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화 (8/1,239)

0008 <-- 사냥 대회 -->

눈을 떴다. 계속 침전하던 그는 가라앉는 것을 멈추고 떨어지는 살덩이와 뼈 그리고 피를 바라보았다. 이 검은 세상에서 떨어져내리는 붉은 것은 그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니, 그제서야 희망이 보이는가? 우습다.]

눈을 다시 감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피냄새가 맡아졌다. 코가 벌름거렸다.

킁, 킁킁!

냄새로 떨어져내리는 시체와 피와 뼈를 탐할 정도로 거친 콧소리였다. 경박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바짝 마른 어둠 속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산골 마을〉. 반짝 빛났던 광산 마을이었던 곳이다. 그 덕에 광산에서 캐낸 쓸모없는 흙들이 밖으로 퍼내져서 산이 검게 변해있는 곳이기도 했다.

무려 태어나서 13년 동안 몬스터 한 마리 구경할 수 없는 이 몬스터 사회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깡촌 중의 깡촌인 이곳에서 태어난 드낙은 전생자 박호훈이었다.

향신료가 그나마 잘 퍼져 있고, 다양한 향이 나는 채소와 야채가 발전된 곳이어서 굶어 죽지는 않을 수 있었던 드낙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이 열악한 문화 속에서 검술이라는 스포츠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벌써 1달이 흘렀다. 여전히 검은 산골 마을은 평화로웠다. 고블린을 직접 본 마을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들의 시체를 구경하러 폐광으로 들어간 청년회의 일원은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앞으로 족히 5년간 이 마을의 안줏거리가 될 〈고블린 토벌 사건〉은 그렇게 계속 이야기되고 있었다. 한정된 정보라서 말 그대로 껌처럼 씹고 껌이 녹아도 씹을 기세였다.

드낙은 이른 새벽에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가죽끈을 묶었다. 멧돼지의 가죽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얇고, 편의성이 좋으며 신축성이 제법 있는 여우의 가죽이었다.

‘첫 번째 실전.’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순간은 짧았고, 고직 1주일에 불과했지만 드낙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경험 덩어리를 선사해주었다.

그때 이후로 드낙의 모든 전투 교리가 변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멍청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했던 것은 바로 〈궁술〉 즉, 원거리 기술에 대한 빠른 포기를 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였다.

〈쇠주머니 용병단〉의 〈용병단장 조세(Jose)〉

‘고블린이 오기 전에 일곱을 고꾸라뜨렸다.’

팔, 어깨 따위에 화살이 꽂혀도 끝장이었다. 허벅지도 사실상은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기에 충분했다. 팔뚝에 길쭉한 화살이 박히고도 싸울 수 있는 전사는 많지 않았다.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통제를 씹어먹지 않는 이상 전투 속행이 불가능한 것이다.

‘진짜 개멍청했다. 나는.’

현대인으로 살면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총〉을 알고 있음에도 원거리를 얕잡고, 재능이 없다고 여겨 포기했다.

마당이 아니라 뒷마당으로 향했다. 목장을 운영하면서 사실상 마당은 끝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뒷마당은 텃밭과 함께 있었는데, 75미터 멀리에 과녘판이 존재했다.

“끼악!”

“일찍도 오네. 배가 그렇게 고팠냐?”

드낙은 왼쪽 어깨에 내려앉은 〈까마귀 카이야(Kaiya)〉를 보며 웃어 보였다. 고블린의 조련술은 생각보다 효과가 안 좋았다. 늑대를 조련시키려다 실패해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여우나 까마귀 수준밖에 못한다는 뜻이지.’

아쉬움이 컸다. 그럴바에야 〈고블린을 잡는 화살〉인 조세의 활 솜씨를 얻을 것을 그랬다. 그날의 꿈을 드낙은 〈전생자의 꿈〉이라고 불렀다. 전생자인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힘이라고 규정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만 겪을 리가 없지.’

고블린을 죽여서 얻은 것이기에 레벨업 시스템으로 볼 수 있었지만 신체능력이 발전했다던가 그런 것은 전혀 없었기에 레벨업이라고 할 수 없었다.

드낙은 여전히 키가 큰 13세의 육체를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까악!”

카이야가 소리를 지르자 드낙은 냉큼 과일을 하나 주머니에서 꺼내서 주었다. 부리로 쿡 박아서 그대로 날개를 펼쳐서 날아가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드낙은 75미터 과녁판에 활을 100번 쏘았다. 거리 감각이 부족하면 연습으로 확실하게 거리마다 그 감각을 익히고, 숙련되면 그만이었다. 즐길 거리가 없는 이곳에서는 활 쏘기마저도 재밌었다.

하루 100발. 한 달이면 3천 발. 1년이면 3만 6천 발.

새벽 훈련은 활을 쏘는 것으로 시작했고, 활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드낙은 더 이상 목장일을 돕지도 않았고, 다른 마을 사람들의 잡일도 하지 않았다. 숲에서 훌륭한 척후병인 카이야를 두면서부터 드낙은 숲으로 향했다.

사냥꾼 게릭 때문에 숲에서도 멀리 가야 했다. 괜히 그의 일터에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았고, 분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게릭과 13살 애새끼가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대로를 운전하는 초년생 사회인이 타고 있는 중고차의 옆에 나타난 람보르기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살고 싶다면 도망쳐야 했다.

특히나 시골 인심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짜 시골에서 13년을 산 드낙이 친절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X목의 성지가 현실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골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연결이 안 된 곳이 없지.’

그렇기에 자연스레 모두 이러니저러니 연결되어있고, 일 하나 있으면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 했다. 당연히 그 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떠나던가 굶어죽던가 차별받아서 자살하는가의 선택지가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사냥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름은 아주 거창한 〈문화의 오른발, 야만의 왼발〉이라는 고블린의 검은 문을 통과하고 얻은 동물 조련을 연습하려다가 어느새 그것이 돈벌이로 전락한 경우였다.

돈을 안 버는 계획이 돈을 버는 계획이 된 것이다.

‘은밀하게.’

드낙은 사냥이라는 것을 까마귀 카이야와 함께하면서 또 많은 경험을 얻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숲에서의 시야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감각이라는 것이었고, 후각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청각은 숲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짐승 하나 살지 않는 숲을 빙자한 공원만 가본 드낙도 놀란 점이었다. 숲에 들어가면 정말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새가 지저귀다라는 평화로운 문장은 쓸 수 없었다. 새가 우렁차게 짖어대었다가 맞았다.

곤충들의 소리도 만만찮았다. 숲은 그야말로 소음의 집장촌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청각은 그리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안 중요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소리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경험이지.’

드낙은 늑대를 조련하겠다는 마음으로 늑대를 다섯이나 잡아죽인 용맹한 애송이였다. 그럼에도 그것은 드낙의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에게나 대단하게 비칠 뿐이었고, 때때로 사냥꾼 게릭이 늑대 사냥을 갈 때 같이 가자고 권할 정도였다.

‘고블린을 얼마나 많이 잡아죽였는데.’

고블린을 죽이면 나타나는 기묘한 현상! 죽였을 때, 무궁무진한 자신감과 완벽한 몸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기괴한 현상이었다.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전투병기가 될 수 있었다. 드낙은 그것을 〈킬 더 배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것 또한 전생자의 힘일까?’

모를 일이었다.

파닥.

카이야가 내려앉아서 소리를 한 번 짧게 토했다. 사냥할 놈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드낙이 빠르게 다시 날아오른 카이야를 따라서 움직였다.

‘이 까마귀 놈은, 늑대밖에 안 찾네.’

야생 까마귀인 카이야는 늑대만 골라서 드낙에게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드낙이 늑대를 조련하려고 발악하고 다닌 적이 있기 때문인듯했다.

‘한 마리네.’

무리 사냥을 하는 늑대였지만 놈은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마리였다. 좋은 포인트로 움직이면서 드낙은 좌우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향했다. 늑대의 체취가 바람을 타고 잔뜩 맡아졌다.

고약했고, 자극적이라 코에서 콧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것을 흐르는 대로 두었다.

‘운 좋게 죽은 놈을 발견했구나.’

다리가 조금 부패된 사슴이었다. 내장 빼고는 먹을 부위가 제법 있어 보였기에 늑대는 그야말로 횡재를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잠깐 냄새에 홀려서 혼자서 움직였다가 얻어걸린 것이다.

죽은 사슴은 〈가시털 사슴〉이었다. 몸의 털이 가시처럼 굵고, 뾰족해서 먹기 힘든 놈이었다. 죽고 난 다음에 다리가 부패하긴 하지만 몸의 부패가 비정상적으로 느리다는 특징이 있었다.

물론 그래도 내장은 알짤없이 썩었을 것이다.

‘75걸음.’

드낙이 아직까지 제대로 명중하지 못하는 거리였다. 조금 더 좁혀야 했다. 먹을 것을 운반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늑대는 드낙의 움직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활을 빼어들고, 그대로 손에 화살을 세 대를 꺼냈다. 손가락마다 능숙하게 끼워져서 나왔다.

‘한 발에 명중한다는 건 힘드니까.’

그는 원거리 사격에 대해서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감이 없었으므로 세발을 쏠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냥을 하면서 화살 재료를 얻을 수 있었기에 여러 발을 쏘는데 아까움은 없었다.

핑! 핑! 핑!

단궁이었기에 속사포처럼 화살이 쏘아졌다. 쏘는 대로 맞았다.

“깨갱!! 꺼으흐어엉!”

늑대가 구슬프게 울었다. 드낙은 단숨에 달려들어서 목을 손으로 틀어잡고 그대로 멱을 따버렸다. 피가 주르르르 흘러내렸다.

“훅!”

숨 한 번 강하게 내쉬고 늑대를 챙기기 전에 화살을 회수했다. 화살촉에 피를 냉큼 닦고, 상태를 확인하였다. 아직 멀쩡했다. 촉이 부러지거나 균열이 난 곳도 없었고, 화살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은 혼자였기에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밧줄로 베어낸 곳을 묶어서 피가 잘 흐르지 않게 하고 그대로 늑대를 들쳐매어서 산을 내려갔다.

사슴의 시체가 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능숙한 움직임이었지만 드낙에게는 매번 긴장의 연속이었다.

‘카이야가 자꾸 늑대만 찾아내네.’

말이 통하는 듯하면서도 안 통하는 놈이었다. 드낙은 능숙하게 카이야가 들쳐 맨 어깨 위에서 폴짝 뛰면서 울어대자 과일을 하나 건네주었다.

점심 시간에 딱 맞춰서 사냥은 일찍 끝났다. 사실 더 이상의 사냥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늑대 한 마리면 보름 동안 락손에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도로가 험하고, 지형도 들쑥날쑥한 이런 세상이다. 신발의 내구도는 그만큼 빠르게 닳았기에 가죽이 항상 부족했다. 늑대의 털은 어느 곳에서나 환영이었다. 이빨은 또 어떻고? 마법사들이 좋아했다.

날렵한 가죽 갑옷을 선호하는 전사들은 여우보다는 늑대의 가죽을 선호하기도 했다. 여우 가죽은 폼이 안 났기 때문이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드낙의 가죽장비도 늑대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신발은 가벼운 게 좋아서 여우 가죽이었지만.

“늑대를 또 잡은 거야?”

목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만큼 좋은 게 없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항상 늑대 때문에 골머리를 썩혀야했기 때문이다.

“목장일은 어쩌고?”

야외의 작업대에서 피를 빼고 있던 드낙의 말에 세르낙이 대답했다.

“한 놈이 출산이 임박해서 지키고 있지.”

“지키고 있는 것으로는 안 보이는데.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쩌려고?”

가축 하나가 출산에 임박하면 그야말로 철야를 해야 하는 것이 목장이었다. 잘못하면 새끼도, 어미도 잃는 최악의 손해가 일어난다.

도축 작업을 완료했다. 내장은 못 먹었기에 버렸지만 심장이나 간은 요긴한 별미였다. 이곳에서는 먹을 것이 스트레스 해소의 큰 축을 담당했다.

‘간장이나 된장이 있으면 수육을 해 먹었을 텐데.’

먹을 줄만 알았지 할 줄은 몰랐다.

깔끔하게 팔 것은 팔고, 육포로 만들 것은 널고 모든 작업을 완료했을 때에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드낙이 허둥지둥 락손에게 향했다.

〈농노 말스〉가 언제나처럼 드낙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제법 늦게 왔네?”

“어. 수고해!”

드낙은 한 소리를 하면서 서둘러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농노 말스는 속으로 그를 욕했다.

락손은 한 달 동안 비전을 추가로 가르쳐주지는 않고, 대신에 〈막아내며, 되돌려잡기(Blockieren Zuruckfang)〉인 블록키렌 쥬크팡을 숙련하는데 집중지도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바리에이션이 너무 많은 비전이야.’

방패를 갑옷처럼 이용한다는 허를 찌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전이었고, 손목을 되돌려서 방패로 무기를 크게 옆으로 돌리는 사이에 적의 목을 찌르는 것이 비전의 요지였지만 말이 쉽지 그것을 현실에 도입하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다.

특히나 퇴역군인 락손은 비전에 대한 실전적인 경험을 모두 드낙에게 가르쳐주고 있었기에 그것을 몸에 체득시키는 것만으로도 밤이 찾아왔다.

횃불을 키고도 한 시간을 더 훈련에 매진한 드낙과 그것을 지도하는 락손 또한 땀으로 젖었다.

“저녁 먹고 가라.”

“예.”

락손의 집에 떡하니 있는 우물에서 냉수를 퍼서 그대로 끼얹었다.

“흐어어억!”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지만, 저녁 시간에 락손이 또 재미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그에게나 재미난 일이지 하루하루 쉼 없이 노력하는 드낙에게는 귀찮은 일이었다.

“고블린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이나 흘렀다. 망루에는 먼지가 끼고 넝쿨이 나기 시작했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