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 <-- 사냥 대회 -->
드낙은 적당한 곳에 안전거리를 위해서 밧줄과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줄을 만들어서 치기 시작했다. 모든 곳에 할 수는 없었고, 띄엄띄엄 설치하는 것에 족해야 했다.
사냥꾼 게릭은 군말 없이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서 아예 전면으로 나섰다.
“늑대들이 깜짝깜짝 놀라겠어.”
“늑대 방지책으로 쓸만한가요?”
“나쁘진 않지. 놈들은 소음에 민감하니까. 하지만 며칠은 못 갈 거야. 영악하거든. 금방 익숙해지지.”
그건 의외였다. 학습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의 행성 지배가 이루어진 현대 지구에서 살았던 드낙에게 이런 불안감은 처음이었고, 늑대의 똑똑함은 생각 외로 쫄깃하게 다가와서 마음을 쿡하고 찔렀다.
“토끼다.”
사냥꾼 게릭의 말에 드낙의 고개가 돌아갔다. 멀뚱멀뚱 자신들을 보고 있는 녀석은 때깔도 참 좋았다. 그러더니 팽하고 사라져버렸다. 두 사람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사람을 먼저 봤으니 저렇게 여유를 부릴만했다.
“자신만만한 토끼네.”
“누가 알아요? 저 토끼 잡겠다고 마을 사람 몇 명이 농락당했을지.”
그 말에 게릭이 폐에 공기가 들어간 것처럼 웃어제꼈다. 담담하면서도 마을 사람들을 놀릿감으로 만들어버리는 드낙의 농담은 질이 나빴지만 그만큼 웃겼다.
“우리도 한 방 당했군.”
“흐흐흐.”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사냥 성공률은 낮아지겠지만 늑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사냥꾼 게릭이 그것을 크게 말했고, 드낙 또한 인정하는 바였다. 드낙은 늑대를 그리 위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냥꾼 게릭의 반응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었다.
‘함정을 놓는 곳도 알아냈다.’
그저 잘 숨길 수 있는 곳에 놓으면 헛물만 배운 놈이었다. 사냥꾼 게릭은 늑대가 지나가기 좋은 길을 알았다. 일부러 일을 크게 벌려서 게릭의 노하우를 빼앗아 먹은 것이다.
별일 없다고 여겼지만 숲에서 빠져나온 드낙과 게릭은 초조한 기색의 락손과 마을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락손.”
게릭은 걸음을 빨리했다. 보폭에서 차이가 있었기에 드낙은 조금 뛰어야했다.
“무슨 일은. 늑대에 대해서 생각을 했는데, 내가 성급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필요한 처치는 했어. 제법 깊숙한 곳에 함정을 팠고, 중간 지점에는 소리 나는 밧줄을 많이도 설치했지.”
“그걸로 효과가 있을까?”
“어제는 그렇게 해야 한다더니 무슨 소리야?”
락손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실제로 그랬다. 막상 1개월을 준비한 사냥 대회인데 엎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게릭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은 뒤늦은 후회를 불러일으켰다.
“아무래도 일찍 끝내야겠어. 큰 종을 울려!”
의자에서 편히 쉬고 있던 비참가자인 대장장이 말룩산이 일부러 끙끙 소리를 내며 늦은 오후,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은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종을 곤봉으로 후려쳤다.
두웅-! 두웅! 두웅-! 두웅!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생각보다 빠른 종료였다. 드낙은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지체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락손에게 전해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해질녘까지 한다며!”
허탕을 치며 가장 먼저 온 무리가 신경질을 냈다. 그들은 특히나 〈약삭빠른 하얀 토끼〉에 대해서 크게 욕을하며 신경질을 냈다.
“개놈의 토끼새끼. 멀뚱하게 쳐다보는 꼬라지하고는!”
“가만히 있는 토끼도 못 맞추고!”
“젠장할, 활이 구려서 그래.”
“네가 그 토끼를 잘 몰았어도 너무 거리가 멀었어.”
“그 놈의 남탓.”
락손은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끄럽고, 안으로 들어가서 술이나 해. 한 마리도 못 잡다니! 크흐흐흘!”
사냥꾼 게릭은 드낙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 별 무리 없이 끝나는 분위기네.”
속속들이 도착하는 이들을 보며 게릭이 긴장을 풀었다.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괜한 불안감이었다. 하기사 아주 깊이 들어갔을 때나 보았던 마브로스 리꼬였다. 그렇게 깊이 들어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끌시끌한 사이에 단상 위에 올라선 락손은 각각의 무리가 얻어낸 사냥감들을 일일이 양피지에 적었고, 술 한 잔이 돌아가는 사이에 집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무 패던 부에릭이 사냥왕이 되었다!”
락손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경악했다.
순박하기 그지없게 생긴 부에릭이 양팔을 번쩍 올렸다. 두툼하고 착해 보이는 턱살이 접혀졌다.
“우헤헤헤헤!”
상대하면 평범한 부에릭이었지만 웃음소리가 바보 같아서 항상 조롱거리가 되곤 했는데, 흥이 나는지 단번에 단상으로 올라와서 크게 웃었다. 드낙은 그 웃음소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또한 그는 술이 매우 약해서 벌써 얼굴이 새빨게져 있었다. 한 잔에 얼굴이 당근처럼 물들었다.
“야, 이 새끼들아! 활도 못 쏘는 게 무슨 남자냐! 고추 떼라!”
상금 은화 3닢은 제법 질이 좋은 가죽주머니를 통해서 그 팔목에 묶어졌다.
그 뒤로는 당연히 잔치였다. 락손뿐만 아니라 여유가 되는 이들이 술과 식료품을 제공했고, 요리는 시간 여유가 있는 여자들이 맡았다.
드낙은 그곳에서 재미나게 술을 마셨다. 그는 자신이 마을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고 다녔다.
“그 줄, 네가 한 거였어?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고!”
어떤 이는 까진 팔뚝을 보여주며 드낙의 머리를 헝클어대었다.
“소리에 깜짝 놀랐다니까. 그런 건 왜 설치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뛰어났다. 늑대를 도망치게 만들기보다는 사람을 놀래키거나 넘어뜨려서 돌아가게 만들었다.
‘결국 깊은 숲에 들어간 사람이 없으니, 다 잘 된 거지. 늑대들도 조용했고.’
늦은 저녁에서야 목장으로 세 부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갔다.
“쉬세요!”
“너도 오늘 고생했다!”
드낙은 소금으로 입을 헹구고, 대충 세수를 한 다음에 잠에 빠져들었다.
쾅쾅쾅!
“할다낙! 세르나악! 드낙!”
쾅쾅!
“빨리 나와 봐!”
소란에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나무로 닫힌 창문의 틈으로 횃불의 주홍빛이 보였다.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입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가죽 갑옷까지 챙겨 입고, 숏소드와 대거를 허리에 찼다. 그리고 단궁을 어깨에 메고, 화살통은 허벅지에 걸었다. 화살은 고무링에 적당히 조여져서 달려도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
무장을 한 채 마지막으로 내려갔기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드낙에게로 보였다.
횃불부터 농기구나 창까지 쥐고 있는 이들이 다섯이나 몰려왔다. 할다낙과 세르낙은 속옷 바람이었다. 그 차이 덕분에 드낙을 보면서 마을사람이 입을 열었다.
“알렉의 애들이 없어졌어. 아내는 알렉이 데리고 있는 줄 알았고, 알렉은 아내가 데리고 있는 줄 알았데. 두 사람 모두 잠을 자다가 불현듯 벌떡 일어났다고. 워낙 취해있어서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야.”
"그 말괄량이와 장난꾸러기가 조용하다는 것을 말이지."
“마을은 다 뒤졌어요?”
“마을 안에는 없어.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다녔는데 안 나왔고, 있었다면 잔치를 벌일 때 있어야지.”
멀리서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메-라고 뒤섞인 소리였다.
“락손은요?”
“마을 입구에 있어. 널 급하게 찾더라고. 빨리 가봐.”
드낙이 내달렸다.
마을의 풍경은 축제가 벌어지는 것처럼 주홍빛의 횃불 빛으로 가득했다. 곳곳에서 메리라던가 그랜트 혹은 톰미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을이 난리가 났는데 잠을 자고 있어?”
자신이 개최한 대회에서 애가 셋이나 휘말렸다. 애를 소모품 하는 세상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것은 곧 아이는 〈재산〉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마을이 난리가 난 것이 당연했다. 큰 이슈였거니와 그들 가족은 돈독함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안 된다.'
락손으로서는 큰 사고가 나지 않아야했다.
“목장은 멀리 있어서요. 숲으로 가시는 거예요?"
락손을 비롯해서 제법 근육이 다부진 장정들이 열 명이나 모여있었다. 그 무리에는 사냥꾼 게릭도 끼어있었다.
“아직 마뉴엘이 오지 않았어.”
“그 지각쟁이 새끼가.”
마을 남자들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알렉은 술을 가장 맛깔나게 만들며 만들어 달라는 대로 만들어주는 노하우의 최강 주조인이었다. 단 것부터 시작해서 독주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었고, 다양하고 복합적인 맛을 내기에 마을의 보물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나 애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성격도 호인이라 마을 사람들 중에 그를 싫어하는 자가 없었고, 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마뉴엘이 올 때까지 기덴이랑 빈니가 여기에 있다가 같이 수색에 나서! 빨리 가야해.”
창에 횃불을 둘둘 말아서 고정하고, 농기구나 곤봉을 쥔 마을 남자들은 둘로 쪼개졌다.
“드낙! 너는 어떻게 할 거냐?”
드낙은 잠깐 고민했다. 숲에서의 이동은 사냥꾼 게릭을 따라가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의 효율을 내지는 못했다.
“락손, 제가 앞장 설께요. 사냥꾼 게릭과 좀 다녀서 이 근방은 저도 잘 알아요.”
“큰 소리는! 빨리 앞장서.”
서둘러 숲으로 들어갔다.
“메리이이이!!!”
“그랜트! 어서 나와, 이 장난꾸러기 녀석아!!!”
“톰미!”
드낙은 어느새 소리를 내며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카이야에게 소리쳤다.
“급해! 아이들을 찾아줘. 나보다 작은 녀석 말이야!”
몇 번이나 말하고 손으로 형태를 만들기도 했다. 카이야가 날아올랐다.
“까마귀가 말을 잘 알아듣네.”
“똑똑하거든요.”
“영악한 거겠지. 난 까마귀가 싫어.”
이글거리는 횃불을 앞세우며 다섯 명이 움직였다. 어두컴컴한 숲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횃불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에 의해서 더욱 어둡게 보였다.
드낙은 일부러 횃불의 앞에서 움직였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둠의 윤곽선이라도 제대로 보기 위함이었다.
“걔들이 숲에 들어갔을까요?”
“말괄량이로 유명한 메리고, 그 동생은 말할 것도 없지.”
사냥 대회로 마을이 들썩였다. 당연히 자기들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드낙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앞으로 움직였다. 숲길은 어두컴컴해서 걷기 힘들었지만 몸체를 조금 낮춘 드낙은 헛디뎌도 금방 자세를 고칠 수 있었다.
구름이 걷어지면서 은빛의 달빛이 내리쬐었다.
거기서부터는 드낙은 속도를 높였다. 횃불 빛에 의지하는 마을 사람들은 따라오는 것에도 급급했다.
숲의 초입에는 그 무엇 하나 건질 수 없었다. 그때 드낙의 뒤에서 따라가던 남자가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이거!!!!”
드낙이 몸을 돌렸다. 강렬한 횃불빛에 눈이 부셨다. 눈살을 찌푸리며 한 곳에 사람이 몰렸다.
“리본이네.”
락손이 낚아채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을 했다.
“피 냄새야.”
드낙은 그것을 낚아채서 끝부터 조심스럽게 맡으면서 위로 올라갔다.
“늑대 냄새가 조금 나요.”
“이런, 제기랄!”
마을 남자 하나가 격분했다. 나무를 주먹으로 쿵하고 쳤다. 나뭇잎이 떨어졌다.
“하지만 피가 적은 것이 이상하네요.”
어찌 되었든 이곳을 수색하는 것이 먼저였다.
아이들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그곳에서부터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드낙은 자신이 설치한 소음 밧줄을 지났다.
쩔렁, 쩔렁!
몸이 둔한 남자 하나가 걸려서 소리가 났다. 밤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드낙은 피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피냄새 맡았어요?”
“그래.”
욕지거리를 내뱉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현장은 끔찍했다.
“욱.”
마을 남자 하나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며 맡아지는 농밀한 혈향에 그대로 속에 것을 게워냈다. 너무나도 짙었다. 자신의 코피를 먹는 것보다 수십 배는 지독한 혈향이었다.
그런 냄새 이토록 강렬하게 맡아본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것이라 생각하니 그대로 토한 것이다.
“읍. 구웨액!”
한 놈이 토를 하자 다른 놈도 몸을 돌렸다.
락손과 드낙은 거침없었다. 락손은 퇴역군인이었고, 드낙은 첫 실전을 다른 이들에 비해서 심하게 겪었고, 늑대 사냥과 해체에도 손을 뻗은 〈애송이〉였다.
“하아···”
락손이 탄식하며 횃불을 바닥으로 늘어뜨리며 걸어가며 확인했다. 드낙은 꼼꼼하게 시체를 확인하였다.
새하얀 손이 흙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끝에는 거칠게 뜯긴 흔적만 있을 뿐이었다. 연한 아이들의 뼈는 늑대의 턱힘과 이빨에 말 그대로 닭의 연골처럼 뜯겨졌을 것이다.
“드낙.”
이상한 것은 손부터 시작해서 팔뚝도 보였고, 어깨가 이빨에 의해서 박살 났지만 형체가 남아있었다는 것이었다. 머리도.
“드낙!”
“예?”
락손이 횃불을 크게 올려서 살육 현장을 넓게 보도록 만들었다.
“일어서서 봐봐.”
상체를 숙였던 것을 고쳐잡고 주위를 크게 훑었다.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