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 <-- 사냥 대회 -->
사냥 대회가 개최되기 보름 전부터 드낙은 〈사냥꾼 게릭〉과 함께 외출했다. 느긋한 이 세계는 분단위의 생활약속을 하지 않고, 시간 단위로 결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느렸다. 동시에 길었다.
보름 전부터 사냥꾼 게릭과 함께 행동하게 된 드낙은 모든 것을 게릭에게 맞춰야 했다. 그는 셀 수도 없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사냥꾼 가문이었고, 그들의 생활 패턴은 말 그대로 〈법칙〉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현대인에게는 긴 시간을 게릭의 모든 것에 맞춰줘야 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기상시간부터 시작해서 아침 메뉴와 사용하는 부츠의 무게 그리고 산길 중에 어느 곳을 먼저 가야 하는지까지 세세할 정도로 많았다.
‘썩을.’
군대 중에서도 별 거지 같은 악습이 많은 자대에 온 기분을 맛보며 드낙은 그 모든 것을 게릭과 맞췄다. 그는 13살짜리 〈애송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락손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락손은 게릭에게 드낙의 노동력을 제공했고, 게릭은 그것을 자신의 잣대로 사용할 뿐이었다.
“이 까마귀가 늑대를 찾아줬다고?”
“예. 카이야라고 해요. 똑똑한 놈이죠.”
“까마귀는 길들이기 어려운데. 새끼 때부터 키우는 사람도 종종 실패하지. 워낙 영악한 놈이라 때가 되면 알아서 독립해버리거든.”
자신의 손을 쪼고 날아오르는 놈을 보면서도 게릭은 무덤덤했다. 까마귀를 조련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똑똑하다는 것은 이용하기에 좋다는 뜻이었지만 반대로 영악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제법 되었다. 호흡도 얼추 맞으니 까마귀를 쫓아가자.”
일정한 보폭부터 숨는 습관까지 보름 동안 길을 들인 게릭이 드디어 드낙과 함께 첫 실전에 나섰다. 내일이 사냥 대회의 개최였는데, 벌서 숲 인근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활을 쏘는 마을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흥미를 보인 여자들도 있었으니 북적북적했다.
‘숲이 숲이 아닌 것 같네.’
드낙은 그리 생각하며 능숙하게 사냥꾼을 따라갔다. 두 사람은 몸체만 달랐지 움직임이 비슷했다.
‘사냥꾼의 움직임과 습관.’
사냥꾼 게릭은 진짜 사냥꾼이다. 정통의 사냥꾼 가문의 첫째였다. 게릭의 둘째와 셋째는 도시로 향하거나 농부가 되었다. 사냥꾼 가문의 혹독한 훈련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 것이다.
그만큼 사냥꾼 게릭의 움직임은 가치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 습관 하나하나마저 사냥꾼 가문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가령, 왜 수풀을 가면서 굳이 소음을 내는가? 숲은 생각보다 소음이 크고, 바람이 자주 불기에 숲바람으로 착각하기도 쉬웠다. 현대의 숲보다 빼곡하다 못해 대단히 생명력이 터져나가는 곳이 이곳의 숲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은 시각이 제법 제한되는 숲에서 가장 취약한 종족이었다. 당연히 수풀을 일부러라도 비집고 들어가며 몸을 지워야 했다.
‘귀한 노하우.’
사냥꾼 게릭은 그저 선대(先代)인 아버지가 했으니까 하는 것뿐이지만, 드낙은 그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까. 까깍.”
가까이 와서 작게 소리를 지르는 까마귀 카이야는 똑똑했다. 곡물가루를 나뭇잎을 뜯어 뒤집어서 오목하게 만든 곳에 부어주는 사이에 사냥꾼 게릭은 슬금슬금 미리 움직였다. 먼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늑대가 세 마리였다. 덩치도 크고, 별다른 천적이 없는 이 근방에서는 보기 힘든 숫자였다.
‘요새 드낙이 1마리씩 잡았으니 뭉쳐 다니기 시작한 것이겠지.’
짐승이라고 골이 비고 본성으로 점철된 멍청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존전략이 확실하게 잡혀있어야 했다. 멍청한 놈은 살아남지 못한다.
생존전략이 부실한 종은 죽어갈 뿐이었다.
“숫자가 꽤 되네요.”
작게 중얼거리는 드낙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은 게릭이 뒤를 훔쳐보며 살금살금 빠졌다. 그때, 숲바람이 바뀌며 그들을 스치며 늑대에게 불어갔다. 소스라치게 놀란 게릭이 활을 빼어들었다.
“하나, 둘, 셋.”
드낙과 게릭의 화살이 코를 킁킁거리는 늑대들에게 틀어박혔다. 한 대는 다리의 두툼한 윗부분에 박혔고, 한 대는 거리 계산을 잘못했는지 발에 박혔다. 운이 나빴다면 빗나갔을 것이다.
“컹! 컹커!!!”
늑대들이 좌우로 갈려졌다. 다리에 맞은 놈은 절뚝거렸다. 게릭은 느린 놈의 목에 정확하게 화살을 쏘아 박아 넣었다.
“깨깽!!!”
그 사이에 다른 늑대가 양옆에서 뛰어들었다. 다리를 쏘지 않았다면 전방에서 이리저리 휘저으며 시선을 끌었을 늑대가 아쉽게 빨리 목에 화살이 박혔기 때문에 기습이랄 것도 없었다.
“핫!”
드낙은 고블린과의 실전 이후로 부쩍 자신감이 커져있었다. 거침없이 뻗어나가서 상체를 옆으로 크게 기울여서 늑대의 머리를 피하면서 그대로 갈비뼈에 대거를 박아 넣고, 지나갔다. 늑대의 날카로운 발톱이 드낙의 볼을 스쳤다.
뿌드득! 촤악!
고통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휘유.”
게릭은 두툼한 멧돼지 가죽을 몇 겹이나 한 팔토시에 늑대의 어금니를 놓고, 그대로 밀어 넘어뜨린 상태로 드낙의 늑대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며 휘파람을 불렀다.
찌직!
게릭은 단검으로 배를 갈라내 내장을 뜯어내자 심장이 딸려서 나왔다. 헐떡거리는 늑대가 그대로 수초 내로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드낙은 늑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한 번 더 칼질을 해야 했다.
갈비뼈를 관통하고 쭉 찢으며 지나갔지만 내장에 닿지 못했다. 갈비뼈 때문이었다.
“그 토시는 언제 하셨어요?”
“늑대놈들이 자주 나오는 곳에서는 멧돼지 토시가 최고지. 무려 4겹짜리라고.”
게릭이 큰소리쳤다. 그리고 목이 관통당해서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죽일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늑대 또한 마무리를 했다. 화살은 총알과는 달랐다. 목에 박힌다고 해서 단번에 늑대가 죽지 않았다.
기도가 막혔을 뿐이었다. 게릭은 늑대의 눈에 손을 얹고, 그대로 단검으로 멱을 땄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섬뜩했다.
지독한 생명의 짧은 3초도 안 되는 순간의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무덤덤했다. 고블린은 이것보다 3배는 더 했다. 난전은 순간적이었고, 일주일도 안 되는 〈고블린 토벌〉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상황은 가끔씩 꿈으로도 꿀 정도로 드낙의 머리를 강하게 강타한 사건이기도 했다.
내장을 그 자리에서 도려냈다. 게릭은 혼자가 아니었고, 드낙이 있었다. 드낙은 망을 봤다. 도축 실력이 게릭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게릭은 능숙하게 늑대의 꼬리를 사타구니 사이로 넣어 다리에 말았다. 배설물이 밑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배설물과 피를 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피냄새는 항상 좋지 않다.
푹! 푹! 콸콸!
나무 밑동에 단검집을 두 번 찌르고, 물을 부어서 진흙을 만들어 피가 묻은 곳과 늑대의 몸에도 묻혔다.
“다른 늑대가 몰려오기 전에 가자. 세 마리씩 뭉쳐있는 것을 보니 제법 독이 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죠?”
현대인의 감성과 이성이 많은 드낙의 물음에 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며 사냥꾼 게릭이 말했다.
“무슨 소리긴. 사냥 대회는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늑대들을 너무 자극했어."
“제가 늑대를 잡아서인가요?”
“한 마리씩 잡았는데, 그게 인간 짓이라고 어떻게 알아? 줄어드는 늑대와 맞물려서 인간들이 숲으로 자꾸 들어오니 그게 겹친 거겠지.”
드낙은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늑대에게 겁을 먹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작 늑대 때문에 사냥 대회를 중지하다니요?”
“목장일을 한 녀석이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 누구보다 늑대한테 털리던 곳이 목장 아니었냐?”
신경질을 부린 게릭은 입을 닫았다. 그제서야 드낙도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다. 매일 같이 1마리씩 죽인 늑대와 인간들의 소란. 이것이 하나 되어서 늑대들을 흥분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늑대다.
허둥지둥 돌아가자 게릭은 늑대 세 마리를 그대로 드낙의 어깨에 올렸다.
“으그극.”
피와 배설물이 안 빠졌기에 무게가 상당했다. 중형견은 우습게 보는 늑대였기에 쌀 세 포대는 짊어진 듯했다. 내장이 모조리 긁혔음에도 그 정도였다. 드낙은 그대로 늑대를 땅에 팽개쳤다.
“난 락손에게 갈 거다. 너는 해체 작업을 하고, 큰 놈 하나는 네가 가지고, 나머지 두 놈은 내 집 앞에 두어라.”
“예.”
게릭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고, 드낙은 짐수레 하나를 빌렸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었고, 뒷다리 하나가 그 자리에서 뜯겨졌다.
“잘 쓰라고.”
대충 누더기 하나를 수레에 두고, 늑대 세 마리를 옮겼다. 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목장에는 오직 3명만 있었는데, 아버지인 할다낙과 장남 세르낙 그리고 드낙 자신이었다.
꼬리를 잘라 배설물을 빼고, 그다음에 머리를 잘라 피를 뺐다. 이대로 가져다줘도 되지만 해체 작업까지 꼼꼼하게 해주었다.
‘막내 생활 한 번 더 한다고 치지, 뭐.’
군대에서 한 번, 사회에서 이직을 3번 했던 박호훈이었다. 그는 드낙의 몸에 있었지만 누구보다 막내 생활을 잘 할 줄 알았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늑대 가죽 안에 해체한 고기를 넣고, 그대로 배달했다.
‘대회가 내일 바로 엎어질까?’
락손이 오랫동안 고심한 것인데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퇴역군인이었고 제법 고집이 있었다. 문제는 게릭이 상당히 늑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식간에 몰려다녀서 그런 건가?’
드낙은 잘 몰랐다. 일찍 잠이 든 드낙에게 사냥꾼 게릭은 새벽이 오기도 전에 찾아왔다.
“무슨 일이세요?”
하품을 하며 드낙이 한쪽 눈을 뜨지 못한 채 말했다. 어제의 일로 노곤함이 남아있었다.
“사냥 대회가 이대로 시작될 것 같다. 락손은 너랑 나랑 늑대를 잘 해보라고 하더라.”
“늑대가 다섯 마리씩 뭉쳐 다니면 어쩌고요?”
게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하나 빠져나갈 자신이 있어 보였다. 사냥의 실패는 인간 사냥꾼도 제법 자주 겪는 것이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드낙은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은화를 받아놓은 상태라 거절하기도 뭣했다.
“그래도 계획은 있어야죠.”
“함정이 그나마 먹힐 것 같은데. 사람이 보기 드문 곳까지 나가야 할 거다.”
그리 말하더니 빨리 나올 준비를 하라고 재촉했다. 드낙은 별 수 없이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가죽 갑옷을 착용했다. 활을 메고, 대거를 허리춤에 찼다. 대거와 함께 숏소드도 혁대에 걸었다.
“숏소드? 숲에서는 걸리적거릴지도 모를 텐데.”
“익숙한 것이라서요.”
게릭은 두말하지 않았다. 이미 마을 입구에는 가죽 포대 속에 함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어깨에 짊어매고 두 사람은 숲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갈 사람은 없겠죠?”
“모르지. 10분 더 걷자.”
게릭은 사람들이 함정을 전혀 못 알아차리고 걸릴 거라고 말하며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드낙은 내키지 않았지만 뜻에 따랐다. 그러던 중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 기분 좋다.’
그런 생각을 하는 드낙은 코를 찌를 듯한 노린내를 맡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몸을 숙이고 가죽 포대를 바닥에 놓은 게릭의 움직임에 따라 했다.
“······”
“······”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바람 때문인지 짐승 때문인지 몰랐다. 곳곳에서 들려왔다.
드낙은 조금 몸을 높여 주위를 훑어보았다.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검은 털〉이 보였다. 마치 고양이가 화를 내듯이 잔뜩 곤두선 검은 털은 수풀로 삐쭉 튀어나와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덩치가 상당했다. 우거진 숲에 있는 무성한 수풀은 인간이 몸을 숨기기에도 좋았는데, 그것을 뚫고 검은 털이 보이는 것이다. 대형견보다도 더 컸다.
‘작은 곰 같은데.’
몸길이는 이미 사람만 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바람이 두 사람을 지켜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놈은 어슬렁거리면서 나무에 발톱을 긁어대고, 배설물을 남기기도 했다.
“뭐죠?”
“마브로스 리꼬. 검은 늑대다.”
〈검은 늑대(Mavros lyko)〉. 마브로스 지방에서 활개를 쳤던 최강의 악명을 떨친 식인 늑대인 리꼬 그것이 놈의 지칭명사였다. 검은 늑대 혹은 마브로스 리꼬라고 불렀다.
“이런 산골에 그런 무식한 놈이 왜 있는 거죠?”
제법 설명을 들은 드낙이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너무 깊게 들어온 것일지도.”
두 사람은 서둘러 함정을 곳곳에 설치하며 길게 이동해서 하산했다. 이른 점심에 내려올 수 있었고, 마을의 중앙에서는 〈사냥 대회〉를 개최하는 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락손은 고블린을 잡을 힘을 기르자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고, 고블린의 시체를 본 남자든지 용병단의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1등한 사람에게는 은화 세 닢을 드리겠소!”
“휘유우우우!”
오랜만의 축제였다. 떠들썩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낙은 기뻐할 수 없었다. 무언가 뻥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검은 털.’
왠지 심상치가 않았다. 크게 깊이 들어갔다고 해도 그런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가 보이는 것은 이상했다.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연달아서 사건이 터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