. 그래서 말이다.”

“돈은 나중에 주겠다?”

“그렇지. 물론 받는 만큼 더 쳐주마.”

순수한 게릭의 말에 드낙이 헛웃음을 지었다. 믿지 못하는 눈치에 게릭은 전혀 웃지 않았다.

“최소 얼마 생각하시는데요?”

“못해도 은화 10닢은 받겠지.”

“와우.”

은화 10닢이면 용병단 하나를 불러와서 의뢰를 맡길 수 있는 정도다. 조금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4인 가족이 10달 내지는 1년을 버틸 금액이 은화 10닢의 가치였다.

“그럴 돈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너무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소문이야 퍼지겠지. 검은 늑대는 영악해. 그리고 용감하지. 그때 사람이 많았어도 모두 두려워하고 겁을 먹은 것을 알았기에 공격한 거야. 우리 둘은 용감했지. 하지만 고작 두 명이었어. 그래서 달려든 것이지.”

“보통은 잡기가 힘든가 보죠?”

“아무렴. 용병단의 난폭한 눈을 본다면 그림자조차 밟기 힘들다더라. 락손이 말해준 것이니 분명해. 이건 돈이 된다.”

드낙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뭐 반론할 것도 없었다.

“그럼 저한테 들어가는 돈이 최소한 은화 4닢이네요?”

“그래. 지금 받고 싶으면 은화 3닢으로 해도 좋다.”

“나중에 받겠습니다.”

사냥꾼 게릭은 믿을만한 전우였다. 돈으로 장난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매주 찾아가서 한 마디씩은 할 생각이었다. 돈 문제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필수였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중에 더 크게 시간을 버릴 수 있었다.

“그럼 더 말씀할 건 없으시죠?”

“있어. 앉아 봐.”

벌써 엉덩이를 떼려는 드낙을 게릭이 다시 잡았다.

“락손이 널 부를거다.”

드낙의 눈이 좁아졌다. 이미 그의 아버지인 할다낙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미 불렀나 보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드낙이 고열에 시달리고 기절해있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뭔데요?”

드낙이 자신의 일이기도 했기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알렉의 아이들과 키텐의 죽음 때문이다.”

“락손이 잘못한 것은 없잖아요. 저희들도 충분히 노력했고. 그저 불운한 사고인데···”

사냥꾼 게릭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말이 아니야.”

“그럼요?”

“알렉은 폐인이 되어버렸고, 그 아내도 마찬가지야. 죽만 먹고 죽다시피 살아가고 있다고.”

“······”

드낙은 육포를 질겅 물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자신이 해줄 것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남의 일이었다.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그런 것에 발이 묶이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서 말이 많다고···”

게릭은 말을 줄여나가며 술을 들이켰다.

누구나 말을 해도 술이 생각나는 것이다. 드낙은 기어코 술에 손을 대었다. 게릭은 말리지 않았다.

쓰디쓴 술이 생각날 수밖에 없는 한 가정의 파국이었다.

밖의 공기를 쐬고 움직인 데다가 술까지 한 잔 먹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진 드낙은 곧바로 집에 돌아가서 쉬어야 했다.

어찌나 산골 마을인지.

드낙은 눈을 뜨자마자 병문안을 오려는 사람들을 맞이해야 했다. 얼굴이 데면데면한 사람도 찾아왔는데, 당연히 원수를 갚았기 때문이다.

〈검은 늑대(Mavros lyko)〉를 죽이는데 성공한 2명이었고, 1명이 마을에서 기절까지 했으니.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너도나도 호들갑을 떨어대니 무덤덤한 이들까지도 찾아오게 되었다.

“예. 예. 뭐···”

드낙은 그들을 마주하면서 별할 말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크고 작은 자잘한 음식이 쌓여만 갔다. 대부분 보존식품이었다. 말린 어육포가 대부분이었고, 꽃이나 열매도 있었다.

“몸은 괜찮나?”

오후 늦게 되어서야 락손이 뒷짐을 지며 나타났다. 드낙은 침을 삼키며 그를 맞이했다.

“뭘 그렇게 들고 오셨어요?”

“아, 이거? 약초지. 약초. 그리고 어육포도 조금 들고 왔고···”

락손은 주섬주섬 꺼낸 것을 테이블에 탑처럼 쌓았다. 척 보아도 보여주기 식이었고, 생색을 자연스럽게 내는 행위였다.

“고맙습니다.”

드낙은 감사를 표하며 누운 채로 말했다. 락손은 양팔에도 관심을 가졌다. 마브로스 리꼬에게 할퀴어지고 이리저리 휘둘러졌던 팔은 상처가 자잘하게 많았다. 나으려면 며칠이나 더 있어야 할지 몰랐다.

“자주자주 소독하고 갈다니. 부지런하군.”

‘살려면 해야죠.’

합병증. 2차 감염을 가장 두려워하는 게 드낙이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들고 오신 거 아니에요?”

“아. 하하. 너무 많나? 실은 드낙, 너에게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왔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을 분위기가 아직도 안 좋죠? 아버지께 들었어요.”

“음. 그래. 할다낙이?”

락손이 그의 눈치를 봤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응해줄 드낙이 아니었다. 입을 다물고 그를 쳐다보자 락손은 별 수 없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했다.

“알렉에 대해서 마을 분위기가 안 좋은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예.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가족이죠.”

락손이 손을 주억거렸다. 드낙이 크게 안타까워했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군. 드낙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영악하다니.’

자신을 움직이려면 그만큼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락손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동시에 큰돈이 안 드는 것이 드낙이었다.

그는 돈보다는 지식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락손은 퇴역군인에 나이도 많아서 정식으로 은퇴할 정도로 경험과 지식이 많았다. 병사에서 관리직으로 계단을 올라가며 열심히 지식을 탐구했기 때문이다.

“전에 글을 가르쳐달라고 했었지? 지금도 꼭 배우고 싶나?”

드낙은 깜짝 놀랐다. 할다낙과 게릭을 통해서 락손이 자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었기에 연기하기에는 그가 건네주는 것이 컸다.

글! 문자! 그것은 아주 강력한 힘이었다. 퇴역군인이지만, 병사들의 관리를 한 적이 있는 락손은 문자를 알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대부분 작대기를 그어놓거나 그림을 통해서 소통하는 게 전부였다. 대표적으로 간판이 있었다.

“검술을 가르치는데도 힘에 부치다면서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놀란 드낙을 보며 락손이 웃음 지었다.

“대신 한 가지만 해주면 된다.”

“어떤 건데요?”

당장이라도 드낙이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락손은 전보다 표정이 밝아졌다. 문자는 확실히 큰 힘이라고 여겨지기 좋았지만 정작 쓸데는 적었다. 많은 이들이 문자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알고 싶다면 손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문자였다. 단지 소정의 돈이 들어갈 뿐이었는데, 그것을 모르는 드낙은 그야말로 〈애송이〉였다.

산골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녀석이다.

“청년회에서 말이 나왔다. 알렉에게 인도적으로 지원을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하더군.”

“하긴···완전히 폐인처럼 지내고 있잖아요.”

드낙의 말에 락손이 혀를 찼다.

“그건 그저 구색일 뿐이야. 슬픔에 잠겨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남자가 말이야, 훌훌 털어버려야지.”

드낙은 락손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을 사정을 생각하면 결국 내가 베풀어야 하는데, 나도 이번 달에는 힘든 상황이야. 그래서 네가 내 명령을 받고, 검은 늑대를 잡으러 갔다고 말해줬으면 한다. 굳이 청년회 사람 모두에게 찾아갈 필요도 없다. 대장장이 말룩산에게 슬쩍 말을 흘리면 돼.”

“저보고 거짓말을 하라고요?”

드낙이 크게 질색했다. 이렇게 폐쇄적인 사회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나면 평범하게 끝나지 않았다.

“너랑 나만 말을 지키면 된다. 사냥꾼 게릭은 신경도 안 쓸 거야. 그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잘 알아.”

“그래도 제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드낙은 남을 믿지 않는다. 현대에서의 사회생활은 그에게 사람의 마음은 알 길이 없으며 알아도 갈대처럼 바뀐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폭력이 사라졌지만 그만큼 정치질이 시작되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숨기고,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짓을 안 하게 하는 것을 배웠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비밀〉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안 들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만 아는 거짓말을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크나큰 공유감을 선사해주지만 그 끝은 항상 안 좋게 끝난 적이 많았던 사회 초년생의 시절을 드낙은 잘 알고 있었다.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가십거리이고, 안줏거리가 되는 것이 비밀의 역할이었다.

“문자를 배우고 싶으면 그 정도 리스크는 감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글쎄요. 제가 술을 자주 마셔서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드낙은 자신을 들어서 거부하는 말을 꺼냈다.

“술주정쟁이도 아니면서 술은 무슨!”

락손은 몇 번이고 드낙을 설득하려 했다. 그저 말 한마디 해주는 것으로 제법 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기에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문자를 배우지 못한다고 해도 나중에 큰돈이 들어간다고 해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다낙과 세르낙에게서 독립 자금을 받은 뒤부터 드낙은 〈검은 산골 마을〉에 다시 돌아올 생각도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평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좋다. 그럼 내 비전 모음서를 필사하게 해주마.”

“비전 모음서요?”

“검술 비전이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쟁터를 다녔는지 모르지는 않겠지? 몇몇 비전 검술은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것이 있다.”

드낙의 눈이 반짝였다.

몬스터를 카운터치는 검술 비전!

‘검은 늑대와 싸워봐서 뼈저리게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인간은 몬스터에게 죽었다 깨어나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번 싸웠지만 〈검은 늑대(Mavros lyko)〉를 다시 잡으라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함을 잘 알 수 있었다. 다시 싸우러 가자고 한다면 드낙은 가지 않을 정도로 검은 늑대가 보여준 강력함은 대단했다.

“좋아요.”

드낙이 수락했다.

그 순간 락손의 눈이 뱀처럼 차갑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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