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 <-- 사냥 대회 -->
끔찍한 광경이 횃불을 높게 치어들자 전체적으로 보였다. 드낙은 단번에 락손이 무엇을 노리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먹지 않았네요. 말 그대로 복수 행위를 한 것처럼···”
신체 부위는 하나같이 모두 존재했다. 단지 찢기고 나가서 산산조각이 났을 뿐이었다. 드낙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난잡하게 뜯겨진 것을 조립하듯이 움직였다. 피냄새에 익숙해진 마을 남자들도 우두커니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시체는 총 3구였고 모두 어린아이였다. 두개골이 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도 있었기에 도저히 그것을 볼 수 없는 마을 사람 3명은 등을 돌렸다.
“먹은 게 없어. 말 그대로 본보기를 보여주듯이 찢어발기고 그저 사라졌군.”
락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은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연쇄살인범이 벌인 범행 현장에 도착해서 그 희생자의 편린을 마주하면 누구든지 열이 뻗칠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늑대를 본 적이 있어요?”
“많지는 않지. 하지만 있기는 해. 대표적으로는 〈검은 늑대〉가 있겠군. 놈은···”
락손의 말을 드낙이 끊었다. 그는 사냥꾼 게릭과 같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 전날에.
“마브로스 리꼬라고 불리는 늑대요?”
“네가 알 수가 없을 텐데.”
“게릭이 말해줬어요. 불과 하루 전에 봤죠. 어슬렁거리면서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었죠. 이렇게 잔혹한 짓을 벌일 놈으로는 안 보였는데.”
“조용히 지나가는 살인범을 누가 잔혹하다고 생각하겠어? 거기에 사냥꾼 게릭도 이름만 알뿐, 제대로 그 습성을 모르고 있는 듯하군.”
이런 산골이다. 고블린이 나타난 것도 비교적 최근이었고, 마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니, 사냥꾼 게릭을 나무랄 것도 아니었다. 이 마을, 저 도시를 찾아다니며 사냥 지식을 습득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늑대가 줄어들어서 일을 벌인 건 아닐 거다. 애초에 홀로 다니는 놈이 〈검은 늑대〉고 때때로 늑대 무리와 충돌하기도 한다.”
그르르르···
몸이 쭈뼛서는 듯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횃불이 어지럽게 주변을 훑었다.
“들었어?”
“늑대 울음소리야.”
“그 새끼야. 야이, 개새끼야! 어딨어!”
마을 남자 하나가 거침없이 횃불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락손이 훌쩍 뛰어가서 옷을 잡으며 당겼다. 그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크게 지나갔다.
“헉!”
그대로 주저앉았다. 워낙 빠르기도 했고, 크기도 해서 마치 〈그림자에 잡아먹히는 듯한 착각〉에 빠졌기 때문에 오금이 단번에 저려왔기 때문이었다.
차앙!
드낙이 거칠게 숏소드를 뽑았다. 다른 손에는 횃불을 들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으르르!”
동쪽에서 들린다 싶으면 어느새 서쪽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와 쑥하고 지나갔고, 나무 위의 두툼한 나뭇가지가 크게 들썩이며 나뭇잎을 떨구기도 했다.
“진정해! 뭉치고 있으면 놈은 결코 오지 못한다! 만약 덤벼오면 횃불을 아구창에다가 집어넣어! 정신 똑바로 차리면 이겨낼 수 있다!”
락손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마을 남자들의 옷을 당겨서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리고 표정이 좋지 않은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정신차려! 정신차려라!!!”
“헉! 헉!”
땀을 거칠게 흘리면서 고개를 연신 계속해서 돌려대었다. 그런 놈들의 뒷목을 휘어잡아서 꽥꽥 소리를 질러대었다.
“앞만 봐라! 다른 사람도 자기 앞만 뚫어지게 보란 말이다! 드나아악! 너는 활을 들어라! 어떻게든 한 발이라도 맞춰봐!”
드낙이 숏소드를 바닥에 꽂고 단궁을 빼어들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날아다니는 놈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 쏘고 뭐해!”
“한 발이라도 맞추라면서요!”
횃불의 불빛과 반대되도록 어두 컴컴했다. 드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보였지만 달빛은 바닥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소름이 돋았다.
‘이놈이 싸움터를 이곳으로 만들었구나.’
드낙이 소리쳤다.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애새끼한테 조언이나 얻고, 잘하는 짓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횃불 연료는요? 충분해요? 아무래도 새벽까지 버텨야 할 것 같은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부족해.”
“그럼 움직여야 해요? 여기 약간 구덩이같이 되어있어서 오르기 전에 한 방 먹을 텐데.”
“다른 사람이 여기까지 오도록 해야지. 제깟 놈이 열 명을 상대로도 덤빌까?”
“게리이이익!! 게릭! 여기다! 여기!!!!”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게릭을 불러대었다.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내려앉았기에 소리는 멀리까지 그리고 확실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검은 늑대가 덤벼오질 않자 드낙은 자신감을 얻고, 횃불의 불빛에서 조금 멀어졌다.
“위험해!”
“이래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미끼가 되면 더 좋죠. 퇴역군인의 한 방 솜씨를 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겁 없는 녀석!”
락손이 그렇게 소리쳤다. 드낙의 용기는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만약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면 실타래처럼 뻗어나가 마을 남자들과 락손을 휘감았을 터였다.
팔뚝에 소름이 돋고, 힘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어떤 마을 남자는 흥분해서 소리를 내질렀다.
“우아아아아아!!!! 나와라! 이 비겁한 놈아!”
그렇게 한 걸음을 크게 내디디며 횃불을 묶은 나무창을 휘저었는데,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질주하며 횃불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옆구리를 그대로 후려치면서 삽시간에 키텐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몸길이는 사람 만했고, 덩치는 사람의 어깨까지 올라오는 놈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남자가 나뒹굴었다.
핑!
드낙의 화살이 정확하게 눈에 박혔다. 거리가 멀지만 않으면 백발백중인 드낙이었다. 고질적인 중장거리 사격(25M 이상)이 젬병이었지 10걸음도 안 되는 놈의 눈을 맞추는 것은 쉬웠다. 그는 매일같이 활을 쏘며 노력하고 있기도 했다.
“켕!”
“놈의 눈을 맞췄어!! 놈의 눈을 맞췄다고!!”
드낙이 소리를 질렀다.
락손이 달려들었지만 놈은 재빨랐다. 그대로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내팽겨진 키텐에게 뛰어가듯이 달려갔다.
그전에 어둠 속에서 발을 물고 쭉 당기는 검은 늑대에게 키텐이 그대로 훅하고 끌려갔다. 드낙이 활을 쏘았지만 두꺼운 털에 막히고, 가죽을 뚫지 못했다.
“사, 살려줘! 살려줘! 아아아아악!!!”
수풀 속으로 사라진 마을 남자의 고통의 울부짖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락손과 마을남자 4명 그리고 드낙이 천천히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드낙의 용기가 만들어낸 기세는 순식간에 꺾였다.
피가 흥건했다.
뒤이어서 내장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 뒤에는 목뼈가 부러진 마을 남자, 키텐이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었다. 침이 질질질 흘러내렸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아아!!!!!”
거친 포효가 어둠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 흉성(凶聲)에 모두가 주춤거렸다.
"허으으···"
마을 남자들이 주춤거리다 못해 움츠려들었다. 잔뜩 겁을 먹은 것이 보였다. 락손은 그들의 뺨과 어깨를 치면서 소리를 질러대었다.
락손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괜찮았다. 적어도 오금이 저리거나 몸 자체를 움츠리지 않고, 주춤거리는 정도에 그쳤다. 퇴역 군인이었지만 〈검은 늑대〉를 이렇게 소수로 맞이해 본 적이 없었고, 애초에 현장 지휘관으로써 활동했기에 겨우 살아남은 락손이었다.
“······”
“간건가?”
“방심하지마! 순식간에 끌려갈 수 있다고.”
멀리서 횃불빛이 보였다.
“게리이이익! 여기다! 여기!”
너도나도 소리를 질러대었다. 마을 사람들 다섯과 게릭이 땀이 범벅이 된 채 달려왔다. 주변은 고요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저건···키텐이잖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웅성거림이 커졌다. 숲에서의 이야기는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검은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모두 분노했다. 마을의 술을 다양한 맛으로 이끌어내는 알렉의 덕을 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중에는 드낙도 있었다.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드낙의 취향을 맞춰준 알렉의 술은 혼자서 숨겨서 마시고 있었다. 알렉은 입도 무거운 사내였다.
“시신을···수습해야하는데···”
감당이 안 되었다. 사람만 한 늑대에게 습격당해 그 자리에서 목이 꺾이고 이곳까지 끌려와서 훼손된 아이들의 시체는 수습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락손도 참혹한 모습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드낙이 나섰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빠르게 해결해야 했고, 누구보다도 냉정을 되찾은 것은 드낙이었다. 그는 〈킬 더 배틀〉 현상을 고블린 토벌 때 겪고 난 뒤로 냉정해지는 법을 배웠다.
‘검은 늑대에게 먼저 나서다니. 내가 미쳤지.’
그리고 후회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객기를 부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드낙의 그런 행동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한 걸음 내뻗으며 발광을 부린 키텐이 대신 죽었다.
흥분된 상황에서 만용을 부리지 않기란 매우 힘들었다. 특히나 이제 실전 하나 겪은 드낙은 당연히 냉정하게 대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최대한 천을 많이 가져오세요. 알렉을 위해서 그저 가죽 포대에 넣고 싶지는 않아요.”
모두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알렉이 만든 술을 사먹어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새벽의 숲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모닥불을 지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묵묵하게 시간을 보냈다.
드낙은 메리와 그랜트 그리고 톰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큰 추억거리는 없었다. 대신 항상 달달한 술을 사러 갈 때면 알렉이 시끄럽게 딸과 아들이 어찌나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 입꼬리를 올리면서 광대뼈를 드러내며 한탄한 것을 기억했다.
“드낙.”
사냥꾼 게릭이 그의 옆에 앉았다.
“락손한테 들었다. 놈의 눈을 하나 맞췄다며?”
“왼쪽 눈이었어요. 정확하게 횃불빛에 들어왔죠. 거리는 열 걸음이 안되었고, 그 개새끼는 키텐에게 몸통을 부딪쳤어요.”
드낙은 말을 하면서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저 같은 마을 사람이 죽었는데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큰 노동력이 필요로 하는 일 때만 만나고, 뒤풀이 때 즐기는 정도였지만 얼굴을 알며 지낸 기간이 길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보아온 것이다.
거기에 특별한 추억이니, 그딴 것이 없어도 분노하기에 충분했다. 그 어떤 이해관계 상관없이 인간관계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고, 마음속에 어느새 스며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사냥꾼 게릭은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드낙의 눈이 과거로 빠져든 것을 느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목장에 건초더미가 부족했을 때, 선뜻 도와주기도 했지.’
드낙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삶에 들어왔던 키텐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코가 시큰거렸고,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모닥불을 지피며 키텐과 아이들의 찢어발겨진 사체를 지키는 사이에 사람들이 대거 몰려왔다.
“으흐, 으흐흐! 흐흐흐흑! 메리야! 그랜트! 우리 막둥아!”
“막아! 누가 알렉을 데려온 거야!”
허우적거리는 알렉과 함께 넘어진 마을 남자들이 허둥지둥 일어나는 사이에 이를 악문 알렉이 현장으로 뛰어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모닥불이 불똥이 튀었다. 드낙도 서둘러 일어났지만 알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악, 아아아아아악!!!”
그가 발악을 했다. 목뼈가 덜렁거리는 장녀의 머리를 잡고 오열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 이들이 너도나도 몸을 돌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낙은 기어코 눈물을 흘려냈다.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 것이 마음을 떠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10살이 채 되지 못했고, 〈애송이〉라고 놀림당하며 일을 배우지도 못한 나이였다. 빛처럼 행복한 시간만 있었을 것이다.
천으로 시체 하나하나를 감싸고, 조심스럽게 옮겼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형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키텐은 목뼈를 바로하고 들것에 실려갔다.
피범벅이 된 드낙은 눈이 퀭 한 채 아침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곡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전에 드낙은 사냥꾼 게릭을 찾았다. 서슬퍼런 눈을 하고 있는 드낙을 보며 게릭이 말했다.
“놈을 잡으려고?”
“눈 하나 화살에 꿰인 늑대 새끼 못 잡은 놈이 무슨 출세를 하고, 칼밥을 먹고 살겠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애꾸눈 늑대 하나 잡지 못한 채 사냥꾼으로 활동하면 돌을 맞을 거다.”
준비를 하고, 바로 마을 밖을 나섰다. 너도나도 동참하려고 했지만 게릭은 악귀 같은 눈으로 쏘아붙였다.
“숲에서 발소리를 낼 것들은 꺼져!”
“드낙은 그게 가능하다고?”
“그나마 나랑 보조를 맞춘 〈애송이〉다.”
드낙의 표정도 아주 딱딱했기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락손은 알렉과 그의 아내와 함께 있는 와중이었다.
추적의 시작은 역시 피가 가장 많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낮에 보니 확실하게 알겠군.”
게릭이 주위를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