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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화 (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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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에게 피를 뒤집어쓰게 한 용병의 이름은 게리한이었다. 그는 짓궂은 장난을 했지만 확실하게 고블린 도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이다. 이걸 가장 먼저 빼내야 해. 왜냐하면 고블린 이 새끼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피가 아주 빠르게 식고, 굳어버린다. 심장을 이렇게 적출해서.”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게 신기했다.

“심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동맥을 끊는 거야. 고블린 녀석들의 심장은 특히나 튼튼해서 심장 근처 동맥과 정맥에는 핏줄에 연골? 그런 게 있어.”

드낙은 적극적으로 도축을 체험했다. 끊어진 동맥을 손으로 잡아보기도 했다. 어차피 전신이 피로 물들어있었고,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잘 알았다. 작은 정보조차 알 사람만 아는 세상이었다.

“이렇게 칼집을 여기 툭 튀어나온 아랫부분에 그어주면 피가 말끔하게 다 나와.”

촤아악! 주르르르···.

심장에 있는 피를 든 채로 단검 하나만 쥔 채로 용병 게리한이 고블린의 손목을 건드렸다.

“다음에는 손뼈지. 고블린의 손뼈는 마법사들이 좋아해. 왠지 모르지만, 알고 싶지도 않아. 마법사와는 이야기도 잘 안 해.”

쯔걱.

“여기 손목 부분의 오른쪽 안쪽에 단검이 쏙 하고 들어가거든. 손을 돌려서 역으로 잡아서 한 번 강하게 비틀면!”

뿌극.

“손목이 부러지면서 손뼈만 이렇게.”

손뼈를 발로 걷어차서 싸움의 현장에서 밀어냈다. 마법사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다음은 두개골이야. 고블린의 두개골은 다양한 곳에서 쓰이는데, 대부분 고블린들에게 경고를 주고 겁을 먹게 해주지. 제법 오래된 마을은 근처 숲에 고블린 두개골을 산처럼 쌓아둔다고.”

잘 팔린다는 소리였다. 동시에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심장은 이제 가죽이나 천으로 싸면 끝이다.”

피가 더 떨어지지 않자, 게리한이 품에서 천을 꺼내서 감싸고, 텅 빈 가죽 배낭에 던져 넣었다. 용병 모두 하나씩 접어놓은 적당한 가죽 배낭을 가지고 있거나 돌돌 말아서 소지하다가 꺼낸 것이다.

당연히 드낙은 없었다.

목을 자르는 작업은 고되었다. 목뼈가 아주 단단했다기보다는 목 뼈가 두 겹이어서 오래 걸릴 뿐이었다.

“목 자르는 게 가장 일이지. 보통 힘든 게 아니거든.”

인간의 목뼈보다 더 굵었기 때문에 정말 힘들어 보였다. 서른 번, 오십 번 넘게 목뼈를 단검으로 베어서 긁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부러 뜨러야 했다.

“목뼈에 단검으로 긁어서 흠집을 안내고 지렛대로 쓰면 미끄러지기 마련이지.”

자신의 노하우를 말해주기도 했다. 애송이가 단검 투척으로 위태로웠던 자신의 상황을 반전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데요?”

“상인들 마음이지. 우린 단장에게 맡겨. 제법 오래 고블린 토벌만 골라서 해와서 상인과도 연줄이 있거든.”

〈용병단장 조세(Jose)〉가 알아서 한다는 소리였다. 그것에 어떤 의심도 가지지 않는 것을 보니 상남자긴 상남자였다. 자신이라면 영수증을 받았을 것이다.

드낙은 용도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고블린 심장은 보존식품이다. 썩지 않아서 1년이든 3년이든 묵어도 별 변화가 없거든. 신기해서 예전에는 먹으면 힘을 늘려준다고 하지만 미신이지. 값이 꽤 나간다.”

“어이! 애송이! 네가 죽인 고블린 처리는 어떻게 할래?”

용병 하나가 소리를 쳤다. 그는 꼼꼼하게 자신의 부상에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척 보아도 자신의 몸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그는 드낙이 구해준 용병이기도 했다.

“아깐 욕해서 미안했다.”

“전 근데 챙겨갈 가죽 배낭이 없는데요.”

“내가 가져온 것이 있으니 거기다가 넣어라. 단검은 있겠지?”

드낙은 투척용 단검을 들어 올렸다. 손을 단단히 고정시켜줄 크로스-가드(cross-guard). 손잡이와 검신 사이에서 직각으로 나있는 고정 부분이 없는 것이었다. 목숨을 구함받은 용병 셀심이 자신의 단검을 주었다.

초반에 고블린에게 덮쳐져서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에 잡은 고블린이 하나뿐이었다.

“웃!”

조심조심 목젖 밑의 푹 들어가는 곳에 단검을 집어넣고 살가죽을 잘라낸 드낙은 생각보다 피 냄새가 확 들어오자 움찔해야 했다.

“낄낄.”

“여기가 언제부터 훈련소가 되었지? 누구냐! 애송이한테 구함받은 병신이?”

“나다 이 개새끼야.”

용병들은 히히덕 거리면서 서로 욕질을 하며 친밀감을 과시하며 떠들어대었다. 물론 그들의 작업은 한참 남았지만 애송이 놈의 도축 장면을 구경하는 여유 정도는 있었다. 애초에 그런 규율을 내세우지 않은 용병단장 조세도 벽에 등을 붙이고 구경했다.

“시시하네.”

드낙은 완벽하게 도축을 해내었다. 〈검은 산골 마을〉에서 온갖 잡일을 하며 돈을 모아서 락손에게 수업료로 지불하며 손재주가 제법 늘었기 때문이고, 다른 동물을 도축한 경험도 있었다.

고블린이 거주하기도 하며 작업장으로 쓴 폐광 지하 1층의 끄트머리를 뒤지면서 전리품을 얻기 시작했다. 대부분 현물이었다.

야생에서 자라는 곡물과 온갖 말린 고기부터 시작해서 조잡한 주술도구, 짐승의 뼈, 조잡한 무기와 방어구, 화살까지. 특히나 화살은 가장 용병들이 좋아하는 전리품이었다.

온갖 영화에서처럼 수십만 발을 사용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 바로 화살이었다. 화살촉부터 시작해서 어느 동물의 어느 깃을 썼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윗깃과 아랫깃까지 생각한다면 화살은 〈일회용〉으로 쓸 수가 없었다.

“이거 보라고! 암염(巖鹽)이다!”

“뭐? 고블린 이 녀석들 호강하고 살았네.”

그중에서도 당연히 값이 제법 나가는 것이 바로 암염이었다. 하지만 팔지는 않고, 용병들이 쓸 듯했다. 애초에 그나마 값이 나가는 것이지 향신료와 향이 나는 식물의 재배가 잘 이루어지는 세상이었다.

향신료와 조미료에 대한 값이 중세와는 격이 다를 만큼 싸고, 현대보다는 비싼 정도였다. 그래도 좋아할 만했다.

용병들의 가죽 배낭이 꽉 차고, 따로 밧줄까지 써서 등짐을 매야 했다. 당연히 등짐은 드낙이 매어야 했다. 그는 이 용병단에 속한 자가 아니며 말 그대로 업어가는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불평을 하면 쫓겨날 뿐이다. 기회를 잡고 싶은 드낙은 입을 다물고 짐을 들었다.

짧은 전투를 했지만 뒤처리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는지, 해가 지고 있었다. 이른 점심에 들어간 것을 기억한 드낙은 깜짝 놀랐다.

‘시간감각이 사라진 것 같네.’

자신이 6시간 넘게 폐광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알자 급피곤해졌다. 원래 가져왔던 짐을 놓은 곳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다른 조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

순찰조의 용병 하나가 그들을 반기며 말했다.

“폐광의 입구마다 고블린이 들어가 있는 게 확실해졌어. 조마다 한 번씩 피를 봤다. 고블린들은 딱히 밖으로 나오지 않고, 폐광에서 생활하며 식량 조달만 할 때 밖으로 나오는 듯해.”

“오늘 야영을 하고, 며칠 동안 조지면 되겠는걸.”

조세가 그리 말하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크게 지펴진 모닥불에 앉아서 끓고 있는 수프에 손을 대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큰 모닥불에서 나온 적당히 태워져서 숯이 된 것을 빼내어 곳곳에서 작은 화덕으로 만들어 쓰고 있었다. 잔뜩 데워진 돌을 가져다가 땅에 묻고, 그곳에 눕는 용병도 많았다. 드낙도 적당한 돌 세 개를 모닥불의 옆에 두었다. 성질 급한 용병은 아예 모닥불 안에 던져놓았다.

숲의 밤을 지내기 위해서 술로 몸의 체온을 높이는 정도로만 마시고 조세는 별말없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전투를 하지 않은 순찰조가 불침번을 설 것이다.

드낙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온몸에 고블린의 피로 범벅이 된 드낙이 일인분 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용병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애송이 놈이 제법인걸?”

“고블린 하나는 확실하게 혼자서 잡았다더라.”

쑥덕거리는 용병들도 있었다. 수다를 떨지 않고서는 밤잠을 설치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다쟁이들이다.

드낙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용병의 말대로 고블린은 식량을 비축하고, 때때로만 밖으로 나올 뿐, 폐광 안에서 지내기 때문이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흩어서 지내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어제부터 드낙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준 게리한이 거기에 답해주었다.

“간단한 거지. 너도나도 대장 먹고 싶으니, 가족을 이끌고 딴 폐광으로 간 거야. 채광량이 자꾸 줄어드니까 미친 듯이 들쑤셨던 흔적들답게 곳곳에 폐광 입구가 있었잖아. 고블린들에게는 이미 지어진 안락한 집으로 보였겠지.”

“그런 적이 제법 있어. 고블린들은 항상 독립하고, 자신만의 부락을 끌고 싶어 하거든.”

한 마디로 조건만 된다면 암컷 고블린 하나 데리고 부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부락을 꿈꾼다는 소리였다.

“폐광산에 가는 인간도 없으니, 안전하다고 판단했겠지. 겁도 없이 인간 마을에 간 고블린만 아니었다면 오랫동안 고블린의 존재를 못 찾았을 거다."

“운이 좋았던 거지.”

은근히 섬뜩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기도 했다.

“이번에도 똑같이 간다.”

말 그대로 고블린 사냥이었다. 폐광산의 많은 입구가 고블린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보다 넓은 영토를 통해서 고블린의 숫자를 늘려주는 효과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각개격파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낙은 그곳에서 고블린을 죽이는 경험을 몇 번이나 얻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되려 답답해서 그저 흐르는 대로 놓아버렸다. 어차피 인간을 헤치는 몬스터라 생각했다.

동시에 드낙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생해서 그런가?’

처음 고블린을 죽였을 때, 느꼈던 고요함과 평온함 동시에 끝없는 자신감으로 완벽하게 적재적소에 투척 단검을 뿌렸던 드낙이었는데, 그 현상은 이후에도 일어났다.

‘몬스터를 죽이면 발동이 된다.’

그 기괴한 현상을 겪으면서 드낙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성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용병으로 활동하며 죽지 않을 자신이 생긴 것이다. 강력한 비수 하나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힘이 나에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런 고민도 했지만 금세 잊혀갔다.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었고,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기에는 숲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은 고되고 힘들었다. 또한 고블린은 조세의 활 솜씨로 잡기가 쉬웠지, 막상 부딪치면 항상 진땀을 빼야 했다.

놈들의 격렬함은 비정상이었다. 광기에 물든 채 죽을 때까지 버둥거리는 고블린은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난폭한 기억을 드낙에게 주었다.

‘궁술!’

드낙은 용병단장 조세의 활솜씨가 실로 대단한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고블린의 사지에 명확하게 박히는 그 활쏨씨는 고블린이 금속 방어구를 입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체중이 적은 고블린은 화살에 깃든 장력 때문에 팔에만 맞아도 넘어지거나 뒤로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노력의 결과겠지.’

고블린의 팔을 휘저으며 달리는 속도에 맞춰서 예측샷을 날릴 수 있다는 소리였다. 조세의 궁술은 고블린 토벌의 베테랑이 얻을 수 있는 끝자락의 경지였다. 눈썰미가 좋고, 온갖 현대의 잡지식을 가진 드낙이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부럽다.’

활을 잘 못 쏘고, 10걸음 내의 거리에서 투척하는 것이 전부인 드낙으로서는 질투도 났다.

“마지막 놈이다.”

용병들이 폐광에 가득했다. 고블린을 모조리 쳐죽인 것에 성공했다. 일수로는 3일이 걸렸다. 많이 흩어져 있을 뿐,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쓸어 담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용병들은 한짐을 든 채로 마을로 향했다.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스스로 이름 붙인 현상, 고블린을 죽이면 찾아오는 순간적인 전투 판단력!

〈킬 더 배틀〉을 통해서 고블린을 다른 용병과 비슷하게 잡은 것이다. 물론 용병처럼 똑같이 값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잡아도 그것을 팔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휘유우우우!!”

휘파람을 불거나 환호성을 지르며 용병들을 마을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잔뜩 싣고 온 것을 보며 고블린을 아주 개박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낙은 웃으면서도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용병 33명 중에 3명이 죽었다.’

그들의 시체는 그저 그 자리에서 묻혔다. 어처구니없고,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전투.’

고블린도 인간을 죽일 수 있었다. 인간은 때때로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드낙은 이번 일을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고블린도 인간을 죽일 수 있다.’

중요한 교훈이었다.

환영 인사 아래 당연히 큰 잔치가 벌어졌다. 십 년이 넘도록 몬스터 하나 보지 못했던 산골 마을에 나타난 고블린을 토벌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잔치판에 뛰어들고 싶었다.

술 먹기 좋은 구실이었기에 너도나도 찬성하며 서로서로 모아둔 술을 풀고, 공동으로 고기를 잡아구웠다.

“와하하하!”

용병들 또한 그 분위기를 즐겼다. 몇몇 용병은 마을여자와 벌써 어울리고 있었고, 기회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드낙은 술을 홀짝이며 가족과 함께 있었다. 고블린 토벌에 대해서 장남인 세르낙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할다낙도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또한 드낙과 안면이 있는 자는 여자에 눈이 팔린 용병들보다는 드낙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편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냥 목을!”

취기가 조금 올라온 드낙은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말하면서 기름진 닭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고블린을 잡는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용병들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 허망함에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몇은 용병들의 죽음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르낙과 할다낙은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락손에게 제법 사랑받는 드낙에게 칼밥을 먹고 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재능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또한 검소하게 살았기에 돈을 모을 수 있었지 목장 하나를 경영하는데 드낙까지 끌어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날밤 드낙은 꿈을 꾸었다. 지독한 어둠이 내려앉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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