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 <-- 검은 산골 마을 -->
‘뭐야?’
자각몽은 처음이었다. 드낙은 자신이 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곳이 꿈인 것도 알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암흑뿐이었다.
그 암흑은 공포스러워야 했는데도, 공포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면이 강했다. 그런 마음이 든 드낙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성과 이성이 서로 너무 달라서 오는 답답함이 그를 옥죄었다.
몸은 안전하다고 말하는데, 머리는 아니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드낙은 인지하고 있었다.
‘긴장해라!’
긴장감이 없이 풀어진 몸을 가누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 아니야?’
주춤거리는 것도 잠시였다.
‘마법일 수 있잖아?’
하지만 그러기에는 드낙이라는 존재가 하찮았다. 산골 마을에서 출세를 꿈꾸는 놈일 뿐이었다. 당장 용병과 비교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스르르!
드낙의 귀가 쫑긋했다. 연기가 움직이는 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몸에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힘을 주면 간질간질 거렸다. 그래도 전투 준비를 엉성하게 했다. 자각몽이든 마법이든 일단은 이성적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
두 개의 움직이는 연기를 통해서 만들어낸 문이 나타났다. 그것은 명확한 형태가 아니었으며 말 그대로 연기의 기류와 움직임으로 시각적으로 〈문〉으로 보일 뿐이었다.
휘우우!
바람소리가 나며 문이 쩍하고 열리며 검은 연기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연기는 빠르게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활과 화살!
활시위가 알아서 당겨지며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순식간에 쏘아져서 허공을 지나며 한 줄기의 연기로 변했다.
또 하나의 문에서는 작은 체구에 굽은 등까지 시작해서 허접하기 그지없는 누더기를 펄럭이는 형상을 지닌 작은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펄쩍펄쩍 점프하며 폐광에서 달리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고블린이었지만 그것이 고블린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드낙은 두 개의 문을 확인했다. 다가가면 활과 화살의 연기나 고블린의 연기가 사라지고,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문의 너머가 활짝 열리고 거대한 어둠이 드낙을 삼킬 듯이 퍼져나갔다.
“헉!”
그 움직임에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지만 그대로 어둠이 그를 삼켰다. 동시에 드낙의 전신이 벌벌 떨렸다.
“크학.”
머리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피가 주륵 흘러내리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손으로 머리를 짚었지만 메말라 있었다. 환통(幻痛)이었다.
드낙은 고블린의 문도 확인했다. 어둠이 그를 뒤덮었다. 마찬가지로 통증이 느껴졌지만 피가 주륵 내리는 감각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것은 환각을 동반했다.
〈문화의 오른발, 야만의 왼발〉
‘아!’
까마귀, 매 같은 새부터 시작해서 늑대같은 날카로운 육식동물 그리고 멧돼지나 곰처럼 강력한 들짐승은 물론이고 돌고래까지 능숙하게 서로 다른 풍경에서 고블린은 그들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블린의 조련술인가.’
고민이 되지는 않았다. 드낙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궁술 아닌가? 더군다나 고블린은 몬스터였다. 내키지가 않았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드낙이 걸음을 옮기다 말고 양반다리를 하며 앉아서 눈을 감았다. 어차피 꿈이라면, 이런 재미난 상상을 조금 더 잡고 싶었고, 확실하게 고민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 꿈에서 깨어난다면 그 어떤 즐길 문화도 없는 척박한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활과 화살은 비싸다.’
화살은 전혀 소비재가 아니었다. 화살대가 부러지면 남은 부위를 회수하여 다시 나무를 깎아서 재활용하는 게 화살이었다. 촉이 부러지면 별 수 없지만 어떤 부위든지 재활용이 필수였고, 쏘고 난 뒤에 회수할 수 있다면 회수해야 했다.
현실 군인처럼 탄피를 줍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화살 한 대를 만드는 재료는 족히 5가지가 넘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용병단장이나 되고, 상인과 직접적으로 줄을 놓고 고블린 토벌에 대한 전리품을 거래하는 조세나 화살을 마음껏 쓸 수 있지 평범한 용병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활은 나무로 되어있었기에 관리도 중요했다.
활과 화살을 살 여유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 할다낙에게서 받은 돈은 방어구를 사고 검 한 자루면 동이 날 것이다.
양질의 화살을 쓰는 것은 있는 놈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전투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는 검이나 방어구도 비쌌지만 활과 화살도 비쌌다. 귀족들이 원하는 것을 용병부터 시작해서 마을에서도 구비를 해놓아야 하기 때문에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이었다.
‘고블린의 조련술.’
야생동물을 순식간에 조련하는 기술이었다. 곡물가루 혹은 고기만 있으면 충분했다.
드낙은 그대로 고블린의 문으로 들어갔다. 전신이 짜릿해지는 기분 그리고 머리가 아득해지더니 뻥하고 확장되는 기분에 휩싸이며 눈을 번쩍 떴다.
“헉! 헉! 헉!”
거친 숨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방이었다. 땀으로 범벅된 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이하게 몸의 체온이 높았고, 잠을 푹 잔 것처럼 상태가 좋았으며 잠이 확 깬 상태여서 다시 눕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진짜다.’
〈고블린의 조련술〉이 오롯하게 드낙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드낙이 도둑놈처럼 머리를 빙빙 돌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이었다. 방금 전에 주위를 둘러봤음에도 정신이 없어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 것이다.
누가 염탐하고 있었다면 분명 의심을 했을 행동이었다.
두 번이나 자신의 방을 휙휙 강도처럼 둘러보는 드낙의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드낙은 용병을 꿈꾸는 철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한 번 확인해볼까?’
곡물가루를 한 줌 쥔 채 마을을 돌아다녔다. 예전에는 이름조차 몰랐던 새 한 마리가 남의 집 지붕 위에서 털을 고르고 있었다.
〈흰가슴 겁쟁이〉.
물론 인간이 이름 붙인 것은 아니었다. 드낙은 새에게 관심 하나 없었기에 모르기도 했다. 고블린들이 이름 붙인 것이다.
‘주변에 덩치 큰 놈이 있으면 항상 소리를 내며 도망가지.’
제법 인간 마을에 있어서 지붕 위에서 멀뚱히 자신을 쳐다볼 뿐인 것은 인간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잡을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을에서 사는 흰가슴 겁쟁이는 어린아이만 보면 날아갔다.
숲에서의 흰가슴 겁쟁이는 제법 덩치만 크면 소리를 내며 날아갈 것이다.
“쪼루룩. 쭈루루.”
드낙은 소리를 내면서 곡물가루를 내밀었다. 남들도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정확하게 새소리를 내는 드낙에게 큰 관심을 보인 흰가슴 겁쟁이는 단번에 드낙의 손에 내려앉아 곡물가루를 쪼아먹었다.
“아!”
새부리의 뽀족함에 들썩이니 바로 소리를 내며 날아가 버렸다.
‘대박.’
이런 놈들보다 더 큰 놈들에게도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자 드낙이 크게 기뻐했다. 이것은 큰 무기가 될 것임을 잘 알았다.
용병들은 하루를 더 머문다고 했다. 드낙은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 용병들이 묶고 있는 빈집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뭐야? 애송이잖아.”
용병들은 드낙을 보는 내내 틱틱거렸다. 마치 자신들의 후배를 다루는 듯한 모습이다. 일찌감치 길을 들여놓을 셈인 듯했다.
‘멍청이들.’
드낙은 콧김을 한 번 대놓고 뿜어주었다. 용병들이 그 모습에 낄낄거리며 귀엽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엉덩이까지 흔들어보라고 지껄였다. 과민반응을 하면 더 발작하듯이 들이댈 것이 분명했기에 무시하며 〈용병단장 조세〉를 찾아다녔다.
그는 벌써부터 전리품을 양피지에 쓰면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용병 중에서도 짬밥이 안 되거나 하자가 있거나 조세에게 빚을 진 용병들이 그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확인이 완료된 짐마차는 확실하게 봉해졌다.
‘마을에서 2대를 빌렸나?’
검은 산골 마을, 나아가 락손과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상단이 끼어있어서 그런지 마을의 자원을 거침없이 빌려 쓸 수 있는 듯했다.
“어? 그렇지 않아도 부를 셈이었는데, 알아서 찾아왔네.”
“칼밥 먹는다는 놈이 눈치는 있어. 안 오면 그냥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용병들이 킬킬거렸다. 2절, 3절을 넘어서서 6절까지 하는 미친 새끼도 있었다. 죽빵을 갈기고 싶었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용병에게 대들었다가는 다구리는 기본이다.
내로남불의 현재진행형을 넘어서서 피까지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용병들이 규율이 없다는 것을 드낙은 잘 알았다. 시체가 된 동료를 그 자리에서 묻어버리면 끝이고, 조세는 따로 명령을 잘 하지 않았다.
시끄럽게 떠들다가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해도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기회로 덤벼든 적을 죽일 수 있을 기회로 삼을 수 있으니 쌤쌤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런 멍청한 용병은 없었다.
‘실력이 있어도 허망하게 죽었지.’
드낙은 몇 년 더 이 마을에서 실력을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했다.
“이게 제꺼예요?"
“그래.”
기억이 말해주는 것과 용병들이 따로 놔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반이 없네.’
드낙은 그런 불합리함에도 넘어가야 하는 처지였다.
“얼마나 주실 건데요?"
“우리 용병이 돈이 어딨다고! 짐마차에서 쓸만한 거랑 물물교환해야지.”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구라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지만 그 어떤 말을 해도 용병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교환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드낙이 을(乙)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우리 용병단은 돈을 키우지 않아. 싸우러 가는데 개인이 돈을 쥐고 있으면 뒤통수를 맞을 수 있거든. 시체가 돈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 말에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푸하하!”
용병들이 드낙의 눈치가 상당하자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제법이다. 어린놈이 애송이 같지 않았다. 사실 애송이라기엔 고블린을 몇이나 잡아죽였다.
‘자기가 잡은 것보다 반은 덜 들어가 있는데도 내색하나 안 하네.’
조세가 양피지를 쓰다 말고 입을 열었다.
“너 우리 용병단에 들어올래?”
“이야아, 어린놈이 용병단장한테 권유를 받네. 나도 못 받아본 건데.”
“귀여워해 줄게. 아주 그냥!”
드낙은 웃음으로 마무리하며 용병들의 짐이 들어있는 마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드낙의 목표는 중병기(重兵器)였다.
‘철이 많이 들어간 놈이고, 그중에는 로또도 분명히 있다!’
산처럼 쌓여있던 중병기 아닌가?
드낙이 천막을 아예 걷어내자 용병들이 손사래를 쳤다.
“그거 피냄새 장난 아니다. 너, 천막은 왜 벗기냐?”
“피 조금이라도 덜 붙은 거 가져가야죠. 녹슨 거랑 어떻게 물물교환을 해요?”
조세는 용병들의 관심을 돌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애송이에게 관심을 주기에는 전리품이 많았다. 폐광에서 자리를 찬 놈들답게 인간은 품삯 때문에 포기한 광산의 자투리를 제대로 모아놓은 것이다.
목록을 써두지 않으면 도난이 발생하기 쉬웠고,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조세는 항상 이런 작업을 했다.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아주 크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무관심 속에서도 열심히 움직였다. 대놓고 단검으로 대검이나 할버드 혹은 미늘창을 긁어보기도 했다. 녹이 슬어있어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단검보다 못한 게 수두룩하네. 이런 미친.’
열처리가 안 되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덩치가 큰 장병기라서 그런지 접쇠 과정이 빠져있기도 했다. 가까이서 확인하면 그것이 눈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 덕에 드낙은 수월하게 대검 하나를 잡아낼 수 있었다. 어린애의 눈썰미를 믿을 용병들이 아니기에 신경도 안 쓸 것이고, 검을 놀리면서 대장장이 기술에 대해서 빠삭하게 아는 용병도 없었으므로 들키거나 트집을 잡힐 리가 없었다.
“방어구도 한 번 해볼까~”
“상체만 해라!”
귀신같이 조세가 소리를 질렀다.
“그냥 한 벌로 해줘요! 누가 알아요? 나중에 거지꼴로 이 용병단에 들어올지?”
“우린 거지 안 키운다! 이 새끼야!”
드낙은 능숙하게 농담을 던지면서 상하의를 모두 챙겼다. 열처리가 안되어서 투박하고 완전 철색인 체인 메일까지 집어 들었다. 당연히 체인 메일은 빼앗겼다.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신을 보호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죽 방어구를 얻을 수 있었다. 치수는 나중에 맞을지 몰랐지만 제법 넉넉한 것을 가져왔다.
“당장 입을 건 아니고, 조금 더 커서 칼질을 하려고?”
거침없는 물음이었다.
“예.”
“나중에 갈 곳 없으면 찾아와라.”
그것으로 용병단과의 만남은 끝이었다. 애초에 서로가 서로를 크게 원할 정도도 아니었다. 싹수가 있다고 남을 키워줄 정도로 용병들이 사람 좋은 것도 아니었고, 조세가 야망이 큰 것도 아니었다.
용병단은 하루가 지난 뒤에 칼같이 떠나갔다.
드낙은 그 뒤로 숲으로 혼자 향했다. 목적은 바로 야생 동물 조련의 숙련에 있었다. 머릿속에 있지만 죽은 지식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묘할 정도로 성공률이 높았지만 드낙은 그런 것에 자만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확실하게 야생 동물을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능숙함이 필요했다. 머리가 아주 질릴 정도로 반복해야 했고, 몸이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반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