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 <-- 사냥 대회 -->
“이 마을은 너무 취약해. 청년회라고 해도 대부분 상업이나 일터에 묶여있는 것이 전부지. 자경단이라고도 할 수 없어. 망루 때, 설 사람이 없어서 네가 섰잖아.”
“그 덕에 돈 좀 벌었죠.”
무려 은화 1닢을 줬다. 은화 1닢이면 한 달을 평범하게 일해서 얻을 수 있는 품삯이었다. 물론 현대처럼 12시간 10시간 일하지 않았다. 많이 해봤자 8시간이었다. 농노를 제외하고 다른 시민의 노동력에 대한 값은 상당했다.
그래서 더더욱 큰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이들은 용병이 되는지도 몰랐다. 근본 없는 것들이 돈벌기 좋은 것이 바로 칼밥먹고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드낙도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이기도 했다.
노후에 대한 생각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인 박호훈, 드낙의 생각이었다.
“걱정이지. 이대로는 안 돼.”
평화롭고, 이 마을에 대한 전권을 휘두를 수 있기에 이곳으로 온 락손이었다. 고블린이 나타난 이상 다음에도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낼 공산이 컸다. 한 번도 몬스터를 볼 수 없었던 마을과 고블린이 왔었던 마을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대저택에 제법 돈을 썼기 때문이었다. 제법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기도 했다. 마을의 모든 경제 행위에 락손의 손이 안 뻗친 곳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큰 리스크였다.
“사냥 대회를 개최할 생각이야.”
고블린에 대해서 두려워하더니 뜬금없는 소리였다.
“고블린을 막으려면 목책을 세우는 게 더 옳은 일 아닌가요?”
“그건 천천히 해도 돼. 안 그러면 품삯으로 돈이 나가니까. 청년회에서 순차적으로 노동력을 보태서 만들 생각이야.”
드낙은 또 하나를 물었다.
“저랑 사냥 대회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락손이 히죽하고 웃었다. 주름살이 가득했다.
“왜 없어? 바람잡이 할 놈이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사냥꾼 게릭이 바짝 기가 올라섰다고. 늑대를 하루에 한 마리는 잡아 온다며? 소문이 파다하던데. 흐흐.”
드낙은 〈까마귀 카이야(Kaiya)〉를 욕했다. 녀석이 굴린 스노우볼이 락손에게 전해진 것이다. 사냥 실력에 대한 것은 이미 물 건너 가버렸기에 주제를 바꾸었다.
“왜 하필 사냥 대회죠? 다른 훈련이나 뭐 그런 거 하면 안 되나요?”
락손은 고기를 썰어서 입에 넣었다. 질겅질겅 씹으면서 소스를 스푼으로 퍼서 입에 물었다. 포도주로 기름진 입을 헹구면서 넘겼다.
“그런 질문을 하면 영락없는 13살이야. 몬스터를 만난 게 고블린이라는 것이 전부였지?”
“예.”
“그것도 용병들과 함께 멱을 따버렸으니···”
락손은 혀를 끌끌 찼다. 보통 첫 실전에서 제대로 고블린 하나 잡는 병사는 드물다. 뒤에만 있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동료를 지키는 수준에 머문다.
생명체를 향해서 찌른다는 것은 쉬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죽하면 실전을 경험하기 힘든 〈성채 수비병(Citadel Guard)〉들은 매주 늑대든 사슴이든 뭐라도 사냥훈련을 하고, 매달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투를 찾아다닌다.
그만큼 실전은 병사들의 전투력을 결정짓는 최고의 기준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수준은 너처럼 그리 뛰어나지 못해. 난 사실 용병들에게 오줌을 지린 네가 바지춤을 쥔 채 마을로 돌아올 줄 알았다.”
“예? 아무리 그래도···”
락손은 손사래를 치면서 그런 변명을 일축시켰다.
“고블린과 마주 보았을 때, 그 고블린과 싸운다는 생각은 그리들지 않아. 몸집이 작아도 놈들은 펄쩍 펄쩍 뛰고, 소리를 아주 크게 지르거든.”
매우 날렵한 원숭이가 손에 돌칼을 쥐거나 돌창을 쥔 채 좌우를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뛴다면? 보통 사람은 그것을 후려팰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다. 워낙 빠른 것도 있었고, 허우적거리듯이 휘두르다가 그대로 잡아먹힌다.
“거기다가 고블린은 일단 숫자부터 많이 먹고 들어가. 좌우에서든 뭐든지 장난 아니지. 그리고 고블린이 가까이 오잖아? 덜컥 겁부터 나는 게 정상이야.”
으르렁거리는 중형견. 진돗개가 작정하고 다가오며 이빨을 내보였을 때, 머리가 새하얘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거기다가 뛰어든다면? 공격보다는 방어였다.
드낙은 고블린에게 얼굴이 감싸지도록 덮쳐진 용병을 생각했다. 작은 체구였지만 얼굴에 뛰어들어 달라붙은 고블린만으로도 뒤로 넘어졌다.
‘나라면?’
섬뜩할 것이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물론이고, 크게 다칠 거라는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하겠지.
“공포를 모르는 고블린들이지. 반면에 마을 사람들은 다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휩싸일 것이고, 고블린 몇 마리가 팔이 날아가건 찔리던 상관없이 안으로 뛰어들면 말 그대로 혼비백산할 거다.”
수업하던 와중에 말벌이 다섯 마리가 그대로 창문을 통해서 붕붕거리며 날아왔을 때의 상황처럼 번질 것이다.
‘그래도다.’
“3m짜리 장대를 들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거리를 길게 해서 고블린을 막는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놈은 25kg에 불과하다. 장대에서도 달릴 놈들이다. 바퀴벌레처럼 바닥을 빠르게 기어가는 재주도 있지. 훈련된 장창수도 애를 먹는 게 고블린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 말에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체중이 25kg? 폐광에서 벽을 타고 펄쩍 뛰던 것은 괜한 게 아니었다. 몸무게보다 악력이 더 강하니 당연한 것이었던 것이다.
여성의 악력이 평균 30kg다. 체중이 25kg이라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고블린을 상대로는 장창이 되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보통은 어떻게 고블린을 잡나요?”
“목책을 세워야지. 사실 목책보다 중요한 게 해자야. 썩은 물이라도 채워 넣는 게 좋지. 그러려면 〈외성벽〉을 따로 만들어야 하긴 해도···”
락손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드낙이 조율했다.
“목책과 해자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 위에서 장창으로 쑤시고?”
“장창보다는 투석이지. 화살은 마을 사람들이 전부 쓰면 얼마나 비쌀지 감당도 안 돼. 차근차근 준비해야지···”
락손이 정말 멀리까지 내다보나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가?’
몇 십 년을 그런 생각을 했으니, 남들보다 빠르게 판단이 순식간에 내려진 것이다.
“아! 아무튼 왜 사냥 대회를 여냐고요.”
“이 녀석이? 기분 나쁜 어투로 말을 하네?”
락손이 화를 내려고 하자 드낙이 냉큼 변명했다.
“그야···이해가 안 되니까요.”
“말 그대로야. 활을 쏠 줄 알면 고블린을 막는 것이 수월해. 어디 고블린뿐인가? 다른 몬스터도 제법 감당할 수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활 솜씨가 있어야겠지.”
“위험하지 않을까요?”
“장정들이 그렇게 숲에서 활개를 치는데 위험하겠느냐? 야생 동물이건 몬스터건 도망갈 것이다. 이 근방엔 중형 몬스터도 없으니 무리가 없다.”
락손이 즉답했다. 그만큼 확신에 차 있었다. 아무래도 사전에 제법 공을 들인 듯했다. 하기야 한 달 뒤에나 드낙에게 말을 했다. 모든 것이 결정 났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싹이 보였지만 〈애송이〉였고, 그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결정 났다는 소리였다. 〈망루잡이〉 때도 그러했다.
완벽한 을(乙)이 바로 드낙이었다. 드낙 또한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어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뺨을 처맞고 어디가서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심지어 이 세상에는 〈어린이〉라는 단어가 없고 〈애송이〉라는 단어만 있었다.
어른의 미완성품. 그게 바로 어린이, 〈애송이〉였다.
애송이 중에서 몇 놈이 죽어나가던지 상관이 없었다. 그 실패 속에서 어른이 되는 것이니까. 4명 태어나고 2명이 질병으로 죽은 드낙의 집안만 봐도 쉽게 추정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냥 사냥만 하면 됩니까?”
락손은 고개를 저었다.
“사냥꾼 게릭과 함께 행동할 거다. 두 사람은 늑대를 쫓아내거나 사냥을 하며 〈사냥 대회〉 동안 늑대 놈들이 없도록 만들면 돼.”
“대회 상품이 뭐죠?”
“은화 세 닢.”
드낙의 눈이 커졌다. 락손은 손에서 은화를 튕겼다. 한 닢으로 만족하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이 뒤로는 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린놈이 늑대를 잡고 오면 더 크게 흥할 테고, 늑대만 쫓아내도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
일석이조였다. 그것을 순수하게 말해주는 까닭은 락손은 이미 드낙을 자신의 편으로 확정 지어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검은 산골 마을〉의 전투력을 높이는 것은 그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언젠가 이 마을을 떠난다. 이곳에서 드낙은 13년을 지루하게 살았지만 동시에 이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갔다.
제법 잡일을 하면서도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 금의환향해서 콧대를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향수가 생겨 돌아갔을 때 폐허가 되어있으면 안 되었다.
‘사냥꾼 게릭의 사냥 기술을 훔쳐볼 수도 있겠어.’
그 노하우를 얻고 싶은 마음도 절실했다. 이곳은 정보가 단절된 세상이었다. 작은 정보도 귀중하게 여겨서 자원을 투자해서 그것을 캐내도 얻는 게 없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적이 몇 번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은 나한테 큰 도움이 된다.’
알려주지 않아도 눈칫밥으로 얻어먹어야 했지만 그게 대수인가? 기회조차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 사냥꾼 게릭과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조금조금 있는 사냥꾼 게릭과 함께하는 일수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야죠. 사냥 대회는 언제부터인데요?”
“한 달 뒤에. 충분히 시간 들여서 연습도 제법하고 보내야지.”
길었다. 하지만 드낙은 해야 할 일이 제법 많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말을 마친 락손은 수업을 시작했다. 드낙은 하나의 비전을 더 배울 수 있었다. 락손은 드낙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은혜를 베풀어 드낙을 통제하려고 했고, 드낙은 거기에 어울려주었다.
망루잡이에서부터 시작된 기브 앤 테이크였다.
“오늘 배울 비전은 황소의 튀어오름이라는 뜻의 스티얼 휴펜이다.”
“예? 뭐요?”
드낙은 몇 번이나 발음을 주의 깊게 들었다. 스티얼 휴펜. 황소의 튀어오름.
“왜 비전은 이름이 다 기괴하죠?”
“틀리는 순간 그놈은 비전을 훔쳐배운 놈이기 때문이지.”
락손의 말에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덩쿨 나무숲〉에서 제법 오랫동안 복무를 하였지. 그곳은 지옥이었고, 기사들도 죽어가는 끔찍한 곳이었지.”
“이번에도 거기서 얻은 겁니까?”
락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모를 용병이 지니고 있던 비전서였다. 이미 망한 가문이더라. 비전서의 작성자는 메롱 홀그린(Merung HallGreen)이다.”
락손이 자세를 잡았다. 그는 숏소드 대신에 롱소드를 들었다. 그리고 상단을 취하였다. 머리 위로 팔이 올라가며 검을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렸고, 당장이라도 찌를 것 같았다.
“황소의 뿔 같지?”
“예.”
드낙이 매우 집중한 채로 대답했다.
“이 자세가 기본이고, 찌르기와 견제에 용이하다. 몇 번 찌르다가 비전을 쓰는 것이지.”
훅훅 후!
찔러 내리기 때문에 하단에 취약했지만 상대의 머리와 목을 겨누고 있어서 하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기묘하게 머리를 찔릴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롱소드 이상의 리치가 되는 무기 때만 사용할 것이고, 당연히 적이 자신보다 리치가 길면 사용하지 못하는 비전이다. 이것은 상대의 얼굴을 겨누는 것이 중요하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전은 상대의 목을 찌르고 시작한다.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상대는 달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에게 찌른 검을 위로 올리며 손을 중단으로 옮기면 일반적인 중단세로 변한다.”
허수아비의 어깨를 찌른 검. 락손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손을 옮기자 당연히 검이 위로 움직이며 중단세를 했다.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맹점이 있었다.
“찔렀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상대가 먼저 검을 휘두를 텐데요.”
“이미 중단세니 막을 수 있다.”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야 상대의 목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락손은 그 물음을 지워주었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간다. 이어지면서 검 손잡이의 끝으로 턱이나 목젖을 타격하는 것이 비전의 끝이다. 이어지는 검격으로 마무리를 한다. 아래턱을 맞거나 목젖이 뭉툭한 검손잡이의 끝에 가격 당하면 경직이 일어나니.”
그제서야 드낙이 아하!거리면서 무릎을 쳤다. 훌륭한 비전이었다. 상대를 무력화 하기에도 좋았다.
아쉬운 점은 롱소드 이상으로 해야 했기에 현재 드낙의 나이로는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연격이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이다. 한 달 동안 잘 닦아라.”
“예!”
드낙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 락손이 아주 호되게 드낙을 굴러대었지만 그는 그것조차도 수련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