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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드낙은 명백하게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고 움츠러들었다. 양팔에 응급처치를 한 곳에서 썩은피가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그곳에서는 누런 고름이 삐쭉 튀어나와서 피와 뒤섞여서 흘러내렸는데, 식은땀이 쫙 났다.
패닉에 빠져서 붕대를 풀었는데 어느새 흉터만 있을 뿐이었다.
“휴.”
그제서야 이곳이 꿈인 것을 떠올렸다. 너무나도 리얼해서 까맣게 잊어버렸고, 고름과 뒤섞인 검은 피에 심장이 펄떡거렸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이었다.
‘상처.’
거대 늑대이며 마브로스 리꼬라고 물리는 〈검은 늑대(Mavros lyko)〉를 잡으면서 양팔에 상처가 제법 났었다. 응급처치하면서도 봤지만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더 붕대를 교체하고 기절했어야 했는데.’
술을 부어서 세균감염을 막았지만 자주자주 갈아주는 것이 좋았다. 특히나 이런 세상의 위생은 견디기 힘든 것이고 스스로 잘 관리를 해야 했는데 다치면 그것도 힘들었다.
‘돈이 제법 깨지겠네.’
이곳에서 가족애는 있기는 있었지만 대단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직접 벌어서 해야 했고, 돈을 절반만 지원해줘도 대단히 감사해야 했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삶이 있었고, 자식은 큰 것을 기대하면 안 되었다.
유산 대신에 빚을 떠안겨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부모라고 할 정도였다. 힘들 때 가끔 찾아와서 몇 달 생활비만 줄 정도. 그 말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일절 없다는 뜻이다.
드낙이 아버지 할다낙의 지원을 바라지 않았는데 돈을 받은 것은 크게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짝!
손뼉을 마주치고 드낙이 주위를 훑었다. 다섯 개에 달하는 문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이 있었다.
쯔르륵. 콸콸콸.
검은 물이 토해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검은 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드낙은 당연히 그 검은 문으로 향했다. 척 보아도 희귀했다.
“윽!”
그 문에서는 바람까지 솔솔 불어오고 있었는데, 썩은내가 가득했다. 마치 검은 늑대의 아가리가 앞에 있는 것 같았다. 숨을 참고 문에 근접하자 환상이 그를 뒤덮었다.
쿵! 쿵쿵! 쿵쿵쿵!
거대한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뼈와 근섬유 그리고 살과 가죽이 덧씌워지고 화살에 찢어진 왼쪽 눈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늑대의 재생력!’
하지만 그 재생력은 심장이 파괴되면서 한 줌의 핏물로 변했다. 드낙은 당연히 이 능력을 얻고 싶어 했지만 환상은 심장에서 시작된 육신이 핏물로 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헉.’
끔찍한 귀곡성(鬼哭聲)이 울려 퍼졌다.
연기로 뒤덮인 사람이 그대로 잡아먹히고, 검은 핏줄이 생기더니 붉은 눈동자를 한 채 연기로 이루어진 집을 부수고, 사람을 가르고 내장을 쥐어 입으로 가져가더니 이내 입이 길쭉하게 늘어나서 늑대의 머리를 가지게 되었다.
털썩!
그 감각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드낙이 기겁하며 물러났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환상에서 깨어났다. 등이 축축했다.
‘왜 이렇게 생생해?’
전과 다르게 두 번째 꿈에서 느껴지는 환상은 보다 다양한 감각을 드낙에게 내어주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형상에 불과했지만 환상을 통해서 오는 그 감각은 실전을 경험한 드낙에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장없는 괴물〉.
‘선택하면 내가 잡아먹히는 능력이다.’
심장을 제외한 대부분이 엄청난 재생능력을 가지게 된다. 눈조차도 하루가 지나면 제기능을 발휘하는데 오죽할까? 실로 상대에게 끔찍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강함을 드낙에게 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잡아먹히는 능력을 누가 선택하겠는가.
‘아쉽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이나 능력이 있을 때 얻었어야 할 것인데.’
드낙은 입맛을 다시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그가 겪은 환상은 실감있었고, 〈심장없는 괴물〉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대늑대의 몸〉. 마브로스 리꼬의 평범하지 않은 근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근육의 실질적인 양이 적더라도 상당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어린애의 손으로 거대늑대의 근력을 모두 얻을 수는 없었고, 패널티가 있었다.
〈늑대의 몸놀림〉. 육체의 통제력 나아가서 민첩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게 여겨졌는데, 드낙은 자신의 신체를 다루는데 있어서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준에 오른 민첩함과 육체를 이용하는 경험이 축적되었기에 얻어지는 힘이 적게 느껴졌다.
〈늑대 왕관〉.
‘아!’
강렬했다. 까마귀나 여우 그리고 멧돼지를 다루는 듯한 환상이 부서지고 그대로 수마리의 늑대가 연기를 뜯어먹으며 질주했다.
‘늑대를 다루는 힘!’
그것은 조련술이 아니었고, 늑대에게 적용되는 강력한 카리스마였다. 또한 검은 늑대와 적대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달아서 또 하나의 환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능력이 희귀한 것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였다. 다른 능력이 한 번의 환상으로 끝났다면 이 능력은 또 하나의 환상이 남아있었다.
훅하고 들어오는 작은 발자국. 드낙은 그것이 고블린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늑대의 등을 쓸어담는 고블린이 입이 쩍 벌려서 연기를 토해냈다. 그것은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서 쭈우욱 늘어졌다.
‘야만스러운 놈들답게, 늑대와도 깊은 인연이 있나보군.’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 그것이 바로 늑대 왕관을 얻는다면 부차적으로 받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전에 〈까마귀 카이야(Kaiya)〉를 조련하는데 성공하게 도와준 〈문화의 오른발, 야만의 왼발〉능력 덕분인 듯했다.
〈그림자를 걷는 늑대〉. 어둠 속에서 신체능력이 상승하고, 몸에서 나는 소리가 사라지는 능력이었다. 강력한 은신술이나 다름없었고, 특히나 도시나 인간이 사는 곳에서 사용한다면 가장 좋았다.
숲에서는 수풀이 흔들리기는 흔들릴 테니까. 반대로 소음이 나는 물건이 없는 곳에서는 무적과도 같은 힘을 선사해줄 것이다. 말 그대로 〈밤의 전사〉가 되는 것이다.
‘군침이 도는 것들이 많네.’
하나하나 강력하고, 드낙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근력을 높여주는 〈거대늑대의 몸〉 그리고 밤에 무적의 힘을 보여주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자를 걷는 늑대〉 마지막으로 〈늑대 왕관〉이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당장 근력이 필요하지 않아.’
드낙의 신체유전자는 제법이었다. 근골이 타고났는데, 야지에서 활동하는 목장의 가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추위에도 강해서 수염이 잘 나지 않고 체모가 적기도 했다.
먹는 것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생선을 먹을 때면 뼈까지도 씹어먹어 칼슘을 섭취하는데 열성적인 것이 그였다.
나이가 어리다고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마을을 나서는 것은 아직 멀었다.
‘인간 사냥을 할 것도 아닌데, 은신술이 필요할까?’
지금 숨는 것도 제법 잘 했다. 그것을 극한으로 얻을 수 있어 보였지만 그런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이기에 부족함을 느꼈다.
‘늑대 왕관의 능력.’
추가적으로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수마리의 늑대를 곧바로 부릴 수 있는 초능력과도 같은 것에 드낙은 매료되어있었다.
‘늑대를 부릴 수 있다면 마치 용병단을 부리는 것같이 영향력이 커질 거다.’
항상 늑대를 유지하기에는 식대가 감당이 안 되었지만, 오랫동안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숲에다가 풀어놓고 필요하다면 부를 수 있었다.
‘마브로스 리꼬, 검은 늑대와 적대하지 않게 되는 것도 좋아 보인다.’
워낙 잘 알려져서 시골에도 수십년 단위로 출몰한 놈이었다. 그 덕에 사냥꾼 게릭이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면 몇 번이고 마주칠 수 있었다.
‘늑대 한 마리는 고정적으로 운용할 수야 있겠다.’
드낙은 어깨에는 까마귀 카이야를 데리고 다니고, 옆에는 늑대 한 마디를 끌고 다니는 것을 상상했다.
‘크. 간지.’
그 멋스러움은 단연 출세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 PR이 알아서 될 것이다.
‘늑대를 다루는 용병단이라.’
미래를 생각하기도 했다. 고블린의 언어와 문자는 고블린 토벌에 쓰일 것이다.
‘혼자서 시작해서 용병단을 꾸리려면 고블린 토벌이 제격이지.’
드낙은 〈쇠주머니 용병단〉을 기억했다. 〈용병단장 조세(Jose)〉도 생각났다. 만약 자신의 용병단을 꾸리는 것이 힘들다면 그곳에 속할 생각도 할 수 있겠지.
그는 〈늑대 왕관〉의 문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벼락과도 같이 무언가가 변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낙하감을 느꼈다.
‘어?!’
깜짝 놀라서 버둥거렸지만 마치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 드낙의 몸을 휘어감는 검은 머리카락과도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끝없는 어둠 속의 바닥에서 휘어 올라와서 그를 묶었다.
끔찍한 감각을 느꼈다. 알게 모르게 그것을 ‘더럽다.’라고 생각했다.
버둥거림과 동시에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찌르르. 찌르르.
벌레가 우는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달빛이 조금 보이는 나무창문을 열었다. 새하얀 달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윽.’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 드낙은 붕대의 상태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피가 말라붙어서 색이 변질되어있었다. 관리 하나 안한 것이다.
“아흐흐, 아고고.”
야밤에 붕대를 뜯어냈다. 살이 들러붙어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통증이 심했다. 옆에 미리 가져다 둔 독한 술을 살살살 부으며 발톱의 상처에 손으로 후벼파듯이 벌려서 집어넣었다.
“크흐으으읍. 미치겠네.”
뇌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었지만 드낙은 멈추지 않고 빠짐없이 소독을 마치고, 붕대를 다시 감았다. 약초는 당장 없었다.
위생에 대한 감각이 없는 세상이었기에 가족에게 큰 소리도 칠 수 없었다. 이상한놈 취급을 할 것이다.
식은땀으로 가득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에 금방 식었다. 몸은 추위를 느꼈지만 드낙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핏물 가득한 헝겊을 밀어내고, 붕대를 다시 감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의 방에는 술 냄새가 풍겼는데, 방 소독을 알코올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드낙은 자신이 이틀을 고열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일 만에 깨어난 것이다.
“고생하셨어요.”
아버지인 할다낙은 목장일과 자신의 간호를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괜히 죄송스러웠다. 받은 것이 없기에 준 것도 없다고 여겼는데 이번에 간호를 받으면서 그의 사랑을 느낀 것이다.
무뚝뚝하지만 큰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항상 할다낙과 세르낙은 자신을 도우려고 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크게 깨닫게 된 드낙이었다.
“제법 움직일만하고, 가뿐한데요?”
“기운을 차려서 다행이다. 오늘까지만 간병하고 나머지는 그냥 다른 사람 부르려고 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삼일 밤낮을 술에 절어도 거뜬했지."
잡담을 나누다가 할다낙은 드낙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검은 늑대 놈에 대한 대금은 사냥꾼 게릭에게 있다. 네가 찾아와야지 준다고 해서 못 받았다.”
“제 돈이니까 제가 받아야죠.”
“말이라도 안 하면! 흐흐.”
그렇게 서로 웃다가도 할다낙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 분위기는 아직도 안 좋아. 웃고 다니지 않는 게 좋다. 뭔가 전부 날이 서 있어.”
“그렇겠죠.”
슬픔은 곧 사라지겠지만 그전까지는 조용히 지내는 것이 모두에게 좋았다.
“락손이 한 번 찾아오라고 하더군.”
“무슨 일 때문인지는 말했나요?”
“아니. 그래도 들어오는 이야기를 보면 청년회에서 포상금을 줄 것 같던데.”
드낙이 웃음 소리를 냈다. 할다낙은 한 번 더 마을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주의를 주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아이 셋이 죽었고, 농민 하나가 목이 꺾였다.
초상날에 대학교 합격했다고 방방 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그 짧은 기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드낙은 가장 먼저 사냥꾼 게릭에게 향했다. 더 자세한 마을 상황을 듣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