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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몬스터마스터-293화 (294/295)

# 외전-순이, 반화 #

외전-순이, 반화

칼날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 어두운 구석에 벌벌 떨고 있는 작은 생명체는 이 추위에도 웃으며 지나가는 인간들을 보고 있었다.

“오예!! 오늘 그럼 돈가스 먹는 거야?”

“그럼~ 크리스마스잖아.”

어린 인간은 뭔가 신나는 일이 있는지 큰 인간을 보며 연신 싱그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 인간은 미개했다. 이런 추위에 굳이 편한 쉼터를 두고 밖에 나오다니. 그러고도 좋다고 웃는 꼴은 작은 생명체에게는 한심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부러웠다...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아빠는 없었지만 든든한 엄마가 있었다. 그러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갔던 엄마는 이제는 없다. 흔한 일이었다. 자신과 형제를 버린 것일 수도 있고 이 추위에 무리하다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요 근래 수상쩍은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인간이 있었다. 가끔 그런 인간이 나타나는데 그들이 사라질 때쯤엔 꼭 동족들이 사라지곤 했다.

아마 그게 이번엔 자신의 어미 차례였을지도...

벌써 삼일 째 굶은 작은 생명체는 슬슬 어미를 기다리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옆에 있던 형제들은 이미 싸늘하게 굳었다. 살려면 움직여야 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저 인간들에게 몸이라도 비벼서 먹을 걸 구해야 한다. 어미가 알려준 방법 중 하나였다. 특히 자신처럼 어린 개체가 하면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냐...아..

처음이라 부끄러웠다. 인간들에게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해야 하다니.

-냐...

“웅? 엄마! 저기 꼬먀미!”

“에이, 지지야. 지지. 병 옮아. 가까이 가지마.”

“아픈 것 같은데... 이거 주면 안 돼?”

“안 돼, 한 번 먹을 거주면 또 달라고 한다고.”

“히잉...”

실패였다. 어린 인간은 거의 넘어온 것 같은데 역시 큰 인간들은 녹록치 않았다.

부스럭...

“응? 여기 새끼가 있었네?”

“아휴... 얼어 죽었네.”“어미가 버렸나 봐. 쯧...가자.”

“그냥 두고 가려고?”

“신고하면 나중에 수거해서 치워줘.”

“그래?”

큰 인간 암수 둘이 자신의 형제들이 있는 구석을 발견했다.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하더니 그냥 간다. 자신은 보지 못한 모양이다.

-냐, 냐!...

뒤늦게 그들을 향해 울었지만 차가운 바람에 묻혀 저들에게 닿지 않았다. 기운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역시 인간들에게 기대한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사냥을 해야겠다.

어미에게 사냥하는 법도 배웠다.

.

.

.

-냐아...악!...

마지막 호흡을 고통스럽게 내쉰 친구 녀석이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냐!냐! 냐아아!

녀석을 흔들어 봤지만 부릅뜬 눈을 감지도 못하고 녀석은 그렇게 죽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길 위에서 친구의 죽음을 보는 것은... 그래도 이번엔 조금 마음이 쓰렸다. 제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던 녀석이었는데.

-뺘아! 뺘아아!

자기 엄마가 죽은지도 모르고 젖 달라고 삐약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녀석들인데... 앞으로 이 녀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뺘~뺘아~

꼬물...꼬물...

싸늘한 자신의 어미의 품을 파고들던 녀석들이 이내 따듯한 나의 품으로 들어와 젖을 찾는다.

‘이 녀석들아, 나는 처녀라고. 젖 안 나와!’

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옆의 친구가 걸렸다. 이런 녀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무리하게 영양을 보충하다 뭘 잘못 먹은 건지 돌아오자마자 쓰러졌으니까... 아마 또 인간이 뭔가를 했을 것이다. 이 근방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니까.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꼬물...

-헤유...

여전히 꼬물거리는 녀석들에게 결국 품을 내어준 나는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려주며 녀석들을 핥아 주었다. 이래서 내가 수컷 놈들을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괜한 짐덩어리들을 남겨버리고 지들은 사라져버리니까.

할짝!

할짝!

꾸욱! 꾸욱!

아무 것도 모르는 이 녀석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길에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일까? 어미를 무리하게 만든? 그러고 보니 그러면 나도 죄가 있었다. 나의 어미도 형제와 내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을 당했을 테니까.

하지만 난 결국 살아남았다. 그 추운 시절을 벌레와 쥐를 잡아먹으며 끝끝내 살아남았다. 이 녀석들도 그럴 수 있을 거다. 나처럼... 그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길에서 태어난 것을.

이 녀석들도 나처럼 살아남을 수 있게 당분간은 돌봐 줘야 할 것 같다. 곧 있으면 눈이 내리고 거리는 얼어붙을 테니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친구 녀석을 봐서 그 정도는 해줄 거다. 녀석도 만약 내가 이런 꼴이 되었을 때 기꺼이 내 새끼들을 돌봐 줄 테니까.

새끼들은 내가 잘 돌볼게.

넌 하늘의 별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마지막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일어섰다. 녀석의 새끼들이 나의 움직임에 뒤집어 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리를 옮길 거다. 여긴 녀석의 사체 때문에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니까.

-뺘?

꽉!

한 녀석의 목덜미를 물고 원래 내 보금자리로 이동한다. 혹시나 인간들이 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인간들 중에는 우리에게 먹이를 바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간혹 돌을 던지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녀석들이 있었다. 혼자라면 쉽게 피하겠지만 애를 물고 있어서 아예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

-하아아악!!!

“어머, 어떡해... 새끼들이야.”

“어미인가? 구조하기 쉽지 않겠는데?”

“반항이 심하네.”

“이제 날씨도 추워져서 저런 애기들이 버티기는 힘들 텐데... 빨리 구하는 게 낫지 않겠어?”

“어미가 너무 경계해서...”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이 나와 아이들을 번갈아보며 뭐라뭐라 소리를 낸다. 다가오지 말라고 녀석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녀석들은 나와 동족들을 잘 다루는 녀석들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강제로 데려가자.”“보호장비 꺼내 올게.”

“나비야~ 조금만 기다려. 곧 구해 줄게.”

-하아악!!!

“아니야아~ 나쁜 사람 아니야.”

-...

도통 들어 먹지 않는 인간이었다. 꺼졌으면 좋겠는데...

부스럭 부스럭...

“됐어. 천천히 시선만 잡아 줘.”

“오케이. 나비야~”

....확!!!

-냐아아앙!!!!!!!!!

“됐어! 새끼들 꺼내 와.”“알았어!”

젠장!

잡혀버렸다.

저 빨간 봉지에 든 고소한 참치냄새를 풍기는 것에 넘어가서 뒤에서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다.

실수였다...

젠장...

애기들을 바라보니 인간들이 하나씩 집어 어디론 가로 옮기고 있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그물을 찢어 버리고 싶지만 힘이 부족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걸 구경만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얘들아...

미안해 친구야...

“읏차! 얘도 옮겨야지?”

“다 큰 녀석이라 입양이 될까? 보호소에 가면 안락사 시킬 텐데 그냥 풀어 주는 게 낫지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좋은 집사만나서 길 생활 접을 수도 있지. 그리고 애기들이 엄마를 찾고 있잖아.”

“으음... 알았어. 일단 데려가자. 안 되면 임보라도 해야지.”

“그래.”

-뺘아~뺘아아...

인간들의 말소리와 함께 나도 옮겨졌다. 점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는 걸로 봐선 같은 곳에 데려가는 것 같았다.

-냐아!

아이들이 작은 상자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외쳤다. 내 새끼들은 아니지만 내 새끼 같은 녀석들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나온 행동이었다. 만약 친구가 나의 모습을 봤다면 많이 놀랐을지도... 애들한테 관심도 없을 뿐 더러 항상 도도하게 굴던 나였으니까.

“얘들 약간 품종묘 같지 않아?”

“그러게? 그러고 보니 어미 고양이도 품종묘처럼 생겼어. 좀 볼품없긴 해도.”

인간들이 뭐라고 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기분이 나빴다.

쳇...

“근데 애교가 없어서 입양가긴 좀 힘들 것 같네...”

“임보처 알아 봐야겠지?”

“내 주변에는 이제 임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나도...”

“끄응... 일단 찾아보자. 자! 얘들아~  새 보금자리야. 따뜻하지? 별로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길보다는 나을 거야. 곧 엄청 추워질 거거든.”

인간들이 뭐라 쑥덕거리더니 나와 아이들을 조금 더 큰 상자에 넣었다. 먹을 것도 주는 걸로 봐선 당장 뭔가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그제야 인간들의 눈에서 호의가 보인다.

“이제 좀 얌전해졌네? 자, 먹고 기운 차리면 꽃단장하고 사진 좀 찍자?”

나를 데려 왔던 인간들이 나와 아이들을 보며 웃어줬다. 그런데 뒤에서 시끄러운 인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또 데려 왔어??? 이제 빈 자리도 없다니까?”

“새끼들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곧 있으면 1월이라 다 얼어 죽을 수도 있어요.”

“끄응... 일단 데려 왔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터는 말 할고 데려 오라고. 여기 책임자는 나야. 일만 자꾸 늘리지 말고.”

“...예에...”

뭔가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을 가진 인간이었다.

“새끼는 빨리 입양 시켜버리고 어미는... 입양 안 되면 바로 안락사 할 거야.”

“임보처라도 찾을 수 있게 시간은 주세요.”

“저런 걸 누가 데려가? 곧 죽을 것 같아 보이는데.”

“...”

“잔 말 말고 저 새끼들이나 입양 잘 보내.”

.

.

.

....

아이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제 내 곁에 남은 녀석은 한 마리... 이 녀석도 곧 사라 질 것 같았다.

“것 봐. 저건 아무도 안 데려 간다니까? 못생기고 절름발이 녀석을 누가 데려가?”

“안 되면 제게 임보라도 할 게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임보? 그게 되면 지금 당장 데려가서 니가 입양 시키면 되겠네!”

“...”

“안 되지? 그러니까 그냥 포기해. 저 새끼 고양이는 오늘 입양자 올 거니까 얼른 보내고.”

인간들의 모습을 보니 나한테 호의적이던 인간이 불리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비야... 미안해...”

-냐아~

호의적이던 인간이 나를 보며 뭐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다만 감정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인간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정말 괜찮아.

그러니 미안해 하지 마.

“흐윽...”

난 정말 괜찮은데...

울지 않아도 되는데...

길에서 태어난 나의 죄일 뿐인데 왜 인간이 울고 있어...

울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으니까.

저 별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

“정말 미안해...내가 여유만 조금 더 있었으면...”

...

마지막 아이가 떠났다. 이제 정말 혼자다. 아니, 나를 보고 있는 인간이 있긴 했다. 마지막 아이가 떠나고 난 직후에 온 아직 조금 어린 인간과 그 인간의 부모로 보이는 인간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작은 인간이 나의 앞에서 서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그런 인간의 옆으로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인간이 재빨리 다가와 뭔가 간곡하게 말을 한다. 그래봤자인데.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삶은 저 인간이 떠나가면 끝날 거라는 걸.

그렇다고 구차하게 구걸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기엔 사실... 나는 지쳐있었다.

또 차가운 길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곧 있으면 나의 어미가 떠났던 그 때와 같아질 테고 나는 어미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따뜻하게 떠나고 싶다.

“얘, 내가 데려 갈게요.”

“네?! 저, 정말요!?”

“네. 정말요.”

“뭐!? 이반화! 보기만 한다고 했잖아!”

어린 인간의 말에 큰 인간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작은 인간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 녀석은 오로지 나만 보고 있었다.

먹지 못해 마른 몸, 푸석푸석한 털, 꼬질꼬질한 발, 닦아도 닦아도 생기는 눈꼽... 그리고 대충 씻어서 냄새를 풍기는 나만 보고 있었다. 이런 볼품없는 나의 모습을 녀석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웃었다.

나를 보고...

처음이었다. 나를 보고 웃은 인간은.

나에게 호의적인 인간은 나를 보며 웃지 않았다. 항상 근심에 쌓인 얼굴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의연한 척을 했다. 호의적인 인간이 슬퍼하지 않게.

그런데 저 어린 인간은 나를 보며 웃었다.

-냐아...?

“에휴... 누가 널 말려... 니가 알아서 책임지는 거다?”

“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첫날 빼고 처음으로 상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작은 인간의 품에 안겼다.

더러운 나를 어린 인간이 꽉 안아 주었다.

...따뜻했다.

처음 느껴보는 온기였다.

“내가 평생 책임져 줄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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