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 <-- 검은 산골 마을 -->
〈검은 산골 마을〉은 과거 광산으로 크게 부흥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매장량이 많지 않았던지 광산은 불과 10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산에 굴을 파면서 많은 광물을 캐냈고, 지하에서 끌어낸 검은 흙들이 산에 버려지면서 〈검은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꼭 한 번은 이 검은 산을 봐야 할 정도로 관광을 오는 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제는 떠돌이조차 오지 않는 〈검은 산골 마을〉이 되었다.
‘이런 깡촌에서 살라니.’
환생자, 박호훈은 길쭉한 양치기용 지팡이를 하나 어깨에 걸치고 나무에 등을 기대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산골 마을에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3년이 지나도록 몬스터 한 마리 침입한 적이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판타지 세계긴 판타지 세계인데.’
은퇴한 마법사가 늘그막에 자리 잡은 덕에 마법 구경도 했기에 철석같이 판타지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평온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재미없는 세상이었다.
그나마 영화속의 이팩트보다 한참 못 미치지만 〈리얼리티〉 하나만으로 재미를 주던 마법사는 무덤 속에 들어간지 제법 되었다.
바쁜 일상이 당연한 현대에서 그것도 가장 바쁘다는 한국에서 살았던 박호훈, 양치기 드낙에게 있어서 어쩔 때는 일이 편했지만 동시에 심심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겨워서 죽겠다.’
온갖 문화가 융성하고 콘텐츠가 만연하고 정보가 흘러넘치듯이 생산되는 현대에서 살아온 드낙에게 있어서 이곳은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현대로 돌아갈 수도 없겠지만.’
마법에 대한 재능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마력조차도 쥐똥만 했다. 실제로 수정구를 통해서 자신의 마력을 투영하여 보았는데 딱 쥐똥만 했다. 묵직한 팩트였다.
해가 제법 기울어지자 드낙은 몸을 일으켰다. 입피리를 불면서 양떼몰이 견에게 신호를 주었다. 세르낙이 키우는 놈이지만 다른 사람도 잘 따랐다. 넓디넓은 목장에서 몰려다니는 양들이 너도나도 들어갔다. 양은 제법 돈이 되는 가축이었다.
옷은 언제나 소비되기 때문이었다.
‘가서 밥이나 먹어야지.’
드낙의 얼마없는 낙 중에 하나!
다양한 향신료가 그나마 발달하였기에 굶는 일은 없었다. 안 그랬다면 드낙은 약초꾼이 되었을 것이다. 향이 나면서 독이 없는 식물을 찾으러 산과 숲에서 살다시피 했을지도 몰랐다.
‘비린내는 정말 싫어.’
가장 끔찍한 것이 고기의 비린내였다. 이곳에서는 어디에서건 고기가 들어갔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목장의 아들이기 때문이고, 이 마을에는 생각보다 농노가 많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을 놈들이 많으니 그만큼 가축을 많이 키울 수 있다는 무식한 소리가 실현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끔찍하다.’
드낙은 자유를 잃고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아가야 하며 궁핍한 삶이 약속된 농노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들 중 다수가 빚을 떠안고 농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혹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자기 코도 석자였다.
“드낙? 오늘은 좀 일찍 왔네.”
밭을 갈던 농노가 제법 친한 척을 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라 농노였기에 무식할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지 않았다. 애초에 저 농노도 드낙과 같았던 이 마을에서 살던 시민이기도 했다.
“말스. 락손님은?”
“창고에 가신다고 했는데, 오늘은 제법 일이 많아. 오전에만 몇 명이나 상인이 찾아왔다고. 가을이 되니까 벌써부터 경쟁이 붙었어.”
“그 정도야?”
“몰랐어? 〈횃불 성채〉에서 몬스터가 들이닥쳤더라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드낙은 모르는 소리였다. 작은 정보도 이곳에서는 제법 큰 정보로 통했다. 애초에 〈정보〉 자체가 적었기에 관리가 가능했다. 검은 산골 마을의 촌장이자 온갖 일에 빠짐없이 등장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락손〉의 농노이기에 아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인데···”
“불과 6일이면 간다고.”
한 달을 가야 수도에 도착하니, 6일이면 가까운 거리나 다름없었다.
‘하여간 말은 잘 주워듣는단 말이야.’
드낙은 말스의 앞에서는 말조심을 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이놈은 주워들은 만큼 떠들었다. 농노로서 락손에게 매번 많은 것을 바쳐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락손이 뒷배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입을 놀린다고 큰 부상을 입힌다면 되려 락손에게 돈을 쥐어줘야했다. 깽값이 본인이 아닌 락손에게 향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통보다 깽값이 더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마을 촌장을 뛰어넘은 지역 유지니까.’
락손이 뒷배나 다름없으니, 제법 큰 놈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누구에 대한 정보를 떠들건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말스는 많은 시민들이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남에 대해서 떠드는 놈이 인기 많을 리가 없었다.
“수고하라고.”
“너도 열심히 해.”
지팡이 없이 걷는 드낙을 보며 말스의 눈이 좁혀졌다.
‘목장주의 차남이 출세를 하려고 발악을 하는군. 이 산골에서 나가봤자 복날 개 터지듯이 맞아서 돌아올 것이 뻔한데.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감사히 여기게 될 걸!’
마음대로 어디도 못 가는 농노였기에 출세를 탐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낙의 평소 행동은 말스의 반감을 사고 있었다. 〈퇴역 군인 락손〉에게 돈까지 쥐여주며 싸움법을 배우고 있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퉷!”
밭에 침을 뱉었다. 그것은 질투였는데, 드낙은 무재에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불이 났다.
소문에 의하면 락손은 항상 저녁 식사마다 한 번씩은 드낙에 대해서 말한다는 걸 시녀에게 들었다. 대단한 일이다. 추천서를 얻을지도 몰랐다.
“빨리 빨리 가져오게!”
“예!”
식량창고에서 목록을 확인하며 농노를 닦달하던 락손은 인기척을 느꼈다. 허리춤에는 롱소드가 있었고, 그곳의 반대편 혁대에는 투척 단검이 두 자루 있는 그는 퇴역했음에도 현역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드낙? 일찍 왔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약간 노을빛으로 변한 하늘을 보며 락손은 자신이 되려 늦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사과의 말 하나 없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가지는 시간감각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대로 작업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봐라. 내일 이어서 하겠다.”
“예!!”
농노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마치 군대를 보는 것 같았다. 퇴역군인인만큼 아랫사람을 놀리는 것이 병사를 다루듯이 하였다. 난폭했다.
워낙 땅주인이 없는 산골 마을이라 직접 농노들을 이용해서 정리한 땅이 연병장이 되어있었다. 락손은 확실히 〈검은 산골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자였다. 〈범죄 농노〉를 10명이나 데리고 이 마을에 왔고, 이제는 다른 농노들도 가지고 있었다.
‘노동력이 최고지.’
드낙은 평평한 연병장에 들어서며 또 감탄했다. 말 그대로 자연이 꽉 들어찬 이 세상에서 이렇게 300평은 되어 보이는 말끔한 연병장은 매번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또 그리 멍하게 연병장을 보는가?”
락손의 말에 드낙은 괜히 딴소리를 했다.
“제가 뭘요. 검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무뚝뚝함은 되려 락손을 즐겁게 했다. 진실로 연병장에 매번 감탄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해주는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꼴에 남자라고, 자존심은.’
철심이 박혀진 목검 따위는 이 세상에 없었다. 사람의 인명이 가축보다도 싼 것이 이 세상이었다. 황소만 한 말 한 마리면 사람 열 명 분을 하는데, 인간이 가축보다 싼 것이 당연했다.
날만 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날이 있지만 무뎌진 철검을 썼다. 훈련용 같은 다양한 종류의 철검이 생산될 여건이 되지 않는 곳이었고, 그런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럴 조건이 되지 않았다.
오직 드낙을 위해서 훈련용 검 한 자루를 마련해준다? 그것도 숏소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롱소드와 대검 그리고 레이피어까지 할 텐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퉁퉁!
드낙이 방패를 두드렸다.
당연히 검을 쓴다면 방패가 있어야 했다. 동네 마실을 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검 한 자루면 족했지만, 드낙은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투를 원했다. 그 짜릿함은 이런 촌동네에서 느끼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불과했다.
평범한 원형 방패였지만, 튼튼한 원목을 통으로 깎아서 방패 형태를 내고 거기에 말가죽을 덧대고 난 다음에 철도금을 바른 것이었다. 그야말로 실전에 사용해도 아깝지 않은 훌륭한 전투 방패였다.
“몸에 열부터 내고 시작하자.”
“예!”
드낙의 무뚝뚝하지만 조용했던 말과는 다르게 우렁찬 소리가 연병장을 울렸다. 싸움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의 똥꼬를 핥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보지도 않을 사람의 똥꼬를 그리 핥고 나왔는데, 자신에게 전투술을 가르쳐주는 스승에게 못할까? 이 정도는 드낙에게 기본 소양과도 같았다.
‘잘 싸우는 것 빼고는 배울 것이 없는 놈.’
그렇다고 그를 진짜 스승으로 여기지 않았다.
드낙은 방패를 통나무에 후려치고, 철검을 휘둘러대었다. 철검의 질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접쇠를 해야 할 정도로 철의 단단함이 너무 단단해서 부숴지기 좋은 철이었다. 〈잡철 등급〉의 철괴를 이용해서 만든 철검은 미친 듯이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사용되어졌다. 하지만 10일 밤낮을 접쇠를하여 철을 조금이라도 무르게 만들고, 열처리를 해서 단단하게 만들어서 보통은 가는 철검이 되어있었다.
철의 질을 노력으로 덮은 〈대장장이 말룩산〉의 철검은 장인의 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래도 보통은 가는 검이었다.
“핫! 하!”
발도 놀렸다. 10분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드낙을 보며 락손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언뜻 보이는 자연스러운 〈강한 타격 타이밍〉에 무호흡까지 하는 모습은 이미 떳떳한 무인의 모습으로 보였다.
‘3년 아니 1년만 지나도 병사 노릇은 하겠다.’
수재(殊才)의 모습을 보여줘도 락손은 결코 칭찬하지 않았고, 속으로 하는 평가도 박했다. 퇴역군인이 될 정도로 오래 살면서 얻은 교훈은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근성 하나는 인정한다.’
스스로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이곳에서는 무기였다. 뭔가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 나이 때에는 잘 한 것이라고 칭찬하기 충분한 재능이었다.
나머지 5분은 빡세게 스트레칭을 하였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변명을 한 온갖 현대의 스트레칭이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기괴하게 락손의 눈에 보여졌다.
“어? 락손님. 방패를 드십니까?”
전과는 다르게 방패까지 들자 드낙이 깜짝 놀랐다. 조금 목소리가 높아지자 락손이 흘흘하고 웃음소리를 흘려내었다.
“그래. 너도 제법 숙련이 되었으니까. 3년 동안 검과 방패를 하루도 쉬지 않고, 사용했으니.”
조금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 칭찬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제 신체능력이 크게 낮은데, 그래도 방패까지 드는 건 좀···”
“이놈이? 칭찬하면 짧게 대답이나 할 것이지.”
“예!”
드낙이 시비를 걸 듯이 소리를 치자 락손이 히죽 웃다가도 진지한 표정을 했다.
“언제 너보다 강한 신체능력을 지닌 사람과 싸우는 법을 알겠느냐? 그것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10살 때부터 신체를 단련했는데 장성하면 너보다 힘 약한 놈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강자와의 싸움! 그곳에서 버티는 것이 락손이 드낙에게 해줄 새로운 수련법이었다. 또한 검 하나로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다. 늙은 락손에게 드낙의 포텐셜이 폭발적으로 터진 지금 시점에서는 일검을 허용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럼 안 해도 되는 수련법 아닌가. 어차피 나보다 힘이 강한 사람을 만날 일은 드물텐데···'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락손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담도 2절, 3절을 하면 옆구리에 금을 내버릴 사람이 락손이라는 놈이었다.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천방지축을 상대로 검 하나로는 부족하다.’
젊은 나이에서 나오는 혈기는 차에 부딪쳐도 벌떡 일어나며 부서진 자전거에 울상을 짓는 것에 불과하다. 혹은 손가락 하나 골절로 끝나던가. 그것이 바로 드낙의 현재 상황이기도 했다.
장성하지 않았지만 13살의 드낙은 그야말로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나이에 도달했다.
비대하지 않지만 근육으로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고, 순발력과 반응속도 그리고 동체 시력은 근력과 신장이 낮아도 〈한 수〉를 보여주거나 〈럭키 샷〉을 할 수 있기에 충분한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이런 젠장.’
락손이 방패를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자 드낙은 속으로 온갖 욕을 했다. 자신보다 신장이 30cm나 차이 나고 체중도 많이 가진 주제에 애 상대로 방패를 들다니. 아주 개새끼였다.
‘호로쌍놈의 늙은이. 하지만 이렇게 넘쳐나는 시간에 내가 그런 대책도 안 세웠을까 봐?’
멍하게 멍 때리며 섀도우 복싱하듯이 온갖 싸움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유일한 콘텐츠인 드낙이었다. 꿈에서도 영화 속 괴물과 싸우는 꿈을 꿀 정도로 이곳에서 즐길 스포츠는 검술 하나뿐이었다.
‘정면승부는 당연히 피하고.’
옆으로 움직이며 기회를 엿보았다. 락손 또한 측면 공격을 할 것을 예상했기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는 경험이 많은 퇴역군인이었다.
“흡!”
숨을 참고 폭발적으로 다리의 근력이 화력을 토해냈다. 락손의 품 안으로 순식간에 뛰어들었다. 신장이 낮은 것을 이용해서 아예 몸을 낮추었다. 검이 휘둘러졌다.
후웅!
‘무지막지한 소리!’
락손이 휘두르는 롱소드가 휘둘러지는 소리는 무시무시했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움츠러들어서 파고 든 상황에서도 주저하다가 목이 베일 터다.
퇴역 군인, 퇴역 군인해도 현역의 미친 근육질은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최소한의 단련을 드낙과의 수업으로 하게 되었기에 노화에 따른 근손실이 최소화되어 있었다.
드낙은 무식하게 동체 시력만을 이용해서 검의 궤적을 순식간에 확인하며 방패로 땅을 치며 순식간에 움직였다. 당연히 락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방패가 앞으로 쑥하고 밀어졌다.
캉!
검과 방패가 부딪쳤다. 락손은 그 순간에도 한 걸음 앞으로 향하며 몸을 기울었다. 방패에 체중을 실어서 몸통 박치기를 하듯이 들이닥쳤다. 범처럼 아가리가 쭉 밀어드는 듯한 형세였다.
텅!
그것을 드낙이 방패로 막으면서 밀려났다.
쉭! 쉬익!
힘이 빠져있는 락손의 롱소드가 뱀처럼 한 번 찌르고 베어졌다. 아래로 굽히고 옆으로 움직여서 공격을 피한 드낙을 보며 락손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방패든 적을 처음 상대하는 것 아닌가?”
“할 일도 없어서 상상했었죠. 거기에 하나 딱 이렇게 걸리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양치기는 바쁘다던데, 모두 헛소리였군.”
“전 차남이니까요. 설설해도 됩니다.”
잡담을 나누면서도 드낙은 기회를 엿보았지만 빈틈 하나 없었다.
“좀 봐주시죠.”
그 말에 락손은 돌진하는 것으로 화답해주었다. 지독한 늙은이였다. 말 그대로 실전으로 다져진 잔혹함!
머리에 혹이 난 드낙은 울리는 두개골에 불안감을 느끼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돌진을 피한 것이 패착이었다. 긴 신장을 가진 락손의 돌진을 피한 것은 큰 실수였다. 피해도 사정거리에 닿았던 것이다.
‘돌진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덩치 큰 곰이 사람보다 느리다는 멍청한 지식인의 말을 믿었던 드낙의 패배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면 더 빠르다. 더 강하고. 더 매섭다.
“오늘도 한 수 배웠습니다.”
“그래. 오늘 배운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곱씹어라.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드낙의 공손함에 락손은 괜히 털털하게 말했다. 낯이 간지러웠기 때문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아니었다. 그저 돈을 받고 대련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드낙은 깍듯했다.
“저녁은 여기서 먹고 가라.”
“감사합니다. 역시, 락손님의···”
“헛소리는 되었다.”
락손의 큰 집에는 우물도 있었기에 그곳에서 단번에 냉수로 몸을 씻었다.
“으허어! 허어! 흐으으!”
촐랑거리는 드낙을 보며 락손은 자신이 펀 냉수 항아리를 그대로 그에게 부어주었다.
“흐아아악!”
날이 저물었다. 드낙은 가장 먼저 뜨끈하고 기름이 둥둥거리면서도 향신료 냄새가 제법 풍기는 수프를 입에 넣었다.
포도주를 한 잔 나누고, 락손이 입을 먼저 뗐다.
“네가 한 번 해줘야 할 일이 있다. 크기가 작은 놈이 필요해.”
“예?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실려고···?”
락손이 눈이 흉흉해지자 드낙이 헤죽하고 웃으면서 사과했다. 웃어서 넘어갈 수 있는 락손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크흠!”
락손이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되돌렸다. 본론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